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권 보호는 낭비일 뿐이다

2012-08-13     딘 베이커

삼성이 거둔 승리는 달고도 썼다. 영국 법원은 삼성의 태블릿이 애플 제품만큼 ‘쿨하지 않기 때문에’ 디자인을 베낀 것이 아니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어쨌든 ‘특허권 전쟁’은 계속된다. 혁신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수백만 달러를 낭비하는 것 말고 유용한 물건의 발명을 자극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을까?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진행 중인 미국 대선 유세에서 후보자들은 앞다퉈 경기 '부양' 공약을 내놓고 있다. 금융, 신기술, 조세, 환경 등과 관련된 제안이 넘쳐난다. 그러나 경제 재활성화를 막는 주요 장애요소 중 하나인 특허권제도에 대해 언급하는 이는 거의 없다. 특허권제도의 기능은 단순하다. 정부가 특정 상품이나 제조법 발명자에게 일정 기간 독점권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이 보호제도는 처음에는 기업과 개인의 창조성을 자극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실제로 동기부여 효과가 있었다. 탁월한 발명품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사회적 가치보다 독점권 획득에만 관심을 갖는 기회주의자도 많았다. 이익이 클수록 이런 태도는 더욱 확산됐다.

제약업을 예로 들면, 특허권 비용 때문에 건강보험 적용 의약품 가격이 연간 약 3천억 달러 더 비싸진다(미국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2%). 그뿐만이 아니다. 의약품 혁신 활성화에 기여해야 할 제도가 오히려 환자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 특허권 소유자의 가격 결정 과정을 규제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건강보험 적용 의약품 산업은 이들이 취하는 독점 이윤 때문에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 본래 의미에서의 자유시장이라면 훨씬 싼 가격에 팔릴 약이 수백 달러에 팔리기도 한다. 극단적인 예로, 희귀 암 치료를 위한 신약은 수천 달러를 호가하기도 한다.

이런 메커니즘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비용과 가격 사이의 엄청난 간극으로 인해 최상위 부자만이 특정 분자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특허권만 아니었다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보험에 가입돼 있더라도 엄청나게 비싼 약값을 환급받는 일이 도박에 가까울 만큼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일 뿐 아니라, 중환자 혹은 그 가족은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몇몇 제약회사들은 이윤 추구에 눈멀어 제품의 효과와 무해성을 과장하기도 한다.

특허권제도는 기업들이 특허권 보호 대상이 될 만한 제품에 집중하게 만든다. 지난 3월 20일 <뉴욕타임스>는 "아스피린이 암 발병률을 30%가량 낮출 수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다음날에는 같은 신문에 빠른 지혈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트라넥삼산'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양쪽 모두 연구비용은 특허권 관련 이윤에 의해 보상받지 못한다. 제약업계는 이 약품들이 의학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게 될지 미리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경제영역은 어떨까? 신기술에서 특허권은 엄청난 비용이 드는 법적 분쟁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이노베이션이 목적이 아니다. 경쟁사를 무너뜨리기 위해 법적 무기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구글은 최근 모토롤라 모빌리티를 125억 달러에 인수했다. 모토롤라가 소유한 다수의 특허권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한 전문지의 분석에 따르면, 이 특허권들은 경쟁사와의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써먹기 위한 것이다.

애플, 삼성, 구글 같은 기업들은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특허권 침해를 이유로 상대 회사를 공격해왔다. 법정 명령으로 신제품의 시중 판매를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까지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점유율 싸움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는 기간이다. 지금까지 특허권 보유 수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구글은 모토롤라 모빌리티를 인수하며 경쟁사들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발명은 특별한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창 성장 중인 분야에서 혁신에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이점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굳이 법적 독점권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우리는 창조성을 자극하기 위한 새로운 메커니즘을 상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노베이션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다른 길이 분명 존재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포함한 몇몇 학자는 의약품 관련 특허권 등을 정부가 사들여 공공영역에서 사용하는 보상 시스템을 구상했다. 또한 연구 분야에 대한 공공투자를 늘려 그 성과를 공공부문에서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한 예로 미국 정부는 국립보건원에 매년 생물의학 분야 연구비로 300억 달러를 지원한다. 그 덕분에 노벨상을 여러 번 받았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성과가 나오고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각 분야에 알맞은 제도를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15세기에 탄생한 특허권제도는 21세기의 경제제도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하루속히 특허권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만큼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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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베이커 Dean Baker 경제학자. 워싱턴 CEPR(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 공동대표.

번역 |  정기헌 guyheon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