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네오 정글에서 찾는 ‘여행의 진실’

Special 관광, 탈출산업

2012-07-09     클로틸드 뤼키오

여행이란, 때로는 낙후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현대적인 편리성’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통해 삶의 ‘진짜’ 방식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것일 수 있다.

'문명과 동떨어져 있어 자연 그대로인 보르네오', '지구의 진화를 체험하는 원시 섬, 보르네오에서 가벼운 모험을 즐기며 정글의 원주민 마을과 놀라운 야생동물을 만나는 여행'. 아시아 여행사가 프랑스인들에게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을 소개할 때 등장하는 슬로건들이다. 슬로건에는 울창한 정글 깊숙이 있는 온순한 눈빛의 동물 이미지가 동반된다. 하지만 여행객들이 말레시아의 초대를 받아들이자마자 그들은 곧 '진정한 여행'과 모순되는 상황을 깨닫게 된다.

등나무와 야자잎으로 엮은 오두막집 대신 아연과 나무 벽, 최악의 경우 시멘트 벽으로 지은 가옥에서 묵게 된다. 원시림에서 순수한 자연 경치를 감상하러 온 방문객들의 돈은 관광지의 현대화에 기여한다. 지역 주민들은 편이성과 안전성 면에서 이익을 보는 반면, 관광객들은 독특한 풍광을 감상할 기회를 잃는다. 또 지역 주민들에게 수익이 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며, 모든 관계자가 생태주의 인식을 함께하는 데 기여해야 할 생태관광의 모순 중 하나다. 말레이시아의 마케팅 대상인 관광객들은 일반적으로 구매력이 상당하기에 이들의 방문이 가져오는 지역 현대화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그렇다면 생태관광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생태관광. 정치인들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들은 생태관광이 지역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러니 마을 주민의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아니(가명)는 불만을 토로한다. 아니는 보르네오 북부 사바주의 관광기획 담당 컨설턴트다. 실상 지자체는 경제·사회문화·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정언처럼 내세운다. 관광 수익을 통해 관광지의 자연을 보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관광객이 상주하는 호텔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환경에 대한 압박은 커진다. 아니는 "방문객의 증가를 촉진하는 이같은 '원시 자연' 홍보를 멈춰야 한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관광객들의 '생태 발자국'을 제한하고, 관광객 증가가 가져올 노다지를 포기하라는 것인가?

교육 못 받고 영어 못하는 원주민, 고용 대상 아니다

이런 딜레마는 사바주의 키나바탕안강 공원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키나바탕안강 주변은 오랑우탄·긴코원숭이·코끼리·코뿔새 등 수많은 동물과 새, 물고기 등이 연출하는 장관으로 1980년대부터 동물 관광이 발전했다. 1997년 이후 세계자연보호기금(WWF) 외에 프랑스의 비정부기구 후탄(Hutan)이나 미국의 말레이시아 협력 기구 LEAP(Land, Empowerment Animal People) 같은 지역 또는 국제 비정부기구의 지원으로 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가 있었다. 2005년 이후에는 강의 하구부터 강줄기를 따라 200km에 달하는 지역에 9개로 쪼개진 '야생동물 보호지역'이 설정되었다. 그러나 각 보호 지역들이 나뉘어 있어 동물들의 이동이 어렵고, 그로 인해 근친교배가 증가하면서 생물 유전의 다양성과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게다가 야생동물보호법 때문에 지역 내 경제활동은 규제 대상이다. 따라서 예외적 허용을 제외하고 사냥과 채집은 금지되어 있다.

결국 환경 보호는 관광을 활성시켰지만 지역 원주민보다는 도시 여행업자들의 배만 더 불리고 있다. 지역 원주민들은 숙박 프로그램 등을 통한 관광 수입의 소박한 지분에 만족하면서 소유한 땅을 작은 경작지로 전환하기를 선호한다.

현재 보호지역 내 관광객을 수용하는 마을은 네 군데인데 아바이, 수카우, 빌리, 그리고 바투푸테(상류부터 하류 지역까지)다. 약 2만7천 헥타르의 보호지역과 지역 내 수많은 대기업은 원주민들에게 이중의 박탈감을 준다. 지역 주민들은 원주민으로서 겨우 몇 에이커에 해당하는 토지 권리를 가진 반면, 기업들은 이보다 훨씬 우월한 재정 수단을 가지며 수백 헥타르의 땅을 경작지로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원주민들에게 할당된 토지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에도 너무 작다. 또 땅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이나, 어업 또는 도시나 경작지에서 임시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원주민들은 더욱 비참하다. 그럼에도 정치인과 보존주의자들은 "괜찮다, 생태관광이 구원해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론적으로는 원주민들은 숙박을 제공하고 호텔에 고용되거나 지역 농산물을 팔아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아니면 '특산품'을 팔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매우 복잡하다.

농사를 지으면 원숭이나 야생 돼지, 코끼리가 먼저 따먹는데 어떻게 과일과 채소를 경작할 것인가? 어떤 놈(동물)들은 재빠르고 어떤 놈들은 힘이 세서 경작지 주변에 울타리를 쳐도 소용없다. 대규모 재배지만이 견고한 전기 울타리를 설치할 수 있다. 그럼 남은 것은 수공예 기술이다. 그러나 등공예나 조각을 하는 장인은 드물다. 플라스틱 공예품이 등나무 바구니를 대신한 건 이미 오래된 일 아닌가? 전통 공연? 이도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은 지역 문화에 관심 없다. 그리고 관광객들이 더 관심 갖는 것은 동물이다.

원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보잘것없는 숙박 시설의 침대 2개와 아침 식사뿐이다. 대체로 관광 가이드와 책자에 소개된 '친환경 숙소'라는 이름과 전혀 딴판인 호텔의 숙박료는 10여 가구 원주민 가족의 수입에 해당한다. 그러나 호텔에서 고용하는 원주민은 고작 두세 명에 불과하다. 호텔 대부분은 좀더 싼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출신 인력을 선호한다.

WWF에서 오랜 기간 생태관광 활동가로 일해왔고 원주민의 사회·경제 요구를 고려한 '아래에서 위로' 관광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매리는, 생태 숙박업소가 5개뿐이던 1990년대 말 상황을 들려주었다. "숙박 사업자들은 이미 원주민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지만 원주민들이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숙박 사업자들은 일부 원주민을 몇 명 고용했는데, 가령 결혼식이 있으면 원주민들은 출근도 하지 않는다고 불만이었다." 또한 "원주민들은 자신이 원주민이기 때문에 일자리를 줘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럴 만한 자격이 없다면 권리도 없다. 그렇지 않으면 좀더 나은 능력의 누군가를 고용되어야 한다." 교육을 받지 못하고 영어 실력도 형편없는 원주민들은 비록 자연에 대한 지식은 해박하더라도 사람들이 원하는 인력 조건에는 거의 부합하지 못한다. 원주민들 처지에서는 노동조건과 자유가 부족하다는 점이 불만이다. 바투푸테, 아바이 마을에서 만난 줄키플리와 아률, 파이잘 등 많은 원주민들은 자부심과 체념 사이에서 이렇게 고백한다.(1) "차라리 내가 사장이 되는 게 낫다. 그래서 물고기나 잡으며 살려고 일을 그만두었다."

따라서 원주민이 생태관광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지자체에서 제안하는 것보다 훨씬 제한적이다. 그러나 지자체는 원주민들이 상업화된 자연을 보존하는 데 동참하도록 권장한다. 1996년 한 원주민은 "관광에서 우리가 이득을 볼 수 없다면 여행사들이 더는 보여줄 게 없도록 긴코원숭이를 최후의 한 마리까지 죽여버리겠다!"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2) 이미 원주민들의 박탈감은 상당하다. 지자체들은 관광산업 때문에 동물들이 원주민들에게 피해보지 않도록 보호하는 데 고심한다.

그러나 환경보호는 관광산업의 수익 증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간 7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야생동물 보호지역을 찾고, 신축 호텔이 속속 들어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원주민들의 삶으로부터 동물을 보호하다

주요 볼거리는 오랑우탄과 피그미코끼리이다. 보호지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주로 대기업 소유의 150km 너비의 야자수 재배지를 통과해야 한다. "관광객들은 대규모 재배지를 보면 눈물을 터뜨린다!" 코타키나발루의 여행사와 수카우의 호텔 주인 알베르는 말한다.

공식 발표에 따르면, 최근 15년간 불법 재배지 폐쇄와 재식림 권장, 밀렵꾼 단속과 체포, 동물 보호 연구와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그 결과, 코끼리 개체 수가 늘고 있고 1950년대 이후 파괴된 숲이 다시 무성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보호구역 주변의 강을 따라 점차 관광객이 원하는 경관이 만들어지고 있고, 이는 여행사들을 더없이 만족스럽게 하고 있다. 이같은 성공의 신호로 관광객 수용력은 1990년 기본 텐트 몇 개였던 것이 오늘날 방이 340개로 늘어났다. 이는 연간 20만 회의 숙박을 초과하는 수용 능력이다. 15여 군데의 숙박지는 수카우(약 1천 명의 주민)와 빌리(200명 미만 주민)의 마을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키나바탕안에서 원주민 민박 관광 프로젝트를 처음 주도한 마틴은 건축기사로서 보르네오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이다. 그는 1991년부터 사바주에서 관광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초기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일부 투어 상품이 마을을 방문해도 주민에게는 그만큼의 이익이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이 자신의 몫을 요구하면 사업자는 그 마을을 떠났다. "다른 마을도 많기 때문에 새로 마을을 물색하는 것은 쉬웠다." 이런 관행에도 관광투어는 전혀 주춤하지 않았다. 이유는 그 이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순진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투어상품의 배경을 모르고, 모든 것이 낭만적이고 완벽해 보이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은 원주민에게 이익이 되는 여행 방식을 선택한 줄 알고 있고, 원주민들은 대행 계약으로 소외된 것이다.

1980년대 말부터 삼림을 과다 벌채해 키나바탕안 원주민들은 삼림보호구역 내 벌목 인부로 일할 기회를 차츰 잃었다. 원주민들이 마을 주변의 숲을 불법으로 벌채해 그 원인 제공자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원주민들은 그 대안으로 관광을 부흥시키자는 생각을 했다. 마틴이 설명했다. "1996년 정부가 키나바탕안 내 보존지역 일부를 정부 책임하에 관리할 계획이며, 마을 관광사업을 하겠다는 정보를 들었다. 그래서 WWF에 연락을 취했다. WWF에는 기부자들이 있었고, 내게는 마을 공동체 발전을 토대로 한 새로운 삶을 원하는 바투푸테 마을이 있었다. 바투푸테(빌리 상류 지점에 위치한 마을)는 살길을 찾고 있었다. 사업 계획에는 물론 생물의 다양성 보존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원주민 시각에 맞추었다. 목적은 불법 벌목에 대한 대안을 찾는 것이었다."

지자체에서 고안한 대로라면 원주민 민박 프로그램은 단순하다. 10여 명의 원주민들을 프로그램에 가입시켜 마을의 관광성을 증명한 뒤, 특정 위생보건 기준에 맞게 주택을 정비하면 관광업을 시작하게 된다. 일련의 논의 과정과 교육을 마치면 민박이 시작된다. 바투푸테는 이제 민박 명소 중 하나다. 이런 민박 마을은 키나바탕안에서 1997~2004년 4군데가 생겼고, 사바주 전체에는 16군데다. 관광객이 오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원주민들은 관광 수익을 직접 얻을 수 있다.

TV, 말끔한 침실… 그것을 바라고 간 것일까?

그러나 이 모든 일은 겉으로 보기에 단순할 뿐이다. 가진 것 없는 원주민들은 민박업을 하기 위한 교육 과정을 지불할 수 없는 형편이다. 교육은 무료지만 키나바탕안에서 400km 떨어진 중심 도시 근처에서 한다. 교통비는 원주민 한 쌍의 한 달치 월급(약 100 유로)에 육박한다. 여행 사업자 대부분은 원주민과 함께 민박사업하기를 거부한다. 예외적으로 모험관광 전문인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여행사와 수카우 원주민들이 만든 여행사만 관심 보일 뿐이다.

제공되는 숙소와 편의시설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 민박사업을 추진하는 말레이시아인들과 서구 관광객들의 요구 사이의 격차도 문제다. 서구 관광객들은 모험과 전율이 있는 탐험을 원한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 같은 모험을 원하는데, 거실에 텔레비전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는 말끔한 숙소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아마 바닥에 앉아서 오른손으로 식사하리라 기대할 것이다. 때로는 바닥에 누워 자고, 밤이면 멧돼지가 집 안 기둥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경험 말이다. 좀더 운이 좋다면 부엌에서 원숭이들이 음식물을 훔쳐가며 작은 소동을 연출하는 모습을 보거나, 정원으로 들어오는 코끼리의 코를 볼 수 있길 기대한다. 그러나 관광 전체를 통틀어 관광객이 정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세탁기, 환풍기, 믹서기, 노래방 시설, 아연 금속 지붕, 자동차 등. 관광 수익 덕분에 원주민들이 갖출 수 있는 물건 목록에는 없는 게 없다. 보리스 비앙의 노래 <진보의 애가>에서 나오는 쓰레기 압착기나 와플 반죽 분무기만 없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이런 현대 시설이다.

반면에 '친환경 호텔'은 숲 변두리에 나무로 지어 정글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이 숙박시설이 생태관광의 기준을 준수한다고 말해도 원주민 마을과 거리를 두기 때문에 관광객과 원주민 사이의 상거래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마케팅과 네트워크는 원주민 민박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경쟁상대다. 2008년 WWF의 독려로 친환경 호텔 5곳은 숙박료에 환경세를 도입하면서 환경보호조합을 창설했다. 회장은 "우리의 목적은 투자금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정글과 동물과 강은 호텔업 종사자들에게 1차 원자재이기 때문이다. 이 자원 없이는 호텔업도 불가능하다. 거둬들인 세금 덕분에 이들은 지역 모니터링 재정 지원, 사회 및 환경 행동강령 마련, 지역의 재식림 참여 등에 나서고 있다.

보르네오의 생태환경을 통한 지역 발전 시도의 기저에는 서로 다른 입장 차이로 오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생태관광을 통해 자연보호주의자들은 환경 의존적 경제를 창출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한다. 취재 중 만난 관계자들은 모두 키나바탕안강은 관광객이 오기 전보다 지금이 훨씬 잘 보존되고 있다고 말한다.

클로틸드 뤼키오 Clotilde Luquiau 지리학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박지현 sophile@gmil.com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위원. 남극보호연합(ASOC) 한국 어드바이저.


(1) 인터뷰에 응한 취재원들의 이름은 본인 요청에 따라 가명으로 바꿨다.
(2) Heiko K.L.Schulze Villagers in Transition: Case Studies from Sabah, 말레이시아대학, 사바,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