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침묵

2024-04-30     아크람 벨카이드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부편집장

“아랍국가는 절대 단합하지 않기로 단합했다.” 

모로코, 오만, 이집트, 요르단, 그리고 카타르까지 모두가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마그레브와 중동 국가 간 경쟁, 분열, 분쟁의 역사를 단적으로 표현한 이슬람 사상가 이븐 할둔(1332~1406)의 이 유명한 격언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이 격언은 깨졌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아랍 22개국이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단합했기 때문이다. 매번 ‘긴급’ 회동을 하고 장황한 말을 늘어놓은 다음 엄숙한 최종 성명을 발표했지만 무대응으로 일관하겠다는 태도만 확인시켜줄 뿐이다.

이제 뻔하다. 커다란 회의 테이블에 모인 배가 불룩 나온 고위 관직자들과 총사령관 겸 대통령, 존경받는 과거의 반란 주동자들, 그리고 의원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어기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명맥하고도 부당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비난한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지역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경고한다.(2023년 11월 11일)

이후 무슨 조치를 했을까? 반격 계획을 세웠을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경우처럼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요청했을까? 남아프리아공화국이 가자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집단학살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군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 후 아랍국가는 이를 지지했을까? 외교관계 정상화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거나 수교 중단을 단행했을까? 이스라엘로 폭탄과 군수품이 운송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에 대한 걸프 국부펀드 투자를 감소시켰을까? 혹은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후 시행했던 석유 엠바고를 재현시켰을까? 그럴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과의 분쟁을 피하는 이집트

물론 이런 방관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텔아비브에 있었던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결정하자 아랍 연맹은 분주하게 ‘전략적 계획’을 수립하는 것에 합의했다. 그리고 미 대사관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라 장담했다. 이후 6년이 지났지만 이 계획은 아무런 진척이 없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가 3만 명을 넘어섰고 실종자와 부상자도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가자지구 시민의 이집트 시나이 강제이주 계획도 구체적으로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아랍국가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약한 군사력 때문일 것이다. 이들 중 어느 나라도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우월감을 품은 적과 군사 충돌을 감행하려 하지 않는다. 언젠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싶은 독재자들이 이스라엘식 민주주의에 대해 왈가왈부할 뿐이다.

심지어 레바논 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헤즈볼라도 한 발짝 물러서서 심각한 분쟁은 피한다. 오랜 기간 시리아와 이집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지위와 삶을 공격하려는 시도를 꺾는 강대국 역할을 했다. 그런데 시리아는 10년 이상 내전을 겪으면서 미국, 이란, 러시아, 튀르키예와 같은 외국군 주둔을 받아들여야 했고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 이슬람 혁명수비대의 군 시설을 폭격할 때조차 보복할 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집트의 경우 이스라엘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집트를 ‘남부 전선’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연구원 튜피크 아클리마도스의 설명에 따르면 이집트군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평화는 이 적을 잘 무찌르거나 혹은 적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1) 즉 적에 대항하는 최상의 방법은 적과의 싸움을 피하는 것이다.

지난 몇 주 동안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시나이 북부 지역으로 추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수차례 우려를 표했다. 난민 수만 명을 수용해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이렇듯 단호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게다가 아라비아반도에 이슬람 국가(IS) 산하 군 조직들이 침투하고, 팔레스타인 추방과 차별을 비난하는 베두인족의 민족통일주의가 확산하면서 정세가 불안정해진 가운데 이스라엘과 투쟁하려는 군 조직들이 형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집트가 완충 지대에 가자지구의 난민들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버틸지는 모를 일이다.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 정치적 이익 계산이 먼저  

아마 미국과 유럽연합이 외채 1,900억 달러(이 중 430억 달러를 올해 상환해야 한다) 때문에 허덕이는 이집트에 금융 지원만 해 주면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 이집트가 상환 약속을 이행하려면 적어도 200억 달러가 부족해서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IMF는 추가 차관을 조건으로 통화가치 평가절하와 민영화를 요구하고 있다. 만약 추방당한 팔레스타인 주민을 수용한다면 IMF가 이집트에 동정심을 조금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랍국가 간 무너진 힘의 균형도 이들의 태만함에 일조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아랍국가들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알제리, 이라크, 시리아, 그리고 예멘의 주도하에 이스라엘과 평화 관계를 거부했던 시절은 완전히 지나갔다. 그래서 아랍에미리트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자 즉각 비난했다. 국토가 작고 인구도 적지만(아랍에미리트 자국민은 5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유국인 이 나라는 이스라엘과 전략적 친분을 통해 아랍 지역에서 야욕을 채우고 있다.(2) 그러니 미국의 중재 하에 2020년 이스라엘과 체결한 아브라함 협정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아랍 지역 내 미국의 개입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랍에미리트는 최우선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군사적 경제적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함으로써 이란의 세 확장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예멘과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소말리아 해역 지역에서 지역 주민들을 탄압하더라도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받았다. 아브라함 협정을 맺은 모로코처럼 아랍에미리트도 면책 특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면 서방국가는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 침해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 준다. 게다가 미 의회 내 친이스라엘 로비 단체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겸 총리 모함마드 빈 살만(MBS)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이 미래의 국왕은 3,700만 국민들의 눈치도 봐야 한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정부가 수립되지 않는 한 공식적인 외교 정상화는 없을 것이라고 종종 단언한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해도 적극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MBS는 이미 약 10년 전부터 이스라엘과 비공식적인 친분을 쌓음으로써 누리는 이득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의 사위이자 선임고문 재러드 쿠슈너가 최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것을 이루어 낸 선견지명이 있는 리더”라고 칭송하기도 했다.(3) 2018년 10월 이스탄불의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서 MBS가 보낸 살인청부업자에게 토막 살해를 당한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측근들도 동의할지 의심스럽다.

 

팔레스타인의 운명에 무심한 아랍 시민들

‘아랍 거리’에서 마주치는 시민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들은 국내 정치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에 관해서도 언급하기를 꺼린다. 이스라엘과 외교 정상화를 약속한 나라이든, 그렇지 않든,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 이후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연대를 위한 시위는 금지되었거나 제약을 받고 있다. 런던, 뉴욕, 앙카라, 자카르타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있는 격분한 시위대와 비교하면 군중의 봉기를 차단하기 위해 철저히 감시당하고 있는 아랍국가의 시민들은 무심해 보인다.

물론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에서는 가자지구와의 연대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 공간에서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 의견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랍 정부는 소셜네트워크 안에서도 자신들의 소극성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확산시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지도자 이맘들은 팔레스타인은 유대인의 땅이며 현재 벌어지는 비극은 모두 하마스와 무슬림 형제단 때문임을 설파하기 위해 코란의 가르침을 들먹인다. 그리고 사태의 양상이 매우 복잡하므로 통찰력이 있는 지도자들에게 일임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도 있다.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선전 활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향락을 즐기는 젊은이들은 레바논 베이루트가 너무 위험해서 갈 수 없게 되자 텔 아비브로 가서 즐기고 싶은 마음을 이제 숨기지 않는다.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1979) 국민들이 1967년 이스라엘이 점령했던 시나이를 반환한 공적을 인정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팔레스타인인의 운명은 못 본척했다. 아랍 지도자들이 다른 곳에 우선순위를 두느라 가자지구를 방치하고 있다. 그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글·아크람 벨카이드 Akram Belkaï̈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부편집장.  

번역·정수임
번역위원


(1) Tewfik Aclimados, ‘De l’armée égyptienne. Eléments d’interprétation du “grand récit” d’un acteur-clé du payage national 이집트 군대에서. 국가 주역의 ‘대서사’ 해석 요소’ <Revue Tiers Monde>, n°222, Paris, 2015.
(2) Eva Thiébaud, ‘Vertige guerrier aux Emirats arabes unis 아랍에미리트의 호전성’,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3월.
(3) Erin Doherty, Dave LMawler, ‘Kshner appelle MBS un leader visionnaire qui a rendu le monde meilleur 쿠슈너는 MBS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끈 선견지명 있는 리더라고 칭했다’, Aiox, 2024년 2월 13일, www.axi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