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는 핀란드에서 다시 태동했다!

2024-04-30     에블린 피예에 | 기자

오로라로 유명한 핀란드에서 탱고가 ‘국민 춤’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게다가 핀란드가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탱고 음악을 가장 많이 작곡한 나라가 되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핀란드 탱고는 어떻게 ‘탱고 인 핀란드’에서 ‘탱고 메이드 인 핀란드’로 탈바꿈할 수 있었을까?

20세기 초, 핀란드도 다른 나라처럼 라 쿰파르시타, 엘 초클로 등 아르헨티나의 유명 탱고 음악을 수용했다. 그런데 핀란드는 탱고를 완벽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냈다. 핀란드 탱고는 원곡 리듬과는 전혀 달리 굉장히 낭만적이며, 가사는 현지 환경(바다, 밤, 계절, 비), 노스탤지어, 멜랑콜리, 닿을 수 없는 행복 등의 주제를 노래한다. 핀란드 탱고 음악은 2차 세계대전과 그 여파로부터 큰 영감을 얻었다. 이 장르는 프랑스 뮤제트(백파이프)처럼 핀란드의 문화유산과 전통에 서서히 통합됐다. 자작나무 숲길 주유소에서 트럭 운전사 무리가 듣곤 하던 블루스처럼 말이다.

 

핀란드, 독자적인 탱고 확립

1930년대 중반, 핀란드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흔적을 말끔히 벗어던지고 핀란드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 시기에 ‘핀란드 탱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이브 카르키(1915~1992)가 등장해 폭발적인 재능을 선보였고, 이후 오래도록 핀란드 대중음악계를 군림했다. 선교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937년에 오슬로의 브리스톨 호텔에서 버르나도 알레메니(1909~1973)의 오르케스타 티피카(아르헨티나 탱고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역주)의 연주를 듣고 큰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초, 러시아 전선에서 작곡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슬라브 음악, 러시아와 핀란드 왈츠, 독일 행진곡, 아르헨티나 탱고가 모두 녹아있는 단음계 음악을 작곡했다. 결정적으로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반도네온(탱고 음악에 많이 쓰이는 아르헨티나 아코디언-역주)을 아코디언으로 교체하는 효과적인 ‘연금술’을 선보인 덕분이다. 그의 음악은 전체 방송률의 50%를 차지하며 전파를 점령하다시피 했고, 방송국의 제한조치 때문에 자그마치 7개의 가명을 써야 할 정도였다. 현재는 장르마다 다른 가명이 붙는다.

예를 들어 탱고 곡에는 페드로 데 푼타(토이브 카르키의 스페인어 이름), 슬라브 곡에는 C. 카파로프, 폭스트로트 곡에는 W. 스톤이라는 가명이 붙는다. 그가 1943년에 처음 작곡한 탱고는 ‘릴리얀쿠카(liljankukka·백합꽃)’라는 곡인데, 아르보 코스키마(1912~1972)나 펜티 비헤르루오토(1915~2004) 등 유명 작곡가의 음악처럼 사랑과 상실에 대한 주제를 다뤘다.

핀란드에 탱고가 뿌리내리기까지 토이보 카르키의 역할이 매우 컸다. 나중에는 로큰롤의 확산까지 막아낼 정도였다. 1960년대 초, 아르헨티나에서는 탱고가 대중성을 잃은 반면, 핀란드에서는 성공 가도를 달렸다. 1962년, 레이요 타이팔레(1940~2019)가 부르고 운토 모노넨(1930~1968)이 작사·작곡한 사투마(Satumaa·전설의 나라)라는 곡은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의 연이은 히트곡과 쟁쟁하게 경쟁했다. 

 

유럽 최대 탱고 축제, 핀란드에서 열려

사투마는 현재까지 핀란드 탱고 음악 중 가장 유명한 곡으로 꼽히며, 1974년 프랭크 자파가 헬싱키 라이브 공연에서 선보인 버전을 비롯해 100여 곡 이상의 버전이 등록돼 있다. 작사·작곡을 맡은 모노넨 역시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보헤미안적 삶을 살다가 비행기 사고로 38세에 요절해, ‘핀란드의 카를로스 가르델’(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아르헨티나의 탱고가수·작곡가-역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레이요 타이팔레 외에도 에이노 그론(1939~생존), 올라비 비르타(1915~1972) 등 성공한 뮤지션이 많다. 특히 올라비 비르타는 배우이기도 한데, 600곡 이상을 녹음하며 50년대 핀란드에서 가장 유명했던 탱고 가수로 남았다. 

핀란드의 탱고 열정은 음악에 그치지 않고, 춤으로까지 뻗어 나갔다. 유럽 최대 규모의 탱고 축제도 핀란드에서 열린다. 일례로 세이나요키(Seinäjoki) 페스티벌은 1985년 핀란드 서부에서 처음 개최됐는데 1993년에는 7만 5,000명, 1999년에는 13만 명이 모이는 등 참가자 수가 어마어마했다. 페스티벌 마지막 순서에 ‘탱고의 왕과 여왕’이 선출되는데, 언론에서도 이를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탱고는 순록고기와 사우나처럼 핀란드 정체성을 상징하는 요소로써, 카우스티넨과 쿠모 페스티벌과 더불어 대규모 민속축제에 속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르헨티나와 유럽에서도 탱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여름에 축제, 마라톤, 이벤트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핀란드에서 탱고가 성공하자, 아르헨티나와 교류하는 핀란드 아티스트와 제작자가 많아졌다. 예를 들어 1990년, 에이노 그론(핀란드 가수)은 레오폴도 페데리코(아르헨티나 작곡가)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토이보 카르키와 같은 뮤지션의 음악을 녹음했다(앨범 ‘타르호야 에이노 그로닌(Tarjolla Eino grönin)’, 스칸디아·Scandia, 1990년). 두 나라의 국기 색을 상징하는 ‘파란색과 백색(스페인어 제목: Azul y Blanc/핀란드어 제목: Sininem ja valkonien)’이라는 제목의 노래도 나왔다. 반대로 아르헨티나 가수 수사나 리날디는 1999년에 세이나요키 오케스트라와 함께 음반을 녹음했다(DVD 앨범 ‘수사나 리날디 라이브 핀란드 탱고 아르헨티나·Susana Rinaldi live Finland tango Argentina’, 벨그라노 노르테·Belgrano Norte). 

 

영화로 확산된 핀란드 탱고

이처럼 핀란드에는 열정적인 탱고 신봉자가 많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영화감독도 그중 하나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탱고 음악과 춤을 자주 등장시키며, 탱고 발상지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한다. 카르킬라(헬싱키에서 약 60km 거리)의 오이바 호텔에서 탱고 댄스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비비아네 브루멘샤인 영화감독의 <한여름 밤의 탱고>(2012년)에서는 동시대 최고의 탱고 뮤지션 엘 치노 라보르데(오르케스타 페르난데스 피에로의 전 싱어), 디에고 크비트코(기타리스트), 파블로 그레코(반도네온 연주자) 등 세 사람이 핀란드를 여행하며 이 문제를 유쾌하게 다룬다. 카우리스마키 감독이 내뱉은 말 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카를로스 카르델은 본래 핀란드 선원이었다. 그의 외가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는 밤마다 정원에서 고국의 노래를 조용히 부르다가 바다로 불려 나갔다.” 지금 당장 탱고의 발상지를 따져 보자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블랙코미디처럼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장담했다. 탱고는 핀란드에서 태동했다고. 

 

 

정리·에블린 피예에 Evelyne Pieiller
기자

번역·이보미
번역위원

 

탱고 국적 논란

 

음반 ‘핀란드 탱고(Finnischer tango/Tule tanssimaan)’(트리콘·Trikon, 1998년)는 1915년부터 1990년대까지 핀란드 탱고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이 글은 그웬아엘 드니고, 장루이 맹갈롱, 엠마뉘엘 오노리아의 공저 『열정적인 탱고 사전(Dictionnaire passionné du tango)』(르 쇠이유·Le Seuil, 2015년)에서 발췌했다.

다음은 장루이 맹갈롱이 독자 코멘트를 읽고 답한 내용이다.

“핀란드 편을 읽고 놀란 독자들이 있다던데, 우리도 이해한다. 이 부분은 개정판에서 수정될 것이다. 우리는 ‘라 쿰파르시타’(우루과이 탱고 곡-역주) 또는 ‘엘 초클로’(아르헨티나 탱고 곡-역주)처럼 유명한 라플라타강(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사이를 흐르는 강-역주)의 탱고’라고 말했어야 한다.”

사실 라 쿰파르시타 편에서 볼 수 있듯, 국적 논란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1916년에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이 곡을 최초로 작곡한 마토스 로드리게스는 명명백백한 우루과이 사람이다. 이후 1924년에 두 명의 아르헨티나 시인, 파스쿠알 콘투르시와 엔리케 마로니가 이 곡에 가사를 붙였고, 곡명을 ‘시 수피에라스(Si supieras·당신이 알았다면)’라 불렀다.

비슷한 시기에 마토스 로드리게스도 손수 가사를 썼다. 그 결과 두 버전이 생겼지만, 가수들은 콘투르시와 마로니의 버전을 선호했다. 이에 저작권 문제가 발생했고, 수년이 지나서야 겨우 해결됐다. 작사·작곡가인 마토스 로드리게스와 작사가인 콘투르시와 마로니에 모두에게 저작권을 부여하기로 한 것은 SADAIC(아르헨티나 작곡가·작사가협회)였다. 악기 버전(탱고를 출 때 가장 많이 연주되며, 전 세계 탱고 무대에서 언제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은 우루과이 곡이고, 노래 버전은 아르헨티나 곡이라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라 쿰파르시타는 1998년 2월 2일 우루과이 대통령령에 따라, 우루과이 대중적·문화적 국가(國歌)로 지정됐다.


번역·이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