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칠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
빅토르 델 아르볼, 『아버지의 아들』
디에고는 평범한 40대 나이의 대학교수다. 사회적 출세의 전형과도 같아 보이던 그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자신의 딸을 돌보던 간호사를 사흘간 고문한—그리고 마침내 살해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스페인의 역사가이자 카탈루냐 자치 경찰 출신인 빅토르 델 아르볼의 작품을 접해본 이들이라면 그 답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설 것으로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아들(Le fils du père)』은 1936년부터 2010년까지 이어지는 20세기 스페인 사회 전체를 아우르고, 전쟁과 프랑코주의와 망명을, 그리고 그 배경에 깔린 빈곤, 이농, 그리고 끝없는 보복 등 국가를 낙인찍는 비극들을 삼대에 걸쳐 담아냈다.
현재 시점의 서술은 디에고가 재판 전 구금되어 있었던 정신병원에서 발견된 그의 메모를 통해, 과거 시점의 서술은 3인칭 관찰자의 시점을 빌려 저주받은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며 디에고와 그의 부친과 조부의 이야기를 불러낸다. 이들은 고통을 끌어안은 추악한 인물들이다. 디에고의 조모는 “이 집안의 사람들은 불행과 자멸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말한다.
“그는 불행이란 사명을 띠고 태어난 인간”
이 소설은 바로 그 감염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을 감염시킨 ‘바이러스’는 조부에게서 부친으로, 그리고 다시 문화와 책에 대한 애정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를 연구하는 디에고에게로 전해졌다. 모든 것은 내전이 한창이던 스페인의 엑스트레마두라에서 시작됐다. 마을의 대지주들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그들을 모욕한 매형을 두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게 된 디에고의 조부는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소련으로 보내졌다.
이처럼 전쟁 동안 자발적 혹은 강제적으로 모집된 스페인의 청년들은 ‘청색 사단’으로서 나치 독일군과 합류하여 전투에 뛰어들었다. 결국 그는 낙인만이 남은 몸과 마음으로 스페인에 돌아왔다. 그를 감염시킨 폭력의 씨앗은 이내 그의 아들에게 대물림됐고, 아들은 이를 더욱 심화할 뿐이었다.
“그의 조부가 옳았다. 행복이란 것은 상상과는 전혀 다르기 마련이다. 행복은 너무나 나약하고 덧없다. 반면 불행은 그에게 완벽하리만큼 딱 들어맞았다. 마치 신뢰할 수 있는 단단한 검은 바위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불행이라는 사명을 띠고 태어난 인간이었다.”
마을을 떠나 바르셀로나로 향한 그의 아들은 하류사회를 헤매다가 그곳에서 다른 일에 휘말려 결국 외인부대에 입대하게 된다. 그곳에는 빈곤과 치욕이, 아비들의 절대 권력과 증오가, 학살당한 어린이들이, 파괴된 여인들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족사가 모든 죄인을 옭아매어 아무도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마치 태양 주위를 영원토록 공전하는 지구처럼 말이다. 빌어먹을 동심원 같으니!”
저자는 이러한 불행의 세습을 논하기 위해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야기를 엮어가는데, 그 안에서 아들들의 모습이 서로 겹쳐져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조차 없게 된다. 이는 『사무라이의 슬픔(La Tristesse du Samouraï)』이나 『죽음의 무게(Poids des morts)』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빅토르 델 아르볼의 특징 중 하나다.
추리 소설, 가족사 소설, 그리고 실제 역사까지 여러 장르를 탁월하게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프랑스에서는 이미 일곱 권(전권 악트쉬드(Actes Sud) 출판)이 번역되어 출간되어 있으며, 강렬한 이번 소설을 통해서도 이미 훌륭한 작가들이 다수 약진하고 있는 스페인의 추리 소설계에서 그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글·위베르 프로롱조 Hubert Prolongeau
저널리스트, 탐정소설 작가
번역·김보희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