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르 디플로 에세이
국회는 2011년 12월 30일 오후 5시 10분경 속칭 '시간강사법'을 통과시켰다. 침묵하는 대다수 여야 의원들 앞에서 "17대 국회에서 비정규 악법을 통과시킨 우를 18대 국회에서 다시 범해서는 안 됩니다. 대학판 비정규 악법을 막아야 합니다"라고 호소하는 권영길 의원의 목소리만 안타깝게 울려퍼졌다. 투표 결과 찬성 128표, 반대 31표, 기권 53표로 법안이 통과돼 2013년 1월 1일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 법의 초안을 마련한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8월 8일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공청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비정규교수노조의 점거농성으로 무산됐다.
시간강사법의 핵심은 총장, 학장, 교수, 부교수, 조교수를 교원으로 보는 고등교육법 제14조 2항에 '강사'를 추가한 것이다. 정부의 확성기를 자처하는 언론사들의 기사를 보면 시간강사가 교원 신분을 법적으로 획득하고 처우도 대폭 개선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시간강사법에는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심각한 교육과학기술부와 대학자본의 꼼수가 숨어 있다.
먼저 교원 간의 차별과 배제가 법으로 정해져 있다. 고등교육법에는 '제14조' 말고도 '제14조의 2'라고 하는 조항이 별도로 있다. 거기에 강사는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곧 강사는 고등교육법 제14조 2항에 들어가는 교원이지만 차별이 법으로 명시된 '무늬만 교원'인 것이다. 강사의 급여나 각종 노동조건도 법령이 아니라 개별 대학에서 학칙이나 약관으로 정하게 돼 있어 기존 전임교원의 그것보다 훨씬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이제 다른 교원 간의 차별 또한 법제화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각종 비전임교원을 전임교원처럼 가장하는 일도 더 생길 수 있다. 호박에 줄을 그어 수박이라고 우길수록 대학의 질만 하락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전임강사제도도 사기를 저하시킨다는 이유로 고등교육법에서 삭제한 교육과학기술부가 '강사'라는 용어를 끝까지 고집한 것은 교원의 역할을 강의에 국한시키려는 신자유주의적 전략으로 읽힌다. 그렇게 해야 교원에게 월급을 적게 주고 권리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6월 29일에 개악된 고등교육법 제15조에 따르면, 강의만 해도 교원이고 기업체 자문(산학협력교원)만 해도 교원이 될 수 있다. 이는 '반쪽짜리' 교원을 양산할 수 있는 근거가 되므로 원상태로 회복시켜야 한다. 이와 더불어 '강사'라는 용어도 폐기하고 14조 2항도 삭제해야 할 것이다.
시간강사법 시행령 초안에는 한 대학에 소속돼 일주일에 9시간 이상 강의하는 전업 강사를 '강사'로 보고 이들을 20% 이내에서 교원확보율에 포함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전임교원 충원 위축과 대량해고 초래라는 중대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몇 년 전 교육과학기술부는 법정교원확보율(계열별로 학생 수 ○○명당 교수 1명을 배정 기준으로 해 산정한 전임교원확보율) 이외에 교원확보율(20% 범위 내에서 겸임교수, 초빙교수 등도 포함시킨 교원확보율)을 개발했다. 그러다가 2012년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의 주요 지표에 법정교원확보율 대신 교원확보율을 적용(사립대에 국한)함으로써 사립대학들이 정부 재정의 지원을 받기 위해 전임교원을 더 뽑을 이유가 없도록 해버렸다. 이제 시간강사법 시행령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최대 20% 정도의 교원확보율을 더 높일 수 있게 되었으니, 어느 '미친' 대학이 앞으로 정규직인 전임교원을 더 뽑겠는가.
시간강사법은 비정규 교수 상당수를 해고하거나 열악한 처지로 내모는 악법이다. 시행령 초안에 따르면, A대학의 강사(A대학에서 일주일에 9시간 이상 담당하는 전업 강사)가 B대학으로 갈 경우 그는 겸임교수나 초빙교수로 간주된다. 전임교원의 안식년이나 연구년 때문에 일하게 된 비정규 교수도 겸임교수나 초빙교수가 된다. 한 대학에서 9시간을 담당하지 않는 비정규 교수도 겸임교수나 초빙교수 등으로 흡수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겸임교수나 초빙교수의 채용 방식, 계약 기간, 물적 급부 제공, 계약 해지 방식 모두에 대해서는 대학 자율이다. 강의료 단가 기준도 없고 관련 내용을 공개하지도 않으며, 각종 정부 재정 지원시 활용되는 지표에도 겸임교수나 초빙교수의 노동조건은 반영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대학들이 초빙교수에게 시간당 3만 원씩 주며 휴지처럼 간단하게 뽑아 쓰다 버려도 법적인 문제는 없다. 과거 시간강사들이 당했던 것처럼 겸임교수나 초빙교수 역시 '크리넥스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비정규 교수들에 대한 대량해고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교원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주당 9시간 이상 담당하는 전업 강사들에게 강의 몰아주기가 이루어져 1차 대량해고가 발생하고, 그 강사들이 다른 대학으로 가서 겸임·초빙 교수 형태로 일자리를 추가로 차지하는 바람에 2차 해고 대란이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거의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 전국 시간강사가 8만 명 정도고 이들이 한 대학에서 일주일당 평균 4.5시간 강의한다고 볼 때, 최대 4만 명이 해고될 거라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교과목별 특성, 교원확보율 반영률, 특정 강사로의 강의 몰아주기 정도, 비정규 교수들의 겸임교수나 초빙교수로의 유입 수준, 대학 내부의 저항, 대학원 유지 의지 등을 고려하면 그것보다 좀더 적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예상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제정을 주도한 시간강사법은 재정추계서조차 없다. 또한 강사의 채용과 처우에 대해서도 법령이 아니라 대학에 세부사항을 위임하고 있어 비정규 교수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립대 강의료가 오른 것은 2010년 10월 사회통합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관련 예산이 배정된 것이지 시간강사법에 따른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사립대학에서 연봉 1천만 원을 시급으로 받는 사람도 강사로 취급될 수 있다. 대학들은 직장건강보험료와 퇴직금조차 아깝게 생각하므로 강사 대신 겸임교수나 초빙교수를 쓰려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아예 비정규 교수 자체를 줄이려고 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최대 수강 인원 증가, 폐강 기준 확대, 한 학기 기간 단축, 졸업 이수 학점 축소 등을 통한 전체 강좌 수 줄이기가 그 증거다. 전임교원의 담당시수를 늘리는 대학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가 대학에서 잔업(초과 강의)을 하도록 강제당하고 그 때문에 비정규 노동자가 해고되는 형국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한술 더 떠 밖으로는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한다고 하면서 안으로는 국립대학들에 업무지침을 내려 시간강사를 줄이라고 직접 압박까지 하고 있다. 참으로 표리부동한 자들이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일각에서는 이주호 장관을 시간강사 문제 해결의 공신으로 보고 있어 착잡하다. 비정규 교수 문제의 올바른 해법은 계열별 전임교원 100% 충원이다. 대학 설립·운영 규정의 계열별 법정 교원 확보 기준만 지켜도 지금의 전업 시간강사 수보다 더 많은 전임교원을 뽑아야 하기에 문제가 대부분 해결된다. 이와 동시에 전임교원이 되기 전의 과정에 있거나 굳이 전임교원이 될 필요가 없는 모든 비전임교원을 하나의 제도로 통합해 편법 운영을 막고 생활임금과 교권을 보장해주는 것 역시 필요하다. 국회에서 곧 발의될 연구강의교수제가 그것이다. 기만적인 교원확보율 폐지, 전임교원 100% 충원 법제화, 시간강사제도 폐지, 연구강의교수제로 비전임교원제도 통합, 연구강의교수의 전임교원으로의 충원이 꿈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해야 '6개월 외거노비제를 1년 솔거노비제로 바꾸는 꼼수'를 넘어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 수 있다.
박정희 군부정권이 지식인을 통제하기 위해 50년 전(1962년)에 만든 시간강사제도, 이명박 대통령과 이주호 장관이 대학자본의 배를 불리기 위해 만든 시간강사법을 폐지하고, 비정규직 철폐와 교육혁명을 시간강사법 철폐, 연구강의교수제 쟁취에서부터 시작하자.
*이 글은 7월호 '르 디플로 에세이'에 실린 '이주호 장관을 변론한다?!'에 대한 반론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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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순광 경북대 일반대학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경북대 비정규 교수(위험사회와 재난, 사회학 등 강의). <레프트 대구>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