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신(新)빈곤층의 치솟는 분노지수
프랑스 정부는 긴축 조치를 추가로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 통계에 따르면 난방비, 식비, 자동차 유지비 등의 일상적인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브르타뉴 지방을 취재하면서 특히 시골과 교외 지역이 이러한 상황으로 얼마나 큰 타격을 입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2024년 1월 어느 추운 토요일 아침, 피니스테르주(州) 생레낭의 쇼핑센터에서 만난 크리스틴 플로슈는 대형 할인점 악시옹(Action)에 “두세 가지 물건”을 사러 가던 중이었다. 주차장에서 마주친 그녀는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말했다.
“EDF(프랑스전력공사) 애플리케이션으로 매일 전력 소비량을 확인하는데, 가만있자! 이런… 아직 이번 달 20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지난달 한 달 치 요금이 되다니…”
프로슈는 화가 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집어넣은 후 언 손을 비볐다.
“2월에 10% 또 인상한다고?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 올릴 작정인가? 우리한테 에너지 절약을 운운하지만 실내 온도를 난방 제한 온도인 19°C보다 더 낮게 맞춰놓고 산 지가 언제부터인데! 19°C까지 난방할 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하루 세끼 챙겨 먹지 못하는 사람들 많아”
19°C는 누군가에게는 절약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치를 상징하는 온도가 됐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딸과 함께 살다가 지금은 혼자 지내고 있다. 그런데 전기요금은 두 배로 늘었다.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가?” 플로슈는 난방 설정 온도를 더 낮추고, 스웨터를 더 여러 개 껴입고, 세탁기 돌리는 횟수를 더 줄일 것이다.
60대의 가정방문 요양보호사인 플로슈는 “머리를 잘 써야 한다”며 “가족이 함께 사는 집들은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돌보는 노인들의 경우 “방 한 칸만 난방을 하는 경우가 많다”. 생레낭 이웃 마을의 고용지원센터 상담사 상드린 페르키는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노인의 수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제만 해도 급등한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본 70대 부부가 일자리를 문의하러 왔다. 최저 노령연금(1,012유로) 수령자 중에는 식비를 최대한 줄여 더 이상 하루 세끼를 챙겨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이곳 같은 시골에서는 주민 대부분이 난방이 잘되지 않는 노후 주택에 살고 있는데 보수를 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 에너지가 새는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다.”
“모든 게 다 올랐다!” 빈곤층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 스쿠르 포퓔레르(Secours populaire) 브레스트 지점에서 식료품 꾸러미를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던 60대의 연금수령자 조지안은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파트 임대료, 보험료, 전기 및 전화 요금을 내고 나면 조지안에게 남는 생활비는 거의 없다. 커다란 낡은 코트를 몸에 걸치고 모자를 눈썹까지 눌러쓴 채 목도리까지 치켜 둘러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은 그녀는 “16살 때부터 판매직과 유지·보수직에서 일했다. 지금 내가 받는 연금은 최저 노령연금보다 적은 월 907유로다.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불공평하다!”라고 하소연했다.
28개의 지점을 두고 있는 스쿠르 포퓔레르 피니스테르주(州) 지부의 바스티앵 카방 대표는 컴퓨터를 보며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버티기 힘든 연금수령자, 근로 빈곤층, 가난한 대학생 늘어나
“올해 1월 1일 이후 브레스트 지점에 접수된 신규 지원 요청은 750건(한 건당 1~12인용 식료품 지원)에 달한다. 2023년, 스쿠르 포퓔레르 피니스테르주(州) 지부는 2022년 대비 27% 증가한 2만 6,239명을 지원했다.”
지원 대상자 중에는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왔지만 더 이상은 힘든” 연금수령자, 한 부모 가정, 근로 빈곤층, 학생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공대생 다비드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스쿠르 포퓔레르의 유니폼인 파란색 조끼를 입은 한 자원봉사자가 상황별 수령 가능한 지원 물품 수량이 적힌 표를 들여다봤다. 이 자원봉사자는 각종 상자와 병이 정리된 선반 앞을 지나며 다비드에게 “우유 두 팩을 받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카트에 담도록 다비드에게 우유를 건네며 설명을 이어갔다.
“예전에는 1인당 3팩 미만으로 준 적이 없다. 하지만 기부받는 식료품은 점점 줄어들고, 지원 대상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육류, 생선, 과일, 야채 등 필수 식자재뿐만 아니라 기호 식품까지 모두 구비하려 애쓰고 있지만 점점 더 빠듯하다. 조금씩이나마 모두에게 돌아가려면 수량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매월 점점 더 가벼워지는 장바구니를 들고 다비드는 2km 떨어진 대학 기숙사 원룸으로 돌아갔다. 스쿠르 포퓔레르에서 받아온 식료품은 일주일 안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 다비드는 다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서(西)브르타뉴대학 과학기술학부 건물 1층에 있는 작은 사무실 앞에 줄을 설 것이다. 연대 식료품점 아고라에(Agoraé)는 특정 사회적 기준에 맞는 학생들이 할인된 가격으로 식료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약 400명의 학생들이 오후 4시 30분에서
6시 30분 사이 이곳에 몰려든다. 아고라에를 찾는 학생 수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아고라에 책임자 중 한 명인 마틸드 자우앵은 “일단 지금은 찾아오는 학생들을 다 받고 있지만 물품 구비량이 빠듯해지기 시작했다. 몇 년 후에는 이용 학생 수를 제한해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우려했다. 코미디언 콜뤼슈가 설립한 마음의 식당(Restos du Coeur),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스쿠르 카톨리크(Secour Catholique)와 같은 자선단체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다시 스쿠르 포퓔레르의 상황을 살펴보자. 자원봉사자들은 오전 배급이 끝나면 오후 2시 30분 배급을 재개하기 전에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다. 오전 배급의 마지막 수령자인 뮈리엘은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카트를 밀고 가며 “지난해 11월 이후 오랜만에 다시 왔다”라고 변명하듯 말했다. 카트에 실린 식료품을 차 트렁크에 옮겨 담으며 그녀의 남편이 설명했다. “연휴 동안 지출이 많아서 지금 꽤나 힘든 상황이다. 우리는 세 자녀가 있다. 우리야 없이 살 수 있지만 아이들은… 게다가 아이들은 여전히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고 있다…” 뮈리엘은 “우리 아이들이 다른 집 아이들과 다르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취재 중 만난 많은 이들은 모두 “그저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꿈꾸었다.
조지안에게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이란 손자들을 레스토랑에 데려가 생일을 축하해 줄 수 있는 것을 뜻한다. 그녀는 손자들의 이번 생일 점심때 브레스트의 서민지구 르쿠브랑스에 있는 레스토랑 ‘라캉토슈(La Cantoche)’에서 달걀 스크램블, 크림과 버섯 소스의 칠면조 에스칼로프, 초콜릿 케이크를 먹었다. 라캉토슈는 고객들의 소득에 맞춰 저렴한 가격에 단일 메뉴를 제공하는 연대 식당이다. 디저트가 나오자 조명이 어두워졌다. 다른 손님들도 생일축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손자들이 촛불을 끄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배불리 먹고 기분이 좋아진 손자들은 입안에 든 초콜릿 케이크를 삼키지도 않은 채 “할머니 고마워요!”라고 외쳤다.
자녀 수학여행비 낼 돈 없어 대출받기도
플로슈는 새해 전야 파티를 생략했다. 크리스마스를 형편에 과분할 정도로 “근사하게” 보냈기 때문이다.
“좀 과하게 기분을 냈지만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형편에 넘치게 쇼핑카트를 끌고 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 사람들 모두 빚을 졌을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스 해소도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온통 돈 생각뿐이다. 매일 은행 잔고를 확인하며 월말에 너무 큰 적자가 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주(州)사회보장센터(CDAS) 소속 사회복지사 파트리크 G.는 “과도한 대출에 허덕이는 이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매우 적은 금액일지라도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경제활동자로 적극적 연대소득(RSA) 수령자가 아니다. RSA 수령자들은 대출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파산을 면하기 위해 마치 곡예사처럼 끊임없이 소득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느라 고심한다. “이들은 매달 지출이 수입을 넘지 않도록 애를 쓴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 조금이라도 발생하면 마이너스를 기록한다.”
예를 들어 가전제품이 고장 나거나 자녀가 수학여행을 못가 창피해하지 않도록 수학여행비를 내기 위해 소액 대출을 받는 경우 등을 말한다.
“가계 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이들이지만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점차 나락에 빠질 수밖에 없다!”
솔렌이 좋은 예다. 자동차 타이밍 벨트가 망가진 이후 그녀의 삶은 완전히 곤두박질쳤다.
“나는 활동 보조인이다. 자동차가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다.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그녀는 별거 후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느라 매장 매니저 일을 그만두고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자영업자를 선택했다.
“내야 할 요금이 산더미인데 3주라도 일을 못한다면…”
“하지만 차 때문에 일을 못 한 후 오히려 더 바빠졌다. 정오가 되면 애들을 데리러 학교에 간다. 더 이상 학교 급식비를 낼 형편이 안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식료품 지원 덕분에 어느 정도 괜찮은 음식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애들을 학교에 다시 데려다줘야 하고 일주일에 3번은 딸을 정신과에 데려가야 한다. 딸이 지금 상황 때문에 힘들어하고 학교에 가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녀가 살고 있는 바닷가 마을 플루달메조에서 30여 km 떨어진) 가장 가까운 대도시 브레스트에 가는 버스는 아침·저녁 등하교 시간에 맞춰 각각 한 차례 운행할 뿐이다. 어떻게 하란 말인가?”
사회복지사 파트리크 G.도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사람들은 지원금 수령자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두 손 놓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항상 바로 집 근처에 일자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정말 심각한 문제다. 차가 있어도 날이 갈수록 더 치솟는 비용을 감당해야 하고 차가 없으면 집에 갇혀 살아야 한다.”
상드린 페르키는 버스가 다니지 않는 랑리보아레 마을의 고용지원센터 내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곳에서 부족한 것은 일자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곳에는 비닐하우스, 건축 현장, 요식업, 농식품 가공공장이 있고 고용 회전율도 매우 높다. 대부분 기간제나 계절제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시간제 일자리도 많다. 가사보조인으로 여기서 2시간, 저기서 10시간 일하는 식으로 시간을 채울 수 있다.”
로제는 20년 넘게 임시직으로 일했다. “이것저것 따지지만 않으면 된다… 야채 통조림 공장, 도축장, 동물사료 공장, 분유 공장 등 나는 이곳의 모든 공장에서 일했다. 지금은 골판지 공장에 다니고 있다.”
카르에에서 4km 떨어진 곳에 있는 오래된 농가를 개조한 집 거실에서 우리를 만난 로제는 연이어 커피를 들이켰다. 그의 근무 시간은 또 변경됐다. “오늘은 오후 1시에 시작한다. 지난주에는 야간 근무를 했다. 깨어있는 시간이 변하면 힘들다. 커피를 많이 마실 수밖에 없다. 약물을 복용하며 버티는 이들도 있다. 나는 카페인으로 버틴다!” 매주 목요일마다 정해지는 근무 일정표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일을 할 수 있는 노동력은 많다. 우리는 대체 가능한 인력이다. 회사는 이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근무 일정표에 불만을 표시하면 다시 채용하지 않겠다거나 3주간 정직시키겠다고 위협한다. 대출도 갚아야 하고 내야 할 요금이 산더미인데 3주간 일을 못 한다고 상상해 보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2015년부터 카르에의 분유 제조 공장 시뉘트라에서 일한 에블린 르 게른은 이러한 시스템이 고용주에게만 이로운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더 나은 보수 때문에 임시직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은 경우 팔과 등이 아파서 정규직을 선호할 뿐이다.”
2014년 마린 하베스트 크리트센 훈제연어 공장이 폴란드로 이전하면서 해고당한 르 게른은 “다시는 일을 안한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막 문을 연 시뉘트라에서 일자리를 제안받았다. 시뉘트라에서 일하기 위해 나는 수학, 프랑스어 교육을 400시간 이수하고 낙농 분야에 대해 배워야 했다. 당시 나는 47살이었고 학교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재취업센터가 강하게 권고했다. 당시 우리는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년도 4억 유로의 이익을 냈던 공장의 폐쇄를 막기 위해 투쟁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13년 동안 일해서 주주들만 살찌웠구나’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지원금은 줄어들고, 신청 절차는 더 복잡해져
공장 이전으로 해고당한 직원 중 3명이 자살했다. 나머지는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고용 부적격자’로 전락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완전히 망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르 게른을 정말 화나게 하는 것은 “지원금을 받는 이들”이다. “내 어머니는 38살의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 수료증을 취득하고 카르에 병원 식당에 취직했다. 당시 어머니가 얼마나 비참했을지 생각해 보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지원금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침부터 일어나 개처럼 일해도 쥐꼬리만 한 월급을 손에 쥐는 우리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단 한 푼도 말이다! 은퇴한 내 어머니는 연금으로 요양원(Ehpad) 비용도 감당하지 못해 내가 대출을 받아 도와드려야 하는 지경인데… 정작 충치를 치료하지 못하고 방치하는 이들은 일하는 사람들이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치료비를 지원받는다!”
사회복지사 파르리크 G.의 의견은 달랐다. “사람들은 하루하루 겨우 먹고산다. 지원금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지원금 액수가 너무 줄어들었고 수령 절차가 너무 복잡해져서 ‘지원금 수령’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어졌다. 청구서 낼 돈을 벌기 위해 매춘을 시작한 어머니도 봤다. 가족의 집세를 내기 위해 마약 거래 보초를 서거나 하급 마약 딜러로 일하는 아이들도 봤다. 지원금에 희망을 거는 사람이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공공지원금 수령 조건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소득만으로 생계유지가 힘들어 지원금에 의존하는 사람이 점점 더 늘고 있다. 파트리크 G.는 “내가 사회복지사로 일하기 시작한 1985년에만 해도 지원금을 신청하는 급여 생활자는 거의 없었다”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때는 임금 수준이 꽤 괜찮았다. 지금은 저임금 노동자가 많다. 지원금이 너무 높은 것이 아니라 급여가 너무 낮은 것이다.”
사회복지사 카린 L.도 이에 동의했다. “모든 일자리가 취약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고용청(France Travail) 직원 중 다수가 갱신이 보장되지 않으며, 직업 교육도 제공되지 않는 6개월 계약직이다. 어떻게 이들이 다른 누군가의 일자리를 효율적으로 찾아줄 수 있겠는가?”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가정방문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플로슈의 딸은 이러한 상황의 피해자다. 플로슈는 “딸이 담당하던 할아버지가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다”라고 설명했다. 플로슈의 딸은 요양보호사 파견 에이전시에서 일했었다. 하지만 압박감을 견디기 힘들었다.
“에이전시는 스마트폰으로 우리를 추적해 우리가 고객 집에서 너무 오랜 시간 머물지 않는지 감시했다. 이러한 행태는 돌봄을 받는 사람을 ‘대상화’하도록 강요한다.”
“고용청 담당 직원을 만날 수 없어 미칠 노릇!”
딸과 플로슈는 결국 고용청에 “실업급여 신청서를 접수”했다. 하지만 자영업자 신분의 요양보호사라는 이유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었다. 플로슈는 딸 걱정에 절망감을 토로했다. “고용청은 몇 주에 걸쳐 우리를 이 부서, 저 부서로 떠넘겼다. 한번은 렌의 상담관이 전화를 받더니 다음번에는 브레스트의 상담관이 전화를 받았다. 누가 내 딸의 담당자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고용청도 모르긴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전화나 인터넷으로 이루어진다. 담당자를 직접 대면할 수 없으니 미칠 노릇이다!”
상드린 페르키 역시 불만을 토로했다. “모든 것이 전자화됐다. 더 이상 직접 대화를 할 수 있는 담당자가 없다. 많은 이들이 헤맨다. 비단 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보화가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1) 은퇴를 몇 달 앞둔 파트리크 G.는 환멸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업무 시간의 70~80%가 대면 서비스에 할애됐다. 지금은 20~30%에 불과하다. 나머지 시간은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신청서류를 검토하는데 할애된다. 마치 최저 지원금 수령자 대부분이 사기꾼인 것처럼 말이다.”
2023년 말, 정부는 적극적 연대소득(RSA)을 개혁했다. 파트리크 G.는 “더 이상 지원금을 줄 수 없다고 하니 사람들에게 노동청에 문의해서 시간당 최저임금도 못 받고,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형편없는 일(2)이라도 하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한탄했다.
많은 잠재적 수혜자가 자신의 권리를 모르고 있거나 신청을 포기하는 동안 의심과 강압이 만연하고 있다. 2022년, RSA 수령 대상 가구 중 1/5은 RSA를 신청하지 않았다.(3)
스쿠르 포퓔레르 피니스테르주(州) 지부의 바스티앵 카방 대표는 “당국은 연락이 되지 않거나 수속을 복잡하게 만들어 단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를 도울 여력이 없다.”
“국가에 의무를 상기시켜야 한다”
공공복지 영역도 외주화되는 추세다. 카린 L.은 “이제 사람들을 민간 서비스 업체에 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99개의 지점을 보유한 핌스 메디아시옹(Pimms Médiation)이 일례다. 우체국, 케올리스(Keolis), 프랑스전력공사(EDF), 프랑스철도공사(SNCF), 에네디스(Enedis), 쉬에즈(Suez), 베올리아(Veolia), 엔지(Engie), 추가 연금보험사 말라코프 위마니스(Malakoff Humanis)가 출자한 핌스 메디아시옹은 “공공 서비스 및 사회권 접근성 개선”을 위해 ‘파트너 기업’의 청구서 납부, 주거 지원금(APL) 신청, 세금신고 등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카린 L.은 “EDF가 출자한 곳이 EDF 청구서 납부에 대한 조언을 제공한다고 상상해 보라! 말이 되는 일인가!”라고 분개했다.
4년 전, 프랑스 정부는 “공공 서비스 근접성 강화”를 위해 ‘프랑스 서비스(Frnace Services)’ 사무소 개설 사업을 펼쳤다. 몽 다레 산맥의 작은 마을 플루네우르메네즈 시장 세바스티앵 마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0년 전에는 우리 마을에도 우체국이 있었다. 지금은 우편취급국만 있기 때문에 시청 직원들로 꾸려나가야 한다. 예전에는 10분 거리에 있는 플레베르크리스트에 세무서가 있었지만 지금은 30분 거리에 있는 모르레까지 가야 한다. 8개의 외진 마을이 공동으로 프랑스 서비스 순회 사무소를 유치했다. 매주 수요일 프랑스 서비스 직원 1명이 시청에 파견돼 세금, 연금, 사회보장 등 10여 가지 공공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주민들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용한 것은 인터넷 수속에 익숙하지 않은 주민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 시청은 마을회관으로 변했다. 이는 지자체의 정치적 의지에 따라 마을마다 엄청난 차이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프랑스 서비스 사무소 운영 재원은 대부분 시청이 책임진다. 즉, 학교 유지·보수나 공공주택 건설에 할애해야 할 경우 예산이 투입되는 것이다. 기 페네크 플루랭레스모르레 시장은 “시가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도록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국가의 역할, 중요성 그리고 무엇보다 의무를 상기시켜야 한다”라고 개탄했다.
“정부는 모호한 단어로 사람들을 속이려 한다”
카르에의 주민들은 실제로 국가를 상대로 행동에 나섰다. 2023년 10월 27일, 카르에 병원은 정부와 야간 응급실 운영 재개 및 외과·산부인과 유지 합의서를 체결했다. <프랑스 앵포(France Info)>에 출연한 크리스티앵 트로아데크 카르에 시장은 “이제 카르에 병원은 공공 병원으로의 지위를 온전히 인정받았다”라고 자찬했다.
아니 르 귀앵 카르에 병원 수호 위원회장은 의사 부족을 이유로 2023년 7월 초 도입된 응급 서비스 ‘규제’ 중단을 요구하기 위해 카르에 주민들이 2023년 9월을 비롯해 수차례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설명했다.
“정부는 모호한 단어를 사용해 사람들을 속이려 한다. 우리 지역이 겪은 현실은 규제가 아니라 중단이었다. 정부는 응급실 입구에 전화기를 설치해서 응급실이 문을 닫은 경우 주차장에서 휴대폰 신호를 잡느라 애쓰는 대신 이 전화기를 이용해 응급 전화번호인 15번을 누를 수 있게 한 것뿐이다. 전화가 연결되더라도 어느 병원으로 갈 수 있는지 알려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결과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졌다. 그냥 집에 돌아갔다가 건강이 악화된 사람도 있고, 한 시간이나 운전해 다른 병원을 찾아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도 즉각적인 치료를 받지 못했다. 그곳 역시 포화상태였기 때문이다.”
마티외 기유모 카르에 병원 감시 위원회 대변인은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모두가 운전면허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아버지나 딸이 브레스트나 모르레 병원에 입원해 있다면 퇴근 후 병문안을 갈 수 있겠는가?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싸웠다. 지역 보건청(ARS) 사무실도 점거했다. 수천 명이 시위에 동참한 끝에 우리는 결국 승리했다. 결국 정부가 한발 양보했지만 이 모든 과정은 상처, 심지어 증오를 남겼다.
빨간 모자 대변인, “엘리트들의 경멸하는 눈길을 참을 수 없다”
우리가 산부인과 폐쇄반대 운동을 벌였을 때, 파리·일드프랑스 대학병원연합(AP-HP)의 요직을 거쳐 부임한 브레스트-카르에 대학병원장은 ‘프랑스령 기아나의 산모가 출산을 하려면 3일간 나룻배를 저어가야 하지만 브르타뉴 중부에 거주하는 산모는 1시간만 운전하면 산부인과에 도달할 수 있다’라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2013년 ‘빨간 모자’ 운동 대변인 중 한 명으로 활동한 레스토랑 사장 기유모는 “엘리트들의 경멸하는 눈길을 참을 수 없다”라고 분개했다.(4) 르 게른 역시 빨간 모자 운동에 활발히 참여했었다.
“당시 나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공장 폐쇄로 위협받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은 환경세 철회를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았다. 미디어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빨간 모자 운동을 폄하했지만 사실 이 운동은 그저 민중이 목소리를 낸 것일 뿐이었다. 우리는 청구서를 낼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우리는 여가 시간도 없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쓸 여유가 없다. 언젠가는 이 힘든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빨간 모자 운동을 계기로 정치에 발을 담근 그녀는 현재 신(新)반자본주의당(NPA)에서 활동 중이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형성했다. 공장에서는 인력 교체가 잦고 임시직 노동자가 많아 서로 잘 모르고 대화를 나눌 기회도 없다. 요즘은 투쟁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온몸이 아프고 일하느라 녹초가 되면 주말 동안 시위에 참여해 최루가스 세례를 받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노란 조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플로슈는 “사람들은 체념하고 있다. 모두 자신의 문제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우리는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 줄에서 추락하지 않으려 온갖 애를 쓰고 있다. 파업이나 시위에 참여하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파트리크 G.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들은 여전히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무엇이 도화선 역할을 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불이 붙을 것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빨간 모자 운동이 있었고, 노란 조끼 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최루탄을 쏘며 시위를 진압했다. 연금 개혁이 실시되자 수백만 명의 사람이 거리로 나섰다. 우리는 이들에게 그저 ‘어쩔 수 없어’라고 말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는 새로운 실업급여 개혁을 “책임지고” 추진하겠다고 했다.(<르몽드>, 2024년 4월 5일) 2023년 5월 5일, 당시 공공재정부 장관이었던 가브리엘 아탈은 <BFM>에 출연해 곧 “힘든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가 말한 결정이란 정부 구성원 누구도 자신의 친지에게 권하지 않을 일자리를 취약 계층에게 강요하기 위해 실업급여 수령 기간을 추가로 단축하고, 수령 자격을 추가로 제한하고, 지급 심사를 추가로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아탈 총리에게 이러한 조치들이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수탈을 ‘책임’지겠다는 용기가 얼마나 가상한지 가늠할 수 없을 뿐이다.
글·마엘 마리에트 Maëlle Mariett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Simon Arrambourou, ‘Les déshumanisateurs 소외와 자살을 부추기는 공공 서비스의 디지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4년 4월호.
(2) Cf. Julien Brygo & Olivier Cyran, 『Boulots de merde! 형편없는 일자리』
(3) Patrick Cingolani, 『La Précarité 불안정』,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aris, 2023.
(4) Jean-Arnault Dérens & Laurent Geslin, ‘Malaise français, colère bretonne 사회당과 결별한 브르타뉴 좌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