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이 지배하는 미국, 총기 소지자 5천만 명 시대
미국 컨트리 가수 조니 캐시의 노래 가사 중에, 어머니가 도시로 나가는 아들에게 권총을 가져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부분이 있다. 현명한 요구이지만 5,000만 명가량의 미국인은 이를 새겨듣지 않는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무기 소지 권리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 헌법 제2조를 옹호하는 공화당 보수주의 지지자들이고, 정당방위 원칙을 고수하는 수많은 민주당 지지자와 진보주의자도 이제 같은 입장을 드러낸다.
날렵한 움직임으로 노리쇠를 당겨 탄약을 장전한다. 무기를 단단히 쥐고 두 팔을 쭉 뻗은 다음 목표물을 향해 총신을 겨눈다. 조준경에 눈을 대고, 호흡을 가다듬은 후 검지로 조심스레 방아쇠를 당긴다. 찰나의 순간, 세상이 폭발한다. 탄피가 옆으로 떨어지고, 폭발음이 소음 차단 헤드폰을 뚫고서 고막을 울렸다. 반동으로 상체 윗부분은 뒤로 밀렸고, 총신은 10cm 정도 위로 들렸다. 폭발 후의 세상에는 매캐한 화약 냄새가 퍼졌다.
산드라가 쌍안경을 들고 사격장의 거친 바닥에 고정된 나무 받침 위 표적을 살폈다. 그러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의 스미스 앤 웨슨 M&P 실드 40구경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명중!” 멕시코 출신의 젊은 간호조무사인 산드라는 얼마 전부터 사격 훈련을 시작했다. 토요일 아침, 취재진은 애리조나의 주도 피닉스 북부에 자리한 ‘벤 에이버리 사격 연습장’에서 산드라를 비롯한 사격 회원들을 만났다.
키 큰 선인장들이 자라고 있는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사격장의 면적은 무려 668㏊에 달한다.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인 이 공공 야외 사격장에는 투박한 철제 지붕 아래에 시멘트로 만든 작은 사격 테이블이 끝없이 들어서 있다. 테이블 뒤에는 혼자서 혹은 가족 단위(만 5세부터 출입할 수 있다)로 온 사람들이 공기총부터 장거리 소총, 반자동 소총까지 하나 이상의 무기로 사격 연습을 한다. 모두가 질서 정연하게 열심히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그 무엇도 이들을 방해하지 못한다. 이날 아침 온도계는 섭씨 43도를 가리켰지만, 폭염의 날씨도 이들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이들이 집중하는 것은 사람 얼굴 또는 어린이들을 위한 색색의 외계인 모습을 한 표적과 동그란 과녁이다.
모든 사격 연습은 아무 문제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만, 안전이 최우선이다. 헬멧과 보호 안경을 반드시 착용해야 하고, 정해진 사격 시간이 끝나면 옆에 놓인 빗자루로 바닥에 떨어진 탄피를 쓸어 담아야 한다. 사격장 출구에 마련된 간이 탁자에는 바비큐 시설이 갖춰져 있어 아늑한 분위기에서 캠핑을 즐길 수도 있다.
“총기 소지는 미국 시민권에서 나오는 권리”
“코로나 이후 장사가 꽤 잘 되는 편이다.” 피닉스 북부의 외곽 지역 케이브 크리크에서 무기 판매점을 운영하는 존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는 무기 판매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나타난다. 팬데믹 당시 사람들의 불안감이 높았기 때문에 무기 판매 증가는 예상했던 바였지만, 무기 구매자들의 면모는 예상 밖이었다. 2020년 2,300만 정의 화기가 판매됐는데, 구매자 가운데 840만 명이 생애 최초로 총기를 구매했다(1). 다양한 크기의 제품이 진열된 유리 판매대 뒤에 선 존 역시 “일반적으로 구매하던 사람들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2021년 12월에 발표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 구매자 가운데 절반가량이 여성이었으며 40%가 소수 인종 출신이었다(2).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처음으로 무기를 샀다. 다른 많은 흑인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트럼프의 유세 중에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대한 공격이나, 트럼프 지지자들이 SNS에 올리는 증오 가득한 댓글들을 걱정했다.”
애리조나주 두 번째 도시 투산의 패스트푸드점에서 감자튀김 접시와 탄산음료를 앞에 둔 아프리카계 미국인 콜레트 제닝스는 이렇게 고백했다. 콜레트는 항상 총을 지니고 다닌다. 2020년 5월, 경찰이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이후, 미국 전역에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구호를 내세운 대규모 시위가 촉발됐다. 콜레트는 무기 보유 및 소지 권리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 헌법 제2조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콜레트의 사례는, 팬데믹으로 어려웠던 시기인 2020년, ‘전미 아프리카계 미국인 총기협회(Naaga)’ 회원 수가 25% 증가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2015년 설립된 협회의 회원은 현재 약 5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런 현실과 달리 흑인의 총기 소지에 대한 인식은 제자리걸음이다. 콜레트의 남동생은 가방에 총기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구금된 적이 있다. 백인들은 좀처럼 겪지 않는 불운이다.
1967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공공장소에서 면허 없이 무기를 드러내 놓고 휴대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을 공포했다. 사실은 “경찰에 대항하기 위해” 오클랜드 거리를 합법적으로 정찰하는 급진적 흑인운동단체 ‘블랙 팬서스’ 당원들을 무장해제 시키기 위한 법안이었다. 위스콘신주 노스랜드 칼리지의 앤절라 스트라우드 사회학 조교수는, 미국에서 무기 규제 관련 법들은 항상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억압하는 도구”(3)로 쓰여왔으며, 이를 통해 농장 내 폭동을 방지했고, 1877년부터 1964년까지 시행된 인종차별법, 일명 ‘짐 크로우’ 법은 흑인들에 대한 시민권 부여를 막았다고 주장했다(18쪽 로이크 바캉 기사 참조). ‘전미 아프리카계 미국인 총기협회’의 설립자 겸 회장인 필립 스미스는 “우리는 미국 시민이므로 총기 소지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우리는 노예에 불과했지만, 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다. 이는 신이 부여하는 권리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미국 시민권에서 나오는 권리이다.”(4)
공식 기록에 따르면, 2020년 미국에서는 1만 9,613건의 총기 살인이 발생했다(5). 전년 대비 25%나 증가한 기록적인 수치는 미국 총기 사고의 전환점이 됐고, 2021년과 2022년 총기 사고 사망자 수는 각각 2만 1,068명과 2만 390명으로 2만 명 선을 넘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사망자가 4명 이상 발생하는 ‘대규모 총격 사건’까지 확산하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제외한 다른 이들도 총기를 보유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멕시코 출신 필립 고메스는, 2019년 8월 텍사스 엘패소의 월마트에서 발생한 총기 살인 사건 이후 ‘라틴계 총기협회(Latino Rifle Association)’를 결성했다.
당시 가해자는 최대한 많은 이민자와 멕시코인들을 살해하겠다는 유일한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라틴계 소총협회의 목표는, 회원들이 인종차별을 겪지 않고,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남부 연합기가 펄럭이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처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자”는 스티커가 즐비한 ‘사격 클럽’에 가지 않고도 무기로 자기방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성소수자들을 위한 무기 소유자 모임인 ‘핑크 피스톨’의 피닉스 지부장을 맡고 있는 제이슨 D.의 설명처럼,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 커뮤니티에서도 자기방어를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취재진은 피닉스의 가난한 산업 외곽 도시에 자리한 ‘슈터스 월드’ 사격장에서 사격 연습을 끝내고 나오는 제이슨을 만났다.
“이곳은 우리 커뮤니티 사람들을 받아주고, 와서도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 오지만 사실 나는 무기도, 사격도 싫어한다.”
제이슨은 2016년 플로리다 올랜도의 한 게이 나이트클럽에서 50여 명의 사망자를 낸 최악의 사건을 포함한 성소수자 혐오 총기 범죄를 나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늘 내 몸에 무기를 지니고 다니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총기 소지자 중 보수주의자는 2천만 명
웨이크포레스트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이자 ‘Gun Culture 2.0’ 블로그를 운영하는 데이비드 야마네는, 미국의 전형적인 총기 소지자는 노년층의 백인 남성으로, 정치적으로는 보수 성향을 띠고 남부나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알려졌지만, 총기 문화는 항상 이런 면모를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무기를 소유한 5,000만 명 중에 약 2,000만 명이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이고, 2,000만 명 정도가 스스로 ‘중도파’라 칭하며, 나머지는 자신을 자유주의자(미국식 진보주의자의 의미)라 여긴다. 이 마지막 그룹에 속하는 이들은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자유지상주의자, 보수적인 민주주의자 등 매우 다양한 특징을 지녔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새롭게 무기를 구매한 경우다.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틴계 미국인들처럼 일반적으로 국가를 불신하는 이들도 포함돼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자유민주 총기 클럽(the Liberal Gun Club)’의 전국 대변인을 맡고 있는 50세의 라라 스미스는, 미국 최대 무기 로비 단체인 미국총기협회(NRA)의 공격적 태도와 우익 편향성에 대응하고자 클럽에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총기협회의 인종차별적이며 극우 성향을 띤 정책이 총기 세계에 남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자유민주 총기클럽이 만들어졌다(6).”
라라 스미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클럽 회원 수가 10% 이상 늘었고 현재 33개 주에 수만 명의 회원이 분포한다고 강조하며 덧붙였다. “많은 진보주의자가 수도 워싱턴에 전제주의 정부가 들어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갑작스럽게 깨달았고, 수정 헌법 제2조가 우리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7).”
그런데 대체 수정 헌법 제2조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국가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국민이 무기를 보유하고 휴대할 수 있는 권리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미국총기협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권리를 매우 폭넓게 해석하며, 단순한 무기 소지 권리가 아닌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까지 보장하는 권리로 확장해왔다. 협회의 위세는 전국 각지에 분포한 500만 회원과 1만 4,000개의 산하 단체(클럽, 협회, 기업 등) 네트워크에서 비롯된다. 1871년 설립 당시, 협회는 주로 사냥과 스포츠 사격 활동에 관여했고, 1960년대에 들어서 정치 로비를 시작했다. 1977년 연례 회의에서 공화당 진영의 강경 보수파들이 NRA를 장악했는데, 입법행동연구소(ILA)가 설립된 직후였다. 연구소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ILA는 “NRA의 무장세력으로, 미국 수정 헌법 제2조의 내용처럼, 합법적인 목적의 총기 구매, 소유 및 사용을 보장하는 법을 지키는 모든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도하게 자기방어 훈련이 된 미국
18세기, 헌법에 명시된 무기에 관한 권리는 “정치와 해방에 관련된 것이었지 문화적이거나 개인적인 게 아니었다(8).” 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수정 헌법 2조에 담긴 본래 의미를 축소하며 수정 헌법을 전유했다. 수정 헌법 2조와 관련해서는 “두 개의 경쟁적인 사조”가 존재한다(9). 첫 번째는, 연방을 이루는 각 주에 소속된 “잘 규율된 민병대”와 연관을 짓고, 수정 헌법 2조가 연방 정부의 위협으로부터 주를 보호할 수 있게 해준다고 믿는다. 두 번째 사조는, 이를 법이 인정하는 양도할 수 없는 개인의 권리로 만든다.
특히 1980년 선거 당시 NRA의 지지를 받은 레이건 대통령이 공포한 총기 소지자 보호에 관한 1986년 법이나, 2008년 ‘컬럼비아 특별구 대 헬러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수정 헌법 2조가 개인의 총기 소지 권리를 보호한다고 인정했다. 범죄 위협이나 정부의 권력 남용 가능성 즉, 구체적으로 말해 모든 종류의 집단 규제 시도(10)에 대항하기 위한 개인적 무기 소지라는 시각을 채택하는 것은, 전통 가치로의 복귀와 국가 역할 축소를 주장하는 공화당의 ‘보수 혁명’ 목표와 일치한다.
수정 헌법 2조에 대한 이런 식의 정치적 구성은 무기 소지를 단순히 개인의 자기방어 권리로 축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규제할 수 없고, 규제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권리로 만든다. 1991년부터 2024년 1월까지 NRA의 부회장을 지낸 웨인 라피에어는, “우리 수백만 회원은 신이 부여한 기본적인 권리로서 우리 자신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다”라고 즐겨 말했다. 무기를 지닐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지지하는 의견이기도 하다.
미국 헌법 한 부를 손에 든 셰릴 토드는 “최근 몇 년간 새로운 총기 소유자들이 증가했는데, 이런 증가 현상을 통해 이들을 우리의 정체성, 우리나라 건국 아버지들이 헌법에 새겨 놓은 내용에 다시 또는 처음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고 말했다. 피닉스 외곽 지역에 있는 무기 판매점 주인이자, 수정 헌법 2조 수호를 위한 초기 활동가였으며 자신이 설립한 ‘Gun Freedom Radio’에서 진행자로 활동하는 자신감 넘치는 60대의 셰릴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사람으로서,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할머니로서, 아내로서 나의 권리다. 그 어떤 국가도 간섭할 수 없는 개인의 권리다. 특별한 도구 즉, 내 총으로 내 목숨을 보호하라고 신이 나에게 준 권리이기 때문이다.”
“총이 없으면 아무 권리도 누리지 못해”
미국총기협회를 그저 보수당 의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무기 산업계의 로비 단체로만 생각한다면 협회의 진짜 영향력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협회에서 인증한 8만 명의 강사가 매년 75만 명의 미국인들에게 총기 사용법을 가르친다. 또한, 많은 주에서, 은폐 무기 허가를 취득하는 데 필요한 훈련을 총기협회에 위임했다. 이런 임무 수행을 통해 NRA는, 총기를 소유하고 휴대하는 것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 자유일 뿐만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행동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심는다. NRA에 가입한 투산의 한 사격연습장에서 강사로 일하는 칼로스는, 수업 시작 전 이 관점을 이렇게 요약했다. “총이 있으면 나는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시민이고, 총이 없으면 나는 아무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국민에 불과하다.”
켄 캠벨 역시 이 의견에 동의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규모의 총기 교육센터”인 ‘건사이트 아카데미(Gunsite Academy)’를 운영하는 이 전직 보안관은, 아카데미에서 효과적인 총기 사용법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훌륭한 시민”과 “훌륭한 무기 사용자”를 길러낸다. 피닉스 북부에서 2시간이 걸리는 작은 도시 폴든에 위치한 건사이트 아카데미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제프 쿠퍼 해군 중령이 1976년 설립했다.
제프 쿠퍼 중령은 미국을 “나쁜 사람들”에게서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과도하게 훈련이 된 나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아카데미 문을 열었다. 2,000달러를 내면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5일 과정 집중 수업을 받을 수 있다. 경찰이나 저격수, 이라크 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 해군이나 보병 지휘관 출신이 교육한다. 사막에 세워진 아카데미 시설의 면적은 무려 1,300㏊에 달하고, 사격대 27개와 총알구멍이 가득한 자동차들, 주택 모형 등이 갖춰져 있다. 주차장에서의 총격전과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강도의 자택 침입에 대응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건사이트에서는 교회를 방어하거나 식당 테이블에서 경계하는 방법도 가르친다. 캠벨은 “식당에 가면 항상 입구를 향해 벽을 등지고 앉고, 먼저 식당 안을 한번 훑어봐야 한다. 그러다 뭔가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캠벨의 사무실에 들어가자 TV에서는 <폭스 뉴스> 채널(우편향적이고 극단적이며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뉴스를 종종 내보내 비판을 받음-역주)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었고, 무기들을 전시해 놓은 곳 옆에는 여러 개의 성조기가 걸려있었다. 캠벨은 이렇게 덧붙였다. “국가가 나를 보호해 주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국가는 힘이 없다. 힘을 가진 건 국민이다.”
NRA에서 트레이너로 활동했던 자기방어 전문가 존 코레이아는 스스로 자유주의자라 말한다. ‘권총과 성경’이라는 글씨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에서 그가 과거 목사였음을 떠올릴 수 있다. 코레이아는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말고 자기만의 수단으로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도착하려면 한참이 걸리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찰들에게는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의 무기 보유자들도 같은 생각이다. 경찰의 과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코레이아는 <액티브 셀프 프로텍션(Active Self Protection)>이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는데 구독자 수는 3백만, 월평균 조회 수는 5,000만 회에 이른다.
“무장 항쟁은 최후의 수단”
코레이아는 2013년부터 유튜브 채널을 통해 날치기, 각종 공격 상황 및 감금 등 위험 상황을 분석하고 각 상황에 맞는 대응 기술을 알려주고 있다. 피닉스 교외에 위치한 애리조나 최대 규모의 사격장 ‘C2 택티컬’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새로운 교육 영상을 촬영 중이던 여섯 자녀의 아버지 코레이아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무기와 신밖에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총기 문화의 근본적인 특징은, 우리가 무기를 통해 자유를 쟁취했다는 사실이다. 표현의 자유, 언론 및 종교의 자유, 정치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 헌법 제1조가 제2조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제2조는 국가의 폭정에 맞설 수 있는 보호막을 제공하고, 국민이 원하기 때문에 국가는 존재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줌으로써 제1조를 존재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원한다면 우리는 국가를 바꿀 권리가 있고, 무장 항쟁은 항상 최후의 수단으로 남아있다.”
국가에 대한 불신은, 시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의 무능함과 국가에 시민을 보호할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두 가지 확신에서 비롯된다. 국가는 개인을, 저항할 자유와 자기 가족을 보호할 권리(그리고 의무)가 박탈된 단순한 주체로 간주한다. 미국 정치계의 또 다른 편에 서 있는 걸리 역시 이 의견에 동의한다. 걸리는 매주 ‘사회주의 총기협회’ 회원들과 함께 자신이 살고 있는 투산 외곽 사막에 나가 사격을 한다. 취재진은 걸리와 그의 친구 데이브를 만났다. 두 사람은 탄약 상자들을 풀어 놓고, “애국심은 프로파간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다시금 두려움에 떨게 하라”, “사람이 아닌 권력을 파괴하라” 같은 문구의 스티커가 잔뜩 붙은 소총과 권총들을 꺼냈다. 바닥에는 녹슨 탄피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통조림 캔과 낡은 전자레인지를 과녁 삼아 연습을 시작했다. 걸리는 이곳에서 “현 상황에 취약한 게이와 트랜스젠더들”을 교육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폭력”과 “점점 증가하는 경찰들의 난폭함”은 게이나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무장하게 만든다. 걸리는 “파시스트들이 너무 멀리 나아간다면” 자신도 무장 폭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정부가 무기를 금지한다면 파시스트들과 함께 시위에 나설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캠벨 역시 이렇게 말했다. “할리우드 스타, 변호사, 교수 등 무기 보유 사실을 공개하기 꺼리는 이들에게 개별 수업을 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무기를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는 힘들다.” 야마네 교수가 말했듯, 양대 정당의 ‘문화 전쟁’ 사이에서 NRA와 공화당을 거부하면서 개인의 자유나 정치적 자유를 총을 가질 권리와 연관시키는 것은 “정치적 노숙자”가 되는 길이다. 진보주의자이자 총기 보유자인 야마네는 낙태할 권리와 무장할 권리를 옹호하며 민주당 지지자들과 공화당 지지자들 모두에게서 비판받았다.
애리조나 자유민주 총기클럽 스콧 프라이어 회장 역시 무기를 자신들의 고유한 정치적, 문화적 특징이라 생각하는 “NRA와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에 반대하고, 무기 소지를 보수주의자들과 우파의 전유물이라 여기는 진보주의 언론 역시 비판한다. “무기를 소유한 좌파들은 공개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우파 사람들과 교류할 때마다 우리 역시 그들만큼이나 수정 헌법 제2조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2023년 애리조나 주의회에 앞에서 이런 목적의 연례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프라이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무기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이미 시행 중인 제한 조치들을 제안하는 것뿐이다.” 모든 주에서 채택한 무기 구매 시 범죄 이력 조사가 그렇다.
“정치신념과 별개로, 무기는 삶의 일부”
애리조나 북부 프레스콧 밸리에서 열린 일종의 무기 박람회 ‘건쇼’에서 만난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인 테드는 우리가 민주당 지지자들이 무기를 금지하려 한다는 소문에 대해 언급하자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탄약이 부족하다”라는 프린트 T셔츠를 입은 그는 “민주당을 다시 미국인으로 만들자”라는 글씨로 도배한 스탠드 뒤에 서 있었다. “이 나라에는 수백만 개의 무기가 있다. 아무도 그 무기들을 금지할 수 없을 것이다. 어디 한번 빼앗아 가보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미국 영토를 공격하지 못했다. 풀잎 한 포기마다 무기를 든 사람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많은 총기 보유자가 민주당으로부터 경멸과 오해를 받는다고 느낀다. 특히 동부 해안이나 캘리포니아 지역의 엘리트들과 민주당 관련 기관들에서 말이다. 야마네 교수에 따르면,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에서 “진보주의 성향이 가장 강한 도심을 제외한 지역들에 대한 보도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두 언론사의 기자들은 도심 지역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금도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실제로 무기를 보유한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게 전화해서 그 사람들이 왜 저렇게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민주당 엘리트들은 자유주의 총기 소지자들을 경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을 증오한다. “NRA보다 더 싫어한다(11).”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2013년, 강력한 총기 규제를 장려하고자 설립한 유력 협회인 ‘Everytown for Gun Safety’의 대표들과 만난 뒤, 라라 스미스가 한 말이다. 프라이어는 “그래서 내가 민주당을 떠났다. 나는 텍사스에서 자랐고, 삼촌과 숙모는 무기 판매상이었다. 정치 신념과 별개로, 무기는 내 삶의 일부였고 지금도 그렇다”라고 고백했다. 많은 미국인이 사냥과 스포츠로서 사격을 즐긴다. 토드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이 나쁜 법안들을 통과시키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의 말들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바이든 대통령도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훨씬 더 많은 총기 규제를 채택했다. 민주당보다 훨씬 더 많이 말이다!” 반자동 총기의 격발 속도를 높여 자동 총기처럼 만들어 주는 부품인 ‘범프 스톡’을 법으로 금지한 트럼프 대통령의 “용서할 수 없는” 결정에 다른 수많은 총기 보유자처럼 분노한 그녀는 자신이 공화당 지지자이지만 “트럼프에게 투표하기 전에 심각하게 고민해 볼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기뻐하기에는 이르다. 민주당 후보의 연설과 입장을 고려하면 민주당에 투표하는 것 역시 토드에게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마엘 마리에트 Maëlle Mariette
기자
프랑크 푸포 Franck Poupeau
사회학자
번역‧김자연
번역위원
(1) Jennifer Carlson, 『Merchants of the Right. Gun Sellers and the Crisis of American Democrac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23.
(2) Matthew Miller, Wilson Zhang, Deborah Azrael, ‘Firearm purchasing during the Covid-19 pandemic : Results from the 2021 national firearms survey’, Annals of Internal Medicine, vol. 175, n° 2, Philadelphia, 2022.
(3) Angela Stroud, ‘Guns don’t kill people… : Good guys and the legitimization of gun violenc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Communications, vol. 169, n° 7, 2020, www.nature.com
(4) Lakeidra Chavis, Agya K. Aning, ‘In a year of racial and political turmoil, this black gun group is booming’, <The Trace>, New York, 2020.12.16.
(5) Cf. ‘Standard reports’, www.gunviolencearchive.org
(6) Derek Walter, ‘Vote democrat, love guns? There's a group for you, too’, <The Trace>, 2017.9.15.
(7) Kali Holloway, ‘6 gun groups that aren’t for white right-wingers’, 2017.9.3, www.salon.com
(8) Benoît Bréville, ‘De Robespierre à Charlton Heston 오바마, 총기산업의 숨은 동맹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한국어판, 2013년 2월호.
(9) Richard Uviler, William Merkel, 『The Militia and the Right to Arms, or, How the Second Amendment Fell Silent』, Duke University Press, Durham, 2003, Patrick Charles, 『The Second Amendment. The Intent and Its Interpretation by the States and the Supreme Court』, McFarland & Company, Jefferson, 2009.
(10) Mugambi Jouet, ‘Guns, identity and nationhood’, Palgrave Communications, vol. 138, n° 5, London, 2019.
(11) Ben Strauss, ‘The loneliness of the liberal gun lover’, <Politico>, 2017.11.4, www.politi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