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위기, 실력으로 돌파해야"
부산외국어대학교 유선규 총장
급변하는 세계화 시대에 창의적 교육을 발판으로 대학 위상의 지각 변동을 주도하는 대학이 있다. 한반도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도약을 거듭하고 있는 부산외국어대학교가 그곳이다. 남구 우암동 망망대해가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해있기 때문일까? 현재 이 학교는 시선과 꿈을 담은 세계로의 항해를 계속해나가고 있다.
부산외대가 짧은 기간에 주목받는 대학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은 유선규 총장의 리더십에 힘입은 바 크다. 학교 발전을 위한 총장의 명확한 비전 제시와 솔선수범, 구성원 개개인을 위한 따뜻한 배려가 대학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부산외대는 입학 후 2년 동안 한국에서, 나머지 2년은 해외대학에서 공부하여 졸업 때 2개 학위를 받는 '외국대학과의 복수학위제(일명 2+2제도)의 정착과 재학생의 높은 해외 인턴 및 취업률에 힘입어, 해마다 입학경쟁률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최근 중앙일보가 평가한 대학 국제화 부문에서 전국 4위에 올랐으며, 교육과학기술부의 인문한국지원사업에서도 2007년, 2008년 연이어 지중해지역원과 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가 각각 선정되어 향후 10년간 150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받게 된다. 이는 지방대학으로서는 극히 이례적인 성과로, 서울에 소재한 뭇 대학들로부터 시샘과 견제를 받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저희 대학은 작지만, 세계적인 일류대학으로 성장 중입니다. 그 비결은 낡은 전통이나 인맥에 기대는 '껍데기 학벌'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통하는 '참 실력'에 있습니다. 부산외대에 들어서는 순간 학생들은 더 이상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라, 태평양의 파고를 힘차게 가르는 상어 같은 대어가 될 것입니다."
필자가 만나 들어본 유선규 총장의 교육철학과 비전에는 단호함과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온화한 성품의 유 총장은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대학위기, 세계화, 국제화, 실력과 지성 같은 핵심어를 강조할 때마다 목소리의 톤을 높였다.
다음은 유 총장과의 일문일답.
- 교육행정기관에 40여년 계시다가, 대학의 총장으로 부임하신지 2년이 되어 갑니다. 그 사이에 많은 성과를 내셨는데, 소회는?
"저는 취임사에서 부산외대를 우리나라, 아니 세계 최고의 일류대학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궂은 일은 제가 맡을 것이니 교수님들은 학생 교육과 연구에 전념해주시고, 직원 선생님은 교수와 학생을 가족 같이 지원해달라고 부탁했지요. 실제로, 총장실을 개방하여 대학 구성원 모두와 소통하면서 대학의 비전을 공유했지요. 저를 믿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 대학경영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대학은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책무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각종 의사결정시 우수 학생을 길러내는데 유용한가, 아닌가를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학사 운영, 시설 확보, 예산 집행과 관련된 전 분야에서 '학생 우선'(Student First)이 저의 철학인 셈입니다."
'대학, 혹독하게 공부하는 곳'
- 우리의 대학들이 입학자원 감소, 교육시장 개방 등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혹독한 위기를 맞고 있는데, 이에 대한 처방은?
"미래의 대학은 경쟁력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고, 그 경쟁력은 차별화된 특성화 교육을 통해 강화될 수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부산외대 구성원들은 외국어 교육 및 국제지역학으로 특성화 정책을 더욱 강화해 대학 내 전체 학과 및 학부를 관련성 있게 재편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해 '대학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곳'으로 인식시키고, '학생들을 혹독하게 공부시키는 교수'가 우대받도록 만들고자 합니다. 그것이 부산외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첩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복수학위 협정을 위해 중국의 톈진외국어대학을 방문했는데, 아침 6시30분 도서관에서 많은 학생들이 교수와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부산외대의 면학 분위기도 톈진외대 못지않습니다."
- 총장님 부임 이후 외국대학과의 복수학위제('2+2제도')가 부산외대의 전략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는데, 그 배경과 성과는?
"이 제도는 학생들에게 저렴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부산외대의 2+2제도는 단순한 해외파견이 아닙니다. 교류대학과 교과과정을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고, 또 부산외대에서 2년간 전공과목을 원어로 수강하고 학점을 취득하면 협정대학 이수학점으로 인정해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기존대학들의 2+2제도와는 내용면에서 아주 다릅니다. 학생의 외국대학 등록금은 전액 대학이 부담하며, 학생은 생활비만 부담하면 됩니다. 부산외대는 현재 9개국, 19개 외국대학과 복수학위 협정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들어 영어권 유학 희망학생들의 수요 충족을 위해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등 5개 대학, 퀸즈랜드 대학 등 호주의 3개 대학과 협정을 체결한데 이어, 조만간 영국의 3개 대학과도 협정을 추진 중입니다. 미국 앨라바마주 트로이대학과는 현대자동차 미국공장에 필요한 인력공급을 위해 교육과정을 추가로 협의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호주, 일본,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 7개 국가에서 본교생 110명이 과정을 마쳤고, 외국학생 136명이 부산외대에서 수학했습니다. 2009년 1월 현재 본교생 78명이 해외대학에서, 외국학생 57명이 부산외대에서 2+2과정을 이수하고 있습니다."
'유능한 국제전문 인력 양성'
- 현실적으로, 남학생들의 경우 군입대 문제 등으로 인해 2+2제도의 실효성이 아무래도 제한적일 것 같은데요?
"유능한 국제전문인력 양성의 첩경은 많은 학생들에게 직접 그 나라로 가서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희 대학은 2+2제도 외에도 학생들이 다른 나라에서 1달 또는 1학기 이상 머물면서 수업도 듣고, 현지 문화를 익히고 체험하면서 다양한 사고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오프캠퍼스(Off-campus) 해외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외문화체험은 계획서 제출, 심사를 통해 공개경쟁을 거친 6-8개 팀을 방학 때마다 세계 각지로 파견하는 방식인데, 이들의 체험학습을 학점으로 인정합니다. 물론 자비 어학연수에 대해서도 학점을 인정하지요.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감안해, 재학 중 1년간 해외대학에 수학하는 3+1제도, 본교 1년 수료 후 해외대학에 2년 동안 공부하고 본교에서 다시 1년간 수학하는 1+2+1제도, 그리고 본교 3년 수료 후 해외대학 석사과정으로 진학하는 3+2제도 등을 도입하여, 2+2제도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세계 누비는 인재 양성 '학생 우선'의 교육철학
'2+2' 복수학위제 등 세계19개 대학과 교류
2011년 금정구 남산동 첨단캠퍼스로 이전
- 총장님의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학내 교수진들의 협조가 절대적일 것 같은데요?
"물론, 지금까지 교수들에게 전적으로 위임되어 있는 교과목 개설권이 어느 정도 제한받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학 경쟁력 제고의 핵심은 교육 과정 개혁이며, 교수들의 협조 없이는 어떠한 개혁도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대학에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과정위원회'를 두어 여기에 교과목 개설 또는 폐지 권한을 부여하고, 학생 우선 및 사회의 인력수요에 부응하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한 교수진의 협조아래 학과 이기주의 또는 교수 중심의 교과목 개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011년, 매머드급 새 캠퍼스 이전
- 총장님이 기대하시는 가장 바람직한 부산외대생의 모습은?
"전공 공부 외에도 영어는 물론, 제2외국어 하나 정도는 완벽하게 구사할 줄 알고,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인문·사회과학적 지식도 풍부하면 좋겠습니다. 예컨대, 외국인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몇 살이냐' '그거 얼마냐' 식의 저차원적 대화를 지양해야겠지요. 가슴이 따스한 지성이면 더욱 바람직합니다."
- 오랜 숙원사업이던 부산외대의 성공적인 이전 사업과 관련, 총장님에 대한 학내외 평가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추진력이 돋보인다는군요.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온 오랜 교육행정의 경험이 대학업무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와 부산시, 그리고 지역 사회와 학교 구성원 등 많은 분들의 적극적인 도움에 힘입어, 현재 남구 우암동 캠퍼스를 금정구 남산동 일원으로 이전키로 했습니다. 2011년 3월에 선보일 새 캠퍼스는 총22만4천 평방미터의 부지에 부산을 찾는 외지인 또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잊지 못할 장소로 각인될 수 있도록 웅장하고 세련미를 갖춘 건축물들로 조성될 것입니다. 특히 새 캠퍼스에 '세계문화센터'를 설치해 외국어, 외국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필자는 2시간에 걸친 유 총장과의 대담을 마치면서 "요즘 총장으로서 가장 큰 보람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동안 우수 고등학생들의 유치 홍보를 직접하고 다녔는데, 지난해에 직접 방문한 부산 예문여고에서 105명이나 지원했습니다. 최종 합격한 학생들이 '총장님의 입시설명회를 듣고 부산외대에 지원했다'고 인사할 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유 총장은 68년 공직에 입문해 교육부장관 비서실장, 경기도 부교육감(이사관), 교육인적자원부 공보관 및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뒤, 2007년 3월부터 부산외대 6대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대담 : 이상빈 본지 수석편집위원
지중해지역원·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
인문한국지원사업 대상, 중남미·아랍·아프리카 연구 '메카'
부산외대의 지중해지역원과 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가 2007년, 2008년에 연거푸 교육과학기술부의 인문한국지원사업에 선정되어, 향후 10년간 150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이베로아메리카 연구소의 연구 성과는 중남미 지역 자원 개발, 관광, 기업 진출을 촉진하는 기반 조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또한 7년 전부터 부산외대가 추진해온 중남미 지역 한인 네트워크 구축 사업에도 탄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지중해지역원은 아랍을 중심으로 지중해 연안뿐만 아니라, 자원의 보고인 사하라 사막 아래쪽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국가 자원 외교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평가된다. 뿐만 아니라 근동 북동부의 자원 다량 매장지역인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교류 확대에도 일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