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페 곤살레스의 ‘흑묘백묘론’

지배계급에 약탈당한 스페인

2012-08-13     루이스 세풀베다

모든 이야기는 정해진 장소와 순간에 시작한다. 최근 나는 많은 스페인 친구들의 삶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며 경제위기를 직접 경험하고 있다. 스페인의 두 대표 정당인 국민당(PP)과 사회주의노동당(PSOE)이 벌이는 광란의 집권 경쟁 속에서 국가재정은 나날이 악화되고 친구들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하지만 정당들은 상황이 어제 얼마나 악화되었고, 오늘 얼마나 악화되고 있으며, 내일은 얼마나 더 악화될지 설명조차 하지 못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정부의 역할은 사회의 모순과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들은 적도 없다.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하고 민주화(1)가 시작된 이후 지적 태만이 정치인들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존속 가능한 국가의 모습을 생각한 적이 없다. 정부의 정책 발표나 선거 공약들을 돌이켜봐도 스페인 사회를 위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국민과 소통을 시도한 적이 있는 국가원수는 프랑코의 쿠데타 발발 직전 마지막 대통령인 마누엘 아사냐이디에스뿐이다. 그 외에는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이후로 국가원수가 없어지고 양식 있는 부르주아 계급이 자취를 감춰 정치인의 태만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펠리페 곤살레스(2)가 인용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명언이 기억에 남는다. 스페인의 모든 사회·경제·문화·정치 상황에 적용되는 이 은유적 문장을 통해 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원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속에 나오는 도리언 그레이의 저주받은 초상처럼, 악몽 같은 상황이 내 정신을 지배하기 전에 우리는 유럽 시민으로서 이야기를 통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탈출구를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1988년 2월 4일 아침,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날씨는 쌀쌀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느껴지는 거리와 달리 회의장 안의 열기는 뜨거웠다. 경영진보협회(APD) 초청으로 모인 수천 명의 기업인들은 펠리페 곤살레스 사회주의 정권의 재정경제부 장관인 카를로스 솔차가의 연설에 주목했다. "스페인은 유럽, 어쩌면 전세계 국가 가운데 단기간에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국가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증권분석가와 전문가들도 말했다."

솔차가 장관을 향해 박수갈채가 쏟아지며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그는 바보들 혹은 스스로 부자인지 확신하지 못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자가 되었다고 대놓고 말했다. 사회가 부(富), 나아가 '단기간의' 부만 강조하면서 경제의 기본 원칙과 사회 연대, 복지에 대한 사회·민주적 이해나 부의 기원에 대한 좌파적 분석 같은 것들은 모두 경시했다.

스페인은 어떻게 쉽게 버는 돈이라는 '세이렌'(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요정)의 유혹에 홀리게 되었을까. 경제전문가들이 내놓은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한 주장은 그 본질을 교묘하게 비껴가고 있다. 이들은 자본주의 체계가 전체적으로 실패하기도 했지만, 특히 과거 청산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한 스페인의 경우 국가주의-가톨릭 독재체제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이행하려다 실패하면서 그 파장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유럽 공동체에 통합됨으로써 스페인은 민주화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간과했다. 공화제의 역사적 경험을 무시하고 그것을 공론의 장에서 애써 배제하려는 사회 분위기, 냉전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스페인을 포함시키려는 서방세계의 전략, 이른바 '피카레스크(악당)'(3)라고 불린 문화적 불행으로 지불하게 될 대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고양이 색깔이 무엇이든 간에 고양이는 쥐를 잡아야 했다.

우리는 맹인에게서 포도를 훔치고 좋아하는 불량배의 모습을 보고 비웃을 수 있지만, 이 행동이 삶의 신조, 심하게는 정부의 신조가 되었을 때는 문제가 전혀 다르다. 즉, 오늘의 과오는 어제의 과오를 보여주는 거울이 된다. 하지만 자신의 과오를 엉뚱하게 표현함으로써 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1980년대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4)에 가한 국가적 테러 행위가 '반테러 정책'이라고 불리는 것이나 '위기'라는 단어가 '성장 저하'라는 표현으로 둔갑한 것, 공적 자금에 의한 민간은행 구제금융이 '최적의 대출 조건'이라고 발표된 것은 모두 우연이 아니다. 민주화를 추진한 첫날부터 완곡어법은 정치적 화법의 기본 요소처럼 여겨지고 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동유럽에서는 사실상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신세계질서' 선언이 이루어지기 3년 전 '세계화'라는 단어가 요란하게 울려퍼지던 때 스페인은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스페인은 세계화된 신경제에 통합되는 데 가장 현명한 방법이나 실질적인 호기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못했다. 자신이 소수의 부유층에 속한다고 확신하는 수많은 정치인과 경제전문가들은 잠시의 고민도 없이 유럽연합 가입을 결정했고, 이는 결국 현 금융위기를 향해 내딛는 첫 발걸음이 되었다.

세계 경제대국들이 완전한 시장 개방을 조건으로 저개발국가를 거대시장으로 바꾸어야겠다고 결정했을 때, 카를로스 솔차가파의 예언자들은 저개발국가에 강요된 불공정한 조건들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후진국이 선진국에 더 많은 상품을 팔면 선진국 산업에 맞선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눈부신 성장을 이룬 후진국들에는 '신흥국가'라는 이름이 부여됐다. 수세기 동안의 약탈을 보상이라도 받듯 눈부신 호황을 이룬 신흥국가들이 벌어들인 부의 대부분은 지배층 주머니에 집중되었고, 결국 국가는 정치적 원인보다 경제적 '필요'를 중시하게 되었다. 오로지 경제적 이익만 추구한 서방 국가들도 서둘러 국내 산업을 희생시켰다. '공장 이전과 세금 혜택이 없으면 떠나겠다'는 식의 공갈 협박으로 선진국은 긴축재정과 복지정책 축소를 내세우며 점점 무너져내렸다.

새로운 거물의 태도가 놀랄 만한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의 얼굴은 바뀌지 않았다. '세계화'라는 단어가 경제와 정치 용어로 등장하기 훨씬 전인 1972년 12월 4일 살바도르 아옌데(5) 전 칠레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이미 그 윤곽을 뚜렷하게 묘사했다. "우리는 다국적기업과 국가 간의 정면 충돌을 목격하고 있다. 국가는 정치·군사·경제 분야의 주요 결정을 내리는 데 기업에 의지하고 있지만, 다국적기업은 어느 국가에도 의존하지 않고 의회나 공동체의 이익을 보장하는 제도로부터도 자유롭다. 한마디로 세계의 모든 정치 구조가 침식되고 있다."

당시 시장은 이미 독재자처럼 군림하고, 가능성의 예술이던 정치는 가장 훌륭한 시장 관리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관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스페인 정치는 일부러 그 모든 것을 무시했다. "내가 모르는 것은 무시한다"는 악당의 캐릭터처럼 스페인은 처음 나타난 위기의 전조에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구도 관광산업이 자국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주력 산업이라고 주장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관광산업이라는 은총은 이를 탐내는 국가들의 공격 표적이 되며, 호텔 경영인의 배만 불릴 뿐 그 외에는 사회 전체를 망가뜨리는 열등감만 일으킨다. 기술 혁신을 이룬 첨단 국가에서 사는 것과 종업원과 요리사, 호텔 직원의 나라에서 사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그리스, 포르투갈과 함께 EU에 가입함으로써 스페인식 자급자족 체제를 종결하고 결속기금과 개발원조기금 등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재건을 위한 마셜 계획으로 받은 원조보다 더 많은 자금을 끌어 모았다. 스페인이 2007~2013년에 받은 금액만 32억5천만 유로에 달한다.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로페스 전 총리는 재임 기간 8년 동안 '스페인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그 후임인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6) 총리도 스페인이 이탈리아보다 더 호황을 누리고 있고 다른 나라보다 재정 상태가 더 견실하다고 주장했지만 스페인은 2004년 EU에 가입한 동유럽 10개국을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았다. 이런 인색한 모습은 이웃 국가들로 하여금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에서도 이윤이 불확실한 현대적 생산 체계보다 훨씬 유망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찾아냈다. 부동산 투기와 무한정한 담보대출이다.

리먼브러더스 은행이 파산하기 전 5년 동안, 중국·브라질·인도 같은 신흥국가들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음을 인식한 스페인 경제전문가나 정치가는 드물다. 세계경제 위기라는 궁지를 벗어나올 수 있었던 몇몇 스페인 기업의 경쟁력은 부동산 거품이 보장한 단기간 이득에 비해 보잘것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에게 선거운동 자금을 대주면 당신은 내게 당신 지역에서의 건축허가권을 내줘야 한다는 식의 부정부패가 스페인 정치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도시의 허수아비들은 세세냐 같은 유령도시를 곳곳에 세우기 시작했다. 수도나 가스, 기반 시설도 갖추지 않은 1만3500개 아파트에 입주민은 없고 파산자들과 모래바람만 가득했다. 은행들은 부동산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려 일명 '하수도 청소부'라 불린 프란시스코 에르난도 콘트레라스(스페인 최대 갑부 중 한 명)에게 양도했다. 악당 중의 악당 프란시스코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배설물 처리 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인물이다.

일자리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사파테로 전 총리는 "2006~2008년 스페인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황당한 발표를 했다. 그는 새로 늘어난 스페인 노동자들의 임금이 프랑스나 이탈리아, 독일의 동종업계 노동자 임금의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스페인 경제는 활황을 누렸고 스페인 사람들은 자국을 자랑스러워했다.

부동산 산업의 생산제일주의 풍토는 정치계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문화와 사회까지 타락시켰다.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학업을 그만두고 크레인과 벽돌을 선택했다. 3개월 동안 일해서 번 돈으로 은행에서 대출받아 아파트와 자동차, 고화질 텔레비전, 최신형 휴대전화를 사고 나서 30~40년간 천천히 갚아나가며 살면 되는데, 누가 굳이 기술자나 의사가 되려고 힘들게 6년 혹은 8년을 공부하겠는가. 순식간에 수많은 학생이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그렇게까지 환희에 차서 소비 열풍에 미래를 희생시킨 나라는 없을 것이다.

부동산 투기 광풍과 그에 따른 부정부패로 비행기가 한 대도 착륙한 적 없는 대규모 공항과 승객이 단 한 명도 이용한 적 없는 고속철도, 토끼만이 뛰노는 자동차 경주장, 비둘기가 둥지를 튼 웅장한 문화회관이 앞다퉈 들어섰다. 이 시기에 은행은 역사상 최고의 실적을 거두었다. 고양이가 쥐를 잡은 것이다.

솔차가의 예언대로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덕분에 가만히 앉아 하룻밤 사이에 100만 달러를 버는 것이 가능했다. 부동산 열풍에 혼이 팔린 나라에서 생산품은 다양성을 잃고 거의 모든 중소기업들이 콘크리트 제조에만 몰두했다.

스페인 지도층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립한 '3단 구성', 즉 서론·본론·결론에 따라 사회의 이야기를 전달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통해 역시 이들이 앓고 있는 지적 장애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미래는 현재의 반복이 아니다. 경제 주기에도 반드시 결말은 있다. 부동산 붐이 시작되자마자 경영진과 노조는 화약통 위에 앉아 있음을 알았다. 그나마 좌파연합(7)이 소극적인 경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았다. 고양이는 쥐의 신기루라도 계속해서 잡아야 했다.

독일의 극작가·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지도층이 능력이 없을 때 국민은 지도층을 바꿔야 하지만 때로 국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국민을 바꾸려는 지도층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선거에서 쓰라린 패배를 경험한 사회주의노동당의 심리를 잘 반영한 지적이다. 집권 말 사회주의노동당은 금융위기가 닥치자 일단 스페인 경제는 견실하다며 위기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진심으로 좌파 정치를 포기했다. 은행이 대출을 거부하고 중소기업의 줄도산이 이어지고 있으며 실업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원인을 시민에게 설명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파테로 정권이 그나마 보인 구제 노력도 우파의 무책임한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두 정당이 유일하게 찾은 합의점은 '사회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것보다 은행에 공적 자금을 지원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정권의 집권 말기는 희극에서 비극으로 변했다. 정부가 임금을 삭감하고 은행을 지원사격했음에도 크리스토발 몬토로 현 예산장관을 포함한 반대파들은 스페인을 내버려두면 본인들이 일으키겠다고 공개적으로 으스댔다. 이 중 한 명인 루이스 데 긴도스는 2006~2008년 리먼브러더스 스페인·포르투갈 대표를 지내며 은행의 회계조작과 파산의 전조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지만 정부에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3년 후 마리아노 라호이 내각이 출범하면서 경제경쟁력부 장관에 취임했다.

결국 사회주의 정부가 '불가피한 구조조정'과 'EU의 강요'라는 핑계를 대며 긴축재정을 펼치는 동안 실업자 수는 200만에서 300만, 400만으로 꾸준히 늘어나 현재는 500만 명을 기록했다. 정부는 경제위기를 사회위기로 이어지게 할 황금률을 은밀하고 음흉하게 헌법에 반영시켰다. 더 이상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빈곤율은 급격히 증가될 수밖에 없다.

지난 선거에서도 사건의 추이를 명확히 밝혀주는 이야기가 없으니 시민이 되길 원하느냐, 소비자가 되길 원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국민의 대다수가 두 번째 대안을 선택하며 우파의 국민당에 압승을 안겨주었다.

고양이는 계속 쥐를 잡을 수 있었다. 국채의 특판 세일로 진수성찬을 벌여 폭식했다. 은행은 지원받은 자금으로 기업의 파산을 막아주거나 채무 상환 능력이 없는 서민들의 대출 상환 부담을 완화시켜주지 않고 3~5%의 금리로 국채를 매입했다. 국가가 투기를 지원한 셈이다. 결국 금융위기는 금융권을 무사히 내버려두었다. 아마 예전보다는 덜 포식했지만 죽을 만큼 배고픔에 시달리진 않았다.

EU는 회원국 스스로 금융제도의 신뢰성, 견고함, 지속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금융제도의 타락은 매번 투기꾼들의 주머니만 채워주었다. 경기가 좋으면 좋은 대로 이득을 챙기고, 경기가 안 좋아도 손해를 보는 것은 납세자뿐이었다.

사파테로 정권의 집권이 끝나기 몇 달 전 국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고양이가 굶주리고 있던 차에 유럽중앙은행(ECB)은 1%의 기준금리 동결을 해제했다. 덕분에 고양이는 계속 살을 찌울 수 있었다. ECB에서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은행들은 처음에는 5%, 다음은 6%, 결국에는 7%의 금리로 국채를 쓸어 담았다. 솔차가 총리 말대로 스페인은 최소한의 기간에 최대한의 돈을 버는 데는 세계 최고였다.

완곡어법의 낙원에서는 부패에 대한 반감을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표현한다. 국가가 실업의 수렁에 빠져 있던 사이 일반은행과 저축은행의 경영진들은 '정치계'의 허술한 감시 덕분에 고액의 보너스 잔치를 즐기며 은퇴를 준비할 수 있었다. 사회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 하지만 정치계는 시장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때론 두 영역 간의 경계가 불분명할 때도 있다.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로페스 전 총리는 키스 루퍼트 머독의 왕국인 뉴스코퍼레이션과 스페인의 다국적 전력회사 엔데사의 고문이 되었다. 그의 선임인 펠리페 곤살레스도 가스 나투랄-페노사 그룹의 고문으로 영입됐다. 엘레나 살가도 전 사회주의 장관이 남아메리카 파타고니아에서 환경 파괴를 일삼고 있는 전력회사 엔데사의 칠레 계열사인 칠렉트라의 고문으로 위촉된 사실도 대서특필감이다. 고양이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 쥐를 잡았다.

스페인에서는 해 뜨는 것이 두렵다. 매일 나쁜 소식이 떼로 몰려오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동 소유물의 감독관처럼 국가를 관리한다. 얼룩 하나 없는 순백의 와이셔츠에 검은 벨벳 커프스버튼을 착용한 마리아노 라호이 현 총리는 19세기 공증 사무소에서 나온 사람처럼 보인다. 시장에서 파견된 특사는 시민의 불안감을 가중시켜 소비자를 비탄에 빠트리고 있다. 매일 아침 사람들은 고양이 발톱에 긁히며 잠에서 깬다. 교육 및 보건의료비 예산 삭감, 구조조정이라 불리는 정리해고, 부패 스캔들, 절도, 연속된 사기행각 등 쥐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매일 고양이에게 잡히고 있다.

스페인에서 가장 건실하다고 평가받던 방키아은행은 지금 스페인의 금융 체계 전체를 붕괴시킬 위협을 가하고 있다. 2010년 7개 저축은행을 합병해 탄생한 방키아가 보낸 메시지는 분명했다.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려면 저축은행이 수행했던 사회적 기능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이다. 처음에는 특히 주주들에게 장밋빛 미래가 보장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갑자기 거품이 빠져버렸다. 거품이 빠진 이유는 무성한 의혹 속에 묻혀 있는 가운데 정부는 서둘러 방키아의 밑 빠진 독에 235억 유로를 쏟아부었다. 기반 시설 마련에 배정된 국가 예산보다 더 많은 액수다.

모두의 기억 속에는 1929년 대공황 당시 파산해 투신자살한 은행가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오늘날 스페인에서는 금융 대재앙의 주범들이 관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아스나르 정권 당시 경제부 장관이자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인 로드리고 라토 방키아 회장은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지 않았다. 연봉을 200만 유로 넘게 받는데 자살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결국 스페인 위기에 대한 이야기는 부정부패에 대한 변명, 물욕에 대한 사회주의적 변명, 미묘한 색깔의 고양이 포식으로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파괴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영국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지만 만약 그가 오늘날 마르베야 해변에 서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펠리페 곤살레스의 고양이에게 발가락을 물렸더라면 자본주의는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착취 체계로서 시장에서 빌린 보이지 않는 얼굴, 잡히지 않는 몸, 굉장한 탐식으로 변장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자신의 아이폰으로 프리드리히 엥겔스에게 전화해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싶어 하는 세계라는 유령, 우리가 참여하고 싶어 하는 사회라는 유령이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증스러운 고양이는 유령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면서도 쥐 사냥을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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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세풀베다 Luis Sepelveda 1949년생. 스페인 거주 칠레 소설가. <연애소설 읽는 노인>으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최근 작품으로 <남쪽의 최근 소식(사진·다니엘 모진스키)>(Métaillé·Paris·2012)가 있다.

번역 | 배영미 petite0222@hotmail.com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

(1) 1975년 11월 20일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관이 사망하며 군주제가 부활했다. 그 후 후안 카를로스 1세는 민주화를 시작했다.
(2) 1982~96년 스페인 사회주의노동당 정권의 총리로 재임했다.
(3) 피카레스크 소설은 16세기 스페인에서 등장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악당 피카로는 주로 서민 출신이고 양심의 가책이 없는 반영웅적 인물이다.
(4)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Euskadi Ta Askatasuna)는 1959년에 출범한 독립무장단체이다.
(5) 1970년에 선출된 칠레의 사회주의 대통령(1908~73)으로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쿠데타에 맞서다 사망했다.
(6) 아스나르 전 국민당(PP, 우파) 당수는 1996~2004년, 사파테로 사회주의노동당(PSOE, 좌파) 당수는 2004~2011년 각각 총리로 재임했다.
(7) 1986년 스페인 공산당을 중심으로 창설된 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