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거래소, 모든 게 연결되는 장
채무거래, 민간기업 통제, 빛의 속도로 이뤄지는 투기 등이 행해지는 주식시장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것만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출현한 이래, 증시는 자본주의의 이상을 구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돈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힘을 끝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서로 경쟁하면서 상보적 관계에 있는 공공·민간 금융기관들은 증권거래소 주위로 모여들어 전문 인력을 끌어들인다. 물리적으로 여러 기관이 집중되면서 정보 교류가 왕성해지는데, 이 정보의 가치는 그 내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주식거래에서 정보만큼이나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정보 교환 방식에 따라 해당 정보의 일시적 가치나 잠재적 활용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은행이나 투자펀드, 헤지펀드 등으로 대표되는 대형 금융기관들은 강력하고 신속한 컴퓨터와 알고리즘을 이용하는데, 증권거래소들은 되도록 최대 고객의 서버 가까이에 컴퓨터 서버를 위치시키려 애쓴다. 이에 따라 파리 증권거래소 역시 런던 교외로 컴퓨터를 이전하고 현지에서 공간을 임대해 런던 금융 자본가들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주식거래에서 0.000000001초라도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다.
교환과 교환 타이밍의 이중 투쟁 공간
웅장한 건물이든, 복잡한 컴퓨터 네트워크든 증권거래소 내부에서는 주식시장의 두 번째 측면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상업적 교역 장치로서의 기능이 발휘되는 것이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거래가의 형성은 두 가지 대립 구도에 기인한다. 첫째, 거래 가능한 하나 이상의 주식을 둘러싸고 매수인과 매도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립 구도다. 매매를 위한 경쟁은 매도 혹은 매수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을 부추긴다. 둘째, 주식시장에서 거래하려는 개인 투자자 혹은 기관 투자자 가운데에서 매도인과 매수인이 이루는 대립 구도다. 각자 상대방보다 자신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과정에서 대립하게 되는데, 이는 '교역 조건에 관한 대립 구도'라고 볼 수 있다.(1) 이같은 거래가 이뤄지도록 해주는 장치는 나라별·시대별로 달라지나, 기본적으로 거래에 참여하는 불평등한 쌍방 간에 형성되는 힘의 관계에 따라 어느 정도 형식적·비공식적 규칙 속에서 구체화된다. 주식거래와 그 중개로 인한 저들 간의 수익 분배는 "규칙을 만들어내는 힘을 둘러싼 알력 싸움"의 쟁점이 된다.(2)
증권거래소는 교역을 위한, 그리고 교역 조건에 관한 두 가지 경쟁이 벌어지는 사회적 공간이다. 상치되는 이익을 둘러싼 대립관계는 어떻게 중개가 이뤄지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교역 혹은 교역 조건에 관한 경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없거나 그러길 원치 않는 사람이 매도 혹은 매수 명령을 내릴 때, 증권 중개인(보통 은행)은 이 사람을 대신해 거래를 성사시키고 그 대가로 수당을 받는다. 중개인들은 매도 혹은 매수 명령을 끌어오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중개인들은 각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역학관계에 따른 개별적 혹은 집단적 전략에 매달린다. 이때의 역학관계란 순수한 의미의 주식시장을 넘어 하나의 금융시장을 구성하고,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권역 안에 포함된다.(3) 여기에서는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사이에 두고 다툼이 벌어지고, 금융 자본가들에게 거액의 수익 및 독립성에 관한 조건이 정해진다. 하나의 금융시장은 민간 및 공공 부문의 기관과 중개인을 포함한다. 은행, 보험사, 증권운용사, 상장기업, 자산관리사, 조절위원회, 중앙은행, 재무부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동시에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자금 조달과 투자, 중개, 운용 등의 활동 영역에서 늘 경쟁관계에 놓이고, 실무 방식이나 장내 운용 방식을 결정할 때 함께 경쟁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특정 활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건 늘 하나의 입지를 마련하는 수단이 되고, 다른 개입 주체들에 맞서 자신에게 적합한 일을 하기 위한 자리를 잡는 데 도움이 된다.
증권거래소를 특별한 장소, 즉 상업적 장치이자 사회적 공간으로 이해하면 이를 전형적인 시장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탈피할 수 있다. 금융 활동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기관과 대리인, 저들의 운용 방식과 관련한 사회적 측면을 복원해준다. 즉, 금전적 수익의 무한한 추구에서 갈등적 측면과 비환원적 측면을 되살리는 것이다. 따라서 증권거래소의 구성 및 운영 환경은 현지 역사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해당 지역의 역사가 켜켜이 누적되면서 증권거래소를 포함한 금융시장의 토양을 조성해놓은 것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변하지 않는 건 아니다. 외려 역사가 긴 만큼, 증권거래소의 정체 상태를 무너뜨리려는 힘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대개 100년에 걸쳐 구축된 역동적인 추진력의 기반에는 각각의 시장 내 경쟁관계와 상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이 각각의 시장 또한 국내외 다른 금융시장과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 이 역학관계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이뤄지는 규칙 제정의 험난한 과정 속에서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설킨다. 공식적인 규제가 이뤄지는 방식이 개입되면서 상황이 복잡해지는데, 이때의 규제는 국내적 차원에서 제정되거나, 통상법의 경우처럼 국제적 차원에서 만들어진 뒤 다시 현지로 옮겨져 적용된다.(4) 따라서 금융기관과 그 주체, 특히 증권거래소와 중개인은 금융시장 내에서, 그리고 이들이 함께 상호작용을 하는 사회적 공간 내에서 각자의 포지션에 따라 나름의 속도로 움직인다.
"대형 은행, 자선재단 아닌 총과 대포"
2000년대 들어 증권거래소 대부분이 민간기업으로 바뀌었고, 스스로 운영하는 시장 내에 자신이 상장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처럼 증권거래소 간에 이뤄지는 합병 시도는 비록 금융거래가 물리적 공간을 초월하게 된 지금의 현실에도 아직은 증권거래가 이뤄지는 물리적 장소가 얼마나 중요한 관건이 되고 있는지 인지시킨다. 2011년 런던 증권거래소는 토론토 증권거래소의 통제권을 손에 넣고 싶어 했으며, 싱가포르 증권거래소는 시드니 증권거래소의 매입에 실패했다. 그런데 캐나다 기업들과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자국 경제를 주관하는 기관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뉴욕 증권거래소는 2007년 이후 파리 증권거래소를 보유하게 되었지만, 도이체뵈르제(독일 증권거래소)와의 합병 시도는 무산됐다. 유럽집행위원회의 경쟁 총국은 더 이상의 추가 합병이 유럽에 대한 도를 넘어선 독점 행위가 될 것이라 판단했고,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도이체뵈르제에 규제권을 행사하고 있는) 헤센주는 고급 인력이 모인 프랑크푸르트 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초국적 차원의 인수·합병을 원치 않았다.
증권거래소가 이제는 증권을 사고팔려는 사람들과 그 중개인이 모여드는 물리적인 만남의 장소가 아니라고는 해도, 거래소의 위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권력의 쟁점이 된다. 그 위치에 따라 관할권이 달라지고 국가권력이 지닌 능력이 달라지며, 다른 경제주체의 이익에 반해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키려 하고 국내 시장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민간 금융기구들의 역량이 달라진다. "증권거래소는 '윤리적 문화' 집단이 될 수 없다. (중략) 대형 은행의 자본은 자선재단이 아니다. 그보다는 총과 대포에 해당한다." 1896년 막스 베버의 말처럼 말이다.(5)
'거대 증권거래소'가 장차 어떤 나라를 새로이 병합해 종전의 기록을 갈아치울지 궁금해하는 건 의미가 없다. 끊임없이 국가 간 규제 중재를 도맡고 주주들의 재산을 관리해서 집요하게 수익을 얻는 민간기업의 자본주의적 성공을 축하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보다 지역적·국가적·국제적 혹은 초국적 차원의 공공권력은 엄격한 규제와 정치적 압박이라는 본연의 무기를 이용해야 한다. 그래야 증권거래소가 원래의 역사적 기능을 다시 수행할 수 있다. 해당 지역에서 자본거래를 억제하고 그 질서를 잡아주는 것이다.
글•폴 라뇨이모네 Paul Lagneau-Ymonet & 앙젤로 리바 Angelo Riva 공저로 <증시의 역사>(Histoire de la Bourse·La Découverte·Paris·2012) 등이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1) Max Weber, <주식>(La Bourse·1896), Paris, Allia, 2010(Pierre de Larminat 옮김).
(2) Craig Pirrong, ‘A theory of financial exchange organization’, <Journal of Law and Economics>, N.43, vol.2, Chicago, 2000.
(3) Pierre Bourdieu, ‘힘의 반경과 통치의 분업’(Champ du pourvoir et division du travail de domination), <Actes de la recherche en sciences sociales>, N.190, Paris, 2011년 11월.
(4) Sigrid Quack, ‘Law, expertise and legitimacy in transnational economic governance’, <Socio-Economic Review> 특별호, N.8, vol.1, Oxford, 2010.
(5) Isabelle Kalinowski, ‘Le capitalisme et son éthique: une lecture de Max Weber’, <Agone>, N.33, Marseille,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