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죽지 않았다

2012-08-13     모리스 르무안

오렌지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분위기. 바로 스페인의 시인 라파엘 알베르티가 23살에 펴낸 작품집 <뭍의 뱃사람>(1)이 풍기는 분위기다. 1920년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산타마리아 항구 근처에서 태어난 알베르티는 마드리드에서 살게 된 후에도 언제나 고향 마을을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고향 마을의 백사장길, 평화롭게 흐르는 강을 향해 있을 때가 많았다. 알베르티는 <해적, 북극의 오로라를 훔치는 도둑>이라는 작품을 구상해냈고, 이후 스페인 내전에서 육체적·정신적·예술적으로 완벽하게 공화당 편에 서서 용감히 프랑코파와 싸웠다. 가수 파코 이바네즈의 노래를 통해 알베르티의 시 <질주>는 유명세를 타게 된다.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정권을 잡자 아르헨티나로 망명한 알베르티는 프랑코 정권이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조국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알베르티와 같은 명분을 가졌고 이에 헌신한 20세기 라틴아메리카 시의 대가가 한 명 있는데, 바로 페루 시인 세사르 바예호다. "저기 그가 간다! 어서 그 이름을 불러라! 옆구리가 보인다! 죽음이 이룬을 지나간다. 아코디온을 연주하며 나아가는 죽음의 발걸음, 죽음이 풍기는 음침함/ 내가 네게 이야기해주었던 수의의 길이/ 내가 말해주지 않은 수의의 무게. 그래, 그거야!"

메티스 출신인 바예호는 1892년 페루 추고의 산티아고에 위치한 안데스 마을에서 태어났다. 민중혁명 동안 억울하게 절도와 방화 누명을 쓰고 몇 달 동안 감옥 생활을 한 바예호는 출소 후 망명의 길을 떠났고, 1923년 6월 어느 금요일에 무일푼으로 파리에 도착했다. 날품팔이를 하고 비정하게 착취당하면서 바예호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성스러운 의무감,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해야 하는 성스러운 의무감이 바로 오늘 내 안에서 솟아오른다. 비로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무감!" 바예호의 글이다.

1937년이 끝나갈 무렵 바예호는 그동안 집필하던 작품을 거의 완성해갔는데 이 작품은 바로 <인간의 시>와 <스페인, 나를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줘>(2)이다. <스페인, 나를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줘> 번역을 맡은 프랑수아 마스페로는 번역 작업을 '어렵고 험난한 여행과도 같은 오랜 작업'에 비유했다. 또한 마스페로는 서문에서 바예호의 작품 성격을 이렇게 설명했다. "시 한 편 한 편마다 독자들을 천천히, 그리고 깊게 감동시키는 비장미를 지니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시인들에게 바예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우리 시인들의 책임이다. 우리 시인들이야말로 언어라는 멋진 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울하고 뭔가에 반항하고 싶고, 불안하고 절망적이 되면 바예호와 마찬가지로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고통은 이제 이것으로 충분하다. 도대체 이 고통은 어디서 온 것일까? 희귀한 새들이 낳은 정체 모를 알들이 바람에서 나왔듯이 나의 고통도 북풍과 남풍에서 왔다."

바예호는 1938년에 세상을 떠났다. "인생에 아무것도 남겨놓은 것이 없다면 죽는다는 것은 과히 유쾌한 일이 아니다. 설령 인생에 무엇인가를 남겨놓았다 해도 세상을 뜨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죽는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바예호는 위대한 시를 남겼기에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가 남긴 시집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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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스 르무안 Maurice Lemoine

번역 | 이주영 ombre2@ilemonde.com

(1) 라파엘 알베르티, <뭍의 뱃사람>(Marin à terre), Gallimard, 파리, p.369, 2012.
(2) 세사르 바예호, <인간의 시>(Poèmes humains), <스페인, 나를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줘>(Espagne, écarte de moi ce calice), Seuil, 파리, p.405,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