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나?

평양의 전략적 단절

2024-06-28     마틴 하트-랜스버그 | 경제학 명예교수, 미국 한국정책연구소 이사

2024년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 이후 서구 국가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전략적 단절을 선언한 북한은 대한민국을 위협하며 군사 공격을 준비하는 듯 보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서방의 분석은 여태껏 그래왔듯 다른 분쟁 당사국들의 책임을 고려하지 않는 시각이 주를 이뤘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과 전문가들이 내세우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최근 들어 언론과 전문가들은 평소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는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틈타 한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1월 16일, 프랑스 일간지 <라크루아(La Croix)>는 “김정은은 전쟁 준비를 마쳤다고 밝혔다”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저명한 두 전문가는 현 한반도 상황은 한국 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6월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라고 진단했다.(1) 미국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 역시 이러한 분석에 동의했다. 지난 1월, <뉴욕타임스>에 실린 한 기사에 따르면 미국의 일부 고위 관리들은 “노골적인 적대 정책으로 전략을 전환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향후 몇 달 안에 어떤 행태로든 한국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확신했다.(2)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한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은 북한을 경계하는 이들의 우려를 부채질했다.(3) 김 위원장은 한국을 “주적”으로 지칭하고 “평화 통일을 위한 모든 연대기구”의 폐지를 촉구하는 한편 “공화국의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릴 것”을 지시했다.

오랫동안 추구해온 평화 통일이라는 목표와의 단절을 선언한 북한은 (2001년 세워진 30m 높이의 구조물로 프랑스·북한 친선협회의 로고로 쓰인) 조국 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철거했으며 미사일 발사에 더욱 열을 올렸다. 서구의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행보는 김 위원장이 군사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설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은 준 선전포고처럼 묘사됐지만 실은 ‘공화국의 부흥발전과 인민들의 복리 증진을 위한 당면과업에 대하여’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무엇보다 경제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김 위원장은 금속, 화학, 기계, 에너지를 비롯한 핵심 부문에서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시켜 “나라의 경제 전반을 안정적이며 지속적인 발전 궤도에 확고히 올려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경제난을 무력으로 응징해야 할 ‘적’의 탓으로 돌린 것이 아니라 당국의 책임을 일부 인정한 것이다. 예를 들어 “수도와 지방, 도시와 시골 간 생활 수준의 큰 격차”를 지적한 김 위원장은 이러한 상황은 “‘사회주의 건설의 전면적 발전’ 이념에 반한다”라고 강조하며 향후 10년간 20개 군에 신규 공장, 보건 및 교육 시설, 주택을 건설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안보환경 악화가 북한의 입장변화를 유발

김 위원장은 연설문 말미에서 대외정책, 특히 대한민국에 대한 새로운 입장을 정립하며 이는 북한의 안보환경 악화의 결과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전쟁이라는 선택을 할 그 어떤 이유도 없으며 따라서 일방적으로 결행할 의도도 없지만 일단 전쟁이 우리 앞의 현실로 다가온다면 절대 피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주권사수와 인민의 안전,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거쳐 완벽하고 신속하게 임할 것이다.”

구체적인 자료를 살펴봐도 북한이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는 주장보다 안보환경 악화가 북한의 입장변화를 유발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미국과 한국은 2023년 한 해에만 42차례의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일본이 합류한 한미일 연합 군사훈련의 횟수도 10회에 달한다. 대부분 세 동맹국의 핵 공격이나 평양의 정권 전복 같은 분쟁 악화 시나리오에 근거한 이 훈련들은 모두 북한을 겨냥했다.(4)

동 기간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미 공군 폭격기가 총 7차례에 걸쳐 한반도 상공을 비행했다. 이 중 몇 차례는 미군 B-1 폭격기가 한국 또는 일본 공군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북한의 대공 방어 시스템을 시험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에는 미 공군 정찰기가 8일간 북한의 배타적 경제수역 상공을 비행해 북한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5)

북한이 더욱 우려하는 부분은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다.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에 한국과 일본 정상을 초대한 미국은 일본과의 군사협력에 거부감을 보이던 한국을 설득해 3국 군사협정 체결을 성사시켰다. 한미일 3국은 전례 없는 실시간 ‘군사 정보 공유’ 체계 구축, 탄도 미사일 방어 협력, 연례 합동군사훈련 실시를 비롯한 전반적인 군사협력 강화에 합의했다.

이로부터 3개월 후, 한국 및 유엔군사령부(UNC) 회원국 국방장관 회의가 최초로 개최됐다. 미국의 초청으로 서울에 모인 국방장관들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유엔사의 군사적 준비태세를 강화하기로 결의했다.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이 있기 약 1년 전,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 목록에 포함시키도록 지시했다. 2023년 12월 비무장지대를 방문한 윤 대통령은 또한 “도발을 당하면 즉각 보복 대응하고 나중에 보고할 것”을 한국군 장병들에게 주문했다.(6)

북한 지도부가 이러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경솔한 태도가 아닐까? 미국의 대외정책에 부응하도록 설계된 한미일 군사동맹에 한국이 참여함으로써 한국의 외교와 군대가 미국 또는 일본의 우선순위에 더욱 종속되는 효과를 낳지는 않을까? 한미연합군사령부(한미연합사) 사령관은 이미 한국군의 전시 작전 통제권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점점 더 신뢰할 수 없는, 더 나아가 적대적인 협상 파트너가 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상황은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을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즉, 북한의 입장변화는 북한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역내 새로운 군사적 현실을 반영하고 협상 상대국들의 정책이 불러올 예상치 못한 결과와 관련된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장기적으로 북한에 도움이 될 것인가? 평화 통일을 위한 노력을 지지하기 위해 북한이 만든 다양한 연대기구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면서 남한과의 공동 사업에 대한 참여를 신중하게 줄여나가는 정도에서 만족할 수는 없었을까? 북한의 평화통일 연대기구 해체 결정으로 한반도 비무장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한국 활동가들은 특히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통일 또는 적어도 남북관계 정상화를 지지하는 한인 디아스포라는 이제 몇 안 되는 대화 채널을 잃었다. 한국의 정치 환경마저도 불안정한 상황이다. 지난 4월 총선은 여당의 패배로 끝났고 윤 대통령은 매우 낮은 지지율로 고전 중이다. 차기 한국 정권은 남북관계 개선에 좀 더 협조적인 모습을 보일 것으로 기대할 뿐이다.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북한인가?

한반도는 위험한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2023년 12월,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이 부산항에 입항해 동맹국 방어에 대한 미국의 결의를 드러냈다. 다음날, 북한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로 대응했다. 한국과 미국은 이를 북한의 ‘도발’로 비난했다…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 며칠 후인 지난 1월, 한미일 3국은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이 참여한 대규모 해군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AP통신>은 이를 “역대 최대 규모의 해군 훈련”, “무력 과시”로 묘사했다.(7) 이틀 후, 북한은 최신 무기로 소개한 수중 핵무기 체계 ‘해일-5-23’을 시험했다.

2024년 3월, 미국과 한국은 정례 연합훈련인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 훈련을 실시했다. 이번 훈련에는 호주, 캐나다,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 영국을 비롯한 12개 유엔사 회원국이 최초로 참가했다. 미국과 일본은 “1960년 미일 상호 방위 조약 이후 양국 안보 동맹을 최고 수준으로 격상”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8) 이 죽음의 무도는 한 발짝만 잘못 내딛어도 대규모 역내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종식시키려면 긴장 유발이 북한의 책임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역내 이해당사자로서 역시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련 해체 이후 북한은 항상 미국과 직접적인 협상을 시도했다. 북한은 종전 선언과 평화 협정 체결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희망한다. 하지만 미국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를 거부한다.

북한의 위협은 미국의 군산복합체에 이롭게 작용하며 특히 고가의 무기 체계에 대한 자금 지원과 중국과 이웃한 일본과 한국 내 미군 주둔 및 미군 기지 유지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된다. 그 결과 미국은 북한이 언제, 어떻게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폐기할 것인지 논의할 목적이 아니면 북한과의 만남을 거부한다.

1958년 한반도에 핵무기를 도입한 나라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 원칙을 위반하며 자체 핵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수십 년 전부터 핵무기는 반복적으로 북한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이제 북한은 미국이 주도하는 과잉 무장 적국으로 구성된 동맹을 상대해야 한다. 미국과 한국의 국방비 지출은 각각 9,000억 달러, 400억 달러에 달한다. 반면 미 국방부의 추산에 의하면 북한이 국방비에 할당할 수 있는 예산은 40억 달러에 불과하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일방적인 비핵화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북한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글·마틴 하트-랜스버그 Martin Hart-Landsberg 
한국 및 동아시아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경제학 명예교수, 미국 한국정책연구소 이사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Robert L. Carlin & Siegfried S. Hecker, ‘Is Kim Jong Un Preparing for War?’, <38 North>, Washington, 2024년 1월 11일, www.38north.org
(2) Edward Wong & Julian E. Barnes, ‘U.S. Is Watching North Korea for Signs of Lethal Military Action’, <New York Times>, 2024년 1월 25일.
(3) ‘Respected Comrade Kim Jong Un Makes Policy Speech at 10th Session of 14th SPA’, https://kcnawatch.org/에서 연설문 영문 번역본 전문 확인 가능.
4) 장창준, ‘한반도 전쟁 위기 : 과거의 반복인가, 새로운 국면인가 ’, <민플러스>, 2024년 
1월 24일, www.minplusnews.com
(5) Lee Minji, ‘Kim’s sister warns U.S. military will face ‘very critical flight’ in case of “repeated intrusion”’, <연합뉴스>, 2023년 7월 11일, https://en.yna.co.kr    
(6) Kim Han-joo, ‘Yoon orders military to retaliate first, report later in case of enemy attacks’, <연합뉴스>, 2023년 12월 28일, https://en.yna.co.kr
(7) Kim Tong-hyung, ‘The US, South Korea and Japan conduct naval drills in a show of strength against North Korea’, <AP News>, 2024년 1월 17일.
(8) Demetri Sevastopulo & Kana Inagaki, ‘US and Japan plan biggest upgrade to security pact in over 60 years’, <Financial Times>, London, 2024년 3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