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전, 모자, 마약
이 소설의 어린 내레이터 토치틀리는 아버지 욜카우트의 엄중한 감시 속에서 살아간다. 편집광적인 성격의 욜카우트는 마피아의 권력을 휘두르고 여기에 복종하는 사람들이 있는 황금빛 궁전에 살면서 궁전 밖을 나가려 하지 않는다. 토치틀리의 개인교사 마자트진은, 사무라이 스타일의 명예에 사로잡혀 욜카우트가 벌이는 무자비한 살인에 분노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거물 마약상인 욜카우트는 토치틀리가 묘사하는 그대로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냉혈한이다.
경찰에게 뇌물 주기를 주저하지 않고, 자기 일에 방해되면 경찰이든 경쟁자든 모두 제거하는 욜카우트. 이런 욜카우트의 모습은 살육에 가까운 폭력이 늘 있었던 멕시코 정복을 생각나게 하지 않는가? "전쟁, 죽음, 피가 등장하는 주제는 흥미롭다. 역사가 그러하다. 한쪽에는 스페인 왕국에 살던 국왕이 있고, 또 한쪽에는 멕시코에 살던 원주민이 있었다. 스페인 국왕들은 멕시코도 다스리고 싶어 했다. 그래서 스페인 국왕들은 멕시코로 와 원주민을 죽였다." "가장 많이 사람을 죽인 사람이 왕관을 차지한다. 마자트진은 유럽 역시 똑같다고 말한다. (중략) 피로 물든 강이 유럽을 흐른다고."
토치틀리는 영혼은 비록 아직 무사하다 해도 육신은 병들어 있다. "불길함이 느껴지는 나날이 계속된다. 오늘 역시 그렇다. 오늘도 배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궁에 갇힌 답답함에서 위로를 받고 나날이 커져가는 지루함과 절망감을 잊기 위해 토치틀리는 전세계의 모자를 수집한다. 토치틀리에게 모자는 마법과 같은 존재다. 모자는 주검처럼 혐오스러움을 주는 머리털을 감춰주기 때문이다. 그에게 모자는 멕시코와 세계에서 나날이 일어나는 살인과 범죄를 잊게 해주는 상징이다. 토치틀리는 죽음을 생각나게 하는 머리카락을 마침내 밀어버리고 라이베리아에 서식하는 대머리 동물 해마를 갖고 싶어 한다. 침묵 속에 살던 욜카우트는 토치틀리를 데리고 라이베리아로 간다. 해마가 아들, 멕시코, 전세계의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치료책이 될 수 있다는 기묘한 생각이 들어서다.
1973년 태어나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망명한 멕시코 출신의 작가 후안 파블로 빌랄로보스는 <흰 토끼의 굴 속에서>를 통해 환상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을 반영하고 블랙 유머가 섞인 작품을 처음으로 시도한다. 이 소설은 권력자를 증오하면서 동시에 사랑하며 번민을 느끼는 내레이터를 통해 권력자를 묘사한다는 파르 라제르크비스트의 <난쟁이>와, 죽은 동물들이 등장하는 우화를 통해 학대받은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워커 해밀턴의 <모든 작은 동물> 사이에 있는 작품이다.
<흰 토끼의 굴 속에서>는 안티 히어로들의 비틀린 시각을 통해 현실을 오히려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해준다. 욜카우트가 반복해서 하는 대사도 그 역할을 한다. "삐딱하게 생각해. 그럼 올바른 곳에 떨어지게 되니까." 절대권력과 부패는 몰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글•자비에 라페루 Xavier Lapeyroux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투표하는 날>(201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