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혁명의 절망이 담긴 음울한 섹스

40년 전, 장 외스타슈의 영화 <엄마와 창녀>

2024-03-29     니콜라 비예이으카즈 | 번역가

한동안 우리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그의 존재를 결국 의심하고 말았다. 지난 40년 동안 대중은 영화감독 장 외스타슈(1938~1981)의 작품을 아주 간헐적이면서도 단편적으로만 접해왔다. 실제로 의미 있는 영화라고는 TV나 극장에서 정기적으로 상영해주는 <엄마와 창녀>(1973) 정도가 전부였다. 만성적인 재정난과 배급 문제에 시달려온 감독의 작품 세계를 곁에서 쭉 지켜본 동시대인은 드물었다. 과연 그의 첫 중편 영화 <로빈슨의 집>(1963)을 개봉 당시 관람한 사람이 누구였을까? 1973년 칸 영화제 수상 이후 한참 만에 제작된 마지막 단편 영화 <알릭스의 사진>(1980)은 또 어떤가.

당시 외스타슈는 그나마 짧은 영화 인생에서 이미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한편 그의 작품 특성 역시 이러한 어려움을 가중했다. 그는 대개 표준과는 거리가 먼 길이로 영화를 제작했다. 그나마 픽션은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이 실험 영화를 지향했다. 물론 위대한 걸작의 반열에 오른 대작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밖에는 대부분 특이하고 보잘것없는 영화, 제작비만 풍족했더라도 감독이 더 훌륭하게 빚어낼 수 있었을 습작 작품들이 대다수였다.

 

반복과 재구성에 관한 연작

하지만 2023년 여름 외스타슈 영화 전편이 재개봉되면서, 대중의 오해는 말끔히 해소됐다. 그의 영화는 조금 더 폭넓은 대중과 새로운 세대를 위한 작품임이 여실히 입증됐다. 관객들은 저마다 그의 작품 세계의 일관성을 인정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 세계가 얼마나 수많은 유령들에 사로잡혀 있는지, 얼마나 이미 일어난 것들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지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었다.

외스타슈의 작품은 연애를 비롯한 사건을 다룬 영화가 아니었다. 반복과 재구성에 관한 연작이었다. 외스타슈의 ‘다큐멘터리들’은 그의 윗세대의 작품과는 또렷이 구분됐다. 가령 대도시 파리의 변모 과정을 포착하려 했던 크리스 마르케와 피에르 롬의 영화 <아름다운 5월>(1963)과는 차별화됐다. 외스타슈의 관심은 언제나 현재가 아닌, 반복되는 것들을 향했다. 때로는 말을 통해(영화 <0번>(1971)에서 삶을 이야기하는 역할을 맡은 할머니의 말, <더러운 이야기>(1977)에 등장하는 단역배우 장노엘 피크의 말) 과거를 다시 활성화하기도 했고, 또 때로는 현재 찍은 장면을 과거 장면의 발자취로 이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한편 영화 <페삭의 장미아가씨>(1968년과 1979년, 두 번에 걸쳐 찍은 영화)에서는 외스타슈가 태어난 지롱드의 한 마을에서 중세 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해마다 가장 덕망 높은 아가씨를 뽑는 유서 깊은 전통 행사를 소재로 다루기도 했다. 영화에서 장미아가씨, 시의회 의원, 마을주민들은 각기 과거에도 존재하고, 미래에도 존속할, 여러 역할을 한시적으로 연기하는 연기자로 등장했다.

외스타슈는 매번 과거를 재구성함으로써, 경험이란 그 자리에서 즉시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경험된 것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고자 한다. <나의 작은 연인들>(1974)은 결코 ‘감정교육’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상 이 영화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로지 모든 감정이 배제된 장면을 통해 유년기의 소재들을 묵묵히 소개할 뿐이다. 그것도 모든 추억이 그러하듯, 불연속적이고 모호한 방식으로. 여러 측면에서 외스타슈는 반 트뤼포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셈이다.

 

“내가 이 시나리오를 쓴 것은, 나를 버린 여인을 사랑해서”

<엄마와 창녀>는 분명 독보적인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일반적 장치를 갖추고 있다. 이 영화에서 반복은 무엇보다 교묘한 측면, 심지어 변태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가령 외스타슈는 당시 자신이 처한 애정 상황을 허구의 이야기 속으로 옮겨와 관련자들을 배우로 캐스팅하고, 이중적인 구도의 영화를 만들었다. “내가 이 시나리오를 쓴 것은 나를 버린 여인을 사랑해서였다. 그녀가 부디 내가 쓴 시나리오의 영화에서 연기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1) 

그 문제의 여인이 바로 극 중 베로니카 역을 맡은 프랑수아즈 르브렁이었다. 반면 현실의 르브렁에 해당하는 영화 속 인물은 오히려 이자벨 웨인가튼이 연기한 질베르트였다. 영화 도입부에서 질베르트에게 버림받은 알렉상드르(장피에르 레오)는 옛 애인을 되찾으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같은 날 베로니카라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정작 베로니카는 외스타슈가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촬영할 당시 교제하던 마린카 마츄제스키의 분신에 해당한다. 
한편 베르나데트 라퐁이 연기한 마리는 알렉상드르가 ‘빌붙어 사는 집의 주인’이자, 이 영화의 분장 및 의상 담당자였던 카트린 가르니에의 분신이었다. 사실상 가르니에는 외스타슈가 프랑수아즈 르브렁과 헤어진 뒤 사귄 애인이었다. 심지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마리네 집 장면도 실제로 가르니에의 집에서 촬영됐다. 외스타슈는 이처럼 각각의 여인들에게 그녀들이 각기 겪었던 다른 순간들을 동일한 장소에서 각자 다른 ‘역할’로 다시 연기하게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남성 시네아스트의 전지전능함을 확인해준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외스타슈는 히치콕이 아니다. 영화 속 감독의 분신인 알렉상드르는 지인들을 상대로 연기 지도를 하려던 계획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알렉상드르는 감독의 다른 모든 남성 주인공들이 그렇듯,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능하고 가련한 인간, 수동적으로 수박 겉핥기식의 삶을 살아가는 말만 번지르르한 달변가에 불과하다. 

 

“위기가 지난 뒤에는, 얼른 잊어버려야 해”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 그저 시간만 흘려보낼 뿐이지.” 또한 그는 영화 <로빈슨의 집>에서 자신들에게 퇴짜를 놓은 젊은 여인의 지갑을 훔치며 흐뭇해하는 두 가난뱅이 건달의 사촌 격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산타클로스는 파란 눈을 지녔다>(1966)에 등장하는 다니엘의 조금 더 나이 든 버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번에도 배우 장피에르 레오가 연기한 극 중 다니엘의 가장 큰 야심은 여자들을 ‘낚기 위해’ 멋진 더플코트를 사 입는 것이다. 한편 <엄마와 창녀>에서도 모든 남성들은 외모에 각별한 관심이 많고, 항상 긴 소파에 늘어지거나, 침대 위를 뒹굴며, 온갖 궤변을 늘어놓고, 품평을 하고, 빈정거리고, 재잘거린다. 

변변한 직업 없이, 항상 무일푼인 남자들은 수다쟁이 계급 외에는 그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일하는 여성들을 착취한다. 극 중 여성들은 대개 반동적인 발언을 일삼는다. 가령 여성해방운동(MLF)에 대해 “남편의 침대에 아침을 대령하기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운동이라고 말한다. 알렉상드르는 어김없이 “집을 가진 여자들과만 잠자리”를 갖는다. 마리는 요리와 가사를 책임지는 동시에,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갖기 위해 때로는 동거남에게 돈을 쥐여주며 집 밖에 나가 있으라고 말하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자신이 사랑하는 이 빈대 같은 남자의 이기적이고, 더 나아가 잔혹한 면을 애써 무시하려 한다.

 

“너는 아주 ‘신사회적인’ 커플이 될 테지”

이처럼 외스타슈는 커플이란 이해타산에 근거한 제도, 혹은 피에르 귀요타의 말마따나 일종의 ‘매춘’ 시스템이라고 간주했다. 질베르트가 다른 남자(다른 누구도 아닌 장 외스타슈가 연기)와의 결혼 소식을 전할 때 알렉상드르가 내뱉었던 신랄한 비판도 정확히 그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너는 간부의 아내가 되겠지. 너희는 아주 훌륭한 커플이 될 거야. 아주 ‘신사회적인’ 커플이 될 테지. (...) 심지어 샤방(영화 촬영 당시 총리직에 있던 자크 샤방 델마를 의미)에게 첫 아이의 대부가 되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을 거야.” 처음으로 정치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는 이 신랄한 비판은 앞서 알렉상드르가 했던 말과 조응한다. “위기가 지난 뒤에는, 얼른 잊어버려야 해. 깨끗이 지워버려야 하지. 나치 해방 뒤나, 68혁명 이후의 프랑스처럼. 너도 68혁명 이후 프랑스처럼 다시 일어설 거야. 오 내 사랑...”

사랑이든, 정치든, 언제나 시야는 꽉 막혀 있다. 두세 차례의 롱숏과 일부 야외 트래킹숏 이후, 카메라는 한자리에 고정된 채 거의 디스토피아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갑갑한 세계를 묘사한다. 각 숏의 배경에는 언제나 벽, 쇠창살, 혹은 갑갑한 세계를 은유하는 밤이 자리한다. 대개 근접 혹은 초근접으로 촬영된 인물들은 직장이나 자동차 실내, 비좁거나 어수선한 아파트, 협소한 다락방, 슈퍼마켓, 인파로 붐비는 테라스 혹은 바에 갇혀 있는 듯 보인다. 한편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도 언제나 쨍그랑 잔이 맞부딪히는 소리, 군중의 웅얼거리는 대화 소리, 자동차 엔진 소리에 잠겨 버린다. 이러한 구도를 벗어난 유일한 공간이 존재한다면 바로 식당이다.

가르 드 리옹역 역사에 위치한 식당 ‘트랭 블루’는 알렉상드르가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의 영화에 빗대기도 한 매개적 공간이다. 무르나우의 영화는 언제나 “도시에서 시골, 낮에서 밤으로의 이행”을 다루어왔다. 2초 동안 기차의 출발지가 나타난 데 이어, 반대편으로 기차역과 마주한 건물들 위로 하늘 일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조차 출구는 결국 더러운 흰색 벽이 되어 사라진다. 굳게 잠긴 창문들은 흐릿한 배경을 이루며 배우들의 모습을 또렷하게 부각한다.

 

서사적 연속성을 제거하는 특유의 페이드아웃

한편 그의 영화에서는 술 역시 어엿한 등장인물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커피를 마시는 도입부 장면 이후, 거의 모든 장면에 리카르, 위스키, 페르노를 비롯한 술병과 술잔이 등장한다. 심지어 알렉상드르와 마리가 서로 언쟁을 벌이며 제이앤비 술병을 주고받는 장면에서 위풍당당하게 등장한 물병의 존재가 흡사 일대 사건처럼 비칠 정도다.

폐쇄된 공간에 갇힌 채 술에 취해 수다를 떠는 인물들. <엄마와 창녀>는 종종 경이로운 이야기 모음집을 닮아서, 그야말로 68혁명 이후를 다룬 일종의 ‘데카메론’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언어는 어떤 여흥도, 도피처도 제공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다. 장황하거나 두서없는 말들이 영화가 진행되는 3시간 40분 동안 관객들을 수렁처럼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하는 끈적끈적한 물질을 이룬다. 처음으로 유일하게 외스타슈는 관객들에게 반복을 경험하도록 긴 시간을 이용한다. 그처럼 관객은 연이어 같은 장소에 등장하는 거의 동일한 장면들과 마주하게 된다. 간혹 기적적으로 극적인 이동이 일어날지라도, 언제나 한 장면 안에만 국한될 뿐이고, 전체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가벼움이 그와는 정반대의 것에, 열정이 비천한 것에 자리를 내준다. 코믹한 재치는 느닷없이 모차르트의 ‘레퀴엠’에 의해 고조된 음울한 분위기를 돌연 깨부순다. 심지어 자살 시도조차 주인공들의 관계에 아무런 균열을 내지 못한다. 

결국 모든 것은 잊혀 버리는 듯 보인다. 특유의 페이드아웃을 통해, 외스타슈는 사건의 결과나 서사적 연속성을 제거한다. 또한 그는 만남에서 흔히 기대되는 상투적인 상황도 생략한다. 가령 감독은 알렉상드르가 베로니카와 눈이 마주친 뒤 처음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려고 다가가는 순간에서 장면을 돌연 멈추어버린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비-만남을 30분 뒤 거의 똑같이 재현한다. 남자는 거리에서 베로니카를 닮은 여인을 따라가다가 느닷없이 가던 길을 되돌아온다. 

영화 자체도 질베르트가 거만한 태도로 남자의 청혼을 거절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서, 베로니카가 그의 청혼을 격한 웃음으로 수락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원형의 순환구조를 그린다. 하지만 ‘해피엔딩’식의 패러디를 이용한 반전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영화 말미에 알렉상드르는 자신의 애인이 양동이에 구토를 하는 사이, 극심한 고통에 사로잡힌 듯 숨을 헐떡이며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려버린다. 결국 한 여자는 다른 여자로 대체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삶은 동일한 것의 쉼 없는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도 일대의 사건으로 변화의 단초가 되지 못한다. 상호 교환적인 존재들은 단조롭게 서로를 대체한다. 흡사 프루스트가 말한 플로베르식 반과거가 줄줄이 이어지는 컨베이어벨트처럼.

 

우울한 ‘잠자리’에 극도로 초연한 태도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엄마와 창녀>를 전적으로 부정적인 다음의 용어들로 규정하고 싶어진다. 첫째, 탈개인화. 각각의 등장인물이 차지하는 자리는, 영화 속 연기자나 실제 현실의 모델처럼, 다른 사람에 의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 둘째, 탈-결정화. 모든 애정 관계는 연속성에 대한 환상을 깨부수는 방식으로 경험된다. 셋째, 탈-에로스화. 결코 육체는 이상화되거나, 욕망을 자극하는 대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렉상드르와 베로니카가 처음 사랑을 나눌 때 뜬금없이 탐폰이 저속하게 등장했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그만 해! 그러다 탐폰이 몸 안에 깊숙이 박히겠어!”)

정확히 베로니카가 그러한 특성을 구현한다. 알렉상드르와 마리는 서사적 정형성을 나타낸다. 가령 알렉상드르가 차례대로 주눅 든 애인(질베르트와의 관계)과 질투하는 애인, 무심한 남편(마리와의 관계)을 연기하는 동안, 마리는 다른 남자들과의 관계를 공공연히 욕망하는 버림받은 여성의 역할에 충실한다. 반면 베로니카는 그런 그들과는 구분된다. 특히 자신의 수많은 ‘섹스담’, 무수한 ‘인턴 혹은 의사들과 나눈 우울한 ‘잠자리’에 대해 극도로 초연한 태도를 견지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나는 한 달, 두 달, 혹은 석 달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어. 누군가와 함께 있어 좋다면 그냥 좋은 거야. 하지만 그 다음엔 그것으로 끝이지.” 그리고 그녀는 이번에는 훨씬 더 난폭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떻게 사람들은 ‘당신이 내가 사랑한 유일한 사람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 내가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 봐.” 여기서 68혁명이나 돌이킬 수 없는 ‘자유연애’의 실패에 대한 교훈담은 잠시 제쳐두자. 외스타슈는 향수에 젖은 자가 아니라, 우울한 자이니까.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듣던 프레헬의 노래 ‘그들은 대체 어디에 있지’에서처럼, 동일한 것의 영원한 반복이 지배하는 세상에서(“하지만 다른 이들이 되돌아올 거예요. 또 다른 영웅들이, 그리고 사라질 테죠. 각자 자신에게 맞는 때가 있으니까.”), 욕망이 조건법 과거로만 서술되는 세상에서(‘나는 원했을 텐데’, ‘나는 사랑했을 텐데’), 소멸 가능성이 오히려 위안을 선사하는 지친 세상에서(알렉상드르는 마리에게 말한다. “나는 봤어. (...) 마치 천 년 전이나 혹은 천 년 후에 똑같은 장소를 볼 수 있듯이 말이야. 흡사 고대 문명의 폐허 같은 이 아스팔트 도로를 (...) 나는 곧 이런 생각이 들었지. 이 모든 것도 언젠가는 사라질 테지. 임대주택도, 자동차도, 영화관도...” 역설적이게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쪽은 베로니카다. “언젠가 한 남자가 나를 사랑할 수도 있을 거야. 나를 사랑해서 내게 아기를 만들어줄 수도 있겠지.” 물론 그것은 동화 속 판타지, 어린 소녀의 환상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환송대>(크리스 마르케, 1962년)에 등장하는 한 여성의 각성 장면처럼, 외스타슈의 작품에서도 독특한 요소를 암시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변화의 가능성이다. 

 

 

글·니콜라 비예이으카즈 Nicolas Vieillescazes 
번역가 겸 암스테르담 출판사 대표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Caméra-stylo 카메라-만년필>(Paris, 1983년 9월)에 실린  Sylvie Blum, Jérôme Prieur와의 인터뷰로, Alain Philippon이 저술한 『Jean Eustache 장 외스타슈』(Edition des Cahiers du cinéma, Paris, 1986년)에서 재인용.

 

 

장 외스타슈 감독(1938~1981)은 누구?

1960~70년대 프랑스의 영화감독으로 누벨바그 이후 프랑스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으로 꼽힌다. 주요 작품은 <나쁜 친구들>,<산타클로스는 파란 눈을 가졌다>,<페삭의 처녀> 등이다. 대표작 <엄마와 창녀>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1938년 11월 30일 프랑스 누벨아키텐 레지옹의 페삭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초 고다르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오랫동안 파리 젊은이들의 삶과 관련된 영화를 만드는 데 주력하였다.

1963년 첫 중편 영화 <로빈슨의 집>을 감독하고, 같은 해 <나쁜 친구들>로 제목을 바꾸어 개봉해 여성을 유혹하는 두 젊은이의 이야기를 통해 누벨바그 세대의 새로운 미학적인 감독으로 떠올랐다. 1966년 파리 시내를 배회하는 젊은이들의 일상을 개인적인 시선으로 그린 <산타클로스는 파란 눈을 가졌다>에 이어 1968년과 1979년에는 <페삭의 처녀> 다큐멘터리 연작을 발표해 가장 고결한 처녀의 선발 과정을 미학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엄마와 창녀>는 1973년에 개봉되었는데, 68혁명 이후 프랑스 젊은이들의 허탈과 절망을 성과 예술에 대비시켜 표현한 영화로, 같은 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작품이다. 17년 동안 장편영화는 단 2편 만들었지만, 누벨바그 이후 프랑스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고집하면서 개인적인 작업을 주로 해 오던 중 1981년 갑작스러운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