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이 ‘대통령의 두 신체’를 언급한 이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통령 군주제로 평가되곤 하는 제5공화국 시절에 호의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을 해소하기 위해 그는 역사학자인 에른스트 칸토로비치가 연구했던 오래된 국가 기초 이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1957년, 독일 출신의 역사학자인 에른스트 칸토로비치는 자신이 교직 생활을 하던 미국에서 놀라운 제목의 책을 한 권 출간했다. 바로 『The King’s Two Bodies(왕의 두 신체)』였다.(1) 칸토로비치 본인도 이 책의 콘셉트가 “매우 부조리하고, 많은 부분에서 거슬리고, 이를 웃음거리로 포장해보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 책은 프랑스 정치인들과 수필가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다양한 분야에서 인용됐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칸토로비치(1895~1963)를 “중세의 연구가, 레지스탕스 활동가, 대학교수”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칸토로비치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열렬한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열성적인 반(反)공산주의자였던 칸토로비치는, 제1차대전이 끝날 무렵 폴란드의 독립운동을 진압하는 우익 민병대에 참가했으며, 베를린과 뮌헨에서는 진보적인 스파르타쿠스 의용단원들의 봉기에 맞서 싸웠다.
에른스트 칸토로비치가 주장했던 ‘왕의 두 신체’
칸토로비치는 세련된 멋쟁이였고, 쾌락주의자였으며, 비밀스러운 인물이었다. 그는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 가까웠던 시인 슈테판 게오르게의 서클에도 소속되어 있었는데, 이 서클은 ‘비밀스러운 독일’, 즉 독일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날을 앞당기기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집단이었다. 1934년 칸토로비치가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했던 마지막 수업은 이 ‘비밀스러운 독일’에 관한 내용이었다.
당시에 그는 1931년에 출간된 프레데리크 2세의 전기로 이름이 꽤 알려진 상태였다. 로마의 황제이자 호엔슈타우펜 왕가의 마지막 황제였던 프레데리크 2세(1215~1250)는 사후에 ‘잠든 황제’로 불렸고, 사람들은 그가 언젠가 잠에서 깨어나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아, 이 ‘비밀스러운 독일’이여. 당연히 ‘보수적인 혁명’의 지지자들은 프레데리크 2세에 열광했다. 아돌프 히틀러도 그중 한 명이었다. 1934년에 칸토로비치는 국가 체제에 충성하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칸토로비치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이는 국가의 반(反)유대주의에 항의하는 행동으로 비쳤다. 당연한 해석이기는 했지만, 이는 논란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에 칸토로비치는 당국에 보낸 서신에서, 자신의 태도는 “독일 제국의 민족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고 해명했다.(2) 그의 서명 거부는 좁은 의미로 보았을 때 정치적인 것이 전혀 아니었고, 오로지 학문적 자유에 따른 결과였다.
중세에서 말하는 연구(studium)의 개념, 즉 다양한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대학의 권리와 관련된 자유이다. 1938년에 미국으로 떠난 칸토로비치는 1949년에 그의 동료들처럼 ‘충성 서약서’에 서명하라는 지시를 또다시 받았지만, 1934년과 같은 이유를 들어 서명을 거부했다. 사실 보수주의자였던 칸토로비치는 공산주의자를 지지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공산주의자로 취급받기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두 번의 서명 거부로 인해 칸토로비치는 민주주의를 열렬히 갈망하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칸토로비치의 이러한 행동에는 평소에 그가 표방하던 반(反)공산주의와 민족주의도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칸토로비치의 책을 출간한 프랑스의 출판사마저도 칸토로비치의 책이 “20세기 정치 병리학의 기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려준다”라고 강조했다. 출판사는 아마도 ‘전체주의’를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칸토로비치가 책을 통해 ‘알려주려고’ 했던 것은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폐해였다.
정치적 신체와 자연적 신체
칸토로비치는 영국의 사례를 본떠 ‘국가의 신화’를 만들어내려고 했다. 그는 도상학(미술사의 한 분야로 작품의 의미나 모티브를 연구-역주), 화폐, 신학자와 중세 법학자의 글을 연구했다. 그중 하나는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만들어진 에드먼드 플로우덴(1519~1585, Edmund Plowden)의 보고서로, 수 세기에 걸쳐 완성된 ‘신비로운 이야기’의 형식을 정리한 책이었다.
“왕은 두 개의 신체를 갖고 있다. 즉, 자연적인 신체와 정치적인 신체이다. (중략) 자연적인 신체는 자연스럽게 발병하거나 또는 사고로 인해 생긴 모든 질병의 영향을 받아 언젠가는 소멸한다. (중략) 그러나 정치적인 신체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신체로, 정치 사회와 정부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민중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공공재를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칸토로비치에 따르면, 이 ‘이중’ 신체는 중세 가톨릭의 사상과 밀접하게 관련된 신학적이고 정치적인 구조물이다. 인간인 동시에 신이었던 예수의 이중성,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이자 교회라는 조직의 상징적인 수장이었던 그 이중성에서 비롯되었다는 뜻이다. 자연적인 신체는 정치적인 신체보다 하위에 있으며 그에 속해있다. 자연적인 신체는 그 살갗 아래에 정치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왕의 인간적인 면이 왕의 신적인 면을, 그리고 필멸성이 불멸성을 압도할” 때 왕은 폐위된다. 셰익스피어 비극 『리처드 2세』가 대표적인 예로, 이 책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그 외 왕들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중 신체 이론은, 법적 사상이 정치적 권력의 적법성을 증명하는 근거가 되고 따라서 국가가 영속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내용의 신학에 기반한다.
‘정치적 교리’의 신성한 아우라
민주주의의 논리적 허점을 비판한 저명한 학자이자 국가사회주의(나치즘) 권력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법학자 칼 슈미트의 글에서 칸토로비츠가 인용한 이 ‘정치적 교리’의 개념은 두 개의 기초를 강조한다.(3) 바로 정치적 교리의 신성한 아우라, 즉 권력은 정치적 교리와 연계되어 표현되는 동시에 실행된다는 사실이다.
칸토로비치는 두 개의 신체에 대한 ‘은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다양한 의식(특히 대관식과 장례식)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했다. 1924년에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는 『기적을 행하는 왕들. 프랑스와 영국 왕권의 초자연적인 특성에 관한 연구』(Gallimard-Folio)를 출간했다. 과거에 왕이 선병증(땀샘 등 림프절이 부어오른 상태) 환자를 ‘건드려’ 그를 낫게 하는 의식이 어떤 역할을 했으며 또 그 의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합리주의자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었다.
블로크는 이 ‘기적’의 의미를 정신의 역사, 교회와 왕정 간의 라이벌 관계의 역사 속에서 찾았다. 그러나 블로크의 책은 칸토로비치의 책에 비해 권력자와 그 분석가들 사이에서 그다지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리고 제5공화국이 탄생하고 대통령 중심제가 도입되면서 두 개의 신체는 우리와도 멀지 않은 개념이 됐다.
드골 장군의 후임으로 대통령이 된 조르주 퐁피두가 “프랑스 국민 여러분, 드골 장군이 서거하셨습니다. 프랑스는 이제 미망인이 되었습니다”라고 한탄했던 드골 장군의 장례식과 프랑수아 미테랑의 장례식은 이러한 개념을 구체화해서 보여줬다. ‘불멸의 신체’를 위한 공적이고 국가적인 의식은 노트르담에서, ‘필멸의 신체’를 위한 사적인 의식은 각각 콜롱비와 자르나크에서 이루어졌다.(4)
신비주의적인 비유를 즐겨 사용하고 말을 할 때도 종종 ‘정신’을 강조하는 에마뉘엘 마크롱도, 2017년 2월 16일 <L’Obs>와의 대담에서 “대통령은 여러 개의 신체를 가지고...”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막연하게나마 이 이론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과도한 간섭과 권위주의를 정당화하려는 마크롱
마크롱 대통령에게 ‘필멸의 신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일원이 되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면, ‘정치적 신체’는 다른 의미에서 또 중요하다. ‘정치적 신체’를 강조하면서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를 점점 불법적인 기관으로 만들고, 공청회에 소집된 국민들, 곧 국민투표에도 동원될 국민들과의 ‘대화’만을 합법적인 것으로 여긴다.
이 모든 것은 과도한 간섭과 권위주의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임에 분명하다. 또한 그것은 공화주의적 군주제에 대한 진부한 표현을 강화하려는 의도이다. 이는 ‘(승리의) 종탑’이 가득한 프랑스와 거의 유사한, 저 유명한 보나파르토-갈리아식 유혹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더 은밀하게 진행 중인 것이 있다. 이러한 태도는 민주주의의 의미와 미래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개의 신체를 추구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 즉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필요한 ‘포스트 민주주의’
오늘날의 사회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피로감’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 이는 대선을 제외한 다른 선거에서 기권표가 증가하는 원인이다.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 소프라 스테리아의 2020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 가운데 민주주의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고 답한 비율은 67%였고 33%는 그에 대해 확실하지 않다고 답했다. 2021년에는 정치인을 신뢰할 수 없다고 답한 비율이 29%였다. 왕을 없애버린 근대 민주주의의 혁명, 특히 프랑스 혁명이 권력을 신체와 분리하고, 또한 권력을 불안정하고 부적절한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것일까?(5)
마크롱 대통령은 여기에 동의했다. 루이 16세의 죽음은 “감정적이고 집단적인 공허감을 안겨주었고, 이것은 민주주의가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이라고 발언했다(2015년 7월 1, 8일). 그렇다면 이 공허감은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오늘날 놀랄 만큼 평범한 질문이 됐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공명(resonance)’의 예찬자인 하르트무트 로자도 이러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신조와도 같은” 민주주의는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종교와 “의식”을 필요로 한다.(6) 마크롱 대통령도 이러한 ‘신조’를 구원하기를 원한다. 바로 ‘국가를 만듦으로써.’ 마치 민중 집단을 떠올리게 하는 모호한 표현이다. 그리고 칼 슈미트가 말했던 것처럼, 적이 있다고 가정한다. 즉, ‘국가 만들기(faire Nation)’를 원하지 않는 이들이다.
예를 들어 ‘공화파(arc républicain)’에 속하지 않는 이들. ‘국가 프랑스(Nation France)’의 가치에 반대하고, ‘비문명화’의 과정에 참여하는 이들. 그런데 도대체 누가 국가, 가치, 적을 정의하는가? 바로 대통령이다. ‘주피터’는 ‘국가 프랑스’의 보증인이 됐다. 두 개의 신체가 있다. 자연적인 신체는 대통령이고, 정신적인 신체는 프랑스이다. 그 두 개는 분리할 수 없다. 새로운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당연히, ‘이중 신체’의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없다. 당연히, 마크롱 대통령은 인기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가 운영의 상징적인 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노란 조끼 운동이 만나기를 원했던 대상은 마크롱 대통령의 허수아비였다. 공격을 받는 것은 바로 그 허수아비이다. “결정권을 가진 것은 국민”일지라도, 정당 대표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대상은 오로지 그 허수아비뿐이다.
보도전문채널 <Franceinfo>에서 마크롱 정당의 한 의원이 럭비 월드컵 개최와 관련해 “대통령은 프랑스가 이 대회를 주최하게 된 것에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을 때, 기자들은 이를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 국민들의 의무는 권리에 우선한다고 말했을 때, ‘거리’는 조용했다.
그는 용어, 기준, 권력을 강요했다. 마크롱이 패배가 아닌 길로 가려면, ‘왕의 두 신체’와 같은 신성화된 언어와 상징 등의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 그는 폭넓은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행동으로 옮길 수 있거나, 반대까지도 포함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폭넓은 공간을 준비해야 한다.
마크롱 대통령 또는 그의 적들 가운데 누군가에 의해 구현되든, 다음 세대에 사용될 ‘포스트-민주주의’에 이데올로기적인 기반이 필요한 때이다.
글·에블린 피예에 Evelyne Pieiller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문화·예술 평론가. 저서로는 『Le Grand Théâtre 위대한 연극』(2000), 『L’almanach des contraries 소외된 자들의 연감』(2002), 『Une histoire du rock pour les ados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록의 역사』(Edgard Garcia 공저, 2013) 등이 있다.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1) Ernst Kantorowicz, 『Œuvres 작품들』, Gallimard(Quarto), Paris, 2000.
(2) Saül Friedlander, 『Les années de persécution. L’Allemagne nazie et les Juifs, 1933~1939 박해의 나날들, 독일 나치와 유대인, 1933~1939』, Le Seuil, Paris, 2008. & Robert E. Lerner, 『Ernst Kantorowicz, Une vie d’historien 에른스트 칸토로비치, 어느 역사학자의 생애』, Gallimard, Paris, 2019.
(3) Evelyne Pieiller, ‘Du bon usage de l’ennemi ‘자유민주주의자’ 슈미트가 ‘적’을 규정하는 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한국어판 2022년 6월호.
(4) Evelyne Cohen, André Rauch, ‘Le corps souverain sous la Ve République. Les funérailles télévisées du général De Gaulle et de François Mitterand 제5공화국을 이끈 왕의 신체’, TV로 방영된 드골 장군과 프랑수아 미테랑의 장례식’, <Vingtième siècle>, Paris, 2005/4, n°88.
(5) Samuel Hayat, ‘Incarner le peuple souverain. Les usages de la représentation-incarnation sous la Seconde République 주권을 가진 민중의 화신, 제2공화국에서 대표-화신을 이용한 방법’, <Raisons politiques>, Paris, 2018/4, n°72.
(6) Hartmut Rosa, 『Pourquoi la démocratie a besoin de la religion. À propos d’une relation de résonance singulière 민주주의에 종교가 필요한 이유. 특별한 공명의 관계에 관하여』, La Découverte, Paris,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