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의 신흥 강국, 한국
눈부시게 빛나는 K-pop과는 달리, 자국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하는 한국의 추리소설이 정작 한국에서는 인기가 별로 없다. 이제 해외에서는 한국 추리소설만의 독특한 개성을 좋아하는 팬들도 등장했다. 여기에 한국의 추리소설이 해외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정형화된 공식까지 생겼다.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호평을 받은 김언수의 소설 『뜨거운 피』(Matin calme, 2020)의 프랑스어판 책을 둘러싼 띠지에는 ‘추리소설의 신흥국, 한국’이라고 쓰여 있다. 문구는 광고 역할도 하지만, 한국 소설계의 선명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제로 한국 소설에는 ‘누아르’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스토리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변하고, 비극적으로 끝맺는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의 추리소설은 아니다. 한국에서의 삶의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고, 설명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서구의 추리 장르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소설들을 ‘추리소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국 소설에서 ‘누아르’는 사회를 그리기 위한 매개체에 불과하다.”(1)
필리프 피키에는 한국 추리소설의 미묘한 특징을 이렇게 규정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출판사 <Philippe Picquier>의 설립자로서, 아시아 도서 출판계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북유럽 추리작가와 비교되는 한국 작가들
이러한 ‘누아르’ 매개체의 매력에 푹 빠진 출판사가 있다. 바로 <Matin calme>이다. <Bourgois> 출판 그룹의 하위 임프린트인 <Matin calme>는 2020년 피에르 비지우가 설립했다. 피에르 비지우는 <Serpent à plumes>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던 시절, 두 명의 한국 작가를 성공리에 번역하여 소개한 바 있다. 바로 김언수(『설계자들』, l'Aube noire, 2016)와 정유정(『종의 기원』, Picquier, 2018)이다.
프랑스에서 두 작가는 북유럽 추리작가와 비교되기도 한다. 김언수는 수수께끼보다는 분위기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헤닝 만켈(스웨덴 출신의 유명한 추리소설가)’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들의 소설은 추리소설 컬렉션이 아닌 다른 코너에서 출판되었다.
이들은 한국 추리소설계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을까? 피에르 비지우는 그렇다고 단언했다. 2019년부터 올리비에 미테랑이 경영하고 있는 <Bourgois> 그룹에서 <Matin calme>을 폐업하지 않기로 결정하기 전까지 4년 동안 그는 20여 권의 책을 출판했다.
“글을 다루는 방식이 매우 영화적이다”
영화에서도 한국의 스릴러물을 만날 수 있다. 2008년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2010년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 2003년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등부터 매우 누아르한 <기생충>(봉준호 감독, 2019년 칸느 영화제 대상 및 다수의 상 수상)까지 다양하다.
“한국인만의 손길이 있다. 글을 다루는 방식이 매우 영화적이다. 한국 영화가 이 장르에서 성공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 작가들은 장면 연출을 좋아한다. 레스토랑 장면, 싸움 장면, 결별 장면...등 작가들은 또한 인물에 대한 탐구를 즐긴다. 강인하고 신뢰가 가는 두 번째, 세 번째 인물의 창작을 좋아한다. 때로 줄거리는 덜 고심한 듯 보인다. 한국은 문화적으로 미스터리의 해결보다는 역사적 분석과 시를 좋아한다. 한국의 독자들은 우리와 기대하는 바가 다르다. 그러나 한국 소설의 취약한 부분조차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편집자 피에르 비지우는 상세한 설명을 보탰다.
6.25 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던 시절 한국에 해외 추리소설 번역본이 등장했다. 피에르 비지우는 “당시엔 가벼운 통속소설뿐이어서 크게 눈길을 끄는 작품도 없었고, 대개는 형편없었다. 그 후 아르센 루팡, 셜록 홈즈, 아가사 크리스티와 같이 유명한 탐정 소설가들에게 영향을 받은 소설의 흐름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소수에 불과했고, 고유한 개성은 없었다. 진정한 창작이라기보다는 모방에 가까웠다. 그 후 소설의 기준을 바꾼 첫 작가가 등장했다. 바로 김영하였다.”라고 알려주었다.
소설의 기준을 바꾼 김영하 작가, 『너의 목소리가 들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1996, Picquier, 1998),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1999, Picquier, 2011),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2, Picquier, 2017)를 쓴 김영하 작가는 도시적인 분위기를 잘 포착해서 그려낸 첫 작가였다. 그는 적대감, 의사소통 불능, 디지털 잠식, 동성애 등 당시까지는 거의 다루지 않았던 주제들에 접근했다.
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타인의 고통, 즉 동물과 사람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재능을 가진 버림받은 아이가 경찰을 불신하는 폭주족 리더로 성장한다. 김영하 소설의 주인공 중 한 명은 ‘자살 보조업자’이다. 압박이 거센 한국 사회에서는 빈번히 자살이 일어나지만, 공개적으로는 잘 언급하지 않는 주제이다. 한국에서는 일 년에 인구 십만 명당 25명이 자살한다(참고로 프랑스는 13명이다).
최근에는 영화 <기생충>의 스타 배우 이선균이 심리적 압박으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장강명의 소설 『표백』(Decrescenzo, 2019)에서는 연속된 자살 사건을 조사하며 젊은 세대들을 짓누르고 있는 경쟁의 무게를 비판한다. 송시우의 『검은 개가 온다』(Folio, 2020)는 두 건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며, 사회에 만연한 우울증을 이야기한다.
한국은 1988년 자유 선거를 이끌어내며 민주화되었지만, 독재자 전두환을 계승하는 노태우가 대선에서 당선되었다. 전두환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후 권력을 잡은 독재자였다. 박정희 암살 사건은 직접적으로 추리소설에서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그러나 2020년 우민호 감독이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만들었다) 소설 속에서 음모로 다루었다.
전두환은 경제적 성과를 거두었으나, 자유의 입을 틀어막았다. 피에르 비지우는 “민주화가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 대기업의 엄청난 성장과 함께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디지털이 한국인의 일상을 점령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악이 피어났다. 부패가 만연하고, 정의가 사라졌다. 수많은 소설은 살인이나 복수 이야기를 통해 정의가 사라진 사회의 비밀을 들춘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추리소설, ‘은폐된 사회 문제에 대한 배출구’
타락의 상징과도 같은 여러 비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다. 1995년, 서울에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수사 결과, 부패한 경영인이 안전법규를 지키지 않았던 것이 주요 원인으로 드러났다. 2014년에는 세월호가 476명의 승객과 함께 전복되었다. 승객 대부분은 고등학생이었고, 299명(실제 전체 사망자 수는 304명 : 역주)이 사망했다. 경찰에 추격당하던 세월호 소유주는 미스터리하게도 3개월 후 시체로 발견되었으며, 세월호의 해운사와 대한민국 정부는 관리 소홀 혐의로 기소되었다.
“수많은 아이들이 죽었고, 사람들은 질문을 던졌다. 왜 아이들이 죽도록 내버려 두었나? 아이들의 유령은 여전히 한국 소설 속에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압박을 많이 받는다. 전후 세대들은 돈을 벌기 위해 희생했고 경제 부흥기에 태어난 자녀들은 신경증에 걸렸다. 우리가 아이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태원 압사 사건 이후 이런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피에르 비지우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2022년 10월 20일, 할로윈을 즐기기 위해 서울 이태원에 왔던 150여 명의 젊은이들이 한 골목길에서 사망했다.
“한국 추리소설은 은폐된 사회 문제에 대한 배출구이다. 사회적 불안, 관계의 어려움, 만연해진 두려움 등. 프랑스 독자들은 이런 점을 좋아한다. 한국 추리소설 속에서 소외계층, 소수가 거머쥔 부(富), 원자력에 대한 공포, 부패를 재발견한다.”라고 편집자 장클로드 드 크레센조가 설명했다.
부패를 직접적으로 다룬 소설들이 있다. 공지영의 『도가니』(Picquier, 2009)는 교사의 성적 학대를 고발함과 동시에 사건을 은폐하려는 사법기관을 고발했다. 반면 한국의 분단을 주제로 한 추리소설은 거의 없다. “수많은 한국인은 그들의 나라가 하나라고 생각한다. 전후 독일처럼 말이다. 그리고 분단은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종식되리라 생각한다.”라고 피에르 비지우는 상세히 설명했다.
정형화되지 않은, 한국 추리소설만의 매력
다른 중요한 요인은 여성 작가들의 증가이다. 한국은 여성 작가들이 남성 작가들보다 많다. 그리고 상당수 여성 작가들이 추리소설을 선택했다. 편혜영의 『선의 법칙』(Rivages, 2022)처럼 많은 추리소설이 가정문제를 표출하고 있다.(2) 1994년 서미애는 도발적인 제목의 소설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Matin calme, 2022)을 발표했다. 소설은 서울의 대학로에서 연극으로 공연되며, 거의 30년 동안 매진을 기록 중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이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서미애는 매우 풍자적인 톤으로 『잘자요 엄마』(Matin calme, 2020)를 썼다. 여자 연쇄 살인범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영국의 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김재희 『섬, 짓하다』(Matin calme, 2021)는 디지털 범죄의 세계로 독자를 인도한다. 한 프로파일러가 사이버범죄, 해커 그리고 미스터리한 섬에서 세뇌를 일삼는 교주를 추적한다. 정유정의 『진이, 지니』(Picquier-poche, 2024)는 판타지에 가까운 편집광적인 스릴러물이다.
다양성 면에서는 점점 더 다채로워지고 있다. 도진기의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Matin calme, 2020)에서는 후더닛(누가저질렀나)의 희열에 빠져든다. 이종관의 『현장검증』(Matin calme, 2020)은 순수 스릴러물이다. 정재한의 『미남당 사건수첩』(Matin calme, 2021)은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전건우의 『살롱 드 홈즈』(Folio-policier, 2023)같은 코지 미스터리도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 덕분에 크게 성장한 한국의 웹툰이 있다. 한국의 웹툰은 프랑스 여러 출판사에서 종이책으로 발간되기 시작했다. <Matin Calme>과 <Michel Lafon> 출판사에서 2022년 각각 <Koyohan> 과 <Sikku>라는 컬렉션을 만들었다. 서구에서는 전통적인 만화처럼 읽는다. 한국 웹툰 작품은 대부분 판타지 장르지만, 해맑음&바오롱의 『미러 게임』은 추리 장르에 속한다.
그러나 추리소설은 한국에서 인기가 없고, 문학계에서 인정받지도 못하는 장르이다. 한국에서는 역사 문학과 시를 가장 높이 평가한다. 프랑스에서는 추리소설로 분류되는 한국 소설 대부분은, 한국에서는 추리라는 표식 없이 출판된다. 이중의 목적이 있다. 우선 현지에서 유명해져야 하고, 수출도 잘되어야 한다.
『잘자요 엄마』는 13개국에서 번역되었고,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은 영화로 제작되었다. 프랑스에서 <Poche> 컬렉션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업적 성공의 증표이다. 그러나 다른 문제가 하나 있다. “수출에 용이하고, 다양해진 플랫폼의 조회수 유도를 위해 정형화된 공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묘사는 적고, 인상적인 자르기를 중시한다. 이것은 위험하지 않을까?”라고 피에르 비지우는 의문을 제기했다. “맞다. 이를 숨기지 않고, 번역되기 위해서 쓰는 작가도 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하고, SNS에서 찬양해야 진짜 성공이라고 네티즌들이 작가에게 각인시킨다. 문학 평론가들이 아니라 말이다.”라고 장클로드 크레센도는 지적했다.
“매우 안타깝다. 한국 추리소설의 매력은 정형화되지 않았고, 미국이나 북유럽 추리소설과 색다르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소설은 늘 놀라웠다. 계속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피에르 비지우는 설명을 마무리했다.
글·위베르 프로롱조 Hubert Prolongeau
저널리스트, 탐정소설 작가
번역·김영란
번역위원
(1) 작가의 발언을 모아서 인용함.
(2) 잡지 <Kulmadang> n˚5 2022년. 한국 추리소설 편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