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유럽은 미국의 해법에 ‘노’를 외쳐야

팍스 아메리카 시대 이후 지구적 위기

2024-07-31     도미니크 드 빌팽 | 전 프랑스 총리

군대 동원의 기준이 희미해지고, 갈등이 증가하는 가운데 그 확산 속도도 빨라졌으며,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논리가 자리를 잡았다. 그 결과 전 세계는 파멸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핵전쟁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이러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각국은  그 어느 때보다 무기력한 모습이다. 특히 국제 관계에 관한 구체적인 전략도 전망도 없는 프랑스는 이제 드골식 외교를 복원해야 한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가 막을 내리자 전 세계가 대혼란에 빠졌다.

30년 전부터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원하는 대로 세계를 마음대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본보기를 자청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스스로를 법의 근원이라 내세우며 각종 규제를 부과하고, 강대국으로 군림하며 무력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그들은 본래의 약속을 망각했고, 전 세계적으로 폭동과 시위가 일어났다. 그리고 오늘날 그 대가를 우리 모두가 함께 치르고 있다.(1)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과거 속에서 교훈을 얻고 미래를 예측해볼 수는 있다. 앞으로 도래할 세상, 즉 기계에 종속된 세상이자 세계 전쟁의 위기가 도사린 위험한 세상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모습으로 요약된다.

 

강대국들이 초래한 공포의 만연화, 세계 전쟁의 위협

첫 번째는 세계의 분열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무력의 사용이 전례 없이 증가한 결과이다. 각종 위기의 평화적 해결과 국제 질서 수호를 목표로 1945년에 채택된 국제연합(UN) 헌장은 냉전 기간에 단계적 긴장 완화를 위해 사용되었고, 그 이후에는 초강대국 미국이 ‘세계 경찰’의 역할을 자처하게 한 근거였지만, 이제는 수명을 다했다.

첫 번째 이유는 이러한 질서를 수호해오던 서구의 강대국들이 스스로 그 규칙을 무너뜨리고 국제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1999년 코소보 사태, 2003년 이라크 전쟁, 2011년 리비아 내전, 2013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사헬 지역의 위기가 그 예이다.(2)

두 번째 이유는 러시아와 중국과 같은 신흥 강대국들의 국제법 무시이다. 이들은 1945년에 만들어진 질서에는 자국의 입지가 좁다고 불만을 토로하면서, 위협과 무력 사용을 정당화하고 있다.

또한 이 세상을 점점 더 위험하게 만드는 각종 위기로 인해 분열 현상은 더욱더 가속화하고 있다. 분열은 특히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리비아, 시리아, 예멘에서 연이어 내전이 일어난 뒤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마치 1990년대에 중단됐던 모든 갈등이 근래 들어 한꺼번에 터지는 것처럼 보인다.

2014년부터 시작돼 2022년 전면전으로 번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2020년과 2023년에 두 차례 일어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2023년 발발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대표적이다. 기회주의자, 테러 집단, 강자, 민족주의와 국수주의 활동가들이 세계 분열의 장기판에서 부지런히 자리를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분열은 각종 제재의 범람으로 국제 시스템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악화했다. 중국과 미국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나머지 국가들은 둘 중 어느 진영을 택할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냉전 이후 우리는 양극화가 무기 경쟁, 분쟁 확대 위험, 그리고 민감한 분야에서의 갈등을 얼마나 증폭시키는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오늘날 양극화는 이례적으로 확산하고 있으며, 힘의 관계는 미국 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유지되고 있지 않다. 미국은 중국 인구의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인구 측면에서도 크게 유리하지 않고, 중국 경제의 성장 위기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도 중국을 크게 앞서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국제 사회에서 신뢰도는 떨어지고 요구받는 것은 많아지고 그러면서도 강대국의 지위는 유지하고 싶어 하는 상황이라, 정치적으로도 중국보다 결코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3) 만약 미국이 여전히 미국은 중국보다 한 수 위라고 자만하고 있다면, 그것은 동맹국들을 종속화하고 나아가 포식하려는 시도로밖에 볼 수 없다.

지금에나 앞으로나 중국에 대한 미국의 비교 우위는, 전 세계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고 최신 무기로 무장했으며 한 세기 넘게 전쟁에 단련된 강력한 군사력이다. 중국은 직접적인 전쟁 경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쟁의 부담감은 일본, 한국, 대만과 같은 아시아의 근거지와 간접적으로는 유럽 동맹국들이 안고 있다. 양극화 현상은 이전에는 서로 아무 관계도 아니던 중국과 러시아의 상호 접근과 심지어 전략적 협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논리와 내전의 메커니즘이 맞닿아

두 번째는 완전한 대립의 논리이다.(4)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의 상황은 새로운 차원의 전쟁을 보여주고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참호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의 드레스덴 폭격이 전쟁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최근의 전쟁은 ‘모 아니면 도’의 논리가 지배하고 그 어떤 화해와 중재의 시도도 용납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갈등이 표출된 결과이다. 마치 나치의 노래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것과 같다.

교전국들에게 이는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서서 실존의 문제가 달린 갈등이다. 우크라이나는 국가와 문화와 언어를 말살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진 러시아의 공격에 맞서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내에서 이 전쟁은 러시아가 서구권의 위협과 압력 속에서 자국의 권리를 지키려 애쓰는 실존적 전쟁이라는 여론이 우세하다.

이스라엘의 경우에 2023년 10월 7일은 실존적 무력의 감정을 일깨우고, 유대인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확실한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이스라엘 정부의 근본적인 약속이 흔들린 날이었다. 이스라엘 영토 공격의 엄청난 규모와 그 참혹함, 그리고 이스라엘 정부의 정보기관과 군이 보여준 무능함은 국민들에게 의심과 두려움을 심어줬다. 가자지구에서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폭격, 처참한 파괴 수준, 모든 문화, 보건, 교육, 공동 인프라가 공격받는 상황이 상대를 향한 무조건적인 분노와 미움을 키웠다.

게다가 이 전쟁들이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두 과거의 기억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망령이 소환되는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나치 동맹국이자 적으로 인식했던 대조국전쟁(1941~1945)이,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의 스탈린 치하에서 발생한 홀로도모르 대기근(1932~1933)이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지난해 10월 7일 일어난 하마스의 침공은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되살렸고, 일부에게 하마스의 가자지구 정복과 공격은 그간의 폭격, 군사적 점령, 그리고 향후 가자 지구 거주민들의 재교육을 정당화하는 일종의 ‘탈나치화’ 작업으로 받아들여졌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1948년 참사(Nakba)의 기억이 있어서, 이스라엘이 언젠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집트나 다른 곳으로 몰아낼 것이라는 불안감이 만연해 있다.

그러나 잊지 말자. 여러 전쟁을 통해 드러난, ‘타인’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악순환은 프랑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칼 슈미트가 분석한 ‘적의 논리’는 모든 사람은 적이 자신을 파괴할까 두려워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타인을 정형화하고 도식화하면서, 우리는 비밀스럽고 악한 의도를 갖고서 타인을 악마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비극적이게도, 그 타인을 우리가 없애버리려 하는 대상으로만 여긴다. 내부적으로 그것은 내전의 메커니즘으로,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발견되며, 가깝게는 히스테리컬하게 변하고 있는 미 대선이 대표적인 예이다. 외부적으로 그것은 모든 전쟁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전쟁은 묘지의 평화만을 가져올 뿐

세 번째는 전쟁의 세계화이다.

이 모든 갈등의 종착점은 결국 세계 전쟁이다. 세계화로 인해 국경 없는 전쟁이 증가하고 있다.

세계 전쟁은 그 확산 속도와 범위에 한계가 없다. 과거에는 공간적 장벽, 느린 소통, 교류의 한계 때문에 갈등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오늘날에는 어디든 전쟁이 일어나면 상호 연결된 다른 모든 국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서, 경제적 충격 속에 반대 시위가 전 세계 곳곳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보인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과거의 그 어떤 국제 시스템보다 외부의 영향에 취약한 상태로, 아주 사소한 위기나 조작에도 쉽게 흔들린다.

세계 전쟁은 바다, 땅, 하늘은 물론 우주와 사이버 공간 등 실로 모든 장소에 침입해 있다. 그러면서 인류의 건강을 파괴하고, 사이버 공격과 정치적 불안 야기 등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을 일으키고, 국제적 갈등을 내전과 정체성 논쟁으로 확대하는 등 우리의 일상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세계 전쟁은 무제한적인 파괴력을 내재하고 있다. 핵전쟁의 위험, 교역 경로의 차단, 빈곤과 인플레이션의 위협, 물리적 충돌의 가능성은, 전쟁이 평화로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측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쟁은 묘지의 평화만을 가져올 뿐이다.

세계 전쟁은 지구를 상대로 하는 자살 전쟁으로, 가뜩이나 부족한 에너지를 낭비하게 하면서 인류의 공동 목표인 탈탄소화에서 멀어지도록 만든다. 더욱더 심각한 것은, 전쟁은 우리 모두를 경쟁 구도 안에 밀어 넣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구도에서 탈탄소화는 진영 간 대립의 변수가 되고, 전쟁 중에는 내가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상대가 에너지를 사용해버리는 상황이 된다. 만약에 내가 에너지를 절약해서 라이벌 국가의 에너지 가격이 내려간다면, 누가 흔쾌히 에너지를 절약하려 들까? 이러한 잘못된 계산이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처럼 외부의 영향에 취약한 세상에서, 프랑스는 와해하는 유럽 안에서조차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유럽은 국제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프랑스는 유럽에서 외면당하는 형국이다.

 

 

‘1956년 수에즈 모멘트’가 되풀이되는 프랑스 

지난 60년 동안 제5공화국은 1940년 프랑스의 패망, 결국 패배로 끝난 식민지 전쟁, 양쪽 진영의 비판 속에서 프랑스를 궁지로 내몰았던 수에즈 전쟁을 겪은 후에, 이 세상에 새롭게 뿌리내리려 노력했다. 드골 장군은 4개의 역할을 중심으로 프랑스의 명성을 쌓아 나갔다.

즉, 1945년 이후 수립된 세계 질서의 주도국들 사이에서, 특유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한 다자간 질서의 보증인이자 개척자 역할, 양쪽 진영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고 그렇다고 무관심하지도 않으면서, 진영 간 대립을 적당히 자극하는 동시에 중재하는 역할, 핵무기를 보유하고 전 세계 어느 국가와도 대등한 지위를 유지하는, 독립적인 강대국의 역할, 즉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계속해서 더 가까워지고 있는 유럽 국가들 가운데서, 국가 간의 대립에 휘말리지 않는 신중한 진행자의 역할이다.

그러나 지금은 프랑스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이상하게 무력해 보이는 모습이다.(5) 1989년 이후 프랑스는 양쪽 진영의 와해, 독일의 세력 회복,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영향력 상실로 인해 균형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군대 파견, 강대국 미국의 보좌진 역할, 독일과의 갈등 상황 등에 몰입하며 이 문제를 회피해 왔다.

프랑스는 불안정하고 쉽게 변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어서, 마치 한 발로만 위태롭게 춤을 추는 것 같다. 미국을 대할 때는 과거 도널드 트럼프와의 친밀한 우정과 사실상 ‘뇌사 상태’의 NATO에 대한 불신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으며, 지금도 같은 태도다. 독일과의 관계에서는 2017년에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유혹하려 노력했던 것과 달리, 2023년 브라티슬라바 정상회담 이후에는 모든 기술적인 문제와 관련해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며 나아가 유럽 내 독일의 막강한 권위에 맞서기 위해 동유럽 국가들과 은밀한 동맹을 시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는 어떤 날에는 “러시아의 기를 꺾지는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또 어떤 날에는 ‘주둔군’을 포함해 모든 지원을 ‘무제한으로’ 제공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가자 전쟁에 관해서는 어떤 날에는 하마스에 맞서기 위한 국제 연합을 결성하자고 이스라엘 측에 제안했다가, 또 어떤 날에는 휴전을 요청하기도 했다. 모두가 프랑스의 새로운 외교 정책에 적어도 한 번씩은 동조했지만, 그 동조 기간이 길지는 않았다.

게다가 프랑스의 외교 정책은 불균형하기까지 하다. 2007년에 프랑스는 제5공화국이 수립한 궤도를 벗어나 신보수주의라는, 중심축에서 더 멀리 벗어나는 경로를 택했다. 편파적인 언론을 등에 업고 모든 토론과 논쟁에 목숨을 거는 이 신보수주의의 대표적인 사상으로는 옥시덴탈리즘, 도덕주의, 군국주의, 그리고 세계의 다양성에는 관심이 없는 민주주의(democratism)가 있다.

그 결과 프랑스의 외교는 계속해서 실패해, 마그레브와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고, 레바논에서는 힘을 잃었으며, 2021년 9월에는 호주 정부와 맺었던 잠수함 사업 계약을 영미권 동맹국에 밀려 파기 당하는 굴욕을 겪었고, 사헬 지역에서 프랑스 군대가 쫓겨나는 모욕적인 사건도 있었다. 반(反)프랑스 감정의 물결이 아프리카 대륙과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잘못된 외교적 선택의 결과로 인해 ‘1956년 수에즈 모멘트’가 되풀이되는 듯한 모양새이다.

프랑스의 외교 정책은 특히 위기가 닥쳤을 때 모든 것을 군사적으로 해결하려 든다. “망치가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라고 버락 오바마 미 전 대통령은 여러 번 말했었다. 미국 군대가 그랬듯이 프랑스 군대도 그렇다. 그러나 외교는 스위스 칼이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고 가장 덜 나쁜 해결책을 고안하기 위해서는 완벽하지 않은 도구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유능한 외교관은 사람들의 다양한 재능을 잘 조합하는 능력이 있고, 문화와 역사적 소양, 서비스 정신,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갖춘 인물이다.

이러한 비극적인 악순환의 여파는 프랑스의 국력이 약화하게 된 원인이자 결과로, 프랑스를 점점 몰락으로 이끌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전략적 줏대도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프랑스를 누가 과연 알아줄까?

 

미국에 의존하는 EU의 위태로운 현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유럽연합도 붕괴 위험에 처해있다.

힘없는 지정학적 기관에 불과한 유럽연합은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속에서 중압감과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 엄청난 중압감은 러시아, 중국, 미국으로 대표되는 강대국들에서 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이 얼마나 약한지를 일깨워줬다. 유럽의 영토 주권이 위협받고 있다. 매년 불확실해지는 미국의 지원에 의존하면서, 유럽은 이제 혼자 힘으로는 영토를 수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창고를 채울 만큼의 무기를 간신히 생산하면서도 우크라이나를 계속해서 돕고 있다. 공동으로 추진 중인 산업 프로젝트는 대부분 중단됐거나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전투기 공동 개발 프로젝트인 미래전투항공시스템(FCAS)과 차세대 전차를 위한 주요지상전투시스템(MGCS)이 그 예이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의 산업 주권은 그리 공고하지 못하다. 유럽 경제는 미국의 영향으로 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로, 트럼프와 바이든의 실용주의에서 비롯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각종 산업 관련 계획의 압력을 받고 있다. 2008년만 해도 유럽과 미국의 GDP는 비슷했다. 그러나 지금은 유럽의 GDP가 미국의 GDP의 절반보다 조금 더 많은 수준이다.

서브프라임 금융 위기는 그 발원지인 미국의 경제는 약화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하거나 쇄신했지만, 긴축 정책이 실시되면서 유럽연합의 경제는 생사를 오갈 만큼 어려워졌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2021)에 따라 시중에 풀린 보조금 3,690억 달러는 배터리와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의 전략적 생산 능력을 엄청나게 향상시켰지만, 이는 유럽에는 독으로 돌아왔다.

또한 유럽은 무역 수지 측면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데, 프랑스는 명품 분야에서 그리고 독일은 자동차 분야에서 의존하고 있다. 유럽의 산업은 새롭게 떠오르는 분야인 전기 배터리와 전기차 분야에서도 뒤처져 있다. 이러한 이중 압력 때문에 유럽 산업 모델의 역사가 위기를 맞았고, 지나치게 엄격한 경쟁 정책으로 손발이 묶여 있는 데다가 보조금은 적고 27개 회원국의 각기 다른 이익이 골고루 반영된 무역 정책을 추구해야 하는 유럽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보조금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기술 주권에서도 유럽의 위치는 결코 탄탄하지 못하다. 지금은 미국 나스닥의 7대 빅테크 기업을 일컫는 ‘매그니피센트 7’(알파벳,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엔비디아, 테슬라)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전 세계 IT 분야의 상위 50개 기업 중에는 유럽 기업이 4개뿐이다.

유럽의 ‘클라우드’ 시장은 3개의 미국 기업이 무려 72%를 장악하고 있어서, 유럽 데이터의 해외 반출 가능성과 디지털 주권의 상실이 실질적인 위험이 되고 있다. 혁신의 물결, 인공지능, 양자 계산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 시대에, 유럽은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을 보호하는 동시에 공공 주문을 유럽 기업에 몰아주고 ‘디지털 단일 시장’을 구축해야 한다.

그런데 이웃한 두 지역인 중동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권력 공백이 발생해 사회가 불안과 혼란에 빠지고 그 결과 유럽 국경이 위협받게 되면서, 유럽의 경제는 더욱더 흔들리고 있다. 유럽은 이 이웃 지역을 파트너가 아닌 위험과 문제의 근원으로 여긴다. 동쪽에서는 전쟁이 터지고, 지원 정책은 실패로 돌아가고, 남쪽에서는 밀려드는 난민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게다가 유럽연합의 내부적인 결속력은 나날이 느슨해지고, 공동체 민주주의는 연방제 강화와 각국의 권한 강화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유럽연합의 지속적인 확대와 과도한 규제는 때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회피하고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로 비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유럽의 분열을 부추기고, 최근에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대통령이 다양한 행보를 보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내부적인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의 전략적 자립’을 강조하면서 7500억 유로 규모의 코로나19 회복 기금을 조성하는 실질적인 성과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이 되살아나려면 아직도 멀었다.

 

 

프랑스, ‘미래가 없는 모임’ G7에서 탈퇴해야 

지금은 프랑스의 외교가 그 소명과 메시지에 집중하면서 더욱더 분발할 때다. 프랑스는 투쟁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외교력을 집중하고, 오늘날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은 군사 기관을 재정비해야 한다. 슬프고 무력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그리고 순진하고 무력한 이상에서 벗어나려면, 결국에는 프랑스, 유럽, 국제 사회가 강해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이상적 현실의 길을 택해야 한다. 효율적인 외교를 추진한다는 것은 곧 프랑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우선 과제를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첫 번째 우선 과제는 평화를 위한 참여 외교이다. 이는 장기간에 걸친 강도 높은 과제인데, 우선 남반부 국가들과의 연결고리를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지난 20년 동안 남반부와의 접점을 완전히 잃어버린 나머지 이제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지도,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프랑스가 과거에 늘 그랬던 모습으로 되돌아갈 때다. 모든 것에 대해 발언할 수 있으며, 남반부와 선진국, 동양과 서양 간의 통로와 교차로 역할을 하는 ‘세계적 국가’로 말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만남의 장, 즉 프랑스의 메시지가 공익을 향한 울림이 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이 만든 G7은 전 세계 인구의 1/10만을 차지하면서 부의 절반을 독식하고 있는 국가들, 그중에서도 서구권 국가들만 모인 그들만의 리그인 탓에 정당성이 부족하다. 프랑스는 미래가 없는 이 모임에서 탈퇴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끌었으며 한때는 세계금융 테크노크라시의 상징이었던 G20은 국제법의 수호자인 유엔 앞에서 좀 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유엔을 거부하고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이때,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혁 프로젝트를 추진함으로써 새로운 상임국들과 함께 프랑스의 대표성을 높이고 거부권 행사권을 개선해야 한다.

비전문적인 회담 중에서는 브릭스 플러스에 주목할 만하다. 최근에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브릭스 플러스는 앞으로 더 많은 국가들을 끌어들여 (비동맹 국가들이 많은) 남반부를 대표하는 조직이 되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회원국들의 인구를 합치면 이미 전 세계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며, 각자의 역사와 문화는 다르지만 서구권에 대해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단합해 있다. 프랑스는 다수결의 논리를 받아들여 전 세계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통해 새로운 해결책을 도출하고 모두가 함께 변화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한 ‘확대된 브릭스 플러스’로 가는 길을 프랑스가 주도적으로 개척해, 브릭스 플러스의 가입을 원하는 국가들이 기존 회원국들과 토론을 벌일 수 있게 하고, 세계 인구 절반의 지지를 받는 국제적 안건을 수립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후 변화와 국가 파산에 관해서는 공동 대응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해야 한다. 특히 기후 변화의 공동 해결은 파리 협정과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힘을 잃어가는 현 상황에서 더욱더 중요하며, 국가 파산은 오늘날 두 가지의 재앙, 즉 사헬 지역, 중동, 중앙아시아를 타락시키고 모든 강대국을 힘들게 하는 국제 테러와 모든 대륙에서 횡행하고 있는 조직범죄는 국경을 넘나드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다극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또 보호해야 한다. 블록 간의 대립은 전 세계의 모든 다양성을 대변하지 못한다. 프랑스의 긴 역사와 여러 실패 경험은, 강대국 간의 균형 유지는 지금까지 시도됐던 다른 모든 형태를 제외한다면 최악의 국제 체계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윈스턴 처칠이 ‘민주주의란 최악의 통치 형태이다. 지금까지 시도됐던 다른 모든 통치 형태를 제외한다면’이라고 단언했던 것과 비슷하다. 중국이 두 세기에 걸친 침묵을 뚫고 국제무대의 리더로 귀환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필요한 일이며, 강력한 잠재력과 고유의 메시지를 가진 인도의 성장도 기대해볼 만하다.

두 번째 우선 과제는 준비와 자유로운 선택에 기반한 독립적인 정책이다. 프랑스는 필요하다면 전쟁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군대 규모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한다. 군사계획법은 2030년까지 국방비를 4천억 유로 이상으로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최근 몇 년간 군 관련 투자가 지지부진했던 상황을 고려해서 만들어진 이 법은 그러나 규모가 작고 비전문적인 군대, 강대국인 미국의 패권을 보조해주는 수준의 군대를 지향한다. 그러나 우리는 유럽 대륙과 프랑스 영토의 수호로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199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추진했던, 강력하고 유연하고 현대적인 장비를 갖춘 전문적인 군대 양성의 논리를 계승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또한 프랑스와 유럽의 주권을 가장 잘 보장할 수 있도록 유럽 전반적으로 국방 산업을 개편하고, 자금 지원을 쉽게 만드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국방비는 미래를 위한 투자 가치가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안정성 협약의 경제적 목표에서 국방비 지출을 제외시켜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1천억 유로의 유럽연합 공동 부채를 바탕으로 유럽 통합 국방 기관을 설립해, 회원국 간에 계획을 조율하고, 활동, 생산 기지, 연구 및 개발, 지식재산권을 지리적으로 배분하는 동시에 전 세계를 상대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새로운 오슬로 협정과 헬싱키 협정 역할이 중요

국가와 군 사이의 관계도 다시 한번 강화해야 한다. 전쟁은 단순히 권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저항성과도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징병제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해 국가적 자원을 개발하는 일을 고민해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이것은 더 분명하고 더 진지한 토론, 더 지속적인 합의, 더 존중할 만하고 더 존중되는 법을 만듦으로써 우리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강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보호막이 필요한 이유이며, 군의 역할과 군사적 수단을 확대해 권력을 강화하고, 군국주의 악순환의 위험을 줄여야 하는 이유이다. 또한 군 문제에 관해서는 의회와 시민사회의 제어 능력을 향상시켜야 하며, 언론과 국방 관련 산업 간의 유착 관계를 끊어서 언론이 여론을 호도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세 번째 우선 과제는, 세계 위기의 해결에 기여하는 그러나 공포심과 호전성을 조장하는 느낌은 주지 않는 외교 정책이다. 우크라이나 주둔군 파병, 프랑스의 핵 억지력을 ‘유럽 차원에서’ 논하는 일 등은 주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발표한 정책들이었다.

우리가 가만히 놔두면 상황이 악화하는 나라들, 우리가 반드시 도와주어야 하는 나라에서만 위기가 발생한다고 믿는 것은 무책임하다.

첫 번째에 해당하는 국가들, 세상의 불운으로 인해 위기에 빠진 국가들의 경우에, 국제 사회, 서구권, 프랑스는 도움을 줄 부분이 거의 없다. 아이티에서는 갱단이 파산한 국가를 장악하고 있고, 수단에서는 다르푸르 분쟁이 일어난 지 20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내전과 대학살이 일어나고 있으며, 미얀마도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과 레바논도 비슷한 상황이다.

우리는 방법을 바꾸어야 하고, 현실 참여를 확대해야 하며, 이 비극적인 상황을 모든 강대국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할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제 시스템에 안정과 안전을 부여하고, 통제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를 줄여야 한다. 모든 갈등, 아주 사소하거나 먼 곳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세계를 위기에 빠뜨리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유엔 안보리를 중심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 인도, 브라질 등 주요국의 당사자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를 조직해, 현장에 걸맞은 정책적 해결 방안과 개발 협력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두 번째에 해당하는 국가들에는 특별히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세상의 비극 때문에 위기가 발생한 국가들, 부정과 전쟁의 악순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경우이다.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이제는 이 갈등이 전 세계로 확산할 조짐까지 보인다. 심지어 일부 호전주의자는 이러한 상황을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가자 전쟁과 관련해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할 수 있는 해결책에 기반한, 신뢰할 수 있고 신속한 정치적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휴전부터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가자 전쟁이 주변 지역까지 확산할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는, 좀 더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시각을 가지고 이 지역 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중동 안전에 관한 회담을 개최해, 이것이 새로운 오슬로 협정(1993년 9월 13일 당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중재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2개 국가 해법에 합의해 체결한 평화협정-역주), 새로운 헬싱키 협정(1975년 7월 30일~ 8월 2일에 핀란드 헬싱키에서 미국과 유럽에서 35개국이 모여 주권 존중, 전쟁 방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체결한 안보협력 협정-역주)의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50년이나 묵은 갈등을 단 몇 주 만에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를 그 성질과 긴급성을 고려해 논의할 수 있는 틀과 절차를 마련하자는 뜻이다. 오늘날 가자 지구 거주민들이 겪고 있는 인도주의적 비극과 이스라엘 민간인들의 인질 문제를 종식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휴전이 절실하며,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가 이해 관계자로 얽혀 있는 현재 위기의 비극적 및 상징적 차원을 올바르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을 앞당기기 위해, 프랑스는 강력한 신호를 보냄으로써 지속적으로 균형 잡힌 위치를 유지해야 한다. 팔레스타인을 국가로서 인정하는 것이 가장 먼저이다. 그리고 국제법을 최우선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행해진 범죄에 관한 특별 법정을 개최하자고 제안해,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테러 공격, 가자지구에서 행해진 전쟁 범죄, 이스라엘의 요르단 서안지구 점령과 관련된 전쟁 범죄를 동등한 선상에서 다루어야 한다. 국제 정의에 기반해 평화를 구축하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고통을 더는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남반부 국가들과 함께, 강대국들의 블록 논리 제지해야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해서는, 세 개의 축 간에 적절한 균형을 장기적으로 수립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에 절대적인 지원을 보내는 동시에 러시아의 국제법 위반을 규탄해야 한다. 최근에 미 의회가 610억 달러 규모의 우크라이나 원조금 지원을 가결한 덕분에, 우크라이나가 자국을 무너뜨리려는 위협에 타협하지 않아도 되는 기회를 얻은 것이 좋은 본보기이다.

그리고 서구권이 자신들에게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으며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국제 질서 수호에는 관심이 없다고 여기는 남반부 국가들에 대한 프랑스의 입장도 명확히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단계적 긴장 완화를 유도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이 준비가 되었을 때 갈등 해결을 위한 합의를 도출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협상에 물꼬를 틀 수 있는 휴전을 이끌어내는 외교적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이 협상에는 세 가지 안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러시아가 점령하고 합병한 영토와 관련된 안건, 유럽에서 실현 가능한 안전 시스템과 관련된 안건, 2027년에 만료되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과 중거리핵전략조약(INF)을 갱신함으로써 국제 질서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핵 위험을 통제하는 것과 관련된 안건이다. 그리고 원칙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협상에 따라 해결책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동아시아 국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두 개의 거대한 진영이 균열을 일으키자 새로운 진영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대만, 한국 등 아시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인도양과 서태평양 인근 국가들을 억누르는 일은 전쟁의 악순환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지역적 균형을 추구하고 이 지역에서 급성장 중인 국가들을 존중해야 이러한 악몽을 방지할 수 있다. 미국이 너무 자주 그러는 것처럼, 전쟁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섣불리 판단하지는 말자. 그리고 점진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한 토론을 제안하자. 프랑스는 새로운 세계 전쟁과 새로운 얄타 체제 사이에서 양자택일할 필요가 없다. 블록 논리가 다시 고개를 드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있고 또 위험하다. 매일 우리는 고통받는 두 개의 세계, 상대와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두 개의 세계와 마주한다. 한쪽은 불안정한 진보의 이름으로 세계를 주도하고, 쇠퇴를 두려워하며, 상대를 공격한다. 다른 한쪽은 자신에 맞추어 세계 질서를 개편하고 싶어 하며, 높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제국주의적인 공간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극도의 안정성을 추구하면서 모든 변화는 애초에 싹부터 잘라버리는 세계이다.

이 두 세계 사이에서, 프랑스는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남반부 국가들과 함께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예고된 재앙을 막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이 공유되고 균형적이고 안전한 세계를 만들고, 인류의 공동 재산인 기후, 생물다양성, 금융 안정성, 기초 연구를 보존하기 위한 공동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새로운 세계를 준비하고, 원칙에 기반하면서도 변화에 열려있는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기에는 프랑스가 제격이다. 자국에만 집중하면 몰락할 수밖에 없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정의, 균형, 공동의 안전, 평화 추구는 프랑스를 이끄는 새로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글·도미니크 드 빌팽 Dominique de Villepin
전 프랑스 총리(2005~2007), 전 외무부 장관(2002~2004), 저서로 『Mémoires de paix pour temps de guerre 전쟁의 시간을 위한 평화 회고록』(Grasset, 2016)이 있다.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1) Benoît Bréville 브누아 브레빌, 「Les États-Unis sont fatigués du monde 미국의 비(非)개입주의는 어디까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6년 5월호.
(2) Serge Halimi 세르주 알리미, 「Irak, une agression américaine impunie : ‘‘Punir la France, ignorer l’Allemagne’’ 이라크, 처벌받지 않은 미국 공격 : “프랑스 벌주기, 독일 무시하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3년 5월호.
(3) Martine Bullard 마르틴 뷜라르, 「Chine - États-Unis, où s’arrêtera l’escalade? 승자 없는 중 - 미 무역 전쟁의 진짜 이유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8년 10월호.
(4) John Mearsheimer 존 미어샤이머, 「Pourquoi les grandes puissances se font la guerre 서구 강대국들이 전쟁을 벌이는 진짜 이유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3년 8월호.
(5) Dominique de Villepin 도미니크 드 빌팽, 「La France gesticule… mais ne dit rien 미 신보수주의적 정책에 반기를 들어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12월호 한국어판 2015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