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계급'이란 신화

2012-08-13     미카엘 하트만

한쪽에서는 생산시설 해외이전, 다른 쪽에서는 천문학적인 보수로 대표되는 세계화 담론이 임금노동자 간의 경쟁 격화와 국적을 초월한 것처럼 보이는 부유층들의 호사스런 특권을 동시에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자칭 '글로벌 엘리트'들은 여전히 국가에 의존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르프(1929~2009)는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자신이 내놓은 유명한 이론과 배치되는 발언을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예전에 국경과 국적을 초월해 지구 전체를 지배하는 '세계화한 엘리트'의 존재를 주장했다. 이 엘리트들이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살아남았는지 묻는 질문에 그는, "현재 이 엘리트 집단은 해체되는 중"(1)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 상황을 자신의 이론이 실패한 증거로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단순한 과도기적 우연으로 여겼을까? 인터뷰만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세계화와 함께 부상한 '글로벌 경제 엘리트'

상당수 사회과학자, 에세이스트, 정치활동가들은 이 '글로벌 계급'의 존재를- 그들을 칭송하든 비판하든 간에-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2) 자크 아탈리는 1996년부터 이미 '유럽의 초(超)계급' 출현을 가능케 할 일종의 '문화혁명'을 상상했다. 그는 "새로움을 굿 뉴스로, 불완전고용을 하나의 가치로, 불안정성을 절박함으로, 인종적 뒤섞임을 문화적 풍요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다양한 에너지의 분출, 독특한 연대의 구현, 끊임없는 적응을 특징으로 하는 노마드가 출현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3) 2008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편집장 데이비드 라트코프는 유럽을 넘어 전세계적 차원에서 아탈리의 예측이 실현됐다고 선언했다. 약 6천 명의 초국적 '슈퍼 클래스'가 세계 지배의 기초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전세계 대도시, 유명 호텔, 국제 자본가들의 중요한 미팅에 가면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 으뜸은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이다. 라트코프는 마크 말로치 브라운 전 유엔 사무부총장의 말을 인용한다. "다보스 저녁 모임에 온 사람들은 자신의 동네 공원보다 그곳에 아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4)

대기업주 처지에서 보면 '방랑하는 부의 창출자들'이라는 신화는, 그 세계의 주인들이 받는 천문학적 보수를 정당화해준다. 그들은 최고의 보수를 받을 때까지 시장이라는 '정글' 속을 끊임없이 배회한다. 로랑스 파리조 프랑스 경제인연합회(Medef) 회장은 2008년 3월 11일 <프랑스 앵테르>에 출연해, "고액 연봉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재능 있는 인재들이 프랑스를 떠나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최근 프랑스의 부유층 납세자들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주겠다"(5)고 공언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공약대로 초과소득세율을 75%까지 올리면 그들은 조국을 등질지도 모른다.

'세계화한 엘리트'라는 용어는 국적이란 울타리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거대 다국적기업의 경영자 계급 성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독일의 '톱 매니저'들에 대한 통계 자료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가령 창립 이래 처음으로 이사회의 외국인 비율이 절반을 넘어선 도이체방크 같은 곳이 있는가 하면, 독일 산업발전의 견인차인 보슈는 독일에서만 경력을 쌓은 인물이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더 넓게 보면, '글로벌 계급'은 흔히 짐작하는 것과 달리 코즈모폴리터니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대기업들은 대부분 현지 출신에 의해 경영된다. 외국인 경영자는 평균 5%를 넘지 않는다. 경영자가 같은 언어권(결국 같은 문화권인 경우가 많다) 출신인 경우를 제외하면 그마저 2%로 떨어진다. 가령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출신이 독일에 부임하거나, 아일랜드·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 영국이나 미국에서 일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국적기업들도 대부분 핵심 요직은 '본국 출신' 차지다.

물론 나라에 따라 비율은 달라진다. 지금까지 중국과 이탈리아의 대기업 CEO를 외국인이 맡은 사례는 없다. 일본과 스페인에는 각각 1명씩 있다. 그마저도 외국 기업과의 인수·합병한 경우라 예외로 봐야 한다. 프랑스 2개, 미국 5개, 독일 9개, 영국 18개 다국적기업이 외국인 CEO에 의해 경영된다. 이 경우도 같은 언어권 혹은 문화권 출신을 계산에서 빼면 그 수가 확 줄어든다(미국 2명, 독일 4명, 영국 6명). 이들이 경영하는 기업이 대부분 이중국적 상태라는 걸 감안하면, 경제 엘리트들이 문화적 융합을 선도해나간다는 식의 시나리오가 현실에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시나리오는 경영학교 학생들에겐 동화 같은 얘기, 대안세계화주의자들에겐 새빨간 거짓말이 아닐까? 하지만 경영자들이 얼마나 해외여행을 좋아하는지 고려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경영자들의 '방랑벽'이 적은 미국이나 스페인 같은 나라에서도 '톱 매니저' 10명 중 1명은 외국 근무 경험이 있다. 중국은 7명 중 1명, 프랑스·영국·이탈리아는 5명 중 1명, 독일과 일본은 3명 중 1명이다. 주목할 만한 현상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엘리트들의 연령대가 낮아진다고 특별히 달라지는 것 같지도 않다. 외국에서 일하는 젊은 경영자들은 한 곳에 2년 이상 머무는 경우가 드물다. 따라서 예전에 비해 현지 문화에 익숙해질 기회가 더 많아졌다고 볼 수도 없다. 더욱이 요즘 경영자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국경을 넘을 기회가 더 적다. 프랑스에선 직업적 이유로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 가령 이전 세대 CEO들은 4명 중 1명이 외국 근무 경험이 있었지만, 후배 세대는 그 비율이 10명 중 1명으로 줄었다.

본국에 머무는 경영자들의 이력은 전통적 방식으로 경력을 쌓는 관행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특히 처음 입사한 기업에 충실하려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 일본의 CEO 10명 중 9명은 자신이 처음 입사한 회사를 이끌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에선 대기업 경영자들의 거의 절반이 기업 내 진급을 통해 그 자리까지 올라갔다. 프랑스와 중국에서 이 비율이 20%에 불과한 것은 문화적 특수성 때문이다. 엘리트들이 공직- 각료 혹은 공무원- 을 거쳐 민간기업의 경영자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도 이런 관행이 강하다. CEO 4명 중 1명이 공직에서 민간기업으로 갈아탄다. 그러나 전체 산업화된 국가들의 평균은 0~6%에 불과하다.

재계 최고 지도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느냐는 출신지의 학위 취득과 엘리트 재생산 구조, 국가의 역할 등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가령 프랑스와 영국에선 국립행정학교(ENA), 폴리테크닉, 이튼,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 몇몇 명문 학교 출신들이 특권을 누린다. 그러나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에는 이런 유의 학교가 없다.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도 차이점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공공부문에서 민간부문으로 옮겨가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있지만, 영국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교육제도와 고용, 승진 시스템이 나라마다 다른 것도 엘리트의 세계화를 방해하는 장애물이다.(6) 좋은 학위를 지녔어도 국경을 넘어가면 별 대접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ENA 출신은 당연히 미국보다 프랑스에서 더 쉽게 자리를 구할 수 있고, 도쿄대학 석사 학위 취득자가 파리보다 도쿄에서 더 대접받는 건 당연하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출신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명문대 출신도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는 주변적인 자리를 맴도는 경우가 많다.

초국적 노마드 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 중역은 최고경영자보다 해외 근무 기회가 훨씬 더 적다. 독일이 좋은 예다. 독일의 상위 200개 기업의 이사회와 감사위원회 위원장 400여 명 중 외국인은 총 29명으로 약 7%를 차지한다. 그중 3분의 2가 오스트리아·스위스·덴마크·네덜란드 출신으로, 완전히 낯선 나라에서 왔다고 볼 수도 없다. 서열을 한 계단 내려가면 독일 임원 중 외국인 수는 전체 1~6%에 불과하다. 그나마 절반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출신이다.(7)

결론적으로, 이론가들이 정의하는 의미로서 '글로벌 계급', 즉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를 지배하는 무국적의 노마드 귀족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직책의 특성상 이동이 잦은 외부 감사위원들의 경우 초국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게 자연스럽긴 하다. 그러나 CEO나 임원들은 기업의 모국에 얽매일 수밖에 없고, 경력을 쌓는 과정도 출신지 상황에 맞춘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 사실상 이동성이나 '세계에 대한 개방성' 등 경영자들이 외치는 구호는 자신보다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위한 것이다. 더욱이 외부 감사위원들이 만드는 인맥조차 사실상 앵글로색슨계 유럽과 북미에 한정돼 있다. 이 중에서 남유럽, 일본, 한국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중국, 브라질, 인도, 러시아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것과 달리, 신흥국의 부상을 통한 세계경제 구조 재편과 경기변동은 글로벌 계급의 출현에 오히려 추가적인 장애물로 작용한다. 이런 국가의 기업들이 우선적으로 자국에서의 위상을 확립하는 데 주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국가는 산업화 프로세스의 모든 측면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국가 엘리트를 양성하고 그들이 활동하기에 편한 조건을 조성해주는 것도 국가의 일이다. 기업인들이 좋아하는 '코즈모폴리턴 엘리트, 지역 주민'(8)이라는 슬로건은 현실과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이 글은 경제적으로 잘사는 유럽 5개국(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스페인)과 비유럽 3개국(중국·일본·미국)- 세계 500대 기업의 4분의 3이 이 국가들에 몰려 있다- 의 기업 최고경영자(대표이사·CEO·사장 등) 이력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바탕으로 쓰였다. 자세한 조사 결과는 '경제 엘리트의 국제화와 국가적 특수성', <Actes de la recherche en sciences sociales>, n°190, 파리, 2011년 12월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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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엘 하트만 Michael Hartmann <엘리트 사회학>(The Sociology of Elites)의 저자.

번역 | 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1) 랄프 다렌도르프, ‘Die Derivatisierung der Welt und ihre Folgen’, <Leviathan>, n°37, 뒤셀도르프, 2009.
(2) Leslie Sklair, <The Transnational Capitalist Class>, Blackwell, Oxford, 2001, William K. Carroll, ‘Transnationalists and national networkers in the global corporate elite’, <Global Networks>, vol.9, n°3, 몰던, 2009 참조.
(3) ‘초계급’, <르몽드>, 1996년 3월 7일.
(4) David Rothkopf, <Superclass: The Global Power Elite and the World They Are Making>, Farrar, Strass and Giroux, 뉴욕, 2008.
(5) ‘UK’s Cameron: Britain will “roll out red carpet” for French businesses if govt taxes them more’, <The Washington Post>, 2012년 6월 19일.
(6) Michael Hartmann, <The Sociology of Elites>, Routledge, London, 2006 & <Eliten und Macht in Europa: Ein internationaler Vergleich>, Campus, 프랑크푸르트, 2007.
(7) Markus Pohlmann, ‘Globale ökonomische Eliten-Eine Globalisierungsthese auf dem Prüfstand der Empirie’, <Kölner Zeitschrift für Soziologie und Sozialpsychologie>, n°61, 쾰른, 2009.
(8) Manuel Castells, <The Rise of the Network Society. The Information Age: Economy, Society and Culture>, Wiley-Blackwell, Cambridge, p.415,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