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을 위해 존재하는 국제 중재 기관

2024-05-31     뱅상 아르풀레 외

다국적 기업이 국제 중재 제도를 이용해 국가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이 제도 앞에서 국가의 법과 헌법은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자본의 원활한 이동을 장려한다는 구실로 대부분의 양자투자협정(BIT)은 불투명한 규칙과 관행을 지닌 이런 민간 사법 시스템을 포함시킨다.

 

국제 유가가 폭등하던 시기,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임기(2007~2017) 시작과 동시에 자국에서 생산되는 원유 생산량 중 국가에 귀속되는 비율을 50%에서 99%로 늘렸다. 에콰도르 국회가 이를 80%로 제한하긴 했지만, 에콰도르 정부와 계약을 맺고 원유를 개발·생산하던 다국적 기업 페렌코(Perenco)는 이 비율이 과도하게 높다고 판단했다. 페렌코는 이 같은 조처를 ‘간접수용’이라 비난하며 세계은행 산하 중재 전문 ‘법정’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했다.(1) 페렌코의 모기업은 조세 회피처인 바하마에 있지만, 기업 본사는 프랑스의 수도에 위치하는 점을 근거로, 페렌코는 1994년 프랑스와 에콰도르 사이에 체결한 양자투자협정을 내세우며 에콰도르에 배상금 14억 2,000만 달러(약 1조 9천억 원)를 요구했다. 2008년 에콰도르 국내총생산(GDP)의 2.2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국제 중재로 큰 곤욕을 치른 에콰도르

코레아 대통령은 이 제도를 비난하며 에콰도르를 ICSID에서 탈퇴시켰다. 코레아 대통령이 선거 공약의 하나로 2008년에 채택한 헌법 제422항은, 에콰도르 정부가 “자주적 관할권을 국제 중재 기관에” 양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2) 코레아 대통령은 긴 시간에 걸쳐 자국이 체결한 양자투자협정들을 재검토했고, 결국 협정들을 연달아 폐기했다. 프랑스와 체결한 BIT는 2017년 폐기되었다. 그러나 BIT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생존 조항’에 따르면,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제도(ISDS)는 협정 폐기 후 10년에서 20년까지 적용될 수 있는데, 프랑스와 에콰도르 간 협정의 경우 15년이었다. 2021년, 결국 페렌코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에콰도르에서는 보수주의파 기예르모 라소 대통령이 에콰도르를 ICSID에 재가입시켰고, ICSID가 부과했던 벌금 4억 달러를 에콰도르는 성실히 납부했다.

페렌코가 에콰도르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사적 이익이 국가의 주권을 짓밟는 수백 건의 상황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일례로, 2009년에는 스웨덴의 에너지 기업 바텐팔(Vattenfall)이 독일 정부에 14억 달러를 요구한 일이 있었다. 독일 함부르크시가 엘베강을 오염시키는 석탄화력발전소 운영을 금지해 기업 활동의 ‘수익성이 사라졌다’는 이유였다. 2022년 미국 기업 프로스페라(Prospera)는 온두라스 새 정권이 로아탄섬에 조성된 특별 경제구역에 대한 특혜 관련법을 폐기하자, 온두라스 국가 예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00억 8,000만 달러(약 13조 5,000억 원)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2001~2002년 금융 위기의 영향으로 수도 및 전기 요금을 동결했던 아르헨티나 정부는 프랑스의 다국적 에너지 그룹 수에즈(Suez)와 미디어 기업 비방디(Vivendi)를 포함한 여러 기업에 제소당해 2015년, 4억 달러 이상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UN이 인정한 중재 기구 60곳 가운데 하나인 ICSID에 다국적 기업이 제기한 소송 건수는 최근 10년 새 두 배로 늘어, 기구 창설 이래 총 998건을 기록했다.(3) 유엔무역개발기구(UNCTAD)의 추산으로는 현재 132개국이 ISDS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중재는 완전히 기밀로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분쟁 건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4)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제 막 신설된 UN은 적절한 규칙만 확립된다면 국가 간 무역 관계 발전이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유지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중세시대부터 상인 간의 자율적 규범으로 쓰였던 렉스 메르카토리아(lex mercatoria)법은 1966년 UN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의 창설과 함께 현대 국제 상법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법적 구조에서 민간 부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양자 자유무역협정도 증가하고 있다. 이들 협정 중 93%가 ISDS를 포함하고 있는데,(5) 분쟁 해결을 위해 중재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국가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분리된 사적 사법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러한 중재가 국가 법원이 제공하지 못하는 공정성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ICSID와 ISDS의 매서운 칼날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체결됐던 초기 BIT는 서방 국가의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식민주의는 사라지지 않았고 개발도상국들은 계속해서 다국적 기업에 약탈당했다. 30년 후, 선진국에서 양자협정은 더욱 증가했다. 소련 붕괴 후, 신자유주의자들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없다”고 선언한 때였다. 이렇게 두 번째 유형의 식민주의가 시작됐고, 기업들은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공교롭게도 BIT에는 “모든 직접수용 및 간접수용 금지” 또는 “공정하고 평등한 대우”처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모호한 조항들이 포함돼 있다. 국가의 법이 투자에 관한 국제 기준에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들의 이익을 제한하는 조치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주권 원칙마저 무너뜨리는 규정인 셈이다.

이러한 중재 제도에서는 외국 투자자들만이 국가를 고발할 수 있고, 국가는 기업을 고발할 수 없다. 게다가 모든 과정은 비공개로 진행되는데 수년이 걸리는 일도 있다. 대체로 국가들에 불리하게 내려지는 판결에 따른 배상 금액은 공공자본으로 지급된다. 그리고 다국적 기업들이 얻고자 하는 천문학적 금액이 그들의 초기 투자 금액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매우 빈번하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2006년 쿠웨이트 억만장자 나세르 알카라피와 리비아 사이에 벌어졌던 사건이다. 2013년, 중재 법정은 리비아가 알카라피 그룹에 약 10억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쿠웨이트의 사업가는 시작되지도 않은 관광 프로젝트에 500만 달러를 투자했을 뿐이지만 추정 ‘이익 손실’(6) 보상을 명목으로 쉽게 거금을 벌게 된 것이다.

리비아가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자, 알카라피 그룹은 현실판 모노폴리 게임처럼 리비아의 해외 자산을 압류하려 했다. 소시에테제제랄 은행에 예치된 자산, 파리 테른에 위치한 프낙 건물, 페르피냥에 보관 중인 대통령 전용기 등을 말이다. 그러나 2011년 이후 리비아의 해외 자산 대부분이 동결된 상태이고, 프랑스의 국부펀드 보호조치 때문에 이 시도는 지금으로써는 실패다.(7) 하지만 이 사건은 국가가 중재 판결에 저항할 경우 상당한 국제적 압박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중재 시장의 수익성은 매우 높아서, 중재 제도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투자자들을 많이 끌어들인다.

 

이해관계 있는 중재인들의 불공정한 국제 중재

중재 시장은 분쟁을 해결하는 ‘법정’ 구성원들에게도 이득이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서는 분쟁 당사자 양측이 동의할 경우 단 한 명의 중재인 또는 세 명의 중재인(국가가 지정한 중재인, 기업이 지정한 중재인 그리고 이들 두 중재인이 선택한 중재인 대표)에게 중재를 맡긴다. 중재인에게 필요한 공식 자격 요건은 없지만, ICSID에서는 “법률, 무역, 산업 또는 재정 분야에 전문성”을(8)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중재인 대부분이 법관이나 중재 관련 경력을 쌓은 비즈니스 전문 변호사, 기업가 출신이다. 국제법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질 필요가 없고, 투자가 이뤄지는 국가의 헌법과 법률을 고려할 의무도 없다. 이러한 병행 법정에서 국가의 운명은 재정적 이해를 가진 사람들의 손에 달렸다. 중재인들이 받는 보수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사건에 따라 다르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하루에 수천 달러를 받는 경우도 있다. ISDS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한 웹사이트에 따르면 “중재인들은 국가나 그 어떤 사법 기관으로부터 적법성을 부여받지 않았다. 자신들의 결정이나 행동을 대중과 사회에 설명할 의무도 없다. 이들의 결정은 (...) 이의제기 대상도 아니다.”(9)

중재인들은 불투명한 이해관계의 중심에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비방디와 수에즈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제소했던 사건의 중재를 맡았던 가브리엘 코프만콜레르의 경우가 그렇다. 코프만콜레르는 두 기업의 대주주인 스위스 은행 UBS에서 이사직을 수행했지만, 이 사실을 중재 법정에 통보하지 않았다. 이에 아르헨티나는 비방디와 수에즈에 유리했던 그녀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두 기업과 중재인 사이의 이해관계에 대해 여러 기관에 호소했으나 헛수고였다. ICSID 기본규약 58조에 따르면, 중재인에 대한 기피 신청은 중립적인 제3의 기관이 아닌, 같은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나머지 두 명의 중재인에 의해 승인되어야 한다. 이들은 보통 같은 분야에서 활동한다.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부 정치인도 이런 영향을 받는다. 에드가르 테란 전 에콰도르 외무부 장관(1984~1987)은 1986년 ICSID 협정을 비준했다. 그러나 2002년 IBM 그룹은 ICSID에 에콰도르를 제소하면서 테란 전 장관의 법률사무소 ‘테란&테란’을 대리인으로 선임했다.(10) 프랑스에서는 에콰도르가 페렌코에 패소했을 당시 산업 담당 국무장관이었던 아녜스 파니에뤼나셰의 부친과 미성년 자녀들이 페렌코와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후 파니에뤼나셰는 에너지 전환부 장관으로 승진했는데, 다행히 2022년 11월 법령에 따라 파니에뤼나셰 장관은 페렌코 기업과 관련한 일을 다룰 수 없게 됐다.

 

국제 중재 시스템, 기업들의 거부권 행사 도구로

유엔무역개발회의의 자료에 따르면(11), 1987년부터 2021년까지, 분쟁의 38%는 국가를 처벌하지 않는 결정으로 끝났지만(그러나 재정적 보상은 받지 못함), 기업들의 경우 47%가 유리한 결정을 받았다. 실제로, 선고된 판결 중 28%는 기업에 유리한 판결이었고, 19%는 일명 ‘해결’된 사건으로, 합의가 이뤄졌다는 의미다. 그러나 국가들은 중재 위협으로 인해 종종 정당한 이익을 양보하거나, 중재 종료 이후 더 큰 손실을 방지하려고 벌금을 미리 지급하기도 한다. 바텐팔과 독일의 사례가 바로 그런 경우로, 함부르크시는 결국 환경규제를 철회했다. 나머지 15%는 중재가 중단됐거나 판결 없이 종료됐다.

현대의 국제 상법은 전쟁 이후 국제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수립됐지만 결국, 환경이나 위생, 사회 문제에 대한 고려 없이 민간 부문에만 유리한 형태의 덤핑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 영국인 기자 맷 케너드는(12) “국제 중재 시스템은 기업들이 공공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고 심지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 기업들은 그저 중재라는 무기를 내세워 협박하기만 하면 된다. 이제 국제 중재 제도는 정부들의 끊임없는 걱정거리가 됐고, 이 때문에 국민을 위한 정책 수립도 마비될 지경이다.”

많은 국가가 국제 중재 시스템 참여의 효용성에 의문을 갖는다. 이러한 시스템 없이도 문제가 없다는 점을 증명한 국가들도 있다. 지금까지 BIT를 비준한 적 없는 브라질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발전된 산업 구조를 가진 나라다. 브라질은 2002년부터 2016년까지 집권했던 노동당(PT, 좌파)의 주도로, 국가 경제 발전을 보호하기 위해 ISDS를 거부했다. 이것은 국가가 기업들에게 약탈당하는 피해자가 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글·뱅상 아르풀레 Vincent Arpoulet
경제학 박사과정
메리엠 라리비 Meriem Laribi
기자

번역·김자연
번역위원


(1) 다음을 참조할 것. Maude Barlow, Raoul Marc Jennar, ‘Le fléau de l’arbitrage international 국제 중재라는 골칫거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한국어판, 2016년 2월호, Benoît Bréville, Martine Bulard, ‘Des tribunaux pour détrousser les États 국가를 유린하는 다국적 기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6월호, 한국어판, 2014년 7월호.
(2) 제헌 국회, 에콰도르 공화국 헌법, 2008.9.28.
(3) International Centre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ICSID), icsid.worldbank.org
(4)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 (UNCTAD), ‘Total number of known investment treaty cases rises to 1257’, 2023.4.19., unctad.org
(5) Elvire Fabry, Giorgio Garbasso, ‘L’“ISDS” dans le TTIP. Le diable se cache dans les détails’, <Policy Paper>, n° 122, Institut Jacques Delors, Paris-Berlin, 2015.1.13.
(6) Tarek Badawy, ‘The Al-Kharafi v. Libya award and the jurisdictional limits of Egyptian courts’, African Arbitration Association, 24 juillet 2020, afaa.ngo
(7) Cf. Nessim Aït-Kacimi, ‘Le fonds souverain libyen échappe à la saisie de ses actifs en France’, <Les Échos>, Paris, 2022.12.30.
(8) ‘ICSID 협약 및 규정’,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Washington, 2006년 4월, icsid.worldbank.org
(9) Cf. ‘The basics’, ISDS Platform, isds.bilaterals.org
(10) 양자투자협정 및 투자 관련 중재 제도에 관한 시민 종합 감사위원회(CAITISA) 보고서, 2015.
(11) ‘Facts on investor-state arbitrations in 2021: with a special focus on tax-related ISDS cases’, UNCTAD, 2022년 7월, unctad.org
(12) 『Silent Coup: How Corporations Overthrew Democracy』(2023)의 공동 저자. Claire Provost와 공동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