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공격에 연날리기로 맞서는 인도 농민들

대책없는 농업개방에 농민들의 분노 폭발

2024-05-31     코므 바스탱 | 기자

3년 전, 농업 분야 개방 반대 시위를 했던 펀자브 농민들이 시위를 재개했다. 당시 농민 시위는 성공적이었음에도, 인도의 밀 곡창지대 농민들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드론의 공격에 연으로 대항한다. 시위대에 최루탄을 투하하는 드론을 연으로 막는다. 수천 명의 농민들이 목숨을 걸고, 도시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친 거대한 경찰 조직력과 대치한다. 시위대의 결의와 기지를 보여준 이 장면은 2월 중순, 수도 뉴델리의 인근에서 벌어진 일이다. 2020~2021년 인도를 집어삼켰던 농민 시위대가 귀환했다. 근대화 이후 인도에서 이토록 큰 규모의 시위가 일어난 적은 없었다.(1) 농민 시위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선거 운동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4년 전, 펀자브 농민들은 농업 분야 개방에 반대하여 봉기했다. 쌀과 밀의 최저가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에 전국의 농민들이 합류했다. 모디 총리의 인도국민당(BJP)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우타르 프라데시 주, 하리아나 주 농민들도 시위대에 합류했다. 농민들은 뉴델리를 평화적이지만 집요하게 포위했다. 겨울의 추위도, 코로나 바이러스도, 경찰의 곤봉도 그들이 가는 길을 막지 못했다. 시위대의 물결은 조금씩 수도를 점령하며, 식품 공급과 조직을 담당하는 ‘자치 공화국’으로 가는 입구를 열었다.

계층과 계급을 넘어, 부유하거나 가난한 지주들, 가족농들, 농장 노동자들이 전부 집결했다. 시위의 규모가 커지고 조직화되면서 새로운 요구사항이 추가되었다. 밀과 쌀 이외의 다른 작물에도 최저가 보장제를 확대하는 것이다. 오랜 기간 농민들이 요구해 온 곡물 최저가 보장제는 2014년 모디 후보가 처음 총리로 당선될 당시의 선거공약이었다. 시위대는 또 자신들을 기소하지 않을 것과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는 농민에 대한 지원 대책을 요구했다.

 

“시위, 이것만이 정부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방법”

강력한 대응으로 유명하고, 패배를 인정할 줄 모르는 모디 총리이지만, 2021년 말 그는 끝내 고개를 숙였다. 그는 거대한 시위대의 결집이 흩어지리라는 기대 속에, 농업 분야의 개방 계획을 중단했다. 모디의 도박대로, 11월 한 달 동안 농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모디 총리는 농업 개혁 법안을 철회했다. 그렇지만 재 속에서는 여전히 불꽃이 은은히 타고 있었다. 시위대의 관점에서 보면, 2024년은 농민 시위의 제2막인 셈이다.

모디 총리에게 시위는 재선의 골칫거리이다. 그는 시위대의 수도 점거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래서 펀자브와 하리아나 주 사이의 경계선에 시위가 집중되었다. 이곳은 ‘폭도들’에게서 뉴델리를 방어하는 성벽인 셈이다. 그러나 총리는 경찰이 너무 폭력적으로 진압하도록 허용하지는 않았다. 인도의 정치계에서는 농업계 인물을 정중히 대한다. 게다가 인도국민당(BJP)의 지지자도 아니고, 야당 지지자도 아닌 유권자들이 총리를 몰아낼 구실을 찾도록 만드는 것을 피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스트롱맨’이라는 그의 이미지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균형을 유지하며 대응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시위대에 대한 여론의 신뢰를 추락시키기 위해, 먼저 펀자브의 농민들을 독립주의자 혹은 테러리스트로 만들려 했다. 사실 시위대 대부분은 힌두교도가 아니라 시크교도이다. 그러나 수십 년 전부터 자치권이나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시크교도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계략은 통하지 않았다.

중상모략을 당하고,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당하고, 수백 명이 체포되었음에도,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3월 초, 시위대가 펀자브의 철로를 가로막자 십여 편의 기차 운행이 중단되었다. “우리도 기차 선로 위에 앉아 있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정부가 우리의 요구에 대해서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이것만이 정부를 듣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펀자브 농민노동자투쟁위원회(punjab Kisan Mazdoor Sangharsh)의 사르완 싱 팬더 사무총장은 설명했다.

 

“농민들의 상황은 임계점에 도달했다”

2021년 농업개혁은 유보되었지만, 펀자브 농민들의 분노는 진정되지 않았다. 대규모 경작지가 있는 펀자브 농민들의 형편은 다른 지역보다 조금 낫다. 이러한 상황 또한 정부가 약속한 농업 모델의 경제적, 환경적 난관을 보여준다. 지난해 9월, 농민노동자(Kisan Marzoor)조합의 칸와르 달립 회장의 요구로 암리차르 시 인근 철로 봉쇄가 재개되었다. 터번과 긴 수염으로 유명한 시크교도 농민 백여 명은 뉴델리까지 기차 선로 위에 걸터앉아, 양탄자와 국기를 펼쳐놓았다.

“농민들의 상황은 임계점에 도달했다. 펀자브 농민들은 지하수층을 고갈시키는 쌀과 밀 경작에 묶여 있다”라고 칸와르 달립 회장은 설명했다. 그는 2021년에 시작된 전투는 끝나지 않았으며, 자신의 요구를 정부가 무시하는 걸 보니, 문 앞에서 가로막힌 계획들을 창문으로 다시 도입하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감시를 늦추면, 다른 형태로 우회해서 개방을 재시도할까 걱정된다. 그리고 쌀과 밀 이외의 다른 작물에도 최저가 보장을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만 고갈된 토양을 재생시킬 수 있다.”

인도 정부는 1960년대 두 개의 강으로 둘러싸인, 매우 편편하고 비옥한 펀자브의 토지 위에 다량의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며 개량 종자를 심는 대규모 계획을 시작했다. 그 유명한 ‘녹색 혁명’은 곡물 생산을 활성화했다. 덕분에 인도는 1980년대부터 곡물 수출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 토양이 고갈되면서 이 모델은 수명을 다했다. 펀자브 농업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1998~2018년 사이 인도의 저수량은 매해 1m씩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푸른 금인 물을 찾기 위해서는 30미터가 넘도록 깊이 땅을 파야만 한다. 

“밀의 계절은 끝났다. 나는 쌀을 심을 예정이다”라고 푸룬 싱은 설명했다. 그는 파키스탄 국경 인근에서 15헥타르 규모의 농지를 경작하고 있다. “헥타르 당, 420유로어치의 비료와 농약을 사야 한다. 그러면 3000kg를 수확하고, 약 750유로를 번다. 그런데 거기에 기계 유지비, 토지 임대료, 아이들 학비 등 다른 추가 비용도 많이 든다. 우리는 겨우 먹고 살기는 하지만 통장은 텅 비어있다” 수확한 농산물은 가격마저 불안정하다.

이렇게 불안정한 재정 균형은 아주 작은 돌발 상황에도 깨진다. 일례로 작년 여름 펀자브 남부 지방에 홍수가 일어나자 재정 균형이 깨졌다. 가난한 농민들은 다음 계절에 쓸 종자와 화학제품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만 한다. 누적된 대출로 인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농부 발루르 싱은 “5년 전, 나는 대출을 갚기 위해서 토지 1헥타르를 팔아야 했다. 수확은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는 토지를 저당 잡혔고, 곧 압류될 것이다. 나처럼 수많은 농민이 빚을 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년간 자살한 농민이 최소 9,000명에 이른다. 그리고 88%의 농민은 심각한 빚에 시달리고 있다.

 

뉴델리 점거에 나선 시위대

인도 곡창지대의 광활한 녹색 벌판을 가로질러 달리다 보면, 가끔 진한 연기가 빽빽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볼 수 있다. 짚을 태운 연기이다. 벼농사에서 밀 농사로 바꿀 때, 농민들은 짚을 태운다. 이러한 농법은 심각한 대기 오염을 유발한다. 농부들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밭에 농약을 뿌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비소 같은 화학물질이 암 유발의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건강에 대한 타격, 과도한 부채, 환경 훼손 등. 농민들은 생산성 제일주의를 중단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농업유산임무(Kheti Virasat Mission)같은 NGO 단체들의 주도로 펀자브에서는 친환경 농업으로의 변화가 조금 생겼다.

농업유산임무(Kheti Virasat Mission)의 우멘드라 더트 회장은 “어디서 재배하나? 어떤 종자를 사야 하나? 어떤 성분을 뿌려야 하나? 이익을 창출하는 시장이 모든 걸 결정한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종자 중심의 농업에서 토양 중심의 농업으로 바뀌어야 하고, 조와 같은 새로운 곡류를 도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가장 가난한 노동자와 지주들을 위한 키르티 카잔(Kirti Kazan) 조합의 라진더 싱 대변인은 농업 문제를 정치 문제로 만들고, 국가 차원에서 다루게 만드는 것 이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농업의 변화는 매우 힘들 것이다. 친환경 농업으로 전환하거나 생산 작물을 다양화하면, 여러 해 동안 생산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모델을 바꾸기 위해서는 재정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라고 단언했다.

2024년 2월, 그는 뉴델리를 점거하기 위해서 조합과 함께 시위대에 합류했다.

 

 

글·코므 바스탱 Côme Bastin 
기자. 인도에 주재하며 <Radio France Internationale>, <Mediapart>, <Ouest-France> 등에 환경, 보건, 정치 관련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번역·김영란
번역위원


(1) Joël Cabalion, Delphine Thivet, ‘Révolte sans précédent des paysans indiens 인도 농민들의 전례 없는 시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