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의 편집증

2012-09-11     리처드 호프스태터

1964년 공화당은 극보수주의자 배리 골드워터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미국이 좌파의 음모로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던 인물이었다. 같은 해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정치적 편집증에 관한 저서를 출간했다. 이 고전을 통해 '티파티 운동'과 음모론적 상상력을 미국의 특정 전통과 관련지어 고찰해볼 수 있다.

과거 '정치'에 대한 개념은 다음 같은 질문을 통해 정의됐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획득하는가?' 정치는 개인들이 가능한 합리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이해를 규정하고 목적을 최대한 실현하기 위해 적절한 행동 방식을 결정하는 '경기장' 같은 것으로 이해됐다. 정치학자 해럴드 라스웰은 이런 합리주의적 설명 방식에 불만을 토로한 첫 인물이다. 그는 정치 세계의 상징적·감정적 측면을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누가, 어떤 종류의 공적 문제를, 왜,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는가?' 라스웰은 우리 각자는 자신의 이해를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고, 정치는 우리 자신을 표현하고 나아가 정의하는 수단이 된다고 말한다. 정치는 개인의 정체성·가치·근심·열망 등이 뒤섞이는 공명상자와 같고, 겉으로 드러난 명분과 별 관계 없는 감정과 충동이 투사되는 장이기도 하다.

첨예한 계급투쟁과 항상 거리를 두는 미국 정치는 때로 일부 사람들에게 격렬한 분노를 분출하는 통로 역할을 해왔다. 가령 극우파의 배리 골드워터 지지 운동은 극소수 사람들의 격앙된 증오심을 이용해 어떤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1) 이 운동의 배후에는 다채롭고 긴 역사를 자랑하는, 우익만의 전유물이라 할 수 없는 하나의 '사유 양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미술사학자가 '바로크'나 '기교파'라는 명칭을 사용하듯이, 나는 이 사유 양식을 '편집증적 스타일'이라 명명하고 싶다.

편집증적 스타일은 특정 세계관과 표현양식에서 비롯된다. 물론 정치적 편집증과 의학적 편집증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양쪽 모두 과민반응을 자주 보이고 타인을 의심하고 거친 태도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를 과장하거나 마치 당장 세상의 종말이 올 것처럼 행동하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그러나 의학적 편집증 환자는 자신에게 적대적인 세상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확신에 사로잡힌 반면, 정치적 편집증에 사로잡힌 사람은 개인을 뛰어넘어 하나의 민족, 문화, 삶의 방식이 공격받고 있다고 느낀다.

수돗물 불소화도 공산주의의 음모?

'편집증적 스타일'이라는 표현이 경멸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고의성이 없지 않다. 사실 편집증적 스타일은 선한 목적보다는 악한 목적에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물론 상식적인 정치 프로그램이나 합리적 명분이 편집증적 방식으로 옹호되지 말란 법도 없다. 가령 수돗물 불소 첨가 반대 운동은 다양한 종류의 광신자 집단을 끌어들였다. 그중에는 독극물에 대해 과도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있었다. 과학자들이 몇 가지 증거를 제시하며 불소화는 위험하므로 중지해야 한다고 결론 내릴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불소화를 공중보건이라는 미명하에 사회주의를 퍼뜨리려는 음모로 여기는 이들은 자신의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이들은 대중이 공산주의자들의 술책에 더 쉽게 넘어가도록 신경을 무디게 만드는 화학약품을 개발해 수돗물에 첨가하는 회사가 있다고 믿는다.

편집증적 스타일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국 밖에도 있었다. 근대 역사를 살펴보면 예수회 혹은 프리메이슨, 국제 자본가와 유대인, 공산주의자 등이 거대한 음모를 획책한다는 식의 생각이 많은 나라에서 유행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직후 유럽인들의 반응을 생각해보라. 미국인들 뺨칠 만큼 뛰어난 편집증적 해석 능력을 보여줬다. 현대 역사에서 편집증적 스타일이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곳은 독일이었다.

18세기 말 미국에서는 반체제적 사건을 모두 '바이에른 일루미나티'(일루미니즘·18세기 후반 독일에서 생겨난 계몽주의 비밀결사체 또는 그 조직원)의 소행으로 여기며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이 많았다. 1776년 잉골슈타트대학 법학교수 아담 바이스하우프트가 시작한 일루미니즘 운동은 이성의 법칙에 의해 통치되는 인류의 도래를 궁극적 목표로 삼았다.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동 경향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가는 와중에 성직자를 중심으로 한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이 운동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쳤다.

미국인들은 1797년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독서모임 간 비밀 회합에서 모든 종교와 유럽 정부들에 대항해 음모가 꾸며진 증거>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일루미니즘을 알게 됐다. 이 책의 저자인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과학자 존 로비슨은 바이스하우프트가 시작한 이 운동이 탄생한 순간부터 당시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세밀하게 추적했다. 로비슨은 일루미니즘의 도덕성과 정치적 영향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전형적인 편집증적 환상 속으로 비약한다. 그는 이 단체가 "모든 종교기관을 해체하고 유럽의 정부들을 전복한다는 구체적인 목적을 위해 설립됐다"고 주장한다.

로비슨은 프랑스혁명의 주역들 역시 일루미니즘 단체 소속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운동이 "유럽 전역에 걸쳐 선동을 획책하는 거대한 악마적 음모이며, 여성을 타락시키고, 감각적 쾌락에 사로잡힌 문화를 전파하고, 소유권을 부정하는 등 반종교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로비슨은 이 단체 회원들이 아이를 사산하게 만드는 차를 재배하거나, 얼굴에 살포되면 장님이 되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는 비밀 약품을 개발하거나, "침실 안을 페스트균 증기로 가득 채우는 방법"(2) 등을 고안하고 있다고 믿었다. 일루미나티가 대서양을 건너와 미국에 들어왔다는 어떤 증거도 없었지만 이런 종류의 상상은 삽시간에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광범위한 국제 조직망을 통해 음모가 꾸며지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효율적인 방식으로 은밀하게 악행을 준비한다는 식의, 편집증적 스타일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몇십 년 뒤 이번에는 가톨릭 세력이 미국의 가치를 파괴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루머가 떠돌기 시작했다. 1835년 출간된 두 권의 반가톨릭 서적은 그 새로운 위험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있다. 전신기 발명가이자 화가인 새뮤얼 모스가 쓴 <미국의 자유에 대항한 외국의 음모>가 그중 하나다. 그는 이 책에서 "하나의 음모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이 음모는 이미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다. (중략) 우리는 매우 취약한 상태에서 공격받고 있다. 우리가 가진 전함, 요새, 무기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고 경고했다. 교황권지상주의(Ultramontanism)를 신봉하는 반동 진영과 종교적·정치적 자유를 추구하는 진영이 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자유의 보루인 미국이 교황과 군주들의 공격 표적이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모스는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3) 정부가 이 음모의 중심에 있다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는 미국에서 행동을 개시했다. 오스트리아는 엄청난 음모를 진행하기 위해 거대한 계획을 준비해두었다."(4) 한 프로테스탄트 활동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수회 활동가들이 온갖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정체를 감춘 채 미국 전역에 암약하고 있다. 교황제를 부활시키기 위한 최상의 조건, 최적의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중략) 서부 지역의 경우 예수회 활동가들은 마리오네트 공연단, 댄서, 음악 교수, 온갖 사진이나 장식품 등을 팔고 다니는 행상, 크랭크 오르간 연주자 혹은 비슷한 직업의 사람들로 변장하고 다닌다."(5)

모스는 이 음모가 성공하면 합스부르크가 자손이 미국의 황제 자리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했다. "유럽 전제군주들의 재정적·지능적 수단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가톨릭이야말로 구대륙이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라는 것이다. 또한 이민자들 대다수는 교육수준이 낮고 무식해, 미국 제도의 운영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회 활동가들의 음모를 돕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모스는 '유럽의 전제군주들'에게 돈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를 혼란과 폭력의 도가니로 만들어 감옥에 죄수들이 넘쳐나고 세금이 몇 갑절로 불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른 책의 저자 리먼 비처는 이 이민자 물결이 투표소로 향할 경우 "나라의 장래가 경험이 미천한 이들의 손에 맡겨지게 될 것이고, 유럽의 가톨릭 열강들의 지도에 따르는 10% 정도의 유권자들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고, 정치를 혼란에 빠뜨리고, 나라를 분열시켜 전쟁과 살인을 부추기고, 단결력을 와해하고, 우리의 자유주의적 제도를 파괴할 것"(6)이라고 우려했다.

"애국자가 아니면 모두 간첩"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현대의 우익 세력에 대해 살펴보자. 매스미디어의 출현으로 편집증적 스타일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예전에는 음모의 주체가 주로 외국인이었다면 오늘날 극우파들은 국내의 배신자들이 나라를 위협하고 있다고 믿는다. 프리메이슨 반대 세력이 막연하게 묘사한 배신자, 다양한 모습으로 변장한 예수회의 비밀 요원, 대중이 모르는 교황의 사절, 고의적으로 통화위기를 조장하는 베일에 싸인 국제 금융가 집단 등 반가톨릭주의자들이 즐겨 묘사하던 적대세력들은 현대에 와서 프랭클린 루스벨트·해리 트루먼·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의 대통령, 국무장관, 대법원 판사로 대체됐다. 조지프 매카시 상원위원은 1945~51년 미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감소한 것은 결코 "순수한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차례로 단계를 밟으며 진행된 의도적인 행위의 결과", 즉 배신자들이 꾸민 음모의 결과라고 믿었다. 미국인들을 "국내에서는 소련의 술책에 놀아나게 하고, 국외로부터는 군사적 공격을 감행하는 것"(7)이 이 음모의 궁극적 목적이었다.

이 예들을 통해 편집증적 스타일의 근본적인 성격 몇 가지를 파악할 수 있다. 가령 우리 삶의 양식을 훼손하고 파괴하려는 거대하면서도 섬세하게 조직된 조직망의 이미지가 가장 중심을 이룬다. 혹자는 역사에서 이런저런 음모가 존재해온 것이 사실이며, 그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편집증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반박할 것이다. 역사에서 이런저런 음모를 찾아내는 행위가 아니라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거대한 음모가 역사적 사건을 추동하는 힘이라는 믿음이 편집증적 담론을 만들어낸다. 이들에게 역사는 거의 초월적이라고 여겨지는 한 세력이 꾸며낸 음모에 불과하고,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길은 끝없는 십자군전쟁뿐이다. 편집증적 담론의 신봉자들은 이 음모가 최종적으로 세계 종말로 귀결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항상 자신이 역사의 결정적 전환점 앞에 서 있고, 지금 당장 저항을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악인으로 간주되는 적은 도덕심이 결여된 초인으로 묘사된다. 곳곳에 암약하는 이들은 사악하고, 힘이 세며, 잔인하고, 육체적 쾌락과 사치에 탐닉한다. 자유롭고 활동적이며 악마적인 이들은 역사의 정상적인 물줄기가 악한 방향을 향하도록 만든다. 그들은 경제위기를 조장하고, 은행 파산에 대한 공포심을 퍼뜨리고, 경기 후퇴와 공황을 초래한 뒤 이익을 얻고 쾌감을 느낀다. 이런 식으로 편집증적 역사 해석은 개인에게 특권적 지위를 부여한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역사적 흐름의 일부가 아니라 개인적 의지의 산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 글은 1964년 <하퍼스 매거진>에 실린 유명한 에세이 '미국 정치의 편집증적 스타일'에서 발췌한 글이다. 올해 9월 6일 프랑수아 부랭 출판사에서 <편집증적 스타일: 음모이론과 미국의 극우파>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어 번역본이 처음 나왔다.

글/리처드 호프스태터 Richard Hofstadter
1916~70년. 1944년 사회진화론을 비판한 <미국 사상 속의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 in American Thought)을 썼다.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1) 미국 애리조나주 공화당 소속 상원위원 배리 골드워터는 1964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린든 존슨 민주당 후보에게 패하긴 했지만 그는 미국의 보수주의를 재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로널드 레이건이 정계에 입문한 것도 그에게 받은 영향 덕분이다.
(2) John Robison, <Proofs of a Conspiracy>, 뉴욕, 1789.
(3)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1773~1859). 유럽의 절대왕정 수호에 앞장섰던 오스트리아 외교관. 나폴레옹 몰락 뒤 빈 체제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4) Samuel F. B. Morse, <Foreign Conspiracy Against the Liberties of the United States>, 뉴욕, 1835.
(5) Ray A. Billington, <The Protestant Crusade 1800~60>(뉴욕·1938)에서 재인용.
(6) Lyman Beecher, <A Plea for the West>, 신시내티, 1835.
(7) Joseph McCarthy, <America’s Retreat from Victory>, Devin-Adair, 뉴욕, 1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