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삶은 '창구'에서 시작된다

2012-08-13     알렉시스 스피르

사회학자 알렉시스 스피르는 프랑스 이민국에 행정직으로 취업해 수개월간 근무하면서 '선별 장치'의 이면을 파헤쳤다. 외국인의 체류를 허가 또는 불허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국가 공무원들은 공식적으로 법을 적용할 뿐이지만 실제로는 규정 해석에서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관공서 창구는 독특한 권력 공간이다. 현대 행정기관들의 일상적 풍경을 이루는 동시에 사용자와 제도 간에 맺어진 지배관계가 구현되는 곳이다. 가족수당본부, 고용청, 사회보장청 등 각종 기관의 창구는 극빈자가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법과 투쟁해야 하는 싸움터다. 이민국에는 기존 관료주의적 지배관계에 여러 가지 악화 요인까지 추가된다. 체류 자격을 신청하러 온 외국인은 온갖 절차 및 규정과 씨름해야 한다. 그러나 기저에 깔린 원리도, 이를 표현한 언어조차 이해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규정 적용 방식에 이의라도 제기하려 들면 아직 거주민 자격을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로막히기 일쑤다. 공무원은 규정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자신의 업무에 기대어 권력을 행사한다.

창구에서 일하든, 서류를 심사하든, 기관장을 맡든 간에 이민자를 관리·감독하는 공무원은 스스로 일종의 권력을 쥐고 있다고 여긴다. 게다가 자기 권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이들을 상대한다는 점 때문에 이런 의식은 한층 강화된다. 아울러 적용해야 할 규정이 모호하다 보니 주관적 판단의 여지가 넓어진다. 이런 현상은 경시청과 영사관 문 앞에 끝없이 늘어선 대기 행렬을 통해 무엇보다 먼저 드러난다. 다른 관공서였다면 밀려드는 민원인들의 대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업무 구조의 조정 방안을 모색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민국의 경우는 다르다. 관료주의적 제약에 외국인들이 스스로 적응해야 한다. 공무원의 물적·인적 자원 부족으로 인한 행정적 파행의 무게를 외국인들에게 전가하려는 듯이 모든 것이 돌아간다. 대기 시간은 일종의 지배 형태를 유지해주는 기본이다. 이런 지배를 외국인들이 얼마나 쉽게 감수하는지는 이들의 신분이나 재산 정도에 따라 다르다. 가령 망명 신청자들은 추위 속에서 수시간씩 벌벌 떨면서 기다린 끝에 겨우 창구에 다다라도 거의 항의를 하지 않는다. 신청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다고 퇴짜를 맞아도 그렇다. 반면 유럽연합(EU) 출신 이주민을 전담하는 사무국은 대기 시간이 훨씬 짧다. 그런데도 신청자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반발한다. 일부는 창구에 찾아와 자신의 서류가 어디까지 처리됐는지 물어보고는 행정 절차가 늦어지는 바람에 하루 근무를 못하게 됐다며 불만을 쏟아낸다.

업무 조정도 권력 행사에 결정적 수단이 된다. 각 직원은 매일 일정 건수의 신청 서류를 의무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일부 직원들은 일과를 일찍 마치기 위해 '쉬운' 서류를 우선적으로 처리한다. 이를테면 체류 자격 갱신은 신규 자격 신청보다 자동적으로 먼저 처리된다. 이런 실무적 노하우는 해당 외국인이 속한 집단의 성격과 특징에 관한 스테레오타입에 연동돼 적용된다. 가령 중국에서 온 망명 신청자들은 직원이 선호하는 부류로 서류를 완벽하게 갖춰오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자들은 서류의 진위를 확인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오로지 자신이 처리한 서류 건수로 업무 역량을 평가받는 관료조직에서 직원들은 그동안 체화한 스테레오타입과 자신에게 부과된 직무상 제약에 크게 영향을 받아 호불호를 형성하게 마련이다(물론 다른 요인들도 있기는 하다).

창구 권력, 손님 지위와 반비례

창구에서 이뤄지는 권력 행사의 두 번째 형태는 외국인 신청자에게 몇 번이고 오라 가라 하면서 최종 결정을 유예하는 직원들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신청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방법이고, 다른 한편으론 아직 신청자에게 불허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으나 의혹은 품고 있다는 것을 넌지시 보여주는 수단이다. 이런 관료주의적 시간 사용 방식은 아무런 항의도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민자 유입을 제한하는 분위기 속에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신청을 실수로 승인하느니 차라리 체류 자격을 부당하게 거부하는 쪽이 속 편하다. 첫 번째 경우에는 일을 단호하게 처리하지 못했다고 상사에게 질책을 당할 우려가 있지만, 두 번째 경우에는 지나치게 엄격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을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이때 행정법원에 소송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사후 진행 상황을 해당 직원이 알게 될 리는 만무하다.

창구 직원들의 권력 행사는 신청 접수 속도를 조절하는 방식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규정 문구를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권한도 있다. 내부 공문에 담긴 지시 사항과 이를 적용하는 실태 간의 괴리는 프랑스의 이민정책 전반에 걸쳐 관찰되지만 최근 들어 심화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영광의 30년'이라 불리는 전후 부흥기에는 이민이 '정치적 문제'로 대두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내부 공문은 행정조직 내에 머물렀다. 즉, 외부로 유출돼 그 내용을 일반인이 알게 되는 일은 없었다. 이들 문건의 기능은 담당 공무원의 관행을 전국적으로 통일시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반부터 이민이 정치적 이슈로 급부상한다. 관련 공문은 대부분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상징적 의미가 있는 일부 문건은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된다. 이를 작성하는 고위 공무원들은 완곡한 표현을 써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도 처하는데 이때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의미를 헤아려 적용하는 것은 중간에 놓인 직원들의 몫이다. 얼핏 보면 단순한 규정 해석 행위가 알고 보면 대놓고 법을 무시하는 처사인 경우도 있다. 제네바 협약에 따르면, 난민 신청자들은 원칙적으로 신원증명 서류를 제출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일부 경시청 직원들은 이런 서류를 요구한다. 이는 난민 신청자가 밟아야 할 절차를 더 까다롭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들을 신원에 따라 효과적으로 배척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민국 직원들은 법적 규정을 반드시 준수해야 할 명령으로 여기기보다 관료 조직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는 제약으로 여기곤 한다. 창구에서 이뤄지는 관계에서 권리라는 것은 부차적, 심지어 종속적 위상을 차지한다.

창구의 가치는 그곳에서 맞이하는 손님들의 지위에 비례한다. 이에 따라 이민 담당 공무원들은 행정조직의 위계 구도에서 밑바닥으로 밀려난다. 이런 형태의 평가절하는 상징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근무환경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체류 자격 신청자를 상대하는 부서에서는 물자와 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하루에도 엄청난 수의 신청서를 처리해야 한다. 외국인을 상대하는 창구는 다른 민원 기관의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경우가 많다. 이런 격리는 건물 안팎의 물리적 풍경에서도 드러난다. 바깥에서는 어두운 새벽부터 긴 줄을 선 신청자들이 서로 부대낄 뿐만 아니라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몸싸움을 하기도 한다. 건물 안에는 정복 차림의 경찰들이 긴장 속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직원들은 조직 내에서 방치되고 희생되고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데, 건물과 장비의 노후한 상태도 여기에 일조한다. 공간은 인원에 비해 너무나 협소하고 업무 도구는 걸핏하면 고장이다. 캐비닛 밖으로 삐져나온 서류들의 모습이야 모든 기관이 똑같다고 쳐도, 어느 이주노동자 관리국은 길가로 난 창문은 열지도 못하게 막혀 있고 실내 환기 장치도 고장난 상태다. 경시청의 또 다른 유사 기관에서는 사무용품이 충분하지 않아 신입 직원들이 창구 업무에 꼭 필요한 물품(가위, 스테이플러, 날짜 스탬프 등)을 빌리러 다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이민국 창구에 대한 차별은 이처럼 외적으로 부당한 대우가 전부는 아니다. 여성이 직원의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은 다른 행정사무기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여성의 자리가 하위직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타 관료조직보다 이곳에서 유독 여성이 소장직까지 오르는 경우가 빈번한 것은 외국인을 상대하는 업무를 낮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민자나 프랑스 해외 영토 출신 직원의 비율도 다른 고급 기관들에 비해 높다. 이는 행정조직 내에서 피지배층에 속하는 이 직원들의 지위와 일맥상통한다. 공장에서 그렇듯, 여기서도 가장 많은 낙인이 찍힌 이들이 온갖 궂은일을 도맡는다. 프랑스로 귀화했거나 해외 영토에서 건너온 직원들의 과도한 비중을 보면 인종차별 비난을 예방하기 위한 포석으로 이들이 이용된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이들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낙인찍혀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이민 업무의 평가절하는 부족한 인력을 충당하고 긴급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상시적으로 많은 임시직 노동자를 채용하는 상황에서 이민 업무를 낮춰보는 현실이 드러난다. 경시청의 외국인 담당 부서에서는 비정규직 비율이 전체의 4분의 1에 이르기도 한다. 수년째 근무 중인 '계약직' 직원도 있고,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뒤 임시로 취업한 대학생이나 청년들도 있다. 기간제 계약을 맺고 최저임금을 받으며 공무원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은 근무환경에 이의를 제기할 자격이 안 된다. 딱히 '스펙'이랄 것을 갖추지 못하고 비정규직으로 근무 중인 이들은 정규직 직원들의 눈에 복합적 의미를 띤다. 정규직에게 국가가 제공하는 보호와 안정성을 비정규직 덕분에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도권 업무 조직에서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낮게 평가되고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확실한 것은 이런 일당백 인력 덕분에 많은 기관들이 넘쳐나는 서류를 그나마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이민 업무 창구의 특수성은 제도 및 행정기관의 다양성으로 치부할 만한 차원을 넘어선다. 행정조직 내에서 평가절하된 직무 위상, 그리고 그 직무에 힘입어 누리는, 타 기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권력, 이 둘 사이의 긴장관계야말로 이민 업무 고유의 특성이다. 그 긴장관계 덕분에 이민업무 직원들은 지배받는 지배자가 된다. 이들은 자신이 상대하는 외국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을 만한 힘이 있다. 그들에게 체류, 취업, 배우자·자녀 등의 가족 초청을 승인하거나 거부할 권한이 있다. 반면 열악한 근무환경에 처해 있고, 물적·인적 자원 부족에 일상적으로 시달리고 있다. 즉, 이민 업무 창구는 뒷전으로 밀려난 채 특별한 권력의 장을 형성한다. 허가증 또는 자격을 신청하기 위해 창구를 찾는 외국인들로부터 순종을 이끌어내려면 이들이 느끼는 법적 지위의 불안감을 볼모로 삼는 게 가장 확실하다. 건물로 들어오는 순간 이들은 자신이 체류 허가를 받을지, 인터뷰 약속을 따낼지, 아니면 출국 명령을 받을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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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시스 스피르 Alexis Spire 사회학자. 저서로 <수용 또는 추방: 이민국 창구에 관한 조사>(레종다지르·파리·2008)가 있다.

번역 | 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 2>(공역·201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