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격전지, 라스베이거스를 가다

2012-08-13     알랑 포플라르, 폴 바니에

네바다주 승리가 오는 11월 6일 미국 대선의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판단되는 가운데, 버락 오바마와 밋 롬니 양 후보가 상상을 초월한 막대한 자금을 이 지역에 쏟아붓고 있다. 네바다주의 주요 도시이자 오락산업의 메카인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모든 것이 정상 궤도를 이탈했다.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이 과도한 도시개발이다. 라스베이거스를 휩쓴 도시개발의 광풍이 개인의 고립을 가중하고 노사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스트립대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7km에 걸쳐 곧게 뻗은 이 대로에는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호텔, 공연장이 빽빽이 밀집돼 있다. 대로를 따라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80분간의 세계일주'를 하고 난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피라미드 모양을 한 룩소르 호텔 맞은쪽에는 엑스칼리버 호텔의 웅장한 성채가 우뚝 솟아 있다. 근처 베네치안 호텔 광장에서는 비발디의 <사계>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호텔 풀장에는 베네치아 총독 궁과 종탑을 재현해놓은 건물들 사이로 뱃사공이 열심히 곤돌라를 젓고 있다. 연인들은 뜨겁게 입을 맞추며 함께 사진을 찍는다. 리알토 다리 위 관광객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아득한 몽상 속에 젖어든다. 그곳에서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는 에펠탑과 개선문을 작게 옮겨놓은 모형 건축물 사이로 파리 호텔이 센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갑자기 잔잔한 강물 위로 잔물결이 일렁인다. 물줄기가 하늘로 시원하게 솟구쳐 오르더니 환상적인 분수쇼를 연출한다. 다른 곳에서는 화산쇼가 펼쳐진다. 화산 분화구가 불기둥을 내뿜으며 용암을 쏟아낸다. 군중의 말소리, 괴성, 환호성이 한데 뒤섞인 시끌벅적한 소음이 광란의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달군다.

'제국주의 공화국'의 판타지 거리

과거 식민제국은 식민지 박람회장을 가르는 중앙대로변에 피식민지 건축 양식으로 전시관을 지어 제국의 위용을 뽐냈다. 그런 식민지박람회장의 중앙대로변처럼 스트립대로도 '제국주의 공화국'(레몽 아롱이 미국을 일컬은 말)의 위용을 과시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스트립대로는 관광객과 차량 행렬로 꽉 막혀 밤낮없이 불야성을 이룬다. 대로에 연결된 얼기설기 얽힌 육교와 지하도가 스트립의 긴 통로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다. 카지노에서 나와 유흥시설로 향하는 사람들은 상점이 줄줄이 이어진 끝없는 터널을 빠져나와 휘황찬란한 불빛과 네온사인이 깜빡이는 스트립대로로 빨려 들어간다. 분사식 방향제가 인공 향을 내뿜는다. 벽에 설치하거나 나무 기둥에 감쪽같이 숨겨놓은 작은 스피커들이 조잘조잘 의미 없는 객설을 쏟아낸다. 연신 '하나님, 미국을 축복하소서'와 같은 애국적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잠시 바에 들러 한숨이라도 돌릴 작정이었다면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술집 카운터에도 어김없이 슬롯머신이 설치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를 가나 라스베이거스에서 은밀히 혼자 딴생각에 빠져들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온갖 장르가 뒤범벅된 이 토털 공연이 쉴 새 없이 관중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며 정신을 몰입시키고 혼을 쏙 빼놓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의 도시 구조는 육체의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강제하며, 개인을 익명의 군중 속에 녹아들도록 만든다.

유흥장은 고독감을 해소해주지 않는다. 카지노는 분리와 자기방어의 공간일 뿐이다. 테이블마다 포커 치는 사람들이 후드티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 뒤에 눈을 가린 채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묻혀 세상과 단절된다. 곁에서는 하이테크의 '시뮬라크르'(실제 존재하지 않으나 생생이 인식되는 복제물)가 펼쳐진다. 넋이 나간 도박꾼들의 시선이 가상의 카드를 나눠주는 홀로그램 속 여인의 푹 파인 가슴에 꽂힌다. 룰렛, 행운의 바퀴, 다인용 보드게임까지, 카지노는 공동체와 연대의식이 모조리 붕괴된 오로지 적대적 고독만이 남아 있는 한 세계를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이 세계 속에서 비틀린 욕망에 사로잡힌 도박꾼에게 파트너나 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연과 확률만이 의미를 지닐 뿐이다.

미국의 5대 자살 도시

네바다주 산하 민간단체 '네바다 도박중독위원회'에서 일하는 캐롤 오헤어는 "네바다주의 도박중독 유병률은 미국 평균의 3배인 6%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고요한 밤이 찾아오자 남녀노소를 불문한 20여 명의 도박중독자들이 군중에서 떨어져 나와 자그마한 룸 앞에 삼삼오오 모여든다. 방 안에는 U자형으로 놓인 탁자들과 냉장고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같은 시간대 라스베이거스 15곳에서 열리는 다른 단도박 모임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언제나 똑같은 의식이 진행된다. 먼저 모임의 계명이 적힌 책자를 성서 읽듯 경건하게 소리 내어 읽는다. 그다음 모든 참여자가 동등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며 모임 규칙이 소개된다. 마침내 고백의 시간이 찾아온다. 파산, 가족과의 불화, 다툼, 이혼, 버림받고 산산조각 난 고통스런 삶에 대한 이야기가 구구절절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런 모임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 것으로 모임의 대미가 장식된다. 모임을 마친 단도박 모임 회원들은 발코니로 나가 난간에 기대어 선다. 그들에게 이 모임은 일종의 작은 사회를 이루고 있는 듯 보인다. 회원들 등 뒤로 스트립대로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회원들은 마지막 담배를 다 태운 뒤 이튿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각자의 길을 향해 뿔뿔이 흩어진다.

사실 라스베이거스는 도박중독 유병률만 유난히 높은 것이 아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자살률 역시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높은 도박중독률과 자살률은 라스베이거스의 흥겨운 이미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두 수치는 도시 내에 횡행한 인간 소외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라스베이거스의 도시 구조는 단순히 인간 소외를 부추기는 정도가 아니라 소외의 결정적 원인이 되고 있다.

무일푼이 된 사람들이 울창한 인공 초원에 회반죽으로 마감된 세련된 고급 건물이 즐비한 라스베이거스로 몰려들고 있다. 하지만 막상 무대 장식을 빼고 나면 영화 속에 나오는 라스베이거스의 호화스러운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나 멋지게 턱시도를 빼입은 남자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 <오션스 일레븐>에 나오는 화려한 옷차림의 주인공도, 마틴 스코세이지의 <카지노>에 나오는 머리에 기름을 잔뜩 바른 인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성조기가 그려진 헐렁한 티셔츠에 발목을 그대로 드러낸 짧은 바지를 입고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들만 눈에 띌 뿐이다. 그들에게서는 찌든 담배 냄새가 진동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는 공장을 연상시킨다. 줄줄이 설치된 카지노 기계들과 합리적인 구조의 작업라인이 어쩐지 공장을 닮았다. 시끄러운 음향 줄조명과 철커덕철커덕 울려대는 슬롯머신 소리가 공장에서 들려오는 금속을 두드리는 굉음이나 용접봉의 불빛을 떠올리게 한다. 도박꾼들은 노동자들이 각자 자기 작업대에서 일을 하듯, 카지노 기계 앞에 자리를 잡는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연봉을 차지하기 위해서인 양 온 힘을 다해 게임에 몰두한다. 그들은 기계적인 표정으로, 자동반사적인 움직임에 따라, 정해진 패턴대로 반응한다. 두 팔은 전선을 꼽듯 자판 위에 연결되고, 시선은 화면 위에 고정된다. 어느새 인간의 육체는 기계와 한 몸이 된다. 보안요원 복장을 한 작업반장이 생산시설의 질서를 통제한다. 수백 대의 감시 카메라 밑에서 작업반장은 자동기계들이 제 속도로 잘 작동하는지, 데이터 흐름은 원활한지 감시의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자살자의 대부분은 도박꾼이 아니라 주민"

물론 사람마다 자살에 이르는 동기는 다양하다. 네바다주 자살예방사무소에서 일하는 린다 플랫은 "돈줄이 끊긴 상태에서 치료 시기를 놓쳐 정신질환이 악화되는 현실이나, 쉽게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미국 특유의 문화가 자살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그녀는 미국의 자살 지형도도 소개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국내 평균치보다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주는 알래스카에서 록키산맥을 거쳐 뉴멕시코주로 이어지는 아치 형태를 띠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는 이 '자살지대'에서 독자적인 위치에 놓였다. 라스베이거스시 클라크 카운티에서 법의관으로 활동하는 마이클 머피는 "몇 년 전부터 라스베이거스가 미국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5대 도시로 꼽히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머피는 법의관 사무실에서 취재진을 맞아주었다. TV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것과 비슷한 사무실(벽에는 미 연방수사국(FBI) 면허증이 걸려 있고, 컴퓨터 모니터에 가족 사진이 있다)에서 유머러스하고 쾌활한 이 50대 남성은 법의관 역을 능숙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클라크 카운티에서 비명횡사한 수많은 주검이 그의 해부용 칼날을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은 흔히 자살자가 관광객이나 도박꾼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자살자의 대다수는 지역 주민이다."

라스베이거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런 음울한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라스베이거스를 후광처럼 감싸는 화려한 이미지가 매년 수많은 이주자를 이곳으로 유혹하고 있다. 20년째 네바다주의 유입 이주민 수는 미국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다. 특히 라스베이거스로 가장 많은 이주민이 흘러 들어오고 있다. 2001~2010년 라스베이거스의 인구는 150만 명에서 200만 명으로 눈에 띄게 증가했다.(1) 라스베이거스의 노동시장 구조가 인구 증가를 부채질한 것이다. 하지만 건설, 호텔업 등 저숙련 일자리에 지나치게 사람들이 몰리면서 오히려 라스베이거스는 실업자 천국으로 전락했다.

"라스베이거스 이주민은 다른 이주민에 견줘 새 출발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금세 라스베이거스의 삶도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머피의 말이다. 더욱이 도시 경제 토대를 송두리째 뒤흔든 부동산 시장의 붕괴로 많은 이주자가 소중한 꿈을 날려버렸다. 스티븐 브라운 라스베이거스대학 교수(경제학)는 "라스베이거스의 실업률은 13.5%로, 다른 비슷한 규모의 미국 도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한 연구팀에 따르면, 미국의 100대 대도시권 가운데 라스베이거스가 지난 3년간 실업률이 가장 많이 증가했다.(2) 법의관 머피도 라스베이거스의 실업 악화 현실을 나름의 방식으로 체감하고 있다. "2년 전부터 살인을 동반한 자살(배우자를 죽인 뒤 자신도 목숨을 끊는 사건)이 극에 달하고 있다. 자살 유형을 살펴보면 대개 2가지 전형적인 사례로 나뉘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가진 것을 모두 잃고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사람들이다. 대개 50살 이상의 장년층이 주류를 이룬다. 다음은 자기 삶에 너무 지친 나머지 배우자를 짐으로 여기게 된 사람들이다. 특히 배우자가 병을 앓는 경우 부양에 대한 중압감은 더욱 커진다. 분명한 증거를 댈 수는 없지만 이런 종류의 자살은 대개 경제위기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실업자와 빈민들의 판자촌

라스베이거스에서는 2006년 말 이후 부동산 가격이 60.5%가량 추락했다.(3) 부동산개발업자가 만들어낸 중산층에 대한 환상이 유령처럼 떠도는 도시주변지역(Urban Fringe·도시와 농촌 지역의 중간지대 또는 농촌에서 도시로 변해가는 도시 주변의 전이지대를 말한다)에서 라스베이거스 도심의 외곽 빈민가에 이르기까지, 위기는 석재 위에 똑같은 연속무늬를 새겨넣고 있다. 어디를 가나 압류 주택의 입구를 봉쇄하는 판자들과 정원에 꽂힌 '팝니다'라고 쓰인 푯말들이 연속무늬처럼 줄을 잇는다. 55살의 데시 콜맨 부인도 점차 '판자촌'으로 변해가는 북부의 이 비참한 고립지구에 살고 있다. 고속도로와 우드론 묘지 사이에 자리한 구세군 지부 주변에는 100여 명의 무주택자가 '라스베이거스 드라이브' 대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위에 비죽비죽 천막을 쳐놓고 황무지 속에 살아가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주민들이 땔감을 만들기 위해 정원에 심긴 나무를 도끼로 베고 있다. 어떤 집 대문 앞에서는 빈민들의 고물시장이 펼쳐진다. 싸구려 잡동사니와 도로가로 끄집어낸 소파들이 집 앞에 수북이 쌓여 있다. 콜맨 부인은 "다른 동네와 마찬가지로 이 동네에서도 수많은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보금자리를 날려버렸다. 옆동네에 사는 내 사촌도 집을 잃었다. 모두가 위기로 인해 타격을 입었다. 멀쩡한 사람은 부유층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부동산 압류가 늘어나면서(4) 주민 수도 급감하고 있다. 일부 주민에 대한 강제퇴거가 이미 높은 주거이동률(5)로 인해 심화된 사회적 아노미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주민의 91%가 다른 주 출신이고, 45%가 거주지를 옮길 의향이 있다고 말한다.(6) 라스베이거스 동부에 자리한 이동주택촌은 미국 사회 내 일부 계층의 극도로 높은 주거이동률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로열 모빌홈 파크' 관리자 쇼필드에 따르면,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이동주택이 무려 3만5천 채에 달한다. 쇼필드가 운영하는 이동주택 단지 거주자 237명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로 퇴직자나 평균 수준에 못 미치는 수입을 버는 활동인구가 주류를 이루는 것을 알 수 있다. 퇴직자는 주로 모빌홈 생활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인 반면, 노동자는 계속되는 불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유랑 생활을 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한마디로 "이곳 출신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게 머피의 판단이었다. "높은 자살률도 모두 그런 상황과 연관 있다. 주민들은 각자 고립돼 살아가고 있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의지할 만한 가까운 친지가 없다. 이웃 간 유대관계도 약하다. 대다수 주민들은 어려움이 닥쳐도 기댈 곳이 전혀 없다."

'세금 없는 도시'가 슬럼화의 주범

국토 개발도 도시민의 고독을 해소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고독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자살'을 주제로 수많은 연구서를 펴낸 매트 레이 필라델피아 템플대학 교수(사회학)에 따르면,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도시 인구가 급증했지만 그에 걸맞은 커뮤니티 센터나 학교 같은 주민시설이 확충되지 않았다. 주민시설만 제대로 갖춰져 있었더라도 주민들의 유대관계를 강화해 더 나은 공동체 생활을 가꾸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사회적 장치가 미비한 것이 도시사회에 해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주민시설이 부족한 원인은 무엇일까? "라스베이거스는 과세율이 낮아 시설을 확충할 재원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네바다주와 라스베이거스시는 미국에서 과세율이 가장 낮다. 소득세는 물론 상속세, 법인세도 걷지 않는다. 여기에 도박, 매춘, 음주, 속성 결혼 및 이혼 등 자유분방한 관습까지 더해지면서 라스베이거스는 자유방임도시의 실험소가 되고 있다.

신용평가사의 감시를 받는(7) 라스베이거스시는 경제 자유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충격요법'(8)에 나섰다. 2008년 이후 모든 공공재정을 삭감하기로 한 것이다. 행정은 43.6%, 사법은 27.2%, 문화는 23.6%, 치안은 9.8%가량 예산 규모를 축소했다. 그로 인해 학교와 문화·스포츠 센터 등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공공부문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도 반토막이 났다. 그렇다 보니 시 당국은 도심 재개발 사업(기존에 미미했던 도시의 중심을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데 민관 협력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현재 스트립대로가 전세계 관광객이 집결하는 관광 명소인지는 몰라도, 지역 주민을 위한 만남의 공간은 되고 있지 못하다. 도심과 외곽 그 어디에서도 라스베이거스 사람들은 자신만의 온전한 교류 공간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

라스베이거스 외곽 지역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반복 체험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천편일률적인 형태가 무수히 반복되기 때문이다. 외곽 지역에는 도로망과 주택단지가 네모반듯하게 들어서 있다. 이런 개발 형태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거나 공간을 구분지으며 고독감을 더욱 부추긴다. 대로변 양쪽에 자리한 차단막은 사람들이 주택단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길로 우회하도록 만든다. 이렇게 분리된 각 주택단지는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의 출입을 금지한다. 경비원이 자동차 번호를 일일이 확인하거나, 인터폰을 통해 집주인과 직접 통화한 이후에야 통과가 허락될 뿐이다. 자고로 분리란 다른 것을 구분하는 것인 동시에 같은 것을 결집하는 것을 의미한다. 각각의 고립된 작은 섬과 벌집 구멍이 주민들을 각각 은퇴자 내지는 젊은 활동인구 등으로 분리해 구분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민으로 전락한 중산층만 따로 모아놓은 분리 구역까지 등장했다. 도시 담벼락 곳곳에서 이 계층을 타깃으로 한 광고문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집을 압류당했다고요? 인생이 우울하다고요? 그렇다면 우리 단지를 방문해주세요.'

자기 도시에서 소외된 자들

대형 유통체인 월마트 안에서는 희끄무레한 불빛 아래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손님 몇 명은 매장 안을 어슬렁거린다. 시곗바늘이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24시간 돌아가는 카지노가 도시의 모든 경제활동 리듬을 주도하고 있다. 상점의 영업시간은 카지노 딜러나 객실 담당자의 일과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식당 주방도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돌아간다. 폐점 직전의 분위기가 끝날 듯 말 듯 끈질기게 이어진다. 얼마 되지 않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 들어온다. 손님들은 혼자서 묵묵히 식당 테이블에 앉아 꾸역꾸역 밤참을 입 안에 밀어넣는다. "라스베이거스는 24시간 풀가동되는 도시다. 이 점이 내 마음에 쏙 든다." 61살의 라스베이거스 토박이 부치가 말했다. "새벽 2시에 뭔가를 사고 싶다고? 그럼 그냥 가면 된다. 새벽 3시에 식당에 가고 싶다고? 역시 그냥 가면 된다. 여기서는 몇 시든 상관없이 누구나 마음대로 원하는 곳을 언제든 갈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거친 도시 생활은 끝없이 시간을 착취한다. 이미 '3시에서 8시까지'가 라이프스타일로 굳어진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주민들이 과거 함께 공유했던 시간과 공간을 더 이상 온전히 누리고 있지 못하다.

오늘날 미국 내 일자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신경제 서비스산업은 소비자의 위상을 새로운 사회 변혁의 주체로 끌어 올려놓았다. 그로 인해 세계적인 생산 중심지였던 미국은 한낱 소비 공간으로 전락해버렸다. 하지만 모두가 계급 간 대립을 초월해 소비지상주의만 뒤좇는 듯 보이는 이 사회에서도 노동자가 완전히 멸종된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오락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라스베이거스에는 대형 카지노가 앞다퉈 들어서기 시작했다. 똑같은 노동 현장에 수십만 명의 직원이 고용됐다. 활발한 인구 유입으로 주민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살게 되었지만, 노동자 지형도의 변화로 스트립대로에는 유흥산업이 밀집하게 되었다. 이는 독특한 형태의 라스베이거스 노조 탄생에 유리한 토양이 되었다.

독특한 형태의 카지노 노조 탄생

1950~80년 사회학자 릭 판타지아와 킴 보스는 "라스베이거스 노조는 '마피아'에 깊이 연루된 부패한 이미지로 희화화해 표현됐다"고 지적했다.(9) 경영자단체는 노조의 세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노조에 부정적 이미지 덧씌우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 시기에 노동자는 미국 노조의 운영 행태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 당시 노동자의 지위나 임금이 사용자와 노동자가 각 작업장과 맺은 개별 협정에 따라 정해졌기 때문이다. 노조의 부패와 경영자단체의 탄압은 노동자의 지역 단위 연대를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선벨트'('태양이 비치는 지대'라는 뜻으로,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태평양 연안의 남부 캘리포니아에 이르는 북위 37도 이남의 지역을 총칭한다) 지역에 중서부 도시의 생산직 노동자 운동에 버금가는 강력한 '노동자 운동'이 탄생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채무가 임금을 대신하고, 소비자의 '자유'가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앞서는 노동자 권익 감소에 맞서 싸울 노동자 조직이 탄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226개 지부를 둔 '요식업 노조'(Culinary Workers) 대표 게오콘다 아르구엘로 클라인은 이렇게 과거를 회상했다. "1980년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카지노 노동자들이 경영진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었다. 결국 그들은 노동자운동을 조직해 투쟁에 나설 필요성을 절감했다."

1980년대 중반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1984년 드디어 1만8천 명의 노동자를 결집해 힘겨운 파업투쟁에 돌입했다. 이어 1990년대에는 각 카지노에 노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데 전력했다. 1991년 프런티어 호텔 노동자가 파업을 선언했다. 이 투쟁은 무려 6년하고도 4개월 10일 동안 지속됐다." 호텔 노동자들이 단체협상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프런티어 호텔 파업은 1945년 이후 미국에서 일어난 파업 가운데 가장 장기간의 대규모 투쟁을 기록했다. 2만 명의 파업투쟁자가 스트립대로를 행진했다. 모하비사막을 가르는 500km에 달하는 노동자 행진은 프런티어 호텔 노동자의 투쟁이 언론의 조명을 받는 계기가 됐다.(10) 그리고 마침내 1998년 노동자들이 승리를 거머줬다. 이 파업투쟁으로 기업들은 노동자가 조직적인 투쟁을 벌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또한 노동자가 확실한 명분을 가지고 투쟁에 나설 수 있다는 사실, 가족을 위해,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해 대동단결해 투쟁에 나설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됐다.

노동자, 새로운 라스베이거스의 개척자

라스베이거스에서 노동착취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희망은 노동조합뿐이다. 아르구엘로 클라인은 "'스테이션'의 사례를 봐라. 이 카지노의 노동자들도 노동운동을 조직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그들은 30년을 뼈 빠지게 일하고도 퇴직연금조차 받지 못했다. 고용 안정도 보장받지 못했다. 매달 100달러씩 각자 알아서 건강보험료를 내야 했다. 이 노동자들과 우리 조합원은 지위 격차가 엄청났다"고 말했다. 오늘날 카지노 노동자의 90%는 노조에 가입해 있다. 요식업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 수는 무려 5만5천 명에 달한다. 물론 2008년과 비교하면 5천 명가량이 줄어든 수치이기는 하다. 아르구엘로 클라인의 말이다. "경제위기로 인해 네바다주 경제가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노조원은 권익을 잘 보호받고 있다. 퇴직연금을 받는 것은 물론, 본인과 가족 모두 무료로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경기가 침체됐다고 사정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용 안정을 잘 보장받고 있다. 노조가 그들을 감싸는 보호막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간산업이 발달했던 과거의 디트로이트처럼, 서비스경제가 부상하는 오늘날 라스베이거스는 강력한 노동투쟁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는 이제 단순히 사유화된 영토의 화려한 무대 장식이나 저속한 모사품들의 부자연스러운 취향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 사회의 현대성까지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노동자의 연대를 무마하려는 모든 시도, 사회·공간적 도시 구조 배치를 통해 사회를 잘게 분열시키려는 모든 의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집단투쟁과 저항의식은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붉은 산등성이와 보랏빛 산맥을 끼고 사막 한복판에 터를 일궈낸 라스베이거스의 노동자들은 어쩌면 새로운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이 시대의 새로운 개척자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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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랑 포플라르 Allan Popelard 폴 바니에 Paul Vannier 지리학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비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번역 | 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2011 Las Vegas perspective>, Metropolitan Research and Association, 라스베이거스.
(2) Global Metro Monitor, <The path to economic recovery>, 브루킹스연구소, 워싱턴, 2010.
(3) 2006년 4분기와 2011년 1분기 사이 미국 100대 대도시권의 평균 부동산 가격 하락률은 26.5%에 그쳤다. 라스베이거스는 98위를 차지했다.
(4) 주택 압류 건수는 위기 전인 2006년 1493건에서 2007년 4173건, 2008년 7941건, 2009년 6789건, 2010년 7675건으로 급증했다. 자료: Las Vegas perspective, op. cit.
(5) 미국은 주택 거주자의 평균 교체율을 측정한 주택이동률이 매우 높다. 미국의 주택이동률은 약 15%에 달하는 반면, 프랑스는 8%에 불과하다.
(6) Robert Rutrell(엮은이), <Las Vegas metropolitan area social survey, 2010 highlights>, 네바다대학 사회학과, 라스베이거스, 2010년 3월
(7) <라스베이거스 선>, 2011년 1월 26일.
(8) Naomi Klein, <충격요법: 재앙 자본주의의 부상>, 악트쉬드 출판사, 아를, 2008.
(9) Rick Fantasia, Kim Voss, <길들여진 노조: 미국의 경영자단체 탄압과 노조 저항>, 레종다지르 출판사, 파리, 2003.
(10) ib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