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 사회적 파장과 변혁의 시점

2012-08-13     프레데리크 로르동

지난 7월 극심한 긴축정책을 규탄하는 시위대 수십만 명이 스페인 전역에서 시가행진을 벌였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조차 “사회적 폭발 위협”을 경고하며 우려를 표했다. 선거 때문에 한동안 정신없었던 프랑스에서는 대대적인 공장 폐쇄가 이뤄지면서 위기가 다시금 정치권을 뒤흔든다. 재산업화를 정부의 우선과제 중 하나로 삼은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는 이제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린 상태다.

아르노 몽트부르가 이름도 거창한 '그 장관직'에 내정됐다. 이 가엾은 인물이 겪을 고통이 미리부터 눈에 선하다. 그런 희귀한 명칭이 장관직에 붙은 것은 몽트부르의 개인적 순진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괴이한 성격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두 사람이 함께 언어의 주술적 힘을 믿어보기로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이보다 더 야심만만한 명칭의 부처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야심을 이루기 위한 자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 '자원'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듯한데, 여기에서 말하는 '자원'이란 몇십억 유로의 '재원'이 아니라 정치적 의지라는 '잠재적 능력'을 뜻한다.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전자보다 후자인데, 어딜 봐도 이 정치적 의지가 부족한 점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문제의 그 부처 이름은 바로 '생산부흥부'다. 산업·중소기업·일자리·정보통신·서비스·혁신 부문 등 세계화한 자본주의의 모든 문제들이 총집합한 영역을 담당하는 곳이다. 그러나 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을 어떤 '구조적' 수단도 갖고 있지 않다. 만약 올랑드 대통령이 성가신 정적을 무마시키려는 술책이었다면, 그는 자신이 만든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설사 그곳에서 용케 빠져나온다 해도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게 뻔하다. 세계화한 자본주의를 개혁하겠다고 자처하지만 실상은 그럴 의지가 전혀 없는 생산부흥부가 여기저기서 뭇매만 맞고 실패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선거 때문에 잠시 발이 묶여 있던 구조조정 러시도 그 고삐가 풀리고 있고, 경기침체의 소용돌이는 더욱 강도가 심해진다. 고행자의 옷을 걸치고 가시면류관을 쓴 채 그 가운데에 서 있는 몽트부르 장관은 예고된 시련으로서 일련의 구조조정 계획을 차례차례 도입할 준비가 되어 있다. 두, 테크니컬러, 아르셀로, 프랄리브, 라이온델 바젤 그리고 PSA(푸조-시트로앵)까지 프랑스 기업들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예고된 상황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연쇄적으로 다른 상황을 유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 사건이 이후의 상황을 부추기고 재촉한다. 따라서 이 시점을 계기로, 그 이전과 이후는 더 이상 동일하게 인식될 수 없다.

모든 문제가 집약되어 하나의 임계점을 향해 달려가는 PSA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물론 감원 규모가 가장 크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PSA의 정리해고 대상은 직접고용인원만 8천 명, 하청기업과 용역회사까지 포함하면 수만 명에 달한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수이다. PSA가 걸어온 발자취와 명성을 생각하면 상징적인 충격까지 더해진다. 사실 충격이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만 그 여파가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PSA 사태가 현재 자본주의가 처한 최악의 위기 상황을 완벽하게 응축해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그렇게 충격적이지만은 않다. PSA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상징한다.

PSA가 노동자들을 다루는 고약스러운 태도를 보면서 우리는 이 세계가 얼마나 고약스러운지 깨닫게 된다.

어쨌든 이번 사태에 따른 엄청난 결과가 올랑드 정부에는 참으로 잔인한 시련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진행 중인 혹은 앞으로 진행될 다른 모든 구조조정 계획에서와 마찬가지로 PSA 사태와 관련해 일어나는 모든 일이 대중 앞에 노출될 것이고, 실질적으로 그 어떤 힘의 작용에 따라 이같은 참극이 일어났으며, 또 현 정부가 그 힘에 대항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까지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문제가 되는 것은 세계화 전체다. 즉, 이 시대 자본주의의 지형 자체가 문제이다. 그러나 올랑드는 이와 관련해 그 어떤 언급도 없다. 오늘날의 사회주의자들은 현재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현대성의 증거로 여기는 듯하다. 프랑스 사회당 국가 비서국원 알랭 베르구니우는 "경쟁을 피해갈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경쟁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속한 세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1) PSA 사태를 마지막으로 사회주의자들은 이제 이런 말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세계화한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세 가지 틀이 있다. 첫 번째가 금융시장의 압력 속에서 긴축의 울타리에 갇혀버린 '경제정책'들이고, 두 번째가 '자유무역'이다. 이는 차라리 사회·환경 표준조차 갖추지 못한 국가에 강요되는 왜곡된 경쟁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다. 이같은 경쟁은 생산시설 해외 이전의 완전 자유화로까지 이어진다. 마지막 세 번째는 '주주의 압력'이다. 오늘날 이런 특징을 가진 자본주의의 중심에 PSA가 놓여 있다. 따라서 PSA 경영자들이 악덕 사장이라는 비난은 문제의 핵심을 벗어난다. PSA는 탐욕스럽기로 소문난 전설적인 사모펀드(2)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 같은 회사와 다르다. 자본의 힘에 의해 무릎을 꿇은 평범한 회사일 뿐이다. 물론 그 대가가 임금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는 게 흠이지만.

다시 말해, 필리프 바랭 최고경영자와 푸조 일가에게 분노를 집중하기보다는 좀더 멀리서 그 비난의 대상을 찾아야 한다. 추상적이기 때문에 피부에 잘 와닿지 않는 근원적 이유, 바로 세계화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특성에 비난의 화살을 집중해야 한다. 이 구조는 쉽게 지각되지 않을뿐더러 특정 개인에 의해 대표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급여 조건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이 때문이며 PSA와 두, 테크니컬러, 콩티 등의 기업이 지금과 같은 난관에 봉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한 비판 없이는 정부에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종용해봐야 소용없다. 문제의 본질은 세계화한 자본주의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최소한 20년 전부터 시작된 과정이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고 2010년 유럽재정 위기로 확대되면서 급작스럽게 폭발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성장'에 대해 운운한다거나 (국내총생산(GDP) 1%로 성장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야심찬 경제활성화 계획을 내놓은) 유로빅4정상회의에서 몇 가지 소득이 좀 있었다고 해서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날 좋을 때야 어느 정도 눈속임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달을 때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더욱이 그가 우쭐대며 감내했던 정책들이 상황을 더욱 안 좋게 만들 게 분명하다. 올랑드 대통령이 국민투표 회부에 신중을 기하게 될 '유로존 안정, 협력 및 거버넌스 관련 협약'(TSCG)도 마찬가지다.(3) 이 협약은 경기침체를 가속화할 것이고, 그에 따라 구조조정 쓰나미가 밀려올 것이다. 자유주의 유럽, 신성한 유럽,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하는 유럽 때문에 수십만 명의 실업자가 속출하는 순간이 왔을 때, 사회주의자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지 그 머릿속이라도 들여다보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유럽 내 '자유롭고 왜곡되지 않은 자유경쟁'의 도입과 자본이동의 자유화로 인해 이미 실업 사태가 발생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신문사 논설위원들이 겁을 집어먹을 만큼의 속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조금씩 새던 배관들이 갑자기 폭발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이제 그에 따른 여파는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상황이다.

도산 위기에 처한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PSA도 무한경쟁의 세계 속에서 흔들리던 시장의 붕괴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긴축이 일반화되는 마당에 허리띠를 졸라매고도 성장 비결을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정책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하지만 유럽연합이 강요하는 어리석고 혹독한 규정들이 자연스레 긴축적 경제정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예견되어온 일이다.(4) 이는 현재 상황이 요구하는 해법과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마침내 유럽은 협력의 축배를 마시게 되는 듯했지만, 결국 이는 모두에게 고배가 되었다. 일단 독일은 유럽연합의 규정에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그 적용을 강요했다. 독일은 금융시장을 통해 끊임없이 경제정책을 감시하려 했으며, 금융시장과 독일은 공공재정을 즉각 규격에 맞게끔 재단하길 원하고 있다. 아울러 독일은 (예산 및 통화 부문에서) 자신의 교리에 맞지 않는 해법은 모조리 거부한다. 독일과 쌍두마차를 끌고 싶은 프랑스는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에 암묵적으로는 찬성한다. 어찌됐든 다 좋다. 이제는 선택의 결과를 감수할 것인지, 과감한 변화를 시도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유럽연합 규정의 어리석고 뻔한 운명

일단 눈을 뜨고 살펴보자. 생존할 방법부터 찾아보자는 말이다. 그러려면 일단 독일이 자국과 몇몇 이웃 국가만 쏙 빼놓고 유럽 전체에 대공황을 야기할 수 있는 모델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이끄는 쌍두마차는 위험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역학 관계를 이용하든, 최후통첩을 활용하든 이런 환상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한다. 독일이 경제정책의 기본 원칙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아니면 모든 걸 단념한 채 단일통화 체제 구축의 불가능성을 확인하고 각자 자기 살길을 찾아 떠날 수도 있다. 유로존 내에서 하부 단위로 화폐 블록을 쪼개든지, 자국의 원래 화폐로 되돌아가든지 선택의 길은 여러 가지이다. 이렇게 되면 몇 가지 구제책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중앙은행을 대대적으로 동원해 투기를 억제하고 재정 적자에 자금 지원을 할 수도 있고, 국민 저축을 공채에 활용하는 장외 자본유통 경로를 구축할 수도 있다. 국가가 진 빚에 대해, 아니면 최소한 100% 민간 금융업계의 파탄으로 초래된 국채의 전액 혹은 일부에 대해 디폴트를 허용해줄 수도 있다.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대출시장이 위축됨에 따라 축적된 모든 채무가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참에 은행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5)

하지만 세계화한 자본주의의 기본 성향이 위기로 인해 더욱 강화될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그런 성향은 통합 유럽 계획으로 더욱 탄력을 받아왔다. PSA도 정통으로 그 직격타를 맞은 상황이다. 자크 들로르와 파스칼 라미를 위시한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협력 속에서 1987년 유럽통합법(SEA)이 발효되고, 이어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 등 상황이 급진전되면서 전세계 모든 지역과 노동자들이 서로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왜곡되지 않은' 경쟁 체제라는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사회모델 간의 차이를 무시한 경쟁이야말로 왜곡된 것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국제노동분업 구조를 재편하려는 근본적 움직임이 대두됐고, 가치 사슬의 거의 전체가 세계화되었다. 주요 대기업들은 이제 전 지구적 차원에서 구축된 하청 체제를 거느리고, 심지어 조립 라인조차 하청의 대상이 됐다. 이미 2001년 알카텔 회장 세르주 취르크는 야심찬 어조로 '공장 없는 기업'이라는 꿈을 제시한 바 있다.(6)

신자유주의자들은 이 엄청난 변화가 가져올 불가역적 효과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세상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균형 있게 돌아간다. 국제적 노동 분업의 구조 재편이 이뤄질 수 있는 방향은 두 가지인데, 그 매개 변수는 모두 동일하다. 바로 비용이다. 따라서 비용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구조에 따라 다시 국제 노동 분업 구조가 정비되는데, 여기에서 열쇠를 쥐고 있는 건 정부이다. 조세제도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오로지 '자극'과 '선동'의 언어를 사용하므로, 이들에게는 그와 같은 언어로 말을 해야 한다. 따라서 근거 기준을 제대로 마련해 이동 거리만큼 세금을 부과하는 마일리지세를 도입하면 전세계 곳곳에서 중간 소비재(7)를 찾아내어 배로 실어오는 지금의 생산 최적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 아마 이메일 한 통으로 카뷰레터나 타이어를 보내는 일이 당분간 사라질 것이다. 아울러 구시대적으로 관세를 매기는 방법도 있다. '보호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지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때맞춰 관세 장벽을 높이면 앞의 조치를 보완할 수 있다.(8)

앞의 두 방법이 실시될 경우, 지역 차원으로 눈을 돌리는 게 이득이라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지역'이란 오늘날의 유럽 차원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앞으로 12개월 후 유럽이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오늘날 유럽 신자유주의의 만용에 반대하며 비슷한 색깔로 뭉친 국가들끼리 소규모 연합 체제를 꾸리는 건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이것이 붕괴 직전의 단일 화폐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주주들의 압력은 세계화한 자본주의의 세 가지 특징 가운데 마지막 하나를 장식한다. 아마 PSA가 이 분야에서 가장 심각한 대표 사례는 아닐 것이다. 푸조 일가가 지분을 장악(9)하고 있어 자본 측면에서 외려 안정적 환경에 속해 있는 이 그룹은 2010년에 2009년 귀속분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같은 해 자기자본이익률(ROE·Return on Equity)은 8% 수준이었으며, 따라서 흔히 요구되는 15% 선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고,(10) 그나마도 2011년에는 4%로 떨어졌다.

하지만 착각은 금물이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다른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주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관행을 PSA가 양심적으로 거부한 것은 아니다. '가족들'에게 돌아갈 떡은 어느 정도 남겨둬야 했기 때문이다. 가령, 2011년 푸조 일가에게는 2억8700만 유로의 배당금이 지급됐다. 더 황당했던 일은 자사 주식을 다시 사들인 것이었다. 기업의 자기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어쨌건 이 기업은 2억 유로가량을 바이백(Buy-Back·역구매)했고, 최종적으로 이는 기업의 주당 이익을 올리고 주가를 유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겉으로 보이는 규모만 해도 5억 유로 가까이다.

자본주의의 끝없는 위기

물론 PSA 경우가 주주자본주의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일례는 아니며, 외려 이 기업은 그와 거리가 멀다. 가령 제약회사 사노피아벤티스는 직원을 1200~2500명 정도 정리해고할 계획인데, 이 기업은 2011년 무려 60억 유로의 수익을 달성했고 주주들에게는 13억 유로를 지급했다(전년도 지급액은 31억 유로였다). 자사주 매입은 10억 유로 정도의 규모였다.(11) 다행히 2012년 1분기에는 실적이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고,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상황이 좋을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정리해고 대상 직원들 역시 이에 한몫할 것이다.

양호한 수준에 머물다가, 때론 노골적인 형태로 본색을 드러내는 이런 유의 행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계속매매(접속매매) 중지(12)에서 증시 폐장(13)에 이르기까지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대책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에서 추천하는 방식은 '주주이익한정인정제도'(SLAM)이다. 허용되는 주식 수익의 한계선을 정하고, 초과 수익에 대해서는 100% 세금을 부과하는 친절한 세금 칼날이다.(14) 그렇게 되면 초과 수익을 토해내라고 요구하는 주주들의 기업 압박을 원천봉쇄하는 효과가 생긴다. 초과 수익이 생긴다 해도 전액 몰수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실질적 해법이 적용되길 기다리는 동안, 좀더 손쉽게 쓸 수 있는 응급조치가 있다. 끊임없이 이동하고 그 구조를 재편함으로써 자본이 이 사회에 조장하는 무질서에 대해 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자본주의는 "늘 생산 도구의 혁신적 변화가 먼저 선행되지 않는 한 존재할 수 없다. (중략) 생산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변혁이 이뤄지고, 모든 사회 계급이 끊임없이 동요되며,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가운데 끝없이 변화가 일어나는 건 부르주아 시대가 이전의 모든 시대와 구분되는 특징이다." 그게 바로 자본의 논리이고 우리가 아직 그 질서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했기에 이를 참고 견뎌내야 한다는 것, 이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본가들이 끊임없이 야기하는 사회적·인간적 재앙을 이 사회가 잠자코 감내하는 게 당연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끔찍한 악순환은 당장 멈추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속도를 늦추는 방법 정도는 강구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에 따른 폐해를 바로잡을 의무가 누구에게 있는지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이는 대대적인 정치적 합의의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고, 한시적으로나마 자본주의가 용인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아울러 어느 정도 지각 있는 사민주의 노선이라면 최소한 이만큼은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게 모든 것을 끊임없이 불안정하게 만드는 자본 축적의 논리에 포함된다는 것을 정식으로 인정한다. 현재로서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이를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따라서 한동안은 당신네들 원칙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다. 다만 몇 가지 구조적인 조건만은 지켜달라. 그리고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 사항은 그렇게 당신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가운데 발생한 모든 피해에 대해 당신들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제품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새로운 프로세스가 끊임없이 도입되며, 새로운 경쟁자가 끝없이 생겨나면서 쉼 없이 구조조정이 이뤄진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 분업 또한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금융자본이 스스로 그 사회적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가령 정리해고에 따라 수반되는 문제 해결을 위해 금융자본이 이행해야 할 의무 사항들을 충족시킬 구조조정 기금을 금융 자본이 홀로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일단 정리해고 피해자들 각자에게 일자리를 되찾아준다. 단, 지리적 요건이나 직능 조건에 부합하는 일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이어 자발적으로 원거리 이동 의사가 있을 때에는 이에 소요되는 비용 역시 금융자본이 부담한다. 아울러 다시 고용 상태를 회복할 때까지 장기화되는 공백 기간 내내 모든 직업 교육 프로그램을 책임진다.

모든 게 금융자본 때문에 생겨난 폐해이기에 전적으로 금융자본 혼자서만 재원을 마련하는 구조조정 기금이 금융자본만의 관리하에 들어가선 안 된다. 이는 노동자의 삶과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조조정과 관련한 수당을 관리하고 수용할 만한 고용 기준을 결정하는 건 바로 노동자들과 이들의 대표이다. 이들은 복직이 이뤄질 때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도 결정한다. 머리가 굳지 않도록 무언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받는다. 단순히 직업훈련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더 폭넓고 종합적인 교육으로 그 개념을 확장할 수 있다. 대학이나 국립공예학교(CNAM)같이 모든 레벨에서의 학습이 가능한 전문 교육기관으로 보내어 '공부하는 어른'을 양산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운동단체나 공동체 활동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구조조정에 따라 과도기 상태에 처한 노동자들이 정치사나 사회운동사, 혹은 비판적 경제학이나 그 외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한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발상인가? 이렇게 되면 기업은 기금 마련을 위한 추가 세금의 부담뿐만 아니라 해고 직원 재교육이라는 또 하나의 부담을 져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정리해고를 하기 전에 한번 더 이에 대해 재고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업은 모든 면에서 치러야 할 대가가 커지므로 최후의 수단으로만 해고라는 방법을 쓸 것이다. 자본주의란 더없이 창의적인 주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예의 그 창의력을 발휘해 수많은 난관 속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비용이 예정된 해고라는 방식을 무작정 밀어붙이기보다 그 부담을 피할 수 있게끔 창조적으로 제 살길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다. 원자재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혹은 금리가 치솟는 상황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살길을 찾았는지 생각해보라. 이번에도 자본주의는 자기가 살길을 알아서 잘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구조조정 기금은 다른 상호부조 기금과 똑같이 금융자본 사이에 단기적으로 불평등을 야기한다. 즉, 지속적으로 고용을 창출해내는 기업과 주기적으로 일자리를 없애는 기업 사이에 불평등이 생겨나는 것이다. 후자가 내야 할 돈을 전자가 대신 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든 기업이 결국 전자에서 후자로 바뀌게 될 테고, 그러면 최종적으로 모두가 이런 시스템의 수혜자가 된다. 한편 자본 기업은 내부 공조의 소소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여지를 갖게 되고, 형평성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을 나름대로 정할 수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기업이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기업이 파산 혹은 그 직전에 이르렀을 때 취하는 대량해고라는 방식은 노동자들에게 크나큰 고통이면서 동시에 생산자로서 공동의 운명을 되찾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기업의 구조조정 계획은 노동자 대표에게 더욱 폭넓은 특권을 부여해줄 수 있다. 이사회에 다수로서 참석한다든지 지도부에 대거 참여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노동이 자본주의의 굴레 속에 들어가는 상황이 정당화되는 건 오직 자본이 노동을 창출할 때뿐이다. 지역 차원에서 이는 명백히 합의된 사항이다. 문제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세계화가 신흥개도국들을 끌어들여 전세계를 두루 성장시켰다며 좋아한다. 물론 이는 굉장한 성과일지 모른다. 하지만 해고된 유럽인들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따라서 이런 종속 관계에 굴레를 씌우고, 일단 그 자격을 검증해야 한다. 능력을 입증해 보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자기네들이 "고용을 창출해낸다"고 떠벌리길 좋아한다. 그럼 그렇게 해보라고 하자. 이들은 또 자기네들이 자극적인 상황과 도전 과제의 달성을 좋아한다고 자랑스레 얘기한다. 그럼 이들에게 그런 과제를 떠안겨주자. 이들이 단체로 일자리를 못 만들어내면 구조조정 기금으로 쓰일 분담금만 왕창 지불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한 기업만 일자리를 못 만들어낼 경우 사장 자리를 내놓으면 그만이다.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도기의 밑그림을 그려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노동자들이 생산자로서 주권을 재탈환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돈 가진 자에게 권력이 돌아가는 구조를 없애고,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연합해 공동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점진적 이행을 위해 우리는 현 자본주의가 실패한 지점에서- '자본'이라는 말을 감히 다시 사용한다면- 새로운 자본화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법적으로 지위를 격상시키면 직원 전체가 상징적인 1유로에 대한 선매권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이들은 대신 정치적 생산 공동체를 조직해야 한다. 이게 바로 필자가 다른 데서 언급한 '레코뮌'(Récommune)의 개념이다.(15) 이는 회사에서 일하는 모두가 그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생산자들의 연합체를 말한다. 자본이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하려고만 든다면, 장담컨대 구조조정이나 파산신고는 곧 기존 '통상적 경영 방식'에서 '끔찍할 정도로 싫은 경영 방식'으로 바뀔 것이다.

뒷북치는 사회주의는 '이제 그만'

기이한 이름의 부처와 PSA 사태의 조합이 현재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는 실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며, 이 전쟁은 선거 토론같이 겉으로라도 고상한 척해야 하는 맥락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양상을 보인다. 아마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는 최전선에서 간혹 나타나는 모습이 아닐까. 어떤 역사의 저주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시금 이 상황을 떠안게 된 게 바로 사회당이다. 각각 자동차 부문의 대량 해고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1983년의 탈보 사태와 1997년 빌보르드 사태의 뒤를 이어 2012년에는 이제 PSA가 대량 해고를 예고한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된 상황이다. 사회당은 하필 이 시점에 범람 위험의 강을 건너다가 물살에 휘말려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한 사건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불거지며 그 시대의 모든 난맥상을 한꺼번에 압축시키기도 힘들다. 알카텔 회장 세르주 취뤼크도 백일몽을 꾸는데 우리라고 그런 꿈을 못 꿀 것도 없다. 백일몽일지언정 PSA가 하나의 상징이 되어 정치적 집결이 이뤄지는 시작점이 되는 꿈을 꿔보는 건 어떨까? 이는 PSA라는 개별적 상황 속에서 세계화한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의 보편성을 발견함으로써 가능하다. PSA 노조와 노동자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을 혼자 놔두어선 안 된다. 이는 단순히 PSA만의 싸움이 아니다. PSA와 더불어 테크니컬러, 에어프랑스, 프랄리브, 콩티의 싸움이며, 오늘날 모든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운동이 되어야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실제로 수많은 다른 노동자들이 이 대오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유럽의 위기 상황과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언제든 헌신짝 버리듯 내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회운동은 '위기의 뒤처리나 하는 사회주의는 이제 그만'이라고 외쳐야 한다. 지난 수년 동안 임금노동자들은 충분히 고통을 겪었으니 이제 근본적 해결책 마련을 촉구해야 한다. 진정한 변화는 바로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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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리크 로르동 Frédéric Lordon 경제학자로 유럽사회연구소(CSE) 연구팀장을 겸하고 있다.

번역 | 정기헌 배영란

(1) 자크 제네뢰(Jacques Généreux)와의 토론, 2012년 7월 3일, www.lemonde.fr.
(2) 주식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회사를 대상으로 한 투자 펀드로, 특히 부채로써 기업을 매수하는 차입매수(LBO·Leveraged Buy Out) 방식을 이용한다.
(3) Raoul Marc Jennar, ‘쿠데타 위한 두 가지 협약’(Deux traités pour un coup d’Etat europée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6월.
(4) Frédéric Lordon, ‘우리는 지금 대공황으로 가는 중인가?(En route vers la Grande Dépression?), La pompe à phynance, 2010년 5월 18일, http://blog.mondediplo.net.
(5) Cf. <Les économistes atterrés>, ‘경제를 변화시키라’(Changer d’économie·2011) 및 ‘학대받는 유럽’(L’Europe mal traitée·2012), Ed. Les Liens qui libèrent, Paris.  혹은 ‘은행, 언제까지 구제해야 하나?’(Sauver les banques, jusqu’à quand ?), ‘결말의 시작’(Le commencement de la fin), ‘유로가 종착역인가?’(Euro: terminus?), ‘유로본드, 잘못된 해법’(La fausse solution des eurobonds) 참고. La pompe à phynance, 2010-2012, http://blog.mondediplo.net.
(6) 오늘날 애플은 이 꿈을 거의 현실로 이뤄내고 있다.
(7) (원자재, 에너지, 부품 등) 상품 생산에 투입되는 재화와 서비스.
(8) ‘보호무역’ 특집 기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3월호  참고.
(9) 지분의 31%를 보유하고 있으나 투표권은 48%를 갖고 있고, 여기에 직원들의 4.5%가 더해진다.
(10) Isabelle Pivert, ‘기업 발전은 뒷전, 주주 이익이 최고?’(La religion des quinze pour cen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3월.
(11) Sanofi, 2011년 연간보고서.
(12) ‘주식 불안정: 계속매매(접속매매)가 가져온 재앙’(Instabilité boursière: le fléau de la cotation en continu), La pompe à phynance, 2010년 1월 20일, http://blog.mondediplo.net.
(13) ‘주식시장을 폐장하라’(Et si on fermait la Bours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1월.
(14) ‘고삐 풀린 금융자본에 고삐 채우기: 주주이익한정인정제’(Une mesure contre la démesure actionnariale: le SLAM),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년 2월.
(15) <과도한 위기>( La Crise de trop), Fayard, Paris,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