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문체, 강렬하면서도 신화적인 여정
잠입 취재 기자들을 보면 현장에서 노동 환경을 전하는 것이 최근 들어 다시금 관심을 끄는 듯하다. 그런데 문학이란 방식으로 이를 표현할 경우, 단순한 진실 이상의 진리가 드러난다.
생선 통조림 공장과 도축장에서 임시직 노동자로 일하던 조제프 퐁튀스는 소설 『라인』으로 2019년 외젠 다비 민중소설상을 수상했고, 뒤이어 철도 기관사 마티아 필리스도 소설 『기관사』를 통해 철도 근무 경험을 전했다.(1) ‘탐사 기록’으로써 혹은 ‘사실 기반의 이야기’로서 노동자의 근무 환경이 알려지길 원했던 1920년대 프롤레타리아 문학은 어쩌면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그 소망을 이루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들 작품이 그 계보를 잇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20년대 당시 일간지 <뤼마니테>는 노동자나 농민으로 일하던 특파원들에게 지면 하나를 할애했다. 가령 ‘노트르 시트롱(우리의 레몬)’이란 기고란에서는 시트로엥 자동차 공장 특파원이 내부의 노동 환경을 기술하여 산업 합리화가 이뤄지는 방식과 그에 따른 영향,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부품 단가의 감소,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착취, 작업반장의 권위주의 등의 내용을 전했다.
그런데 퐁튀스나 필리스는 이를 소설이란 형식으로 전해주었다. 노동계 외부의 관찰자가 아니라 내부의 일원이 이렇게 직접 공장 내부의 상황을 시나 소설로 표현한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기껏해야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이나 로제 바양의 『32만 5,000프랑』에서와 같은 현장 묘사를 재구성했을 뿐이다.
‘사회주의계 사실주의’ 문학이 태동하던 초기에는 로제 가로디가 ‘감히’ 『창조의 여덟째 날』(Hier et Aujourd'hui, 1946)이란 소설을 발표했다가 철학자이자 평론가였던 롤랑 바르트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라이노타이프 식자공의 일을 소설로 표현한 이 작품이 ‘부르주아계 사실주의’를 따른다는 이유에서였다(『글쓰기의 영도』, Seuil, 1953). 앙리 풀라유나 앙드레 스틸 등 (대개 노동자 출신의) 프롤레타리아 작가들이 공장이나 광산, 철도 노동자로 직접 일한 적은 많았지만, 재직 기간 중 글을 쓴 경우는 별로 없었다.
독자들, 진실성이 보장된 경험을 원해
노동이란 주제도 그에 대한 글쓰기도 이제 한물간 유행인 듯했는데, 몇 년 전부터는 노동자의 일이나 착취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리비아 모키예프스키, 플로랑스 오브나, 조프레 르 길셰 등 노동자의 삶을 ‘피부로’ 체험한 기자들이 그 주축인데(2), 마치 1930년대의 시몬 베유나 1968년 가을 공장에 간 ‘에타블리(위장 취업으로 현장에서 노동 운동을 벌인 지식인)’ 로베르 리나르트 같은 지식인의 행보를 오늘날 다시 이어가는 것 같다. 2018년 연극으로 상연된 로베르 리나르트 소설 『에타블리』(Editions de Minuit, 1978)는 최근에 다시 마티아스 고칼프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으며, 오브나의 작품도 에마뉘엘 카레르가 희곡(2018)과 영화(2021)로 각색했다.
퐁튀스의 소설 『라인』 역시 연극으로 상연되었고 2019~2020년에는 노래로까지 만들어졌다(미셸 클루&파스칼 부아지즈). 필리스 역시 과거의 퐁튀스와 마찬가지로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독자들은 이제 단순히 취재 내용이나 사회학적 연구에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허구적인 작품만 읽는 것도 아니다. 독자들은 충분한 ‘담금질’이 이루어져 진실성이 보장된 경험을 원한다. 하지만 “섬 같이 폐쇄적인 이 공간에 외부의 누군가가 들어와 일정 기간–그러나 내부 상황을 충분히 숙지할 수 있을 만큼은 긴 시간 동안–자발적으로 고된 삶을 감내한 뒤 그 안에서 느낀 바를 이야기하더라도 이는 설득력을 얻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가 체험한 것이 상근 노동자가 겪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내부 감찰이나 외부 관찰이 더 나을지 모른다.”(시몬 베유, ‘공장에서의 삶에 대한 경험’, 『노동의 조건』, Gallimard, Paris)
진실 이상의 진리에 도달한 ‘노동자의 문체’
사실 노동 현장에 발을 담그고 있는 정도가 어떻든 잠입해 들어간 외부인은 원래 있던 내부인과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내부인으로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을 수도, 또 (글쓰기란 방식을 포함하여) 이를 전할 수단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퐁튀스와 필리스는 ‘노동자의 문체’로, 단순한 진실 이상의 진리에 도달했다.
조제프 퐁튀스의 경우, 특히 마침표를 쓰지 않고 틀을 벗어난 자유로운 문체로 두각을 나타냈는데, 이렇게 특이한 글쓰기 방식은 마티아 필리스의 글에서도 눈에 띈다. (필리스는 기관사가 되기 전 영사 기사로 일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글에서는 『스토커』에서 『샤이닝』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환등기 이미지가 텍스트 곳곳에서 조명처럼 빛을 발한다). 그의 문체는 거칠면서도 동시에 서정적이며(“현수가선이 외줄 현악기라면 기차는 이를 연주하는 활이다”), 여린 듯 강렬하고 사실적인 동시에 몽환적이다. 중간중간 여러 언어가 섞이는 가운데 화물과 여객의 이동이 장단을 맞추는가 하면, 호명하는 소리도 심심치 않게 깔리고, 화자가 각각 칼라브리아와 브르타뉴 출신인 두 할머니와 나누는 가공의 대화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기관차와 극도로 친밀해진 기관사는 자신을 기계로 인식하고(사랑에서 느끼는 실망감은 “차축이 부러진 것”과 같고, 시선은 철로를 침목에 고정하는 돌리개못처럼 와서 박힌다), 독자는 그의 독백과 노래, 몽상을 지켜보면서 다양한 언어가 뒤섞이는 어수선한 환각 상태 속으로 빠져든다. ‘빨간 신호를 제대로 못 보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친구 아크, 카말, 얀 등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웃음 짓는 화자가 ‘적당한 수준’의 환각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일하면서 겪는 고충과 일을 시작하기 전의 시련, 즉 여러 차례의 시험과 교육, 테스트, 모의 주행 등을 소재로 삼고 있다. 작가는 수습단계에서부터 이 작품을 구상했고, 기관사를 기사에 비유하며 자못 의미심장한 결의로 일을 배워갔다(종합 엔지니어인 기관사를 기사와 동일시한 그는 기관사의 수습과정을 “갑옷도 입지 않고 검과 말도 갖추지 않은 기사의 수련”으로 생각했다). 사실 12명으로 시작하더라도 4년간의 훈련 과정이 끝나면 남는 인원은 4명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런데 이 입문 과정의 예비 기관사들은 비단 기술적인 부분만을 배우는 게 아니며, 이들 앞에는 기관사 집단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 예비 기관사의 수련은 일반적인 열차 운영 시간대와는 또 다른 시간대에서 펼쳐지고, 하염없는 기다림과 차량사업소에서의 잦은 외박은 덤으로 주어진다. 그리하여 다음날 동료 직원이 와서 흔들어 깨워줄 때도 많고, 간혹 플랫폼에서 더벅머리 상태로 근무일지를 넘길 때도 있다. 일지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동병상련의 기록으로 빼곡히 채워진다.
프랑스 철도청을 필두로 파업과 노사분규가 이어지던 2023년 초에 발간된 작품 『기관사』는 출간 당시 크게 화제가 되었다. 그동안 일종의 ‘특권’으로 여겨졌던 ‘특수 직역 연금’ 제도를 무색하게 만드는 노동 조건 변화를 두고 정부에서 가타부타 말이 많았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정부에서 떠드는 소리는 이내 증발됐다. 심지어 때마침 철도 선로의 애자(강화유리나 평판을 겹겹이 쌓은 절연체)가 결함으로 인해 엄청난 속도로 깨지면서 차량 앞유리를 뚫고 들어와 기관사가 머리를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다행히 선로에서 멀리 떨어져 작업하고 있던 동료 하나가 달려와 신고해준 덕에 구조의 골든타임은 지킬 수 있었다. “제아무리 안전 제동 장치가 잘 되어있어도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지도부의 생각은 달랐다. 피에르 앙프는 1911년에 이미 작품 『레일』을 통해 ‘아랫사람들’에 대한 상부의 냉소적인 태도를 보여줬는데,(3) 당시 파리-리옹-마르세유(PLM) 노선을 운영하던 구 철도청의 생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고란 철도 신호수나 기관사 같은 사람의 실수일 뿐, 노동 조건이나 장비 상태의 문제일 수 없다는 것이다. 안전 수칙을 어기면서까지 운행 시간표를 엄수하라는 명령 따위는 사고의 원인이 아니다.
기관사의 열정이 담긴 노동 ‘장인’
2013년 프랑스 파리 근교 브레티니쉬르오르주에서의 열차 탈선 사고 10년 후 인도와 그리스에서도 열차 사고가 일어났지만,(4) 이 또한 ‘사람의 실수’에 의한 인재일 뿐이다. 하지만 매뉴얼 상에서야 물론 기술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어도 현장에선 그렇지 않다는 게 화자의 설명이다. 기관사가 여러 가지 상황을 제어하고 장비를 다루면서 장애 요소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상황에서는 책에 나오지 않는 고장도 발생한다. 그럴 때면 기관사는 알아서 머리를 굴려 고칠 방법을 구상해야 한다.
작가는 기계적이되 열차에 대한 기관사의 열정이 담긴 보고서도 보여주며, 때로는 『인간 짐승』의 기관사 자크 랑티에가 운전하던 기관차 ‘리종’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이 책의 소소한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비록 증기기관차에서 디젤을 거쳐 기관차 동력이 전기로 바뀌었지만, 열차는 예나 지금이나 기관사의 몸과 마음을 오롯이 싣고 달린다. 기관차의 파트너인 기관사는 차량의 바퀴와 밸브, 중량 등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선로 위에 사람이 있거나 멧돼지들이 지나가고 팬터그래프에 새가 자리 잡고 앉아있어 본의 아니게 기차를 세울 때면 무력감까지 느낀다.
책을 읽다 보면 압축기의 공기 누출을 막기 위해 어떻게 수리해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과거 리나르트의 작품에서 문을 고치는 나이 든 일꾼 드마르시가 일하던 방식도 사실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아예 작업대와 한몸이 되어 “수리하고 손수 제작하고 수정 변형하여 완성”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계에 종속되어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조립 노동자와는 사뭇 대조되는, 실로 노동 ‘장인’의 모습이다.
단순한 진실이 아닌, 강력한 소속감
“고무를 세우고 엄지로 누르고, 고무를 세우고 엄지로 누르고, 고무, 엄지, 고무, 엄지, 고무, 엄지 같은 작업만 반복하다 좌석 하나를 완성한 뒤, 빈 프레임을 놓고 또 다른 좌석을 완성하는 조립 노동자”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공장의 제조 공정을 효율적인 방식으로 관리하는 공정관리과가 신설되어 ‘산업 합리화’가 실현됐고, 이 과정에서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이 특유의 작업대가 사라졌다.
그러자 노동자의 실수 없이 이뤄지던 작업 또한 흔들리기 시작한다. 공정관리과 사람들은 작업대에서 장인 정신으로 일하던 노동자들을 무시했으며, 이들에게 노동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시간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합리적인 공장 운영’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굴욕을 선사하는 것은 노동자를 구속하는 한 방법이라고 시몬 베유는 지적한다.
“하지만 공장은 단체 생활의 강력한 소속감을 부여해 사람의 마음을 채워줄 수도 있는 곳이다.”
-『노동의 조건』 중에서.
최근 복원 작업이 마무리되어 원래의 위엄을 되찾은 아벨 강스의 영화 <바퀴>(1923)에서도 이따금 이런 종류의 즐거움이 표현된다. 이 작품은 에즈라 파운드와 페르낭 레제 등 당대의 예술가들을 매료시켰는데, 신호와 피스톤, 압력계로 움직여지는 세계가 극장 무대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관객은 열차의 속도와 위험을 고스란히 체감했다. 하지만 강스는 복식 기관차와 더불어 자살을 시도한 기관사 시지프의 비극도 함께 무대 위로 올렸다. 열차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후 눈이 반쯤 먼 상태에서 생제르베의 아프트 식 열차로 좌천된 그는 몽블랑 산을 마주 보며 손에 자신이 몰던 기관차 축소 모형을 들고 죽음을 맞이한다.
강스 감독은 앙프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으나, 원작과는 거리가 꽤 멀어진 듯하다. 집단을 묘사하는 게 우선이었던 앙프의 원작에선 개인이 부분적으로만 부각됐지만, 강스는 졸라의 작품과 같은 느낌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강스처럼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진 않았으되, 필리스는 강스 특유의 웅장하고 익살스러운 남다른 표현법은 살리면서 폭넓은 시야로 신화적인 영웅담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이로써 단순한 진실이 아닌, “단체 생활의 강력한 소속감”으로 이어지는 진리가 드러났다.
글·프랑수아 알베라 François Albera
영화사학자
번역·배영란
번역위원
(1) Joseph Ponthus, 『À la ligne. Feuillets d’usine 라인 - 밤의 일기』, La Table ronde, Paris, 2019 (한국어판 : 엘리 출판사, 2020); Mattia Filice, 『Mécano 기관사』, POL, Paris, 2023.
(2) Olivia Mokiejewski, 『Le Peuple des abattoirs 도축장 사람들』, Grasset, Paris, 2017 ; Florence Aubenas, 『Le Quai de Ouistreham 위스트레암 플랫폼』, Editions de l'Olivier, Paris, 2010 ; Geoffrey Le Guilcher, 『Steak Machine 머신 스테이크』, Éditions Goutte d'or, Paris, 2017.
(3) Pierre Hamp. 『Le Rail 레일』: 해당 작품이 포함된 ‘La Peine des hommes 인간의 고통’시리즈 전권 전자책 재출간.
(4) Élisa Perrigueur, ‘그리스 철도, 비극의 여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23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