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의가 아니라, 빈곤 타파가 우선
아프간 내전에서 승리한 탈레반 정권의 과제
3월 말, 탈레반 정권은 간통한 여성에 대한 공개 처형으로 투석 척살형을 부활하겠다고 발표했다. 탈레반 정권의 군사기지 재정비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협상은 중단되었다. 미국 대선을 몇 달 앞둔 현재, 백악관은 아프가니스탄의 인권보다는 미국의 내부 정치 여론을 우선 고려하고 있다.
2021년 8월, 탈레반이 주요 도시를 점령하고 서구의 군대들이 철수한 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이 재집권했다. 전쟁에 승리한 탈레반 과도 정부는 서구 연합국의 지원을 받았던 이전 정부보다 덜 부패했다고 평가받지만,(1) 탈레반이 설립한 미숙한 기관들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계속 증가 추세인 아프가니스탄의 인구는 3000만 명에 이르고, 수십 년간의 전쟁으로 국민은 더욱 빈곤해졌다.
정권을 쟁취하기 전에 탈레반은 정의 문제에 집중했었다. 정의라는 면에서 보면 탈레반은 무능함과 부패로 국민의 원성을 샀던 하미드 카르자이, 아슈라프 가니 전 대통령 정부보다는 나았다. 그러나 수많은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문제들을 등한시하며 대처하지 않았던 탈레반 반군 전략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은 이제 단순히 탈레반에게 토지 문제 해결을 간청하거나 도둑질, 살인을 고발하지 않는다. 국민은 가족을 먹이고, 아이들을 교육하고, 치료를 받고, 직업을 구하는 등의 기본적인 필수사항을 보장해달라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 지도자들이 무시했던 일들이다. 따라서 새로운 카드가 필요하다. 보수적이며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에 유일하게 호의적인 농촌 지역을 통제할 수 없다면, 도시 지역과 하자리스탄의 시아파 지역, 특히 탈레반 재집권에 반대하는 자들은 더더욱 통제가 불가능하다.
통치 한계 인식한 탈레반
43년간의 전쟁, 20년간의 족벌주의, 부패한 정부를 겪으며 상처만 가득 남은 나라에 탈레반이 새로운 정부를 세웠다. 아프가니스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국제 사회 개입이 있었지만, 아주 적은 인프라만이 구축되었고 투입된 자금의 3/4만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서구가 하청에 재하청을 주고, 작업 비용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된 자금 대부분은 사실상 전 정부의 실력자들이 횡령했다. 2021년 8월 15일 수도 카불이 함락되기 전, 아슈라프 가니 정부의 예산은 60억 달러에 달했다. 이 예산은 대부분 국제 사회의 원조로 이루어졌다. 또한 공공 서비스 중 상당수는 협동 프로젝트와 서구 국가의 지원을 받은 NGO 단체들이 지원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탈레반은 행정기관의 규모를 서서히 줄이며, 관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관세는 지난 수십 년간 대거 횡령되었다. 또한 탈레반 정권은 이전에는 무시했던 소매상에 대한 과세에도 신경을 쓰며, 트럭 암거래, 휴대폰 충전, 파키스탄으로의 석탄 수출에 대한 세금을 인상했다. 원조가 중단되자 새 정권의 2022년 예산은 26억 달러로, 전보다 2.6배 줄어들었다. 2021년 9월까지 직책을 유지했던 공무원 상당수는 그 후 급여를 지급할 예산 부족으로 사직해야만 했다.
탈레반 정권은 역사적인 기근이 나라를 덮쳤을 때도 절대적인 통치 기능의 한계를 깨달았다. 최근 몇 년간 반복되는 가뭄으로 기근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었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95%는 빈곤선 아래에서 살고 있으며, 인구의 절반은 적절한 끼니를 잇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서구의 개입으로 상당히 개선되었던 유일한 두 분야인 교육과 보건에서도 급격한 퇴보가 일어났다. 국민이 학교와 병원에 대한 열망을 크게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탈레반 정권은 이 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숙고하지 않았다.
심지어 전쟁 기간인 2000년대 말, 학교와 병원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멈추게 할 정도로 국민의 압력은 거셌다. 탈레반은 통제하에 서구의 출자자가 학교와 병원에 재정지원 하도록 놔두었고, 건물에 국기를 걸고, 지침을 바꾸도록 하는데 그쳤다. 정권을 잡은 후 탈레반은 교육과 보건이 우선순위가 아니었음에도, 서구 국가들과 연계된 기관들의 철수에 대해 변명해야만 했다.
행정기관 개편에 딜레마
강경한 탈레반 정권은 행정기관을 개편했다. 내전에서 승리한 후 판사들과 믿을 만한 이슬람주의 간부들을 재판소 대신 새 장관과 주지사들을 보좌하는 데 임명했다. 전 정부의 공무원들과 이슬람주의 간부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일은 쉽지 않다. 발흐(Balkh) 주의 새 검찰총장은 이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걸 한탄한다.
한쪽은 행정기관의 기능과 프로세스를 아는 전직 판사들로 부패하고 충성심이 부족할 수 있고, 다른 한쪽은 충성도와 정직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탈레반 판사들이지만, 관리직으로서는 능력이 부족하다. 관리직 부족이 지속될 위기 속에서, 행정기관들은 정부 경험을 가진 소수의 이슬람 법학자를 서로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했다.
새 정부의 또 다른 우선 과제는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는 일이다. 탈레반은 사실상 국가에 대한 맹목적 숭배를 토대로 존속되었다. 탈레반 정권은 1990년대처럼, UN과 전 세계 국가에 대사를 파견하는 등 현대사회의 주권을 상징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싶어 한다. 그런 면에서 무엇보다 인권과 국경 문제에 신경 쓰는 정부, 테러와 이민 문제에 대해 협력국과 공조할 수 있는 정부처럼 보이려고 노력 중이다. 내전 승리 후 행해진 반대파 숙청에 비하면, 정권 초창기에 국민에게 가한 탄압은 제한적이었다. 탈레반 정권의 초기 노력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유엔 지원단에 협력했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 전략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패배에 충격을 받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고립시키려고 했다. 미국은 아프간 중앙은행이 미연방은행에 예탁한 자금을 몰수했고, 국가개발기구의 활동을 막았으며, 서구의 자본과는 무관한 NGO 단체들의 활동을 막는 등의 제재를 가했다.
미국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미국의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이러한 조치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추락시키지 못하고, 국민에게만 타격이 갈 거라는 사실은 무시했다. 그 여파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에 가했던 제재의 실패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2024년 11월 예정된 미국 대선 운동에서, 바이든은 상대 대선 후보 예정자인 트럼프에게 국제 문제에 관한 어떠한 공격의 빌미도 제공하고 싶지 않아 한다.
탄압 전략 선택한 탈레반, 아프간 국민들이 대가 치러
정권을 인정받을 전망이 없는 탈레반은 전투에서도 엄격한 무슬림 방식을 적용하기를 원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젊은 병사들로 군사기지를 재구축했다. 2022년부터 탈레반은 언론을 검열하고 언론인과 반대파를 체포하거나 죽이며, 탄압을 강화했다.
특히 페미니즘 운동가들이 타깃이었다. 여성 해방 시위는 폭력적으로 진압되었고, 많은 이들이 사라졌다. 탈레반은 여성의 활동을 제한했고, 무엇보다 교육받고 직업을 가질 기회를 가로막았다. 탈레반은 남성 보호자 없이 여성이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금지했고, 공원 같은 공공장소의 출입을 금지했다. 여성은 여성 간호사와 여성 의사에게서만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당국의 허가를 받은 여성 의료진은 거의 없다. 강경책의 또 다른 신호는 탈레반은 무슬림 율법의 가장 폭력적인 형벌의 부활을 약속했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형벌이 확대되어 1990년대처럼 언론에 조명되는 것을 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의 지배는 단기적으로 공고해졌다. 탈레반은 주변 국가들, 즉 중국, 러시아, 페르시아만 국가들로 시선을 돌렸다. 이 국가들은 아프가니스탄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며 사실상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인정했다. 서구와는 달리, 이 국가들은 40년이 넘는 무장 전쟁 이후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 현재 정권과 교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탈레반 반대파의 핵심 지지국이었던 인도조차, 2023년 11월 붕괴한 아슈라프 가니 정권의 대사관의 문을 닫고 아프가니스탄에 새 대사관을 열려한다. 2024년 1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공식 석상에서 다른 대사들과 함께 탈레반 대사가 제출한 신임장을 받았다. 이는 유엔 안보리 이사국이 공식적으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인정한 첫 사례이다. 중국이 이러한 상징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더라도, 러시아는 마약 퇴치 및 중앙아시아 테러 퇴치를 위해 탈레반 정권과 계속해서 협력하고 있다.
탈레반 정권은 새로운 세수 확보를 위해 채굴 분야 투자에 기대를 걸고 있다. 과거 정권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지하의 잠재적인 광물 채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23년 1월, 중국 신장중앙아시아 석유가스사(CAPEIC)는 3년간 아프간 북부의 아무다리야강 유역에서 석유를 채유하는 프로젝트에 5억4,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6개월 후 탈레반 정부는 중국, 이란, 터키, 영국 기업들과 금과 철 채굴 프로젝트에 65억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언론에서는 정기적으로 아프가니스탄 광맥의 가치가 몇 조에 이른다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확실하다.
1970년대 말 소련의 지질학 탐사를 참조한 이 허무맹랑한 수치는 2010년 <뉴욕타임스>가 언급한 적이 있다.(10) 그러나 그 타당성은 매우 불확실하다. 게다가 광산 투자는 인프라와 수십 년간의 정치적 안정성과 공공안전을 필요로 하지만, 탈레반 정권은 갖추지 못했다. 일례로 CAPEIC는 첫 3년 동안 약속했던 1억 5,000만 달러 중 5,000만 달러만 투자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외교 노력으로는 그들이 꿈꾸는 만큼의 현금 유동성을 조달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논의와 계약서 서명만으로도 정권의 신뢰도는 상승하고, 권력의 지속에 도움이 된다.
탈레반 정권은 무엇보다 반대 조직체가 없다는 점에서 득을 보고 있다. 유일하게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만이 산발적인 공격과 테러를 계속해서 저지르고 있다. 1980년대 공산당 간부의 자손들인, 전 정부의 지지자들 특히 교육받은 계층은 망명을 떠났다. 탈레반 체제에 반대하여 국외에서 집결, 투쟁하기 위해서이다. 나라를 잃고, 평판을 잃은 그들은 종교적인 면에서 더 이상 심각한 위협이 아니다.
대학 출신과 종교 학교 출신 간의 40년간의 무장 충돌은 탈레반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양자 모두 아프가니스탄 사회의 지도자가 되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내전은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적 투쟁으로 자리를 옮겨, 미디어와 외교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전 정권 지지자들은 탈레반과 이슬람주의자들을 야만인이라고 하고, 이들은 전 정권 지지자들을 국제 사회의 개입에 협력한 배신자라고 비난하며, 외세의 점령을 말한다. 스페인의 프랑코파 또는 물라(이슬람 종교학자 - 역주)가 장악한 이란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충돌은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국외로 추방당할 수도 있다. 탈레반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탄압 전략을 선언한 만큼, 결국 국민이 가장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글·아담 바츠코 Adam Baczko
국립과학연구소(CNRS-CERI) 연구원. 저서로는 『La guerre par le droit. Les tribunaux Taliban en Afghanistan 법의 전쟁.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재판소』(CNRS Éditions, 2024)가 있다.
번역·김영란
번역위원
*본 기사는 위 저서에서 발췌하여 편집되었습니다.
(1) Adam Baczko, Gilles Dorronsoro, ‘Comment les talibans ont vaincu l’Occident 탈레반은 서구를 어떻게 이겼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9월
(2) Serge Halimi, ‘Mourir pour Hamid Karzaï ? 하미드 카르자이를 위해 죽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9년 11월, 연대표 ‘Cinq décennies de fureur 분노의 50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9월
(3) James Risen, ‘U.S.Identifies Vast Mineral Riches in Afghanistan’, <New York Times>, 2010년 6월 13일, https://www.ny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