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파는 어떻게 농촌을 공략했나?
땅은 여전히 거짓말하지 않는다
프랑스 극우파는 땅과 농촌을 찬양하고 농민의 소외감을 이용해서 농촌의 민심을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농민의 분노와 농촌 황폐화의 근본 원인을 무시한 처사다.
프랑스 남서부 타른에가론의 작은 마을 몽주아가 전국에 악명을 떨치고 있다. 2023년 6월, 인플루언서 파파치토(Papacito)가 유튜브에 올린 돼지농장 영상 때문이다. 과격 극우파인 그는 돼지농장으로 이어지는 지자체 소유 시골길을 두고 몽주아 시장과 전쟁을 벌이는 돼지 농장주를 옹호했다. 파파치토(본명: 위고 질 지메네)는 2년 전에도 반파시스트처럼 꾸민 마네킹을 처형하는 영상을 올려 논란을 일으킨 전적이 있었다.
이번 몽주아 영상에서는 무장한 복면객들이 ‘프리메이슨의 피해자’인 돼지 농장주를 지키기 위해, 쥐 탈을 쓰고 시장을 연기하는 사람을 추격했다. 쥐 탈은 결국 붙잡혀서 폭행당하고 처형되는 연기를 펼쳤다. 이 영상은 며칠 만에 조회 수 50만을 기록했다. 이후 크리스티앙 외르갈 시장(무소속)은 살해 위협 때문에 경찰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돼지 농장주는 극우파도 아닐뿐더러, 심지어 좌파로 분류되는 농민연맹(Confédération paysanne)의 지역 대변인이었다.
“난 내 직업을 수행하고 싶을 뿐이며, 이를 위해 내 농장에 존엄하게 출입할 수 있길 요구한다.” 피에르기욤 메르카달은 농장 입구를 막고 있는 장애물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때 경비원이었던 그는 2017년에 유기농 돼지 사육자로 전업했다. 그는 몽주아에 위치한 30헥타르의 땅을 매입했고, 돼지농장 운영에 필요한 허가를 빠짐없이 받았다. 농장으로 가는 시골길이 부유한 영국인의 영역을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을 등에 업은 영국인은 농장으로 가는 길을 막아버렸고, 지자체는 메르카달에게 다른 길로 다니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 길은 트럭과 농기계가 다니기에 위험하다”고 메르카델은 토로했다. 이에 협박, 비방, 고소로 점철된 소모전이 시작됐다. 메르카델은 농민연맹과 프랑스자연환경(FNE)의 지지를 받았다. 양측의 견해차를 줄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영국인 편에 서서 결국 시골길을 사유지로 만들었다. 메르카달은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했지만 헛수고였고, 자신은 정치적 강자인 시장의 친구가 만든 봉건체제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크리스천 네트워크를 통해 만난 파파시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마지막 기회였다”라고 털어놓았다.
“농촌 극우세력 부상은 관료주의로 인한 결과물”
농민연맹을 지지하는 농부이자 타르에가른의 라보레트 마을 대표인 닐 파세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피에르기욤 메르카달은 이제 농민연맹 대변인이 아니지만, 여전히 조합원으로 남아있다. 난 파파시토가 올린 영상에는 반대하지만, 농부로서 메르카달을 지지한다. 몽주아 시장은 그에게 농장 운영 허가증을 발급했으므로, 출입로 접근도 보장해야 했다.” ‘새로운 농민연맹’ 대변인 엘렌 마시프는 “잃을 게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절박한 사람이 할 만한 선택이다. 현재 농촌지역의 극우세력 부상에 관심이 몰리고 있지만, 이는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관료주의로 인해 자연적으로 생성된 집단적 결과물이다”라며 탄식했다.
일명 ‘남성적 세계(virilosphère)’의 인플루언서들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파파시토처럼 도발적인 방법으로 ‘시골과 농촌의 프랑스’는 건전한 전통, 애국적 가치, 뿌리는 지킨다고 추켜세우고, 반대로 ‘도시의 프랑스’는 페미니즘, 반인종주의, 다문화주의로 오염됐다고 비판한다. 극우파 정치인 에릭 제무르를 지지하는 남성우월주의자이자 프랑스 벤치프레스 대회 우승자인 밥티스트 마르쉐는 2021년에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피레네자틀랑티크 전 의원 장 라살을 초대해 큼직한 소고기 덩어리를 뜯어먹으며 ‘정통’ 프랑스를 찬양했다.
농촌과 도시의 간극을 파고든 국민연합(RN)
이 영상은 14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벨기에 몽 대학의 정치학 연구원 스테판 프랑수아는 “신우파를 창시한 철학자 알랭 드 브누아의 영향으로 1980년대 이래 농촌성은 영원한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체성 운동의 핵심이 됐다. 이 신념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농민들은 세계화에 반대한다”고 설명했다. 국민연합당(RN)보다 극단적인 극우 분파가 당파적 정체성을 대표할 지역을 만들고자 농촌을 장악할 꿈을 꾸고 있다. 2021년에 해산된 정체성세대운동(Génération identitaire)에서는 이를 ‘방어할 정체성 지역’이라 불렀다.
2010년대 초, 라 데수시에르(La Désouchière, ‘프랑스 본토박이’라는 뜻)라는 공동체가 모르방 지역의 무롱쉬르욘 마을에 생겨났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레 브리강드라는 반페미니스트 여성 합창단이 에로 지역의 라살브타쉬르라구 마을에 공동체를 설립했다. 스텐판 프랑수아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프랑스의 정체성 공동체의 설립은 현대화를 거부하고 전통적 농업을 옹호했던 19세기 독일 민족운동과 미국 백인우월주의를 모방한 것이다. 이 운동가들은 유기농과 지역 농산물을 옹호하지만, 농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들은 RN과는 다르다. RN은 농촌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집약적 농업을 지지하며, 살충제와 화학비료를 선호하고, 유기농에 회의적이다.”
RN, ‘잊힌 농촌성’의 수호자 자처
수십 년간 농민 대다수는 우파 의원에게 표를 던졌다. 국민전선(2018년에 당명을 국민연합으로 개명-역주)은 도시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었다. 그런데 2022년 대선 1차 투표에서 농민의 1/3가량이 마린 르펜과 에릭 제무르에게 투표했다.(1) 6월 총선에서 RN은 ‘잊힌 농촌성’의 수호자를 자처했고, 2차 투표에서 코뮌 3만 4,000곳 중 9,633곳에서 승리하며 의석 89석을 차지했다. 사회학자 브누아 코카르는 “갈등을 조장하는 극우파의 담화(이주민에 대한 공포, 소외감, 주택가의 중산층 보호, 원조받는다는 낙인 등)는 농촌 서민층을 분열시키는 지역경쟁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극심한 탈산업화로 쇠퇴하는 농촌에서 취업기회를 둘러싼 지역경쟁이 치열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농민은 ‘처벌적 생태주의’, 행정적 제약의 증가, 외국과의 불공정한 경쟁 등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는데, RN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농민 편을 들었다. RN은 농민을 통해 농촌 주민 모두를 포섭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정치판의 단골 소재인 농촌과 도시의 간극을 이용했다.
2023년 2월 초, 이블린 지역에 있는 아댕빌 마을의 목축업자 파비앙 코이딕은 출판업자 오딜 자콥을 비롯한 이웃들로부터 서신 한 통을 받았다. 이웃들은 코이딕이 최근 매입한 땅에 목장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 지역에 살기로 선택한 것은 환경의 질 때문이고, “이곳은 이미 목장이 사라진 곳인데 소를 다시 키우기 시작하면 다시 불쾌하고 갑갑한 농촌으로 돌아갈 것이다. 목장은 역행적이고 잔인한 번식 행위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베르사유 행정법원이 청구를 기각하자, 이웃들은 다른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코이딕을 위협했다.
코이딕의 변호사 티모테 뒤푸르는 “우리는 농촌의 강제적 도시화를 목도하고 있다. 탈도시인들은 전원적 생활환경을 원하지만, 농민과의 공존을 거부한 채 문제만 일으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농민 변호 전문이자 프랑스전국농민연맹(FNSEA, 우파로 분류함) 측근인 뒤푸르 변호사에 따르면, 프랑스 농촌지역에서 벌어지는 이웃분쟁 건수는 매년 600~800건에 달한다. 프랑스농업·식량·환경국립연구소(INRAE)의 앙드레 토르 소장이 ‘더 컨버세이션’ 사이트에 올린 내용에 따르면, 농촌지역 이웃분쟁의 원인은 주로 인프라 공사, 에너지 관련 사업, 토지 소유권 다툼이다.(2) 농업 분쟁의 원인은, 닭 울음소리나 소 냄새보다는 살충제 살포가 더 많았다. 뒤푸르 변호사는 탈도시인의 농민 고소를 제한하는 법안을 작성하는데 참여했으며, 에릭 뒤퐁모레티가 주도하고 FNSEA가 협력한 이 법안은 2023년 12월에 도입됐다.
2023년 8월 13일, 뒤푸르 변호사는 줄리앙 드라이브 공화당(LR) 의원과 공동 작성한 <주르날 드 디망슈> 기사에서 프랑스최고행정법원이 10년 전부터 농촌의 불만이 꾸준히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단체 ‘레 술레브망 드 라 테르(지구의 반란)’의 해산을 중단시켰다고 비판했다.(3) 그는 데메테르가 없어진 것에 대해서도 한탄했다. 데메테르는 FNSEA, 청년농민(JA), 내무부 장관 간의 협정을 기반으로 2019년 10월에 창설된 헌병대 하위 조직으로 ‘집약적 농업에 대한 비판(agribashing)’을 지역 단위별로 감시한 정보 교환이 목적이다. 또한 농민이 겪을 수 있는 범죄행위는 물론, ‘농업을 비방하는 경범죄 또는 물리·신체적 영향을 동반하는 중범죄 등 이념적 성격의 행위’를 방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2021년 2월, 파리행정법원은 이런 행위를 감시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렸으며, 내무부에 감시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농촌성 옹호자 대다수는 공공서비스와 일자리를 파괴한 경제모델이나 농민층을 소멸시킨 생산 제일주의 농업모델을 비판하기보다, 농업적 가치를 강화하는 길을 선택한다. 이들에게 사냥, 낚시, 전통은 매우 중대한 문제다. 2021년 9월, 최고행정법원이 새 사냥을 위한 장비 사용을 금지하자, 사냥꾼과 지지자 수만 명이 몽드마르상, 포르칼키에, 르동, 아미앙 등지에서 시위를 벌였다. 2023년 2월 4일, 시위대 1만 5,000명이 투우경기를 지속하기 위해 몽펠리에 거리에서 시위를 일으켰다. 환경운동가와 동물보호단체가 <르몽드>에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경기들의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친 마크롱세력의 반발, “농촌을 그냥 내버려 둬!”
이 시위를 조직한 생브레 마을의 로랑 자울 시장(한때 공화당 측근)은 이어서 ‘처벌적 생태주의’도 비판했다. “우리의 삶의 방식을 뒤흔드는 정치적 운동이 우리의 전통을 공격하고 있다. 투우뿐 아니라 투르 드 프랑스, 공공장소에 크리스마스트리 설치까지 문제 삼고 있다. 이는 전적인 대중문화의 해체다.” 자울 시장은 현재 윌리 슈랭 프랑스사냥꾼협회장과 함께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 후보로 나섰다. 윌리 슈랭은 국민연합(RN)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마크롱 대통령 측근들의 입김으로 창설된 농촌동맹(Alliance Rurale)의 수장이기도 하다. 윌리 슈랭은 “우리가 사랑하는 프랑스는 사냥하고, 낚시하고, 고기를 먹고, 바비큐를 하는 프랑스다. 그런데 이 모든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 테크노크라트가 우리의 삶을 장악할수록 우리는 불행해진다. 우리 농촌을 그냥 내버려 둬!”
리옹 국립대의 농촌 역사학자 피에르 코르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농촌성, 땅, 농민에 대한 찬양은 정치적 논쟁에 정기적으로 등장하는 단골소재다. 확장 또는 위기 상황에 봉착하면, 농촌문제의 도구화가 발생한다. 오늘날 우리는 체계적, 생태적, 경제적 위기에 봉착했다. 농촌의 가치는 자유주의, 도시 현대화, 새로운 삶의 방식, 쇠퇴의 징조인 도덕적 자유 등을 비판하기 위한 토속적 상상력을 이용하는 보수적 운동에 의해 재점화된다.”
“오직 늑대와 농부만 알고 있다.” 세르주 부스케카사뉴 농업회의소 로트에가론 지부장이자 CR47 농촌조합장은 2023년 새해 연설을 이렇게 끝맺었다. “다시 말해, 농부는 늑대처럼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직접 동물을 키우고 죽이기 때문이다. 또한 농부는 늑대처럼 무리지어 사냥한다. 이런 표현을 쓰는 이유는, 더는 참아주기 힘든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구분 짓기 위해서다.” 2023년 3월 28일, 시위대 수백 명이 산부인과 병동 폐쇄를 막기 위해 빌뇌브쉬르로 보건센터 앞에 집결했다가 수십 미터 떨어진 거리에 CR47 농부들과 무장한 사냥꾼들이 도심으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는 광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부스케카사뉴 CR47 조합장은 마린 통들리에 유럽녹색당(EELV) 대표의 시위 참여를 금지했다. 생트솔린 코뮌에서 대형저수지 반대 시위에 참여한 것에 대한 보복 조치였다. 부스케카샤뉴는 “당신은 농민에게 고통을 주는 악의 근원이요. 우리 지역에 오지 마시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테니”라며 EELV 대표를 협박했다.(4)
부스케카사뉴는 환경운동가를 싫어하며, 살충제나 물 사용을 제한하는 모든 규정을 비난한다. 부스케카사뉴는 2001년에 농업회의소 로트에가론 지부를 장악했는데, 그해에 CR47도 그 지역의 핵심 농업조합 지부를 몰아냈다. 2019년, 그는 농민으로부터 60%의 표를 얻어 농업회의소 지부장에 재당선됐다. 부스케카사뉴의 카리스마는 농민 사이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비록 CR47이 지지하는 프로그램들이 소규모 농가를 약화시키는 경쟁적이고 집약적인 농업모델을 문제 삼지 않더라도 말이다. 베르나르 페레 EELV 전 고문은 “일부 농민들은 결단 있고 때론 폭력적인 그의 행동에 열광한다. 지자체든 누구든 농민을 위협하는 순간, 그가 나타나서 농민을 보호해준다. CR47을 운영하는 것이 대농가라도, 항상 소농가의 편을 들어주리라 믿는 것이다”라고 털어놓았다.
부스케카사뉴는 불법적으로 조성한 92만㎥ 규모의 코사드 호수를 사제에게 축복하게 만들었다. 또한 1차 세계대전 때 사망한 농부 추모식에서는 공화국 당국 앞에서 당당하게 주기도문을 읊었다. 그에게 신앙은 있을지언정 법은 없었다. 2024년 1월, 회계감사원은 보고서를 통해 부스케카사뉴의 농업회의소 운영방식을 지적했다. 윤리의식 부족, 보조금 할당 및 내부통제에 관한 명확한 기준 부재, 동물 복지 및 살충제 사용에 관한 업무 미수행, 관개시설의 물 사용 통제 거부, 관할 농업회의소들에 대한 부채 상환 거부 등이 이유였다. 이밖에도 회계감사원은 부스케카사뉴가 농업회의소장으로서의 책임과 농촌조합장으로서의 이해관계를 혼동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스스로를 ‘우두머리’라 자칭하며, 권력을 이용해 지차체장에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했다.
농본주의 이념을 내건 RN
예를 들어 2014년에 농촌조합원 수백 명이 수질보호 프로젝트에 반대하기 위해 아쟁마을을 점령했고, 당시 피해규모는 20만 유로가 넘었다. 로트에가론 농민들 입장에서 마린 르펜에게 투표하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지 묻자,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 붙어있던 CR 포스터를 보여줬다. ‘우리를 방해하지 마라! 우리가 알아서 일하게 내버려 둬라!’
2014년, CR47 시위대가 타르 지역의 시방스에 집결해서 댐 건설 반대자들을 공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을 ‘녹색 셔츠’라 불렀는데, 이는 1934년에 극우파 지도자 앙리 도르제르가 창설한 농민보호위원회의 별칭을 딴 것이다. 농민전선(Front paysan) 지도자였던 도르제르는 공화국과 국민전선에 대항해 수많은 시위를 조직했다. 그는 노동, 가족, 조국의 가치를 중시하는 농민조합주의를 담지한 농본주의 이념을 따랐고, 부패, 현대화, 진보주의를 표방하는 도시에 대항했다. 도르제르는 격렬한 비판을 통해 공무원과 국회를 공격하고, 농민의 적으로 선포했다. 그러다가 비시 정부와 협력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CR은 농본주의일까? 1991년 유럽연합 공동농업정책(CAP) 개혁 당시 CR이 창설됐을 때는 농본주의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구대륙의 자급자족에 전념했으며, WHO가 시작한 글로벌 경쟁에 유럽농업시장의 문을 열어주었다. 초반에는 농민연맹(Confédération paysanne), 농가보호운동(Modef), FNSEA 반대세력, 비조합 농민으로 구성된 연합으로, FNSEA가 지지하는 개혁에 반대하고 국산농산물을 보호하기 위해 남서부에 창립됐다. 1992년 6월, 이 연합은 파리를 봉쇄하고, 국산농산물과 경쟁하는 스페인산 과일과 채소를 가로챘다. 곧이어 연합 내부에서 우파가 좌파를 몰아내고, 마침내 농촌조합(CR)을 설립했다. 2019년 농업회의소 선거에서 FNSEA-JA 연합후보는 55.55%를 획득했고, CR(21.54%), 농민연맹(20%), Modef(1.89%)가 그 뒤를 이었다.
농본주의는 FNSEA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역사학자 다비드 뱅수상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비시 정부가 농본주의 흐름과 결합하면서 FNSEA가 창설됐을 때, FNSEA는 협동조합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건설모델을 도입했다. 농업계는 생산 제일주의 모델을 추진하기 위해 사회적 분열을 초월하고 하나로 뭉쳐야 했다. 협동조합주의는 소득, 지위, 관행의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곡물, 사탕무 등 대규모 생산업자들이 노조를 통제하게 만들었다. FNSEA가 농민 전체를 대표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을 받아 농업을 현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FNSEA는 농기업 사장들이 돌아가며 대표 자리를 맡는다. 예를 들어 자비에 블랭(임기 2010~2017)은 식용유, 식물성 단백질(르시외르, 퓌제 등), 바이오디젤, 동물사료 분야의 선두주자인 아브릴 그룹의 이사회 의장이었다. 자비에 블랭의 뒤를 이어 아브릴 그룹의 이사회 의장이 된 아르노 루소는 2023년 4월부터 FNSEA를 맡고 있다. 1966년, FNSEA는 JA와 함께 농업위원회(CAF)를 운영하게 됐다. CAF는 정부와 함께 국가 농업정책을 공동 관리하는 기관이다. 1981년 농업 조합의 다원화가 인정됐지만, CAF 내에서 다른 노조는 대표가 될 수는 없었다. 『농업의 요새. FNSEA의 역사(La Forteresse agricole. Une histoire de la FNSEA)』의 저자 질 뤼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FNSEA는 농민 단결의 신화 덕분에 정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농산업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1950년부터 현재까지 농장 수는 6배, 농업 종사자 수는 10배 줄었다. 농민은 전문기술을 수행하는 기업의 하청업자가 됐다. FNSEA는 이 시스템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거부한다. 만약 FNSEA나 CR의 지도자가 농업에 관련된 토론을 한다면, 그것은 환경문제나 기후변화에 직면한 상황에서 반혁명을 정당화하려는 토론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 모델의 한계를 인정하고 거기서 벗어날 역량이 없다.”
국민연합(RN)도 농부와 농촌 주민의 표심을 얻고자 농본주의 이념을 도입했다. RN은 그동안 프랑스인과 이민자 간의 분열을 이용했는데, 이제는 도시와 농촌의 분열까지 조장하고 있다. RN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처벌적 생태주의, 환경규제를 강요하는 파리와 유럽연합의 테크노크라트와 공무원, 농민이 겪는 모든 불행의 원인이다. RN의 전략은 네덜란드, 스페인, 루마니아, 영국의 농민 시위에 편승하고 있는 유럽 극우 정당들의 전략과 일치한다. 마린 르펜이 이끄는 RN은 공동농업정책(CAP)과 떨어질 계획이 전혀 없으며, RN 소속 유럽의회 의원도 2021년 11월에 새로운 CAP 2023-2027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새로운 CAP는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근거로 기술적 생산 제일주의 모델을 더욱 강화했다.
RN, 대농가를 위한 보조금 추진 비난받아
또한 보조금을 대농가에 유리하게 분배하는 불공정한 관행도 재개했다. 이에 따라 농민 20%가 보조금의 81%를 차지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베로니크 마르슈소 농민연맹 총장은 “보조금이 헥타르당 지급되기 때문에 CAP는 결국 대기업에 땅이 몰리고 소농가를 사라지게 만들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RN의 반대에도 한계가 있었다. 2023년 11월, RN 소속 유럽의회 의원들은 유럽연합-뉴질랜드 FTA 체결에 반대했지만, 유럽연합의 정치그룹 ID(정체성과 민주주의)는 이에 찬성표를 던졌다. 2024년 1월 유럽연합-칠레 FTA 체결안의 경우, 유일하게 참석했던 RN 의원은 기권을 행사했다.
2020년, RN은 더 큰 그물을 던지기 위해 지역주의운동(Les Localistes)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프랑스인들에게 ‘우리 영토에 대한 통제권과 지배권을 되찾고, 프랑스를 더 위대하게 만드는 우리의 작은 조국에 생명을 불어넣자’고 촉구한다. 지역주의운동 신임대표이자 RN 오베르뉴론알프 지부 의원인 앙드레아 코타락은 이렇게 단언했다. “지역주의는 우리의 영토, 풍경, 제품, 산업을 파괴하는 세계주의에 반대한다. 농업을 재산업화하고 보호하는 것은, 수입과 운송 때문에 발생하는 지구온난화에 맞서는 것과 같다.” 그러나 프랑스농산물 수출이 탄소를 배출하는 것과 프랑스 축산업이 산림파괴의 주범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대두를 연간 360만 톤씩 수입하는 부분은 딱히 문제 삼지 않았다. RN이 지역주의, 탈도시화, 농업적 예외(농업도 문화처럼 자유화의 대상이 아니라는 개념-역주) 등의 개념을 점점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은, 시스템의 결점을 들춰낼 수 있는 프로그램의 부재를 숨기려는 의도다.
트랙터 시위대, RN의 지역주의 영향받아
2024년 1월 시위에서는 CR47의 공격성이 두드러졌다. 아쟁 마을에서는 분뇨 수만 리터를 시청, 기차역, 기관, 기업 앞에 뿌렸다. 맥도날드는 CR47 부조합장에게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약탈당했다. 또한 농업노동자에 대한 통제에 항의하기 위해 멧돼지의 배를 갈라 노동감독국 앞에 매달았다. 2004년에는 노동감독관 두 명을 총격한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한 농부를 지지했다.(5) 아쟁 시청이 추산한 피해규모는 40만 유로에 달했다. 1월 말, 부스케카사뉴는 CR47 트랙터 시위대를 파리에 보내서 렁지스 국제도매시장을 점령하라고 지시했다(기름 값은 농업회의소가 부담했고, 이번에도 사제에게 축복을 빌게 만들었다). 그는 농민을 향해 “우리의 마지막 투쟁을 벌이자! 아니면 우리 민족과 문명이 사라질 것이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이 말을 하기 직전, 자신은 RN 후보가 될 준비가 됐다고 선언했다.
글·필리프 바케 Philippe Baqué
기자
번역·이보미
번역위원
(1) Eddy Fougier, Jérôme Fourquet, ‘Le Front national en campagne. Les agriculteurs et le vote FN 농촌에 진출한 국민전선. 농민과 국민전선의 표’, <Fondation pour l’innovation politique>, Paris, 2016년 10월; Mayeul Aldebert, ‘De la droite au Rassemblement national, le vote très convoité des agriculteurs en colère 우파에서 국민연합으로 돌아선 뿔난 농민의 표심’, <Le Figaro>, Paris, 2024년 2월 1일.
(2) André Torre, ‘Coq Maurice et autres “bruits de la campagne”, une vision fantasmée de la ruralité 수탉 모리스와 ‘시골의 소음’, 농촌에 대한 환상’, <The Conversation>, 2019년 11월 25일. https://theconversation.com
(3) Timothée Dufour, Julien Dive, ‘Les Soulèvements de la Terre : une décision du Conseil d’État au mépris des agriculteurs 레 술레브망 드 라 테르: 농민을 무시한 최고행정법원의 판결’, <Le Journal du dimanche>, 2023년 8월 13일.
(4) Philippe Baqué, ‘Serge Bousquet-Cassagne, l’agriculteur qui fait sa loi dans le Lot-et-Garonne 세르주 부스케카사뉴, 로트에가론을 다스리는 농부’, <Reporterre>, 2023년 5월 25일.
(5) Philippe Baqué, ‘On veut des Polonais et des Marocains 우리는 폴란드인과 모로코인을 원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