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존재하지 않으나 우리에게 이 땅을 주셨다

2024-04-30     안 월레스 | 기자

이스라엘에서 집권 중인 세속적·종교적 초국가주의자들끼리 손잡는 일은 이례적이지만, 메시아적 상상은 2022년 훨씬 이전부터 이스라엘 내에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시온주의가 싹트기 시작하면서 종교에서 차용한 담론은 시온주의의 계획에 추가적인 정당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런 수사법은 ‘약속의 땅’ 같은 표현들과 유배당한 유대인을 재결집하는 2,000년 된 유대인의 희망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시온주의 개척자 대부분은 무신론자였다. 그들은 종교적 유대인을 ‘시대에 뒤떨어졌다’라느니 ‘수동적’이라느니 경멸하면서도, 합리적이고 의지가 강하고 근면한 유대인이 이스라엘 땅에서 유대 민족을 재건하기를 바랐다. 자유주의적이건 초정통주의적이건, 종교적 유대인은 시온주의 계획의 출현을 전통에 대한 배신으로 본다. 그들은 유대교가 국교(國敎)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고 비난한다. 

 

유대교의 근본 개념에서 벗어난 시온주의 

이와 관련하여 역사학과 교수 암논 라즈크라코츠킨은 세속적 메시아사상(messianisme)을 이야기한다. 그는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메시아사상과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현상은 “세속적 시온주의 신화의 중심에 그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식민지 개척자들이 새로 생각해 낸 것은 없다. 그들의 입장은 세속적 시온주의자의 입장과 다르지 않으며, 그들의 논리적 결과를 따를 뿐이다.”(1) 

이 역사학자와 그에 동조하는 다른 이들은 시온주의가 유배와 구원이라는 유대교의 근본 개념에서 벗어났다고 본다. “유대교의 본질은 존재는 곧 유배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제2성전이 파괴된 뒤 이스라엘 민족의 유배는 전통이 신의 계율에서 벗어난 결과로 나타난다. “그 자신의 죄 때문에 (…) 이스라엘 족속은 유배되었다.”(『에스겔서』 39:23) 그러나 이 유형(流刑)에서 유대인은 토라(2)의 계명을 지키고 선행으로 세상을 회복해야 한다. 

따라서 부재(éloignement)에는 영적인 차원(또 다른 역사학자 야코브 라브킨은 이것을 ‘신의 존재가 숨겨져 있는 세계의 상태’라고 표현한다(3))이 있고, 또한 인류 전체에 보편적인 의미를 갖는다. 라즈크라코츠킨은 “유배는 근본적인 부재와 관련되고 세상의 불완전함을 나타내며 세상의 변화를 바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라고 정리한다.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가려버린, 세속적 메시아 사상

시온주의는 유배를 물질적 차원으로 축소하고, 팔레스타인에 나라를 세움으로써 다른 국가들이 저지른 부당한 행위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 해결 방식에는 토라에 기록된 유대의 역사와 1948년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 선포 사이에 연관성을 확립하는 작업이 포함된다. 또한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2,000년 넘게 겪은 상황을 무시하고, 국가라는 신화를 중시하는 작업도 포함된다.(4) 유대 역사의 시온주의 개념은 벤시온 디누르와 이츠하크 바에르를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 학교에서 확립됐다.

32세의 프랑스계 이스라엘인 나다브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사실 종교 수업도 아니었고, 역사 수업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토라의 내용을 민족의 역사와 연결해 읽었다.” 토라를 제외한 『탈무드』(5)는 유배의 책으로나 해설서로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온주의는 종교 문헌을 문자 그대로, 도구적으로 읽는 방식을 고수한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서』는 전통에서는 소외되어 있으나 가나안 정복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이런 식으로 재구성된 민족의 역사는 팔레스타인 역사를 가려버린다. 라즈크라코츠킨은 “이스라엘 학생에게 조국으로 정의되는 국가는 성경에 나타난 유구함과 시온주의 식민지화 사이에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교와 관련된 팔레스타인의 과거는 커리큘럼에서 감춰져 있다.”

 

새 이민자들을 세속화하는 시온주의자들 

“신은 존재하지 않으나 우리에게 이 땅을 주셨다.” 역사학과 교수 라즈크라코츠킨이 쓴 이 역설적 표현은 세속적 메시아사상을 잘 요약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으로 약속의 땅 시온은 메시아가 도래했을 때 평화와 정의가 뒤따를 장소나 영역이라기보다는 구원을 상징한다.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라는 말은 어디에서나 열망할 수 있는 영적 이상을 노래한다. 일부 이스라엘 유대인은 자신이 여전히 유배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전통적 기도를 계속해서 올린다. 

물론 메시아사상은 유배된 유대인을 이스라엘로 재결집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구상에서 팔레스타인에 민족국가를 세운다는 결론을 끌어내려면 국가의 건설이 약속의 땅이라는 표현에 부여하는 의미와 전통을 왜곡해야 한다. 또한 많은 종교적 유대인이 그곳에 와서 살기를 바라지 않는 유배자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신뿐이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구원을 서두르는 것을 금하고, 무력을 사용해 집단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이스라엘에 들어오는 것을 비난한다.

이처럼 시온주의자들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하는 랍비의 계명과 신앙을 없애되, 유대성(judéité)을 국가적 소속감으로 바꾸려 한다. 이런 이유로 그들의 문학은 유배 사상에 얽매인 종교인들에 대해서는 반유대주의적 고정관념(역사가 없고 수동적이며 나약하다는)을 되풀이하고,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는 ‘강인한 유대인’(6)을 내세운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식민지 개척자 예호슈아 하나 라우니츠키(1859~1944)는 이렇게 썼다. “왜소하고 허약하며 쪼글쪼글하고 말라비틀어진 유대인, 게토에서 태어나 신체적 이미지가 없는 유대인으로부터, 키가 크고 힘이 세며 건강하고 생기 넘치는 유대인이 등장할 것이다.”(7)

이스라엘 이민을 장려하려면 메시아 담론에 의지하는 동시에 새 이민자들을 세속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1940년대 말, 예멘에서 온 이민자들은 재교육화 캠페인을 경험했다. 그들은 수용소에서 생활하며 안식일에 오렌지를 따고 성구함(히브리어로 테필린이라고 하며, 양피지에 쓴 경구 두루마리를 넣은 작은 검은색 가죽 박스-역주)을 깎아야 했다. 영미 시온주의 운동가 모리스 새뮤얼(1895~1972)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집을 버리고 떠난 수천 명의 아랍인들이 비운 자리를 즉시 채워야 했다. 그래서 몸이 건강하건 아니건, 믿음이 있건 아니면 단순히 설득을 당했건 되도록 많은 수의 유대인이 필요했다.”(8) 

 

선한 유대인은, 이스라엘의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

역사학자 라즈크라코츠킨은 시온으로 돌아간다는 메시아사상이 피난처라는 개념에 우선한다는 것도 보여준다. “돌아가는 것(alya)이 개종을 대체한다.” 선한 유대인은 더 이상 토라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이주하거나 디아스포라에서 이스라엘의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을 말한다. 야코브 라브킨은 이 새로운 종교를 ‘이스라엘리즘(israélisme)’이라고 규정한다. 이스라엘리즘은 이제 종교적 전통과 단절된 세속적 유대인의 마지막 피난처로 떠오른다. 국가적 정체성으로서 유대성을 다시 정의하는 일에는 기도문을 다시 쓰는 작업도 포함된다.

20세기 초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특히 유월절 하가다(유월절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유월절 이야기는 가장 중요한 의식서로, 정착민들은 이 이야기에서 신을 제거하고 이집트 탈출을 민족 해방 투쟁으로 제시했다. 히브리어로 ‘기억하라’는 뜻의 ‘이즈코르(Izkor)’는 망자의 기억을 보존해달라고 신께 드리는 요청이다. 이즈코르는 “이스라엘의 존엄성과 이스라엘 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을 기억하라고 권하는, 유대 민족을 향한 청원이 된다. 유대교 명절 하누카에 드리는 기도에서 ‘신의 용맹함을 누가 말하리요’는 ‘이스라엘의 용맹함을 누가 말하리요?’로 바뀐다.

국경일은 성경의 구절을 사용해 그 의미를 다르게 바꾼다. 예를 들어 독립기념일은 신의 개입은 없고 스스로 구원을 책임져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유월절(유대인이 이집트 노예 생활로부터 탈출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역주), 쇼아(홀로코스트) 기념일, 이스라엘을 위해 전사한 군인을 추모하는 날, 독립기념일 등 봄을 기념하는 일련의 행사도 종교적 기념일과 시온주의가 주관하는 국가적 행사가 뒤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전체가 한 가지 이야기 속에 통합되어 쇼아를 유배의 정점에 놓고 독립, 즉 이스라엘 국가 건설을 이집트 탈출과 동일시한다. 신성한 언어인 히브리어를 국어로 바꾸는 작업도 마찬가지다. 역사학자이자 철학자 게르숌 숄렘(1897~1982)은 이런 선택으로 현실 전체를 신성한 용어로 생각하고, 정치적 현실에 종말론적 의미를 부여하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히브리어를 세속어로 바꿨고, 거기서 종말론적 가시를 빼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9)

사실 히브리어로 된 여러 표현의 종교적 의미는 이스라엘 정치 현실을 메시아적으로 읽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1901년에 설립된 유대국가기금(Keren Kayemeth LeIsrael, KKL)은 유대인이 할당받은 땅의 매입과 운영을 담당한 재정기관으로, 공덕과 선행의 축적을 뜻하는 경구에서 따온 말이다. ‘유배자들을 재결집한다’는 것은 새로운 맥락에서 ‘이민’을 가리킨다. ‘신에 대한 믿음’을 뜻하는 ‘비타헨’(bitahen)이라는 단어에는 ‘군사적 안보’라는 의미가 있다.

 

 

글·안 월레스 Anne Waeles
기자

번역·조민영 
번역위원


(1) Amnon Raz-Krakotzkin, 『Exil et souveraineté 유배와 주권』, La Fabrique, Paris, 2007.
(2) 유대교의 근간이 되는 문헌은 토라(Torah)인데, 히브리어 어근 ‘yara’에는 ‘가르치다’라는 의미가 있다. 토라는 『구약성경』의 첫 다섯 권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로 구성되며, 『모세 오경』이라고도 한다. 
(3) Yakov Rabkin, 『Au nom de la Torah. Une histoire de l’opposition religieuse au sionisme 토라의 이름으로. 시온주의에 대한 종교적 반대의 역사』, Les Presses de l’université Laval, Québec, 2004
(4) Shlomo Sand, ‘Comment fut inventé le peuple juif 유대민족은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8년 8월호.
(5) 『탈무드』는 유대인의 율법, 관습, 역사와 관련한 랍비들의 논쟁 전체를 통합한 문헌이다. 『탈무드』는 2권이 있는데, 3~5세기에 쓰인 『팔레스타인 탈무드』와 5세기 말에 완성된 『바빌론 탈무드』가 있다.
(6) Max Nordau(1849~1923), 독일계 유대인 작가이자 테오도르 헤르츨의 최측근이었다. Amnon Raz-Krakotzkin, 『Exil et souveraineté』, op. cit. 
(7) Amnon Raz-Krakotzkin, 『Exil et souveraineté』, op. cit. 
(8) Maurice Samuel, 『Level Sunlight』, Knopf, New York, 1953, Yakov Rabkin, 『Au nom de la Torah』, op. cit에서 인용.
(9) Amnon Raz-Krakotzkin, 『Exil et souveraineté』, op. 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