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천면마녀 千面摩女 Temptress Of A Thousand Faces>(1969) : 가면과 액션의 기표 놀이
정창화 감독의 첫 번째 쇼 브라더스 영화, <천면마녀>
정창화 감독은 1953년부터 1968년까지 약 15년간 40여 편의 한국 영화를 연출했고 1968년부터 홍콩 쇼 브라더스에서 전속 감독으로 활동했다. 정창화가 쇼 브라더스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을 받게 된 계기가 된 영화는 007류 첩보물 <순간은 영원히>(1966)다. X-7이라고 불리는 김명렬(남궁원)이 홍콩, 일본, 한국을 오가며 목숨을 건 모험과 활약을 펼치는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위기X7호>였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제목을 바꾸라는 공보부의 요구로 <순간은 영원히>라는 다소 생뚱맞은 제목이 되었다. 홍콩 거리를 배경으로 촬영하기 위해 미리 사전 허가를 받았지만, 게릴라 촬영을 하여 다큐멘터리의 효과를 끌어낸 이 현대 액션물을 보고, 란란쇼는 정창화의 저예산, 고효율 영화제작 방식을 홍콩에도 도입하기를 바랐고, 그를 전격적으로 스카우트하기에 이른 것이다.
정창화는 쇼 브라더스가 그에게 거는 기대를 충족시키면서 새로운 공간에 새로운 실험을 모색한 여성 액션 영화 <천면마녀>(1969)로 승부수를 던진다. 정창화 감독의 첫 번째 쇼 브라더스 영화이자 홍콩영화 최초로 유럽에서 상영되어 흥행에 성공한 영화 <천면마녀>(1969)는 스파이와 스릴러, 코믹 요소가 결합한 액션영화다. 여성 경찰 치잉(Chi Ying)(티나 친 페이Tina Chin-Fe, 금비)과 치잉의 연인이자 사진기자인 유따(Yu Ta,량 첸 liang chen 성훈, 본명은 배용수로 가수 펄시스터즈의 오빠. 한국 배우로서 해외 진출한 첫 사례) 그리고 천면마녀 몰리(Molly, 패트 팅 훙 PatTing Hung, 정홍)등이 마치 톰과 제리처럼 쫓고 쫓기며 다채로운 스펙터클을 펼친다.
자동차와 보트 추격 레이스, 첨단 과학 장치로 무장한 천면마녀 은신처는 물론이고, 천면마녀의 신출귀몰한 가면을 이용한 변신은 속도감과 몰입감을 높인다. 가면 혹은 가면의 변형인 얼굴 가죽이 신체화되는 것은 후에 <마스크 The Mask>(척 러셀, 1994)와 <페이스오프 FACE/OFF>(존 우, 1997)에서 변주된 바 있다.
가면과 액션의 기표(signifiant) 놀이
이 영화에서 천 개의 얼굴이라는 뜻의 천면 마녀는 마치 천 개의 꼬리를 가진 여우처럼 둔갑술의 달인이다. 그녀는 단지 가면을 썼을 뿐인데 도플갱어로 변신한다. 변신 서사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흥미진진한 소재다. 그리스와 로마 신화 속 무수한 변신은 물론 우리 시조 신화인 곰신화 그리고 구렁이, 여우나 두꺼비, <손오공>부터 카프카의 <변신>까지 수많은 서사 속에 존재해 왔다. 이 영화에서는 변신 소재의 서사적 소구력 뿐만 액션 장르를 통해 ‘놀이’라는 측면이 부각된다. 천면마녀가 범죄에 사용하는 반복적인 도플갱어 둔갑술과 정창화식 액션은 일종의 ‘기표 놀이’라고 볼 수 있다. 내밀한 기의(signifie)보다 떠다니고 미끄러지는 기표(significant)를 즐기면 된다. 정창화 액션 영화는 폭력이 아니라 액션이 중심에 있다. 폭력이 ‘분노’나 ‘발산’에 초점을 맞춘다면, ‘액션’은 ‘놀이’에 가깝다.
관능적이고 키치한 세팅과 색채
정창화 감독의 자서전 『더 맨 오브 액션』에 의하면 그가 색채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 집중했는지 알 수 있다. “세트 디자이너도 오츠루 라는 일본인이었는데 컬러에 대한 색감이 아주 뛰어났다. 특히 일본화(日本畵) 같이 매우 섬세하고 부드러운 색감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내 개인적인 취향과도 아주 잘 부합했던 그 색감이 <천면마녀>에서도 아름답게 구현됐다. 그런 미장센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특별히 오츠루와 내가 호흡이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세트 디자이너가 중국인이었다면 원색 느낌의 강한 색감이 나왔을 것 같다. 오츠루로 인해 비로소 내가 생각한 바대로 색의 재현이 대단히 부드럽고 아름다울 수 있었다. 예컨대 패션쇼 장면 같은 경우 상당히 화려했고 배경으로 인해 의상이 도드라질 수 있었는데, 이 같은 효과는 오츠루의 역할이 컸다.”라고 술회한다. 또한, 관능적이고 세련된 여성 경찰과 천면마녀 같은 여성 악당들 덕분에 60년대 유럽 영화의 트랜디한 색과 디자인이 적절하게 발현할 수 있었다. 정창화 감독은 한국에서 영화제작 당시 항상 예산의 한계로 흑백영화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황혼의 검객>(1967)은 결과적으로 흑백의 아름다운 영상미를 구현했고, 남궁원과 허장강의 대결 장면이 도포 자락 휘날리는 학의 자태 같은 흰색이 도드라지는 한국형 액션이라고 평가받지만, 정작 정 감독 본인은 적은 예산으로 인해 흑백영화로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구술한 바 있다(필자와의 인터뷰). 정창화 감독은 <천면마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색채에 대한 뜻을 펼 수 있었다. 이로써, 정창화 감독은 빠른 편집과 고난도 액션 그리고 전격적인 여성 경찰 주인공, 가면 도플갱어, 관능적이고 키치한 색채 등이 만들어낸 볼거리 넘치는 기표 놀이를 통해 쇼 브라더스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