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땅, 두 개의 나라 그리고 밀수 경제

인도-방글라데시 국경지대의 삶

2012-08-13     엘리자베스 러시

25년의 노력 끝에, 인도는 올해 방글라데시와의 국경 문제를 마무리할 참이다. 3286km에 이르는 이 장벽은 세계에서 가장 긴 지정학적 국경이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민족주의의 업적인 이 장벽의 단속이 잘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 공통어, 가축, 마늘, 사리(인도의 전통 여성 의복), 향료, 기침약, 취사도구, 4천 년 된 벵골의 역사 등 수많은 것들이 이 장벽을 넘나들고 있다.

서부 벵골이 인도다. 멀리 국경을 따라 걷고 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한 사람은 흰옷 차림이고, 다른 사람은 오렌지색 옷을 입었다. 앞장서 걷던 사람이 서둘러 제방 아래로 내려가 뒷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이들은, 둘이서 함께, 물이 허리춤까지 닿는 작은 도랑의 보랏빛 수중 히아신스 사이를 점벙거리며 걷는다. 500m쯤 걷자, 이들의 왼쪽에 문제의 국경 구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을 붉은 빛으로 물들인 석양뿐이다. 두 명의 작은 실루엣이 비탈진 흙길을 기어오르고 있는 게 멀리 보인다. 이윽고 이들은 국경을 넘어, 맞은쪽 국가의 습곡 속으로 사라졌다. 이들이 국경을 한 번 넘는 데 소요되는 총비용은 5천~1만 루피(7~14유로)에 달한다.(1) 모든 것은 매수한 국경 수비대원과의 친밀도에 달렸다.

우리를 안내한 순(2)은 대추야자나무를 가리키며 뒤쪽이 방글라데시라고 했다. 청년의 미소가 그의 섬세한 윤곽을 환하게 비추었다. "나는 두 나라가 훤히 보이는 이곳에 사는 게 좋다."

하지만 순이 말하는 두 번째 나라는 1947년까지만 해도 인도 영토였다. 1947년, 영국은 종교적인 기준에 따라 무슬림과 비무슬림 지역으로 이 지역을 양분했다. 영국은 서둘러 국경을 정하고, 이전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지역의 한복판에 국경선을 그었다. 문화적·경제적으로 원래 한 지역이었던 인도 벵골이 불공정한 방식으로 서부 벵골(여전히 인도에 편입돼 있다)과 동부 파키스탄으로 나뉜 것이다. 지금 인도는 세계 강대국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데 반해, 방글라데시는 이제야 겨우 기반을 잡고 정치·사회적 부패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막대한 비용, 미미한 효과

지난 25년 동안, 인도의 뉴델리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선을 구축하는 데 수십억 달러를 투입했다. 매년 인도 내무부는 국경 관리와 국방 프로그램 책임자에게 13억 달러의 추경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비용만큼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인도 내무부는 국경을 방글라데시를 막기 위한 현대판 만리장성처럼 소개한다. 하지만 현실은 공식적인 이미지(만리장성의 이미지)와는 거의 무관하다. 숱한 이야기를 낳고 있는 국경의 대부분 구간은 듬성듬성한 막사 사이에 설치한 철조망 몇 줄이 전부다. 국경은 주기적으로 끊어졌다가 한참을 가야 다시 이어져 있어 그 사이로 모든 것이 들어가고 나오고 있다. 양국 사이에 위치한 황무지에 농사를 짓는 농부, 난민, 인신매매에 희생된 여성과 아이 등이 있고 그 틈새로 인도와 방글라데시 간 공식 무역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밀수품이 드나들고 있다. 국경은 침투하기도 쉽고, 융통성도 있고, 구멍도 송송 뚫렸다. 이것은 필요가 법을 만들고, 땅의 현실(농부는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이 필요하다는 현실)이 민족주의 정책과 이 정책이 만들어내는 잘못된 정체성을 비웃고 있음을 명징하게 보여준다는 방증이다.

인도가 본격적으로 국경 '단속'에 나선 것은 극우 민족주의 정당인 바라티야자나타정당(BJP)이 정권을 잡으면서다. 1986년, 인도 국회는 불법 무슬림 이민자들이 지역의 종교적 균형을 깰까 우려하는 아삼 지역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국경 강화 법안을 비준했다. BJP는 국경 강화 프로젝트에 할당된 초기 예산을 상당히 삭감해, 1989년 국경 건설에 착수했다. 이후 BJP는 방글라데시 인도 이민자 수를 조작하고, 이슬람 침략의 위협을 호도하며, 인도인들을 대동단결시켜 총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BJP는 민족주의 열풍을 자극하기 위해 '방글라데시 이슬람', 실업 그리고 인도 테러공격을 한데 묶어 선거전에 이용했다. 9·11 테러 이후 국제적 차원에서 '테러와의 전쟁'이 펼쳐지자, 뉴델리의 국가 안보 책임자들은 이스라엘과 미국 같은 강대국들이 국가 안보를 위해 이 유명한 철조망을 건설했다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인도는 이제 자국의 국경 덕분에,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에 편입됐다.

우리가 인도인들에게 국경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들은 예상한 대로 공포심에서 비롯된 숱한 민족주의적 발언을 쏟아냈다. 이민자들이 우리 일자리를 뺏어갈 것이다, 난민들이 그렇지 않아도 허약한 지역의 종교적·민족적 균형을 깰 것이다, 국제 테러리스트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뭄바이에서 자살테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방글라데시를 후방 거점으로 이용할 것이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국경 뒤쪽에 있는 인도가 BJP의 분열과 9·11 테러를 촉발한 위협에서 과연 안전할까?

국경을 따라 뻗은 도로 양쪽에 초가집들이 늘어서 있다. 300m마다 새로운 초소가 설치돼 있고, 어깨에 엽총을 멘 군복 차림의 국경수비대원 한 명이 초소를 지키고 있다. 인도국경수비대(BSF) 요원은 24만 명에 달한다. 반세기 전 서류상으로 정한 국경을 지키기 위해 3천km에 걸쳐 국경수비대 캠프가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25년 전 BSF에 징집된 수비대원 싱은 "개미새끼 한 마리도, 그 어떤 물건도 국경선을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주민들의 주장은 전혀 딴판이다. 서부 벵골의 작은 국경 마을, 라골라의 한 가축상인은 '라골라 주민의 약 80%가 국경무역에 직간접적으로 관계돼 있다'고 추정했다.

열대지방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세상이 솟아난다. 갑자기 도로에서 나지막한 나막신 소리가 들린다. 나무 그늘에서 실루엣들이 뛰쳐나오며, 등불로 오솔길을 밝힌다. 매일 저녁 즉석에서 인간띠가 형성되고, 수십 혹은 수백 명이 수백만 달러어치의 밀수품을 방글라데시까지 운반한다. 대부분의 수비대원들은 자신의 맡은 바 임무인 국경 수비를 소홀히 함으로써 막대한 이득을 챙기고 있다.

인도 국경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여러 번 상을 받은 벵골 출신의 영화감독 수프리요 센은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헤어진 두 형제와 같다. 이들은 애증관계에 놓여 있다"고 했다. 한 세기 전 벵골은 인도 문화의 부흥과 현대 인도의 정체성을 형성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 지역의 이같은 지식과 농업의 번영은 두 형제의 보완성을 기반으로 했다. 식민지의 수도 콜카타의 산업체들은 오늘날 우리가 방글라데시라고 부르는 충적토에서 난 원료를 가져와 가공했다. 그런데 벵골이 양분되자 서부의 농부들은 단지 원료의 판로뿐만 아니라, 원료를 완제품으로 가공해 상품화할 수 있는 길까지 막혀버렸다. 황마로 가방을 만들고 목화로 실을 짜던 공장들이 국경선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벵골이 양분된 이후, 서부 신인도벵골(1947년 당시 명칭)은 또 다른 종류의 문제에 직면했다. 기근이 콜카타를 강타한 것이다. 뉴델리는 '녹색혁명'을 시작했다. 비하르 및 하리아나, 펀자브, 우타르프라데시 주(州) 등에 관개수로를 건설했다. 서부 신인도벵골은 북부 지방을 밀 곡창지대로 탈바꿈시켰다. 서부 벵골은 벵골이 양분되며 부지불식간에 입었던 손실을 이런 식(녹색혁명)으로 만회하며 자국의 산업발전에 지속적인 박차를 가한 것이다.

방글라데시에선 공식 수입의 18%가 인도산인 데 반해, 인도에선 수입품 중 방글라데시산은 고작 0.01%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옛 동부 파키스탄(방글라데시) 또한 자신의 특산물이 있다. 그중 하나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유추해 생각할 수 있는 것과 달리, 황마나 목화가 아니라 이른바 '무수(無水)암모니아'로 불리는 독성 비료다. 그러나 인도는 전세계로 의류와 섬유산업에 필요한 원료를 수출하고 있음에도, 방글라데시에선 거의 아무것도 구입하지 않고 있다.

방글라데시로 넘어가는 소들의 행렬

방글라데시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국경 반대쪽에 있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의 국가 산업 중 하나가 가죽산업인데, 이 산업에 쓰이는 가죽은 대부분 인도산이다. 인도의 대다수 지역이 종교적 원칙에 따라 법으로 가축의 도축과 수출을 금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매일같이 수만 마리의 가축이 산 채로 방글라데시로 유입되고 있다. 쿨나(방글라데시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의 비정부기구(NGO) '루판타르 통신'의 사장 에산 아미날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밀수는 국가(방글라데시)의 두 번째 산업이다. 물론 인도에도 밀매매가 있지만 우리가 사고, 팔고, 먹는 모든 것의 절반이 밀매매인 이곳만큼은 아니다."

인도 쪽에서는 산 가축 무역이 금지돼 있는 데 반해, 무슬림 땅인 방글라데시에 당도한 인도 소는 불법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방글라데시에 당도하면 500타카(Taka·방글라데시 화폐단위, 약 5유로)만 지불하면 그만이다. 시골 골짜기의 목동부터 다카의 가죽 장인에 이르기까지 극빈층한테 가축은 목숨과도 같다. 또한 우리는 '방글라데시산' 소를 세계 전역에서 접한다. 두바이와 아부다비에선 스테이크 형태로, 파리에선 명품 가죽제품으로, 미국에선 위조된 이탈리아산 부츠로.

현지 이슬람 학교의 교장 코르반 우딘은 인근 강둑의 짓밟힌 풀을 가리키며 말했다. "동물들이 이곳으로 지나간다. 사람들은 소를 10~15마리씩 끈으로 묶어,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가르는 작은 강으로 소들을 밀어넣은 다음 그들과 함께 헤엄쳐 반대쪽 강둑으로 건넌다. 소들은 그곳에서 정상적으로 취급된다." 벵골(방글라데시)엔 가축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도 접근 지역에서 가축을 수입하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에서 소는 현지 소값보다 3만2천 타카나 비싸고, 도축이 금지된 인도 지방보다는 대략 6배 비싼 가격인 4만 타카(약 390유로)에 팔린다.

접경 마을 라골라는 국경 길이가 28km에 이르지만 그중 7km 구간만 철책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허술해 가축이 아무 문제 없이 통과하고 있다. 현지 소장수 롬준은 말한다. "물잔을 철책에 대고 철책을 자르면 소리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맞은쪽으로 건너간다. 국경을 건너는 일은 어렵지 않다. 철책이 있든 없든 그건 중요치 않다. 돈으로 만만한 경비를 매수하면 된다."

라골라 사방에 소 천지다. 군데군데 철조망이 설치된 강 맞은쪽에 위치한 라지샤히에서 소 장사는 오랜 관습이다. 많은 국경마을에는 이른바 '하트'(Haat)라는 우시장이 설치돼 있는데, 이곳에서 엄청난 수의 소가 거래되고 있다. 라지샤히 '시티 하트'(시에서 운영하는 우시장)에선 매일 3천 두의 소가 거래되고, 이슬람 축제 이드(Eid)를 한 달 앞둔 시점에선 이보다 4배 많은 소들이 거래되고 있다.

아타이크 라만은 매년 수백만 타카를 정부에 지급함으로써 시티 하트 운영권을 양도받았다. 그가 이 소중한 시장 운영권을 따내기 위해 몇몇 경쟁자를 제거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이 소 거래에 관한 불법 조치로 인한 위법 소득이기에, 전국 기관에서 폭력과 부패의 사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 한 마리가 거래될 때마다 하트는 공식적으로 3%의 수수료를 떼고 있다. 매주 3천 마리가 거래되는 것을 감안하면 그 액수가 엄청나다. 그래서 방글라데시인들은 이 시장을 '노다지'라 부른다. 하지만 이 도시 사람들은 라만에게 이 시장이 방글라데시 우시장에서 자신의 지배적 위치를 굳히는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2011년 10월, 라지샤히에서 사람이 붐비는 강둑 중 한 곳에서 차파티(효모를 쓰지 않은 인도 밀빵)를 팔던 누를 이슬람은 인도에서 방글라데시로 반입되는 소의 수를 파악하기로 마음먹었다. "난 소 장사로 외국인들이 막대한 돈을 챙기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들은 라지샤히에서 돈을 벌어 재산을 축적했다." 그는 현지 마피아 '대부'가 게이탈(Gheital·정부가 파견한 강둑 관세 관리인)과 짜고 강 선착장을 통해 가축을 밀반입시키고 있다며 분노했다. 대부는 현지에서 고용한 인력을 인도로 보내 가축을 사들인 뒤, 국경수비대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가축을 반입하고 있었다.

가장 큰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이 돈은 가장 적게 버는 이런 시스템에 혐오감을 느낀 이슬람은 친구 에샤멜과 함께 강둑에 '불법' 검문소를 하나 설치했다. 이들은 검문소를 지나는 소마다 관세를 정말 냈는지 영수증을 확인했다. "이드 축제 바로 직전이었다. 그날 당일에만 4천 마리의 소가 반입됐고, 이 중 겨우 절반만이 합법적인 반입이었다. 우리가 부패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이 길(관세 지급 영수증 점검)밖에 없었다." 가축이 위조된 관세 지급 영수증으로 공식 관세보다 5배나 싸게 반입되고 있었다. 현지 마피아는 게이탈을 뇌물로 매수해, 그가 한눈 파는 사이에 위조 영수증을 하트에서 회수해갔다. 라만은 이같은 우시장이 탐이 나서 운영권을 따내기 위해 돈을 퍼부었고,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어쩌면 피를 뿌렸을 것이다.

만연한 공직 범죄와 부패

마피아들이 누를 이슬람과 그 친구의 노력을 수포로 돌리고 라지샤히의 우시장 소거래를 장악하는 데는 채 2주가 걸리지 않았다. 이슬람이 우리에게 말했다. "어깨들이 들이닥쳐 에샤멜을 강 복판에 위치한 섬으로 끌고 갔다. 이들은 에샤멜의 손과 다리를 부러뜨렸다. 뇌물을 받은 경찰은 나 몰라라 했다. 뱃사공이던 에샤멜은 이제 노를 젓을 수도, 걸을 수도 없다." 이슬람의 시선이 강과 두 국가 간에 있는 섬, 친구가 구타당한 그곳, 밤이 되면 수천 마리의 소가 건너갈 그곳에 꽂혔다.

방글라데시에선 아무 데나 돌을 던져도 밀반입된 물건에 맞는다. 여성의 전통 결혼 의상인 예쁜 사리부터 소량의 커민(향신료의 일종)과 1인분에 해당하는 고루부나(벵골식 카레밥)까지 다 불법으로 반입되고 있다. 거대한 네트워크가 밀반입된 물품을 보호하고 있기에 국가는 밀매매에 의존하고 있다. 암시장의 돈이 위에서 아래까지 모든 사회계층에 침투돼 있어, 암시장의 돈 없이는 국가 발전의 기회가 타격 입을 지경이 됐다. 이슬람 사건에선 경찰뿐만 아니라 사법부도 공범이었다. 에샤멜을 구타한 장본인인 우시장의 마피아 대부, 키누 미아는 에샤멜에게 "할 말이 있다"며 사법부가 발행한 구인장을 들고 와 그를 끌고 갔다. 그는 심지어 라지샤히시 경찰서에서 에샤멜에게 이런 말까지 했다. "넌 송사리에 불과하고, 난 대어다. 네 분수를 지켜라. 그렇지 않으면 널 갈가리 찢어 네 주검을 도로에 흩뿌릴 것이다." 에샤멜이 구타당했을 때, 현지 언론들은 이를 기사로 다루지도 않았다.

국제사면위원회와 제휴해 불법 유혈 사태(재판 없이 자행되는 처형)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콜카타의 한 기관인 마섬(Masum)재단에 따르면,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국경 지역은 밀거래가 거의 관습화됐음에도, 어쩌면 그래서일 수도 있겠지만 세계 최대 유혈 지역 중 한곳인 것으로 드러났다.

마섬재단의 소장 키리티 로이는 15명 정도의 사람들이 매일 고문을 당하고, 2000년 이후 1천 명 넘는 사람들이 경비대원들에게 살해됐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인 이같은 폭력을 구멍이 송송 뚫린 지역에서 질서유지를 하다 보면 생기는 '부수적인 피해'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이런 폭력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녔다. 밀거래엔 수십억 달러의 돈이 걸려 있고, 경비대원들이 깊숙이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인도 27개 주에서 파견된 수비대원들은 인도가 어쩌면 가장 소중하게 여길 수도 있는 장벽을 지키고 있다. 로이는 "BSF 대원들이 벵골어를 하지 못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파견근무 기간이 3개월에서 1년으로 너무 짧아, 이들에겐 벵골 사회와 친숙해질 기회도 없다. 국경지대에선 매춘이 성행하고 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모두 가릴 것 없이 이 여성들에겐 BSF 대원들이 가장 큰 단골이다. 지난 1월 방글라데시 언론이 일부 BSF 대원들이 한 대원을 공개적으로 발가벗긴 뒤 여성과 강제로 성관계를 시킨 동영상에 대해 1면에 보도하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 최근 인도법은 BSF 대원들에게 조준사격을 금지했지만, 이들의 면책특권은 그대로 유지했다. 올 들어 방글라데시인 5명이 사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짜증, 인종차별주의, 남성우월주의, 줘야 할 뇌물을 깜빡하고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력(사망) 사건이 발생한다.

방글라데시국경수비대(BGB)보다 모든 업무에서 더 유연하고, 덜 잔인하고, 덜 중요한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BSF가 국경 지역의 불법 파행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BSF 대원들은 국경수비대원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 돈을 지불한 자다. 왜냐하면 국경을 통제한다는 것은 돈이 되는 통행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의 국경도시 베나폴에 위치한 국내 최대의 강 선착장에 근무하는 세관원은 "델리나 다카에 근무 중인 사병이나 장교들은 하나같이 모두 '돈벌이로 유명한' 이 지역으로 파견되기 위해 협상을 벌인다"고 했다.

"허술한 국경선, 그게 돈이다"

그래서 상품과 사람의 흐름을 통제하는 수비대원들의 무력시위와 허세도 커지고 있다. 에산은 이를 두고 "대단한 코미디!"라며 탄식하듯 말했다. "사실 수비대원들은 아무것도 막고 싶은 생각이 없다. 폭력에 노출된 절망에 찬 사람들이 양쪽(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 협공을 당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들의 불행을 용납할 수 없다." 국경은 과대망상증에 걸린 국가의 주체할 수 없는 강력한 상상력에서 비롯된 물리적 시위에 불과하다. 인도가 지난 50년 동안 매력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겨우 이 철책을 쌓기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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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러시 Elizabeth Rush 사진가.

번역 | 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 7대학 불문학박사로 알리랑스 프랑세즈에서 강의중.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1) 기본 일당이 115루피다.
(2) 우리가 만난 사람 중 일부는 익명을 썼다.


거대한 강에 둑 쌓기

갠지스강과 브라마푸트라 삼각주는 지구상에서 가장 비옥한 지역 중 하나다. 인도는 동부 파키스탄과 분할될 때 자신의 충적토 3분의 2를 상실했다. 인도는 분할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비하르 및 하리아나, 펀자브, 우타르프라데시주 등에 관개수로를 건설했다. 요즘 이 관개수로 프로그램이 갠지스 강물을 있는 대로 다 끌어다 쓰며 갠지스강 하류의 모든 경작지에 참혹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북쪽으로 8km만 가면 파라카댐이 있다. 이 댐은 25년 전부터 서부 벵골의 수도 콜카타 항구에서 모래를 퍼내기 위해 거대한 갠지스 강물의 물꼬 대부분을 후글리강 쪽으로 우회시켰다. 갠지스강 상류의 물소비량을 과소평가한 이런 돌발적인 관개수로 프로젝트는 지하수층을 고갈시키고 방글라데시 남서쪽 대부분 지역의 염분 농도를 높여놨다. 1972년 출범한 인도·방글라데시 댐 공동 위원회(Joint Rivers Commission)에 따르면, 인도의 관개수로와 파라카댐 건설 이후 갠지스강의 수량이 절반가량 준 것으로 밝혀졌다.

관개수로 건설과 갠지스강 하류의 물꼬를 우회시킨 것이 단지 방글라데시의 가용 물량만 감소시킨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기대와 달리, 강 상류의 범람과 제방침식도 가져왔다. 왜냐하면 역동적인 힘을 지닌 물이 부족해 강 유역을 깊이 팔 수 있을 정도의 빠른 유속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여파로 강줄기를 종잡을 수 없어 파괴적으로 변했다.

일각에서는 제방침식이 정부의 부패 다음으로 큰 국가적 재앙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전국이 제방침식 피해로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인구밀도와 낮은 지형 때문에 방글라데시는 뜻밖의 물난리에 무척 민감하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가 자금을 지원하는 아시아 및 근동의 관개수로 지원프로젝트 연구기관(ISPAN)은 해마다 대략 7만 명의 주민이 갠지스·브라마푸트라 분지를 어쩔 수 없이 등지고 있는 걸로 추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인도로 떠나고 있다.

15살의 파하룰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토지도 안정적이고 기회도 많은 인도로 갈 것이다." 지난해 홍수로 그녀가 살던 마을은 두 동강이 나고, 600여 가구가 강물에 잠겼다. 강물이 빠졌을 때, 마을 전체가 모래로 뒤덮여 비옥했던 토지가 황폐화됐다. 이제 알라톨리 지역의 농부들은 렌즈콩 농사밖에 지을 수 없는 새로 개척한 자신들의 손바닥만 한 땅에 가려면 모래사막을 건너야 한다. 벌써 두 번씩이나 침수 피해를 본 적 있는 한 동네 주민은 "이것이 파라카댐의 잘못"이라고 했다.

방글라데시를 흐르는 59개 강줄기 중 54개가 인도를 먼저 거친다. 게다가 인도가 거대한 수력발전 프로젝트를 세우고 있어 국경에서 1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4개의 주요 하천에 물 공급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지하수 재충전 전문 수리학자인 초우드허리 사르와르 자한은 "방글라데시는 물이고, 물이 방글라데시다. 인도 바라크강에서 이뤄지는 티파이무크댐 건설은 파라카댐만큼이나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난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될까 염려된다"고 했다. 파라카댐 건설 때도 그랬듯, 인도는 이번 티파이무크댐 건설에 대해서도 이웃 나라에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