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어민으로 산다는 것
지중해는 예로부터 가자지구 주민에게 중요한 곳이었다. 수십 년 전부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인한 부담을 견딜 수 있게 도와준 끝없는 수평선. 그러나 바다를 의지해 살아온 어민들에게 최근의 지중해는 위험과 좌절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어민들에게 허용하는 조업구역이 1993년 이래 급격히 줄어들었다. 오슬로협정에 의해 20해리(1해리=1.8km)로 규정된 조업 구역은 안보 문제를 이유로 점차 제한됐다. 조업 제한은 무기 밀매입 및 불법 이주를 막기 위한 대책이었는데, 근래에는 예전만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지 않다. 2002년 12해리였던 조업구역이 2006년에는 6해리로 줄었고, 2008년 12월부터 2009년 1월까지 있은 '캐스트 레드 작전'(Operation Cast Lead) 수행 이후에 현재 한계선인 3해리까지 축소됐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어긴 채 현재 조정 구역의 85%에 대한 접근을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1)
'3해리로는 부족하다.' 가자지구 항만 당국의 허가가 있어야만 가까스로 접근이 가능한 항구의 입구 쪽 벽을 장식하고 있는 그라피티 내용이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했고 유일하게 아직까지 개방된 이 항구에는 2008∼2009년 이스라엘 폭격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 재건 중인 이 항구는 거대한 콘크리트 부교와 행정사무소를 대신하는 몇몇 조립식 건축물, 고기잡이 장비를 보관하기 위한 양철 가건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부 아미라(45)는 그물을 끌어올릴 만한 나이가 되자마자 아버지를 돕기 위해 바다로 나섰다. 가자지구에서 고기잡이는 가족사업이다. 매일 밤 그와 동행하는 네 아들이 언젠가는 하사카스(가족 소득의 유일한 원천이 되는 소형 보트)를 물려받게 될 것이다. 아부 아미라는 대다수의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이스라엘 해군과의 대립을 신경 쓰지 않는다. "이스라엘 해군이 쓰는 수법은 어선 주변을 돌면서 우리를 전복시키려 하거나 엔진을 조준 사격해 파괴시키려는 것이다. 지난번에는 우리에게 옷을 벗고 자기들한테 헤엄쳐 오라고 했다. 그러고는 수갑을 채우고 아시돗(가자지구 북쪽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한 도시)으로 끌고 가서는 심문을 했다." 보통 장비를 빼앗긴 채 10여 시간이 지난 뒤 풀려나는 이들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횡포를 묘사하는 비슷한 사례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바다에 합류하는 물 한 방울처럼 말이다.
우리는 새벽 1시께 바다로 나갔다. 어획 허용량이 급감함에 따라 아부 아미라도 다른 어부들과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집어등 기술을 사용한다. 아부 아미라는 저녁 6시께 바다로 나가 집어등을 장착한 보트 두어 대를 정박해두고 밤이 되면 한 배를 타는 팀원들과 함께 바다로 돌아간다. 인공 불빛과 일출의 햇빛을 혼동하는 물고기들을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그러나 곧바로 문제에 봉착한다. 이 지역은 오염 정도가 심각해 해파리가 떼로 몰려와 소형 보트의 그물이 상당히 무거워져서 배 위로 들어 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배의 권양기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그물 안 쓰레기를 비울 방법을 찾아내려면 2시간 정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바다에서의 시간은 제한돼 있다. 해가 뜨면 집어등 근처에 모여 있던 물고기들이 흩어져버리기 때문에 그 전에 그물을 모두 끌어올려야 한다.
이런 오염 상태는 이스라엘 해상봉쇄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OCHA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폐기물 처리시설의 수입을 막는 이스라엘의 제한 조치로 인해 매일 9천만ℓ의 폐기물이 직접 바다에 버려진다. 따라서 3해리 바깥쪽으로 그물을 치는 것이 금지된 어부들은 어획량이 제한적이고 심하게 오염된 이 구역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한구역 밖으로 100m만 나가면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항상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2011년 7월과 2012년 4월 사이에 체포 60건, 부상 12건, 설비 파손 또는 압수 20건을 포함해 약 150건이 이스라엘 해군과 대치 상황에서 발생했다. 그래도 사망 사건까지 수차례 발생했던 몇 년 전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이날 밤에는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음에도 비교적 두둑히 생선으로 채워진 배를 끌고 이른 아침에 돌아왔다. 고기잡이 팀은 만족스러운지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었군. 언제든 다시 돌아오게." 아부 아미라의 어선은 하루 밤새 그물을 쳐 도합 일곱 상자의 물고기를 잡아 가장 많은 물고기를 잡은 배가 되었다. 이들이 잡은 물고기는 모두 합해 500셰켈(약 100유로)쯤 된다. 이 돈을 고기잡이 팀원들이 나눠가져야 하는데 여기서 고기를 잡기 위해 들어간 제반 비용을 뺀다. 들인 노력과 시간, 자재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결과인 셈이다.
항구로 돌아온 고기잡이 팀은 즉흥적으로 둘러앉아 바비큐 파티를 연다. 갑자기 멀리서 몇 차례 폭음이 들려온다.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지 않다. "이보게, 우린 말이지 저런 소리를 너무 자주 들어서 이제 귀에 들어오지도 않네. 여기서는 일상이야. 바다에서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고개를 돌려야 한다면 미쳐버릴걸세. 그렇게 되면 살 수 없을 거야. 우리는 살아야 한다네."
사는 걸까, 살아남는 걸까?
*
글 | 조안 데아스 Joan Dea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 | 김혜경
(1) ‘Five years of blockade-The humanitarian situation in the Gaza strip,’ OCHA OPT, www.ochaopt.org, 2012년 6월 예루살렘.
(2) ‘Israeli authorities’ violations against the Palestinian fishermen-Gaza strip’, www.euromid.org/marsad, 2012년 5월 제네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