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와 모래 장사
더 많은 트럭과 더 많은 아스팔트
3월 12일, 유럽의회는 ‘초대형트럭’의 통행에 유리한 지침을 채택했다. 무게가 최대 60t에 달하는 이 거대한 트럭은 철도 화물 운송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프랑스 화물 운송의 90%를 담당하는 도로망의 상태도 악화시킨다. 프랑스의 국토개발계획은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자유무역 논리의 지배를 받는다.
노면에 깔린 타르에서부터 그 위에 그어진 흰 차선에 이르기까지, 고속도로는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이탈리아의 ‘아우토스트라다(autostrada)’와 독일의 ‘아우토반(autobahn)’은 명백히 각각 파시스트, 나치 정권의 작품이다. 프랑스의 고속도로는 ‘고립된 지역을 개발’하고, 휴가지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건설됐다. 일명 ‘태양의 고속도로’로 불리는 리옹-마르세유 간 A7 고속도로가 대표적인 예다.
1962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재무장관은 고속도로에 “발전, 다양한 활동, 삶”에 기여한다는 찬사를 보냈다.(1) 1955년, 프랑스 의회는 세계고속도로대회가 이미 확립한 고속도로의 정의에 몇몇 정치적 선택을 더했다. 이때부터 프랑스의 고속도로는 “기계화된 이동 수단 전용” 도로가 됐다. 자동차는 보행자, 자전거, 트램, 마차 등 다른 이용자들을 도로에서 몰아내기 위해 오랜 기간 투쟁을 벌였다.
국토를 심각하게 단절하는 ‘터널효과’ 초래
의회가 새롭게 도입한 규정으로 자동차는 도시에서, 특히 치열했던 이 투쟁에서 승리했다. 고속도로는 “인근 주민의 직접적인 접근을 차단하고 지상에서 다른 도로와의 교차를 피할 수 있게”됐다. 1962년의 장관급 회람은 또한 고속도로는 “높은 기본 속도”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처럼 교통의 원활한 흐름을 강조하자 이동성에 서열이 생겨났다. 원활한 장거리 이동을 위한 신호등과 건널목 제거는 국토가 심각하게 단절되는 ‘터널 효과(대형 거점 사이에 고속 인프라를 구축할 때 이 인프라에 대한 소형 거점의 상대적 접근성이 제한되는 현상-역주)’를 낳았다. 고속도로 인근 주민들이 고속도로를 건너가려면 결국 자동차를 이용해 가까운 거리를 먼 길로 돌아가야 한다. 누군가 잦은 진출입 지점으로 방해받지 않는 공간의 연속성을 누리려면 다른 누군가는 공간의 분절로 인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고속도로는 물질적 산물이기도 하다. 고속도로의 속성은 기하학과 입체적 구조로 설명된다. 고속도로가 기본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완만한 경사도, 큰 곡률, 추월이 가능한 충분한 폭을 갖춰야 한다. 다른 도로와의 교차를 금지하는 것은 다리, 육교, 터널, 나들목 및 연결 도로를 추가로 건설해야 함을 뜻한다. 평균적으로 고속도로 1km당 대형 콘크리트 다리 하나를 건설해야 한다. 폭, 경사, 반경, 두께 측면에서 볼 때, 고속도로는 19세기의 대로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기하학의 발전으로 고속도로는 몸집을 키웠다. 노면 아래를 들여다보면 고속도로는 자유, 민주주의, 태양의 상징이 아니라 약간의 시멘트와 아스팔트 그리고 엄청난 양의 흙, 모래, 자갈로 이뤄져 있다.
고속도로 1m를 건설하려면 30t의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고 경사를 없애 평편한 면을 만들기 위해 최소 100㎥의 흙을 파내어 옮겨야 한다. 이는 평균적인 수치며 더 많은 양의 골재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1km 단위로 보면 병원 하나와 맞먹는 양의 골재와 총 10ha의 부지가 필요하다. 이때 활용되는 땅은 대부분 농경지다. 농경지가 고속도로 부지로 편입될 때 보통 농지 통합(Land consolidation)도 같이 이뤄지기 때문에 대규모 교통 인프라 건설은 ‘농업 현대화’ 정책과 집약적 농업을 지지한다. 1945~2006년 통합된 농지 총면적의 17%가 집약적 농지로 변했다. 1945~1983년 농지 간 경계 역할을 하는 숲과 80만 km 이상의 초목 울타리가 파괴됐으며 이로 인해 엄청난 생태학적 피해가 발생했다.(2)
1960년 3월, 프랑스 정부는 3,558km에 달하는 고속도로 신설 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200km에 불과했던 기존 고속도로는 대부분 도시 고속도로였다. 도로 당국은 교통량 증가로 인한 도로의 포화상태를 해소하려면 도로를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는 오래된 논리로 고속도로 신설 정책을 정당화했다. 새롭게 건설된 도로에는 새로운 교통량이 유입됐고 결국 도로가 다시 포화상태에 빠지고 손상되는 끝없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후 교통량은 계속 증가했다. 2019년, 프랑스에 존재하는 모든 범주의 자동차는 총 4,800만대에 달했다. 이는 1960년대 초보다 5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2023년, 프랑스 고속도로망의 총 길이는 1만 2,379km, 1km당 건설비용은 최대 4,600만 유로에 달했다.
신규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동안 기존 고속도로 역시 끊임없이 변화했다. 1960년대 초 가장 중요한 교통망이었던 8만km의 국도는 대형 트럭의 통행량 증가를 감당하지 못했다. 1962~1963년 겨울, 도로가 결빙과 해빙을 반복하면서 지반이 약해지자 일부 국도는 해빙기 화물차 통행을 금지했다. 이에 대형 화물차 업체들은 화물차 통행 재개를 위한 로비활동을 벌였다. 도로 관련 잡지와 전국의 언론은 “전례 없는 재앙”, 지역 “고립” 등을 거론하며 도로의 “열악한” 포장 상태를 지적했다. 화물차 업체들의 로비는 성과를 거뒀다. 정부는 연중 내내 화물차가 통행할 수 있도록 국도의 손상된 구간을 보수하고 전 구간의 두께, 폭, 강도를 보강하기로 결정했다. 1970년대, 국도 보완 목적의 고속도로 건설 정책을 한창 추진 중인 가운데 실시된 국도 개선 사업은 고속도로 건설만큼이나 많은 비용이 들었다. 또다시 1m당 엄청난 양의 시멘트, 아스팔트, 5t의 모래와 자갈이 국도 정비사업에 투입됐다.
고속도로라는 용어 자체는 자동차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새롭게 정비된 국도와 마찬가지로 고속도로는 화물차를 위한 강도와 두께로 설계 및 건설됐다. 따라서 고속도로, 국도라는 용어 대신 ‘화물차도로’라는 명칭이 더 적절해 보인다. 도로 노후화에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법칙이 적용된다. 1968년 개통된 A1 고속도로의 파리-릴 저속 구간은 1981년 이미 심각하게 변형된 상태였다. 당시 이미 5,600만대의 차량이 이 구간을 거쳐 갔으며 이 중 21%는 대형 화물차였다. 오늘날 이 구간을 통행하는 차량은 하루 10만대에 달하며 이 중 35%는 세미트레일러다. 최대 44t에 달하는 세미트레일러는 1981년 통행하던 차량들보다 훨씬 무거운 차량이다.
화물차는 전체 차량의 2%, 운송 부분 온실가스 배출량의 23.7%를 차지하지만 화물차 통행으로 인한 제약은 도로망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몸집이 커진 이동 수단에 맞춰 관련 인프라도 확충하는 논리는 다른 형태의 이동 수단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더 큰 항공기를 수용하기 위해 공항 활주로를 연장하고 두께를 보강했으며, 더 큰 유조선과 광석 운반선이 정박할 수 있도록 더 깊고 긴 부두를 새로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매번 수백만t의 흙, 모래, 자갈, 퇴적물이 투입됐다.
존재하지 않는 모래 채취에 대한 규제
하나의 인프라 확장은 다른 인프라 확장으로 이어지는 시너지 효과를 낳는다. 유럽 통합과 여러 조약에 명시된 자유무역이라는 원동력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은 1960년대 말 구체적인 목적을 위해 정비된 물리적 공간, 즉 론강, 센강, 노르파드칼레의 인프라 회랑 지대(infrastructure corridor)에서 포, 르아브르, 됭케르크에 이르는 지역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대규모 운송 인프라가 들어서자 물류 플랫폼 건설이 뒤따랐다. 상품 운송과정의 분기점 역할을 하며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공간인 물류 플랫폼 건설은 사회적 관계와 공간의 생산의 변화를 대변했다. 2015년 올네수부아에 있는 푸조 시트로앵의 역사적인 공장이 한 물류 기업에 매각된 것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3)
모두가 이러한 도로 정책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수백 건의 갈등 사례로 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한 이들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속도로를 건설하려면 과거 우회했던 민감한 지역을 가로질러야 하고 교량, 고가 등의 입체도로를 건설해야 한다. 따라서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는 경사면이 흘러내리고, 산사태가 증가하고, 제방이 침하하거나 부서지고, 지면이 내려앉고, 터널이 붕괴하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자동차와 도로망의 발전은 많은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1953년, 6,400명이 도로에서 사망했다. 이 중 1천여 명은 어린이였다. 1970년대 초, 연간 사망 및 부상자 수는 각각 1만 5,000명과 20만 명에 달했다. 하루에 40명이 사망한 셈이다. 이후 사망자 수는 크게 줄어 2023년 연간 사망 및 부상자 수는 각각 3,170명, 23만 2,000명을 기록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서민층이었다. 도로 산업은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했으며(4) 심지어 도로변 나무를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그 결과 수십만 그루의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갔다.
1950년대부터 중소기업들은 도로 건설과 콘크리트 제조에 필요한 모래와 자갈을 대대적으로 채취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골재 중 일부는 현지에서 직접 조달했다. 프랑스는 오랫동안 ‘통상적으로’ 강에서 모래와 자갈을 채취해 왔다. 2010년대 초, 모래 채취와 관련된 수많은 보고서는 마피아의 개입, 약탈 등의 불법 채취 활동과 싱가포르, 두바이의 대규모 건설현장에만 주목했으며(5) 프랑스 국내에서 벌어지는 골재 채취는 지극히 평범한 작업으로 간주했다. 현재 메콩강 하류에서는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퇴적물의 7배에 달하는 양의 모래가 채취되고 있다.
1970년 프랑스 루아르강에서는 이미 이 비율이 10~13배에 달했고 루아르강 투르 구간의 수면은 눈에 띄게 낮아졌다. 1973~1977년 60cm 이상 패인 강바닥은 윌슨 다리의 교각을 지탱하지 못했고 1978년 4월, 윌슨 다리는 결국 붕괴하고 말았다.(6) 어디서나 쉽게 채취할 수 있고 판매 가격은 낮지만 운송 비용은 높은 모래 덕분에 수천 곳에 달하는 모래 채취장을 운영하는 수백 개의 소규모 회사들은 호황을 누렸다. 준설선과 굴착기가 대부분의 강에서 퇴적물을 퍼내자 곳곳에서 모래 부족 현상이 벌어졌다. 1955~1972년, 드라크강과 이제르강이 합류하는 대도시 그르노블에서는 총 12km 구간에서 1m당 연간 22㎥의 모래가 채취됐다. 하지만 모래 채취에 대한 규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채취장은 그저 토지 생애의 한 단계일 뿐”
1970년까지만 해도 시청에 간단한 신고만 하면 채취장을 개설할 수 있었다. 하천 충적토 채취는 강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영향을 미쳤지만 장기적으로는 제방 침식, 유수 환경 교란, 퇴적물 정체와 하천 녹화로 인한 수리학적 위험, 습지 감소로 인한 생물 다양성 감소 등 공통적인 결과도 초래했다. 강바닥을 파내면 수위가 낮아지고 지하수 역시 감소한다. 이러한 피해 때문에 1960~1970년대 지역 주민, 선출직 공무원, 과학자, 어부 및 단체들은 하천 모래 채취에 열렬히 반대했다.
갈등이 깊어지고, 채취 가능한 모래가 고갈되고, 각종 피해가 문서화 됐다. 의회는 골재 채취 활동을 규제하는 최초의 법률을 채택했고 시민들의 인식은 강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더욱 확대된 채취 활동은 특정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법적 제약으로 변화를 맞이했다. (1993년 충적토 채취를 금지한 이후) 채취 대상은 경암으로 대체됐으며 소음, 분진 등의 즉각적인 공해는 완화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채취 활동은 지역 주민, 환경 단체, 과학기관과의 협의를 거친 국토 개발 및 재개발 정책으로 포장됐다. 15년 또는 30년 후 다른 이들이 부러워할 만한 미래를 누리기 위해서는 현재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다.
채취장 소개 책자들은 가장 눈에 띄는 피해를 숨긴 채 농업, 임업, 레저센터, 조류 보호구역 등 해당 지역의 향후 활용도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파리지역(비리샹티옹, 세르지뇌빌, 자블린, 망트라졸리)을 비롯한 프랑스 곳곳의 하천 휴양단지 사진들이 전문 잡지를 도배했다. 이러한 사진들은 진부하고 심지어 기괴했지만 매우 효과적이었다. 하천의 아물지 않은 상처는 돛단배의 이미지로 대체됐다. 채취장은 가치를 창출하고 부를 가져다주는 공간으로 포장됐다. 시멘트 제조기업 라파주의 재개발 계획 소개 책자는 “채취장은 그저 토지 생애의 한 단계”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채취장은 공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생산한다는 주장이다. 토목공사를 통한 주변 경관 정비는 향후 인프라 건설 공사의 ‘수용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분쟁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그 역할이 커진 조경·토목전문가들은 피해를 유발하는 바로 그 장비들을 사용해 피해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는 또 다른 분야인 복구 전문가들과 협력하면 심지어 주변 경관과 생태계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채취장의 물리적, 상징적 책임 부담은 교통 인프라 개발을 위해 필요한 요소가 됐다. 점차 채취장은 찬반이 엇갈리는 주제가 됐고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모래와 자갈의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조건하에 생태학적 요구를 수용했다.
자갈로 끊임없이 도로 보수, 현대판 시지프스의 형벌
1945년 이후 프랑스의 자본주의에서 가장 많은 양의 자재가 투입된 곳은 대규모 인프라다. 프랑스에서 채굴 및 운송된 자재는 주택, 식량, 난방뿐만 아니라 사람, 그리고 특히 상품의 운송에 이용된다. 1960대 주요 최종 사용처였던 콘크리트 제조에 사용되는 자재의 비중은 오늘날 전체 채취량의 28%에 불과하다. 프랑스에서 채취된 모래와 자갈은 19%만 건물을 짓는데 사용되며(7) 나머지는 이제 ‘토목공학’, 특히 대형 화물차량 통행으로 끊임없이 손상되는 기존 도로의 유지 및 보수에 사용되고 있다. 2019년, 도로 포장에 사용된 아스팔트(약간의 타르와 다량의 모래와 자갈)의 양은 3,580만t에 달한다. 더 우려스러운 사실은 1만 2,000개의 고속도로 교량 중 1/3이 보수가 필요한 상태이며 7%는 붕괴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이다.(8) 시지프스가 받은 형벌은 무거운 돌을 계속 밀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갈로 끊임없이 도로를 보수하는 것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고속도로라는 유산을 유지·보수하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2010~2015년, 지방 당국은 연평균 150억 유로를 도로에 지출했다. 파리 근교 일부 지역은 매년 도로 1km당 23만 유로를 지출했다.(9) 도로 관련 예산이 초등교육 예산과 맞먹는 소도시들도 있다. 도로 유지·보수 작업은 사실상 정치적 심의대상에서 제외된다. 무엇인가를 보수해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심지어 지구를 구하는 바람직한 일이라는 강력한 논리의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그토록 많은 돈을 들인 유산이 파손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인프라의 물성과 인프라가 대변하는 이미지 때문에 사회가 인프라를 유지·보수하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당국은 이러한 작업을 민간 하청 기업에 맡긴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빈치그룹(Vinci)은 점점 더 도로를 장악해 나가고 있다.(10) 빈치그룹은 토목공사(GTM), 기초공사(Sletanche), 타설공사(Eurovia)를 담당하고 수백 개의 채취장(빈치건설)을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4,443km에 달하는 고속도로망, 12개의 공항, 수백 개의 주차장 등의 인프라도 소유하고 있다. 설사 순수한 공기로 움직인다고 해도 자동차와 트럭은 여전히 대규모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경제 질서는 이제 공간의 생산을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혹은 자연스러운 제약으로 인식하도록 강요한다. 대규모 인프라를 유지해야 자유무역을 필두로 한 거시경제 구조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넬로 마갈량이스 Nelo Magalhães
알리앙스 소르본 대학 환경전환연구소(ITE) 박사 후 과정. 『Accumuler du béton, tracer des routes. Une histoire environnementale des grandes infrastructures 콘크리트를 축적하고 도로를 설계하다. 대규모 인프라의 환경사』(La Fabrique, Paris, 2024)의 저자. 이 기사는 해당 저서를 각색한 글이다.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Valéry Giscard d'Estaing) 성명, Radiodiffusion-télévision française (RTF), 1962년 2월 23일, www.ina.fr
(2) Marc-André Philippe & Nadine Polombo, ‘Soixante années de remembrement : essai de bilan critique de l’aménagement foncier en France 토지 통합 60년사 : 프랑스 토지 정비 비평, <Études foncières>, Sceaux, 2009 ; Patrick Falcone, Xavier Ory, Vincent Piveteau & Catherine Sarrauste de Menthière, ‘La haie, levier de la planification écologique 숲 울타리, 생태 계획의 원동력’, 식량, 농업, 농촌 위원회, 보고서n° 22114, 2023년 4월.
(3) Cécile Marin & Pierre Rimbert, ‘L’ère des plates-formes logistiques 물류 플랫폼의 시대’, <마니에르 드 부아르> 프랑스어판 187호, 2023년 2~3월호.
(4) Matthieu Grossetête, ‘Des accidents de la route pas si accidentels 우연이 아닌 교통사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8월호.
(5) 일례로 드니 들레스트라크(Denis Delestrac) 감독의 다큐멘터리 <Le sable : enquête sur une disparition 모래의 실종을 조사하다>(<Arte>, 2011)를 꼽을 수 있다.
(6) <Bulletin de liaison des laboratoires de Ponts et chaussées>, Paris, 1980년 9~10월.
(7) 전국 골재 채취 건축 자재 산업 연합(Unicem), ‘L’industrie française des granulats en 2020 2020년 프랑스 골재 산업 현황‘, 전국 골재 생산자 연합(UNPG), Clichy, 2022.
(8) Patrick Chaize & Michel Dagbert, ‘Sécurité des ponts : éviter un drame 교량의 안전 : 비극을 피하는 방법’, 2019년 6월 26일 상원에 제출된 보고서 no 609 (2018-2019), www.senat.fr
(9) Jacques Rapoport et al., ‘Revue de dépenses -Voiries des collectivités territoriales 지방 당국의 도로공사 지출 조사’, conseil général de l’environnement et du développement durable 환경 지속 가능한 개발 위원회-행정감사청(IGA) - 재무감사청(IGF), Paris, 2017년 8월.
(10) Nicolas de la Casinière, ‘Le soleil ne se couche jamais sur l’empire Vinci 해가 지지 않는 기업 빈치 그룹’,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