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장관을 변론한다?!

르 디플로 에세이

2012-07-10     김종엽

"교장 자격 요건을 대폭 다양화하여, 교직 경력 15년 이상인 교사 중에서 소정의 전문적인 학교 경영 교육을 받은 자, 교육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소지한 자, 특성화 학교인 경우 해당 분야에서 객관적으로 능력과 권위가 인정되는 자 등의 요건 중에서 하나만 충족하더라도 교장으로 초빙이 가능하여야 한다."

"사립대학의 지배구조에 있어서 설립자 및 후계자 이외의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사립대학 경영의 책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 지배구조 이론에서도 소위 잔여청구권(Residual Claims)을 가지는 채권자, 종업원 등을 일반적으로 포함시키는 데 비추어, 사립대학의 지배구조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도 교수, 직원, 학생, 동창, 학부모, 지역사회 등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대학 간의 경쟁 촉진을 추진할 때 지방 대학들이 상대적으로 경쟁의 열위에 처해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부가 여러 국립대학 중에서 유독 서울에 위치한 국립대학에 월등히 높은 학생 1인당 운영지출비를 투자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방 국립대학에 대하여도 서울 대학에 버금가는 교육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학력부진아 혹은 열등한 사회·경제 조건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 학교들에 대하여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을 크게 강화하는 교육의 형평성 증대를 위한 다른 정책들이 내신 제도에서 학교 간 차이가(Sic) 인정과 반드시 병행하여 추진되어야 한다."

자신의 논문 속에서 이렇게 말한 사람은 누구일까? 민교협 소속 교수, 혹은 진보적인 교육학자일까? 아니다. 그런 주장을 편 사람은 뜻밖에 현 교과부 장관 이주호이다.

그것이 뜻밖으로 느껴지는 것은, 물론 그가 교수 시절의 주장을 실현할 수 있는 권력을 쥔 지난 몇 해 동안 그것을 전혀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교장 공모제가 학교운영위원회와 교사에 의해 주도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방해했으며, 그가 장관으로 있는 동안 크게 증가한 사학 분규는 대체로 비리로 쫓겨난 설립자나 그 혈족의 재단 복귀로 인해 불거진 것이었다. 지방 국립대학의 경우 서울대학에 버금하는 교육 투자는커녕 총장직선제를 포기하라는 윽박질을 당했으며, 자율고 증설 정책과 경영 위기에 빠진 자율고에 대한 재정 지원은 교육의 형평성 제고와는 거리가 멀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재임 기간이 짧거나 대통령의 신임을 받지 못해서일까? 그렇지 않다. 그는 이명박 정부 초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었고, 교과부의 실세 차관 자리를 거쳐 장관이 되었으며,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까지 장관직에 머무를 것이다. 민주화 이후 이렇게 한 사람이 대통령의 깊은 신임 속에서 지속적으로 교육정책을 총괄한 경우는 없었다. 그러니 소신을 따랐다면 진보 진영을 포함해 국민이 두루 환영할 만한 정책을 실천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혹시 다른 더 중요한 일에 바빴기 때문일까? 그렇게 볼 수 있는 면이 있다. 지금 이주호 장관이 하고 있는 사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평가에 입각한 정부재정지원제한 대학 선정과 대학 퇴출 사업이다. 그런데 이 사업의 원인을 제공한 이는 이주호 장관 자신이다. 그는 1995년 교육개혁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우리나라 교육개혁안 중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되는 '5·31 교육개혁안'을 만드는 데 일조했는데, 그것의 심각한 악영향 가운데 하나가 대학설립준칙주의의 도입으로 인한 대학의 남설(濫設)이었다. '5·31 교육개혁안'에 대해 전문위원이 져야 할 책임은 부분적이라고 변명할지 모른다. 하지만 훈련된 교육경제학자가 학령인구 감소를 앞두고 일어난 대학의 남설이 어떤 사회적 부작용을 불러올 줄 몰랐다는 것은 변명이 안 되며, 알았다면 온 힘을 다해 대학설립준칙주의 도입을 막아야 했다. 그때 방기된 책무를 지금 그는 떠맡고 있다. '먹튀'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서 자신이 저지른 일의 설거지라도 하고 있음은 높이 사줄 일이지만, 그 작업이 또 한 번의 분탕질이 되고 있다는 점은 지적해두고 싶다.

이주호 장관은 이외에도 학교 폭력을 막기 위해 분주하다. 그는 학자 시절 여러 교육 문제에 대해 직접 연구했지만 우리나라 학교에 스민 폭력, 그리고 그것의 원인이자 결과인 학생들의 소외감이나 고통에 대해 연구한 적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추진한 일제고사와 중고생들의 자살 사이의 연관을 통찰할 수 없으며, 왜 보수적 교육감이 교육을 주도하는 자신의 고향 지역에서 더 많은 중고생이 자살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많은 예산을 들여 폭력실태 전수조사 같은 쓸모없는 정책을 교과부가 남발하는 이유는 장관부터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결여된 탓인 듯싶다.

그렇다고 해도 그가 교수 시절 연구하고 주장해온 바를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부실대학 정리와 학교 폭력 방지에 바빠서만은 아니고, 정치인 생활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기득권 집단과 쉽게 맞설 수 없으며 자신이 구상한 정책을 쉽게 제도화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니, 역으로 이 점을 잘 깨닫고 한계를 수용했기 때문에 교육부 장관으로까지 발탁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기득권 집단에 굴복하거나 혹은 그것에 맞게 자신의 사고와 이데올로기를 조정해나감으로써 한국 교육을 개혁하겠다는 정치적 초심을 모두 잃었다면, 그는 전혀 흥미롭지 않은 인물일 것이다. 그는 이런 타협 속에서 그래도 한 가지 일을 성취했는데, 그것은 시간강사들에게 교원 지위를 제공하는 개혁이었다. 고작 그것이냐고 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것은 대학 운영의 내면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게 되는 말이다.

시간강사야말로 외환위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온 우리 사회의 가장 오래된 저임금 비정규직이며, 문화예술인들의 착취와 관련해 최근에야 의제화되기 시작한 '열정노동' 착취의 유서 깊은 형태이다. 대학생 아르바이트 없이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이 이윤율을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대학이 저임금 비정규직 시간강사 없이 오늘날의 형태로 성장하고 정규직 교수의 지위와 임금이 지금 수준에 이를 수 없었다. 시간강사는 대학이 방대한 착취 체제임을 증언하는 존재인 셈이다.

착취가 그렇게 오래 존속한 이유는 사학재단과 교육부 관료들은 물론이고 대학 학생회와 교수 집단까지 은밀한 공모와 무관심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시간강사들을 제외하고 그런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중단 없이 노력해온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진보 진영의 어떤 교육운동가가 아니라 바로 이주호였다. 그는 국회의원 시절 의도한 것에 비하면 후퇴한 형태이긴 해도 마침내 장관이 되어 자신의 반대편 진영에 있는 이들마저 환영할 개혁을 이룬 것이다. 우리 대학을 덜 수치스러운 곳으로 만든 것이다. 이주호는 분명 훌륭한 장관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이 한 가지 개혁만으로도 그가 실패한 장관으로 평가받지 않을 이유가 충분하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문화평론가. <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위원. 저서로 <웃음의 해석학>(1994), <시대유감>(2001),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2002), 편서로 <87년 체제론>(200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