우주비행사는 어떻게 영웅이 되었나?

우주와 대중을 정복하기 위한 신화 ‘평범한 영웅’

2024-03-29     이레네 레뇨 외 | 컨설턴트, 사회학자

우주비행사의 헌신적 모습, 무중력을 버텨내는 신체적 능력 등은 1950년대부터 검증된 성공 비결의 요인이다. 이 직업은 대중의 찬사를 받고 인류 모험의 필요성을 구현하지만, 사실상 당위성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AI 로봇을 우주로 보낸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1955년, 미국 <ABC> 채널에서 ‘맨 인 스페이스(Man in Space)’가 방영됐다. 4,200만 명이 디즈니 스튜디오가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했고, 1956년 재방송 이후에는 미국 국민의 절반이 이를 시청했다. 인류가 달에 갈 수 있다고 믿는 미국인 비율은 1949년 15%에서 방송 이후 38%로 증가했다.(1) 쥘 베른의 소설부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2014년)까지, 공상과학은 우주 정복이 인류의 꿈인 것처럼 다뤘다. 자연적이고 보편적이며 시대를 초월한 욕망을 달성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주 정복에는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주탐사로 얻은 과학적 성과를 내세우고, 위성에 찍힌 지구 사진을 이용해 행성의식(인류는 지구라는 행성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역주)을 강조했다. 그리고 우주비행사를 영웅으로 조명하는 것도 한몫했다.

우주비행사는 단순히 우주로 탐사를 떠나는 역할뿐 아니라 자국의 가치를 구현하는 역할도 한다. 1961년 당시 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인류 최초로 우주여행에 성공했다. 소련이 유리 가가린을 뽑은 이유는 그가 소박한 시골 출신이며 소련이 추구하는 남성상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미국도 1959년부터 미국 국민상을 대표하는 우주비행사 7명을 선출했다. 훤칠한 외모, 아름다운 아내, 충성심, 애국심, 백인, 정서적 안정성,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희생정신을 갖춘, 일명 ‘머큐리 세븐’이었다. 노련한 전투기 조종사였던 이들은 국가를 위해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는 기술적 능력, 의무, 용기의 상징이 됐다. 미국인들은 이들이 지상 1km도 올라가지 않았을 때부터 영웅처럼 떠받들었다.

 

의사와 교수를 빼고 전투기 조종사를 뽑은 이유

그런데 당시 우주비행사를 선발했던 생리학적 기준이 조금 애매했다. NASA의 전신인 NACA(미국항공자문위원회)가 1차로 실시한 신뢰성 테스트는 마치 그들을 최대한 조종하고 굴복시키려고 고안된 것처럼 보였다. 우주비행사들은 나체로 사진 찍히고, 온갖 실험과 침습적 장치의 대상이 됐다. 전투기 조종사만 뽑은 기준도 석연치 않았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 기준을 승인하기 전에는 선발 대상에 농구선수, 그네 곡예사, 등산가, 의사, 교수 등 온갖 직종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NACA는 제라르 드그루트의 공식에 따라 ‘평범한 슈퍼맨’을 찾기로 했다.(2) 너무 튀지 않으면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단정하고 이상적인 사윗감 같은 인물을 말이다. 게다가 전투기 조종사는 보안이 확실하고 상명하복과 압박적 분위기에 익숙한 군인이었다.

우주비행사의 첫발은 녹록지 않았다. 우주시대(인류의 우주경쟁·탐사·기술과 연관된 시대. 대략 1957년 스푸트니크 1호 인공위성 발사부터 현재까지를 이른다-역주) 초창기에 머큐리 세븐은 밖으로는 대중에게, 안으로는 과학자와 엔지니어 팀에게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했다. 미국이 최초로 우주에 보낸 생명체는 원숭이였는데, 우주비행사들은 이 영장류보다 부가가치가 높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이 직업의 현실은 궤도에 진입할 때까지 좁아터진 캡슐에 앉아 흔들림을 버텨내는 것이었다. 무중력 상태에 진입해서 시시덕거리는 모습은 아직 먼 이야기였다. 그리고 다시 귀환할 때, 흔들림을 참고 지구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위험천만한 과정이 남아있었다. 과학자들은 우주선이 거의 자동으로 운항되는 와중에 생명유지시스템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던 나머지, 우주비행사들에게 수면제를 먹일까도 고려했다. 그들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버튼을 누를까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드그루트는 우주비행사가 ‘좌석, 테이블, 창문을 조절할 권한’이라도 있는 일반 비행기 승객보다 자율성이 없었다고 비꼬았다. 

 

미국 언론, 우주비행사의 숱한 불륜에도 침묵

처음에 미 정부와 NASA는 우주비행사의 삶을 대중에게 공개하자는 제안에 시큰둥했다. 미숙한 모습을 대중매체에 내보내기가 망설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이 대중의 관심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승인했다. 1959년, 머큐리 세븐은 <라이프> 잡지에 본인의 사진을 팔아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다. 단, 우주비행사의 사생활과 위험천만한 임무에 대한 가족과 아이들의 무조건적인 지지는 묻어둔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에 기자들은 우주비행사와 관련해 많은 불륜 사건을 알고 있음에도 침묵을 지켰다. 우주비행사의 삶은 우상화됐고, 그들의 임무는 ‘홍보’로 확대됐다. 그들의 일정은 학교 연설과 회사 동기부여 세미나로 채워졌다. 

우주비행사는 불과 몇 년 만에 문화적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미국의 높은 기술력은 물론, 남성성과 정력을 상징하는 새로운 영웅이 탄생한 것이다. 머큐리 프로그램의 우주비행사 유니폼은 미래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은색 스프레이 칠을 했다. 1967년 영화 <007 두 번 산다>에서 제임스 본드는 전문적인 전투 실력을 선보였고, 1979년작 <007 문레이커>에서는 레이저무기를 든 영웅이었다. 한편, 미국에서 여성을 우주에 보내는 일은 여전히 시기상조였다. 여자의 신체 능력이 남자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더 뛰어난 경우도 있었는데 말이다. 소련은 1963년에 이미 발렌티나 텔레시코라는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를 배출했지만, 미국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샐리 라이더가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우주정거장 건설이 만든 ‘우주 근로자’

1969년 달 정복 이후, 유명세와 영웅화만으로 우주비행사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불충분해졌다. NASA는 최대한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스토리와 기존의 관습적 경계를 뛰어넘는 메타포가 필요했다. 1970~1980년대에는 우주왕복선을 타고 우주로 접근하는 일이 정례화됐고, 우주비행사는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고 그곳에서 과학실험을 수행하는 ‘우주 근로자’라는 스토리가 확립됐다. 역사학자 발레리 닐은 ‘우주에 가는 것이 곧 일하러 가는 것’이라는 공식이 성립됐다고 저서에 적었다.(3) 

이 시기에 우주비행사는 정거장을 하나둘씩 지어나갔고, 그 모습을 담은 수많은 이미지가 제공됐다. 한편 소련은 동맹국 우주비행사들을 살류트 정거장에 초대했다. 그중에는 1980년 7월에 방문한 베트남인 팜뚜언도 있었는데, 그는 베트남 전쟁 때 미국 B-52 폭격기를 격추시킨 장본인으로 우주를 여행한 최초의 아시아인이 됐다. 그는 우주에서 미군이 1962~1971년에 베트남 숲과 밭에 살포한 고엽제 때문에 발생한 환경적 피해를 목격했다. 

1980~1990년대, 여성 및 유색인 우주비행사가 크게 증가했다. 우주선을 비롯한 우주과학 자체의 유용성에 대한 비판이 만연한 가운데 NASA가 우주비행사 구성원을 다양화할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1986년, 크리스타 매콜리프가 고등학교 여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챌린저호에 승선할 당시 ‘누구나 우주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챌린저호는 발사 73초 만에 폭발하고 말았다. 우주여행이 아무리 정례화 됐다해도(여전히 성공하기 어렵지만), 다른 분야와는 다르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참사였다. 

이 사건들을 토대로 현재 미국, 프랑스 그리고 중국 우주비행사의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프랑스 우주비행사 토마 페스케는 옛 소련의 가가린과 미국의 머큐리 세븐처럼 영웅, 주인공, 평범한 남성이라는 3중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프랑스 국민은 토마 페스케를 제니퍼(프랑스 가수 겸 배우), 피에르 신부, 장자크 골드만처럼 칭송한다. 우주비행사가 극도로 엄격한 선발기준을 충족한 직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식 영웅이라는 지위는, 추종자들을 주눅 들게 하지 않는 평범한 남성이라는 이상과 완벽하게 결합한다. 철학자 권터 안더스도 달 여행의 유용성을 다룬 저서에서, 우주비행사는 영웅화와 더불어 ‘평범화’됐다고 적었다. “대중민주주의에서 영웅으로 추대받으려면, 대중이 그런 성향을 가졌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와 비슷하다고 동일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돼야 한다.”(4)

 

프랑스 우주비행사 토마 페스케는 왜 영웅이 되었나

그래서 우주비행사는 능력뿐 아니라 접근성과 평범함을 내세워 대중을 안정시키고 안심시킨다. 예를 들어 캐나다 우주비행사 크리스 해드필드는 우주국제정거장에서 ‘무중력 상태로 면도하고, 술을 마시고, 땅콩을 까먹으며’ 자신과 대중을 연결 짓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다.(5) 21세기 우주비행사는 SNS에 익숙한 인플루언서지만, 고용주로부터 활동에 큰 제약을 받는다. 항상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야 하며, 지구의 아름다움과 기후의 취약성에 관해 의례적인 발언만 해야 하며, 우주 폐기물 문제를 자주 언급하면 안 된다. 이탈리아 우주비행사 사만타 크리스토포레티는 젊은 세대가 과학 분야 직업에 관심을 갖는데 일조했는데, 특히 자신의 모습을 본뜬 바비 인형을 판매한 마텔사와 협력하는 등 색다른 ‘롤모델’ 역할을 수행했다. 

이런 요소들은 세계 550번째이자 프랑스 10번째 우주비행사 토마 페스케가 왜 2010년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큰 인기를 누리는지 보여준다. 유럽우주국(ESA)이 완벽하게 만들어낸 유명인이기 때문이다. 토마 페스케는 스포츠, 음악, 무료급식소를 종횡무진하며, 비난받을 구석이 전혀 없는 괜찮은 남자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는 이런 방식에 능숙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르고뉴 와인, 배경화면 같은 브르타뉴 풍경 등의 사진을 올려서 애국심과 지역주의를 부추긴다. 그리고 2021년 그리스, 캐나다, 캘리포니아, 터키 화재를 끊임없이 언급하며, 기후변화에 대한 낭만적 생각을 공유한다.

 

이제는 유색인 여성 우주비행사가 나올 차례

국민스타이자 우주 프로그램 홍보대사라는 이중적 역할은 여기저기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적용하기 편리하다는 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NASA도 우주비행사의 남성 비율이 월등히 높아서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로리 가버 NASA 부국장도 이 점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꼬집었다. “우주비행사 구성원의 다양화는 이 직업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사회계층에게 롤모델을 제시하고 희망의 물꼬를 터줄 것이다.”(6) 미국이 2026년 달 착륙 프로젝트 ‘아르테미스’에서 최초의 유색인종 여성을 달로 보내려고 애쓰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주비행사라는 직업은 스크린 속의 배우 역할도 흡수하고, 환경문제에도 관여하고, 이제는 성별·인종·장애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역할까지 맡게 됐다. 

그러나 우주비행사, 우주정거장, 우주연구의 유용성은 여전히 ‘전설의 바다뱀’같은 문제로 남아있다. 우주국제정거장 1일 체류비용은 우주인 1명당 750만 달러로, 발사비용까지 합쳐서 시간당 31만 5,000달러에 육박한다. 우주에서 과학연구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정당화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다.(7) 이에 자주 언급되는 주장은, 우주선을 다섯 차례 보냈기 때문에 1993년에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선 다섯 대를 보낼 비용이면, 우주망원경 7대를 제작해서 우주로 발사할 수 있었다. 

 

 

글·이레네 레뇨 Irénée Régnauld, 아르노 생마르탱 Arnaud Saint-Martin 
각각 컨설턴트, 사회학자다. 『우주 정복의 역사: 나치 로켓부터 뉴 스페이스의 우주자본 시대까지(Une histoire de la conquête spatiale. Des fusées nazies aux astrocapitalistes du New Space)』의 저자이며, 윗글은 이 책에서 발췌했다.

번역·이보미 
번역위원


(1) David Meerman Scott, Richard Jurek, ‘Marketing the Moon: The Selling of the Apollo Lunar Program’, <The MIT Press>, Cambridge, 2014년.
(2) Gerard DeGroot, ‘Dark Side of the Moon: The Magnificent Madness of the American Lunar Quest’, <Vintage>, Londres, 2008년.
(3) Valerie Neal, ‘Spaceflight in the Shuttle Era and Beyond: Redefining Humanity’s Purpose in Space’, <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 2007년.
(4) Günther Anders, ‘Vue de la Lune. Réflexions sur les vols spatiaux(달에서 바라본 풍경과 우주여행에 대한 고찰)’, <Héros-Limite>, Genève, 2022년.
(5) Olivier Dessibourg, ‘L’exploration spatiale n’a rien de magique, c’est juste de l’exploration’, <Le Temps>, Genève, 2016년 5월 22일.
(6) Lori Garver, ‘Escaping Gravity: My Quest to Transform NASA and Launch a New Space Age’, <Diversion Books>, New York, 2022년.
(7) Donald Goldsmith, Martin Rees, ‘The End of Astronaut: Why Robots Are the Future of Exploration’, <Harvard University> Press, Cambridge,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