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거대한 전환점

Spécial 오늘의 중국

2012-08-13     마르틴 뷜라르

최근 몇십 년간 중국의 공식 담화를 장식해온 개념은 '안정'과 '조화'였다. 하지만 이제 '중대한 단계'라는 표현이 '안정'과 '조화'를 능가하게 될 것인가?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 3월 5~14일 개최된 중국인민대표대회가 끝난 후 "우리는 중대한 단계에 있다. 성공적인 정치 개혁 없이는 (중략) 우리가 실현한 성과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신화통신>, 베이징 2012년 3월 15일)며 이 표현을 썼다.

며칠 후, 원자바오 총리 후임으로 지명된 리커창 상무부 총리는 아시아의 다보스포럼에 해당하는 보아오포럼에 참석한 중국과 해외의 경제학자, 경영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중국은 중대한 단계에 들어섰으며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이 표현을 되풀이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밝은 미래가 끝나고 이제 불확실성과 눈물의 시대가 온 것이다.

중국 지도자들은 닥쳐올 위험보다는 거둔 성과를 내세우며 경종을 울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중국은 '종이 호랑이'가 아니다. 원자바오 총리가 비관적인 성장 예측을 발표하자 사람들은 놀랐다. 2012년 경제성장률 7.5%라는 수치는 최근 몇십 년간 가장 낮은 수치 중 하나다. 많은 서방 지도자들은 이런 수치에도 만족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1978년 개방을 거치면서 중국을 세계 2위 반열에 올려놓은 개혁 사이클은 이제 끝났다. 과도한 사회 불평등, 심각한 부패, 전지전능한 일당독재의 고급관리들에 의해 확고히 유지되는 체제 등 중국은 기진맥진해 있다. 전환점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18차 중국공산당전국대표대회가 예상보다 더 미묘하게 진행될 것으로 드러나면서, 외적으로 동요되고 내적으로 차분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전환점에 관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10월 공산당전국대표대회에서 중앙정치국 위원 25명 중 17명이 교체되며, 권력의 핵심이랄 수 있는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중 5명이 교체된다. 당은 즉흥적인 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2회를 초과해 연임할 수 없는 후진타오 주석과 총리 후임이 누구인지 알려져 있다. 국가주석과 중국공산당 서기장에는 시진핑(국가부주석)이, 총리에는 리커창(수석 부총리)이 내정돼 있다.

나머지 자리를 두고는 그 어느 때보다 내부적으로 논쟁이 뜨거워 어떤 예측도 하기 힘들다. 보시라이 전 충칭시(주민 3260만 명) 당서기의 몰락이 그 증거다. 백마 탄 기사로 소개되던 보시라이 전 서기는 부패 혐의로 기소됐고, 그의 부인은 영국 사업가 살해 혐의를 받았다. 눈부신 미래가 약속돼 있다고 여기던 한 남자의 파렴치는 과연 더 이상 은폐할 수 없을 정도로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사회적 선택(사회복지 주택 건설, 이주민 권리 개혁 등)과 경제적 선택(몇몇 분야에서 국가 개입 유지)이 그 폭로를 부추겼던 것일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국가의 역할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늘 일당체제의 추종자들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규제 완화 지지자들이 항상 개혁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보시라이 제거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아갈 길을 열어준 것이다.

중국 정부는 세계은행(WB)과 국무원발전연구센터(베이징 근처의 아이디어 연구소)가 함께 펴낸 'China 2030' 보고서에 담긴 변화를 가속화하기 위해 이 기회를 이용한다. 이 보고서는 건강·교육·퇴직과 관계된 공동 지출을 늘리는 동시에 사유화를 강화할 것을 권장한다. 이 학설의 타당성을 검증하려면, 산업 부문에서 2010년 공기업 자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42.4%로 하락(1998년에는 68.8%)하고 고용 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4%로(1998년에는 60.5%) 하락한 점만 보더라도 충분하다. 그 어느 때보다 불평등하고, 공해가 극심하다.

최근 확실히 열의에 차 보이는 원자바오 총리는 엄청난 이익을 올리면서도 중소기업에 대출을 거부하는 '은행의 독점 철폐'를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도 먹혀들지 않았는데 어떻게 중국에서 민간기업과 시설이 이바지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실패한 국제 모델을 채택하기보다는 신용대출 분배(예를 들면 연구와 소비를 장려하는 식)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중국은 세계 무대에서 자국의 입지와 서방국가의 커져가는 비난을 진정시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래서 위안화 절상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2008년 이후 중국의 역동적인 경제 상황에 힘입어 당국은 날개를 달았지만, 부분적으로 외교적 전환점을 망쳐버렸다. 이웃 국가(필리핀·베트남·일본 등)은 미국의 아시아 귀환을 우려했다. 그들 역시 제2의 방안을 모색했던 것이다. 최근 몇 달 동안 중국 지도부는 그들이 선호하던 경제로 선회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와 상징적인 협약을 체결하면서 달러보다 위안 사용을 강화했다. 지나 3월 인도에서 만났을 때 이들은 현장에서 한목소리로 "이란 위기의 모든 단계적 확대와 시리아에서의 군사적 개입"을 경고했다. 현재 중국은 과거 비동맹 운동 시대에 중국이 했던 것처럼 이데올로기 동맹의 수장이 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시아 지정학의 중심 요소, 나아가 세계 지정학의 중심 요소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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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 | 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화사>(2006), <키는 권력이다>(200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