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 문화정책을 고수하는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2024-07-31     앙트완 페케르 | 기자

젠나로 산줄리아노(Gennaro Sangiuliano)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은 정부 관료 가운데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가장 가까운 측근 중 한 명이다. 이탈리아 사회운동(MSI)을 비롯한 여러 네오파시스트 조직에 몸담았으며 언론인 및 미디어 디렉터로도 활동한 산줄리아노 장관은 항상 보수 노선을 고수해 왔다. 그런 그가 자기 성향에 맞게 이제 극우 문화를 고양하려 한다.(1)

그가 자신의 고향인 나폴리를 방문한 지난 3월 17일, 이날 나폴리에서는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산줄리아노 장관은 그 행사에 참석하는 대신, 왕궁에서 열리는 유명 작가 톨킨의 회고전 개막식에 참석했다. 그가 수장으로 있는 문화부에서는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을 회고하는 전국적 행사를 열고 있다. 11월 로마에서 열리는 J. R. R. 톨킨의 사후 50주년 기념 전시회에는 톨킨의 열렬한 팬인 멜로니 총리가 참석할 예정이다. 멜로니 총리는 이번 전시회의 핵심은 “기독교 신앙에 뿌리를 둔 『반지의 제왕』의 아름다움”을 드높이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 정부는 민족주의 장악을 위해, 박물관을 점거”

이탈리아의 공연 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는 “정부가 문화 공간을 국가 이념에 복무하는 공간으로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문화는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이건 미친 짓이에요”라며 걱정했다. 몇 해 전, 멜로니 총리는 이 세계적 문화 아이콘이 된 인물을 “기독교의 상징을 모욕하는 자칭 예술가”(2)라 부르며 적의를 드러냈었다. 이탈리아 언론인이자 작가인 파올로 루미즈는 “현 정부는 민족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박물관을 점거하고 TV를 장악하고 있습니다”라며, 현 정부의 행태를 1922년 베니토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에 비유했다.

현 이탈리아 정부는 진정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여느 정부 수반과 마찬가지로 멜로니 총리도 규모 있는 기관의 기관장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많은 정부 수반이 그러하듯 멜로니 총리도 기관장을 발탁할 때 자신이 신뢰하는 이들을 선호한다. 토리노 국제도서전의 총감독을 역임한 작가 니콜라 라지오이아는 “능력과 상관없이 자신과 정치적 노선이 같은 이들을 자리에 앉히려는 것이죠”라며 총리의 선택에 유감을 나타냈다.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피에트란젤로 부타푸오코는 전 이탈리아 사회운동 당원으로 이름이 꽤 알려진 문인이다. 최근 이슬람교로 개종한 시칠리아 출신의 부타푸오코는 “시칠리아의 정체성이 분명 이슬람적”이기 때문에 이슬람교로 개종했다고 말해, 좌파로 분류되는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에서 종종 그의 글을 읽었던 동지나 정적 모두를 아연실색게 했다. 그런 그가 이제 비엔날레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 그는 자신의 말대로 “생산적인 침묵 속으로” 도피할 뿐, 대중에게 자신의 계획을 밝히려 하지 않는다.

문화부 장관은 베네치아보다 민주당이 접수한 캄파니아의 주도(州都) 나폴리에 더 신경 쓰는 눈치다. 정부는 나폴리에 있는 산카를로 극장의 프랑스인 관장 스테판 리스네를 축출하기 위해, 외국인 오페라 감독이 70세가 되면 직위를 떠나도록 강제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산카를로 극장의 클라리넷 솔로이스트 루카 사르토리는 이에 대해 “그건 어리석은 결정입니다. 리스네가 오기 전에 극장은 지역적으로 고립되어 있었죠. 그런데 오늘날에는 엄청난 청중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라며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결국 나폴리 법원은 리스네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밀라노의 피나코테카 디 브레라 미술관의 경우 법원 판결에 호소할 필요가 없었다. 2016년 취임 후 미술관 전시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영국인 관장 제임스 브래드번의 두 번째 임기가 만료되었기 때문이다. 브래드번 관장의 후임으로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내각에서 문화부 장관 고문을 지낸 안젤로 크레스피가 발탁되었다.

또한 나폴리의 카포디몬테 박물관의 프랑스인 관장 실뱅 벨랑제의 후임으로는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아이케 슈미트가 임명되었다. 슈미트 관장은 독일인이지만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시민이 되었고, 이어서 정부연합의 지원을 받아 피렌체 시장 후보가 되었다. 그는 “이탈리아는 오페라가 탄생한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의 주요 기관에 외국인이 기관장으로 임명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라는 정부연합의 발언을 알아차리고, 재빠른 행보를 보였다.

 

“로마극장의 위기는, 좌파도 책임이 큽니다”

지난 1월, 이탈리아의 수도에서는 나폴리 출신의 극우 성향 감독 루카 데 푸스코의 로마극장 관장 임명에 반대하는 시위가 3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시위에 참가한 이들은 주로 예술가나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이었는데, 그들 중 여배우 소니아 베르가마스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의 시위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거리에서 사람들은 저를 멈춰 세우고 계속 싸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탈리아에는) 프랑스 같은 시위 전통이 없어요. (…) 로마극장의 위기는 이번 정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좌파도 이 위기에 책임이 큽니다.”

또 다른 시위 참가자 카스텔루치는 “박물관 및 유산과 함께 너무 오랫동안 박제된 문화”를 개탄하며, “현대 창작을 위한 공간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2014년부터 2022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민주당 소속의 다리오 프란체스키니는 카스텔루치의 말에 동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현대 미술 부서를 신설했습니다. 그전까지는 그런 부서가 전혀 없었죠.”

이탈리아 정부의 최근 결정은 문화 영역에서 수십 년간 퇴보가 이뤄진 후 나온 것이다. 밀라노의 문화 고문을 지낸 작곡가 필리포 델 코르노는 “전후에는 공공 당국이 문화를 사회 해방을 위한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알도 모로 내각은 1974년에 문화부 장관직을 신설했지요. 그러나 이때부터 모든 것이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영화 제작자로 최근까지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던 로베르토 치쿠토는 “베를루스코니 시절에 시청각 작품 수는 증가했지만 질적으로는 급격한 쇠퇴를 겪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국영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주로 오락 프로그램에만 전념할 뿐 공익의 임무는 소홀히 했다. 그 당시 존재했던 네 개 교향악단 중 현재 활동 중인 교향악단은 단 하나뿐이다.

멜로니 총리의 집권 후 여러 방송 진행자들이 하차하고 그 자리를 친정부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 채우면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지난 2월 래퍼 다르겐 다미코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민의 이점에 대해 말하자 진행자는 갑자기 “이제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자”며 말을 잘랐다. 이탈리아 공영방송 <RAI>는 무솔리니의 생애를 다룬 시리즈 소설의 저자 안토니오 스쿠라티를 이탈리아 해방 기념일 토론에 참가자로 초청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4월 말 이를 취소했다.

 

산줄리아노 문화부 장관, “단테는 이탈리아 우파 사상의 창시자”

현재 이탈리아 문화부 예산은 35억 유로로, 이는 국가 예산의 약 0.4%에 해당한다. 2023년에서 2024년 사이 이탈리아 문화부 예산은 1억 2,400만 유로 삭감되었다. 게다가 박물관은 만성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 4만 9,000여 개 작품을 담당하는 미술사 전공 큐레이터가 단 한 명뿐인 카포디몬테 미술관에서 인력 부족률은 75퍼센트에 달한다. 급여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루카 사토리는 “저는 월 2000유로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습니다. 프랑스나 독일의 오케스트라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받는 급여의 절반 수준이죠.”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국내 13개 오페라극장은 직원 고용 조건을 규탄하기 위해 파업에 돌입했다.

이 상황에 대해 <라 레푸블리카>의 칼럼니스트 지안니 리오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합의에 따른 외교 정책을 추구해야 하는 멜로니 총리는 문화 정책에 있어서만은 파시스트적 노선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방향의 정책은 문화 분야에 우파 인사들을 기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산줄리아노 장관은 이야기를 지어내고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오른쪽으로의 ‘복귀’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1월에 열린 이탈리아형제들(FDL) 당대회에서 산줄리아노 장관은 단테를 “이탈리아 우파 사상의 창시자”로 묘사했다. 이에 대해 문학사가 조르지오 잉글레세는 “파시스트들은 1980년대에 이미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첫 번째 노래에서 무솔리니의 등장을 보고 단테를 소환하기 시작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철학자 파올로 페체레는 “1980년대부터 이미 조르자 멜로니가 활동했던 파시스트 조직들은 무솔리니의 말이나 글을 사용하는 것이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안으로) 톨킨의 작품과 명예 숭배, 종교적 차원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이탈리아 사회운동의 청년조직은 “호빗 캠프”를 조직하기도 했다.

톨킨 전시회는 지금까지는 기대 이하의 실적을 보였다. 하지만 이탈리아 정부는 볼로냐에 이탈리아 문화박물관을 열거나 로마에 ‘포이베 대학살’—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사이의 국경 지역에 위치한 자연 땅굴에서 수많은 이탈리아 민간인들이 유고슬라비아 빨치산에 의해 학살된 사건—을 추모하는 새로운 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또 다른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3)

 

스가로비 전 문화부 차관, “파시즘을 등에 업고 여러 걸작들이 생산돼”

멜로니 총리의 임기 첫 2년 동안 산줄리아노 문화부 장관과 함께 차관으로 임명돼 호흡을 맞춘 비토리오 스가르비는 텔레비전 방송 출연, 저질 발언, 수차례의 유죄 판결, 마피아와의 연관성 의혹 등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에 관한 수많은 글을 쓴 이 미술 평론가는 문화 행사에서 출연료 명목으로 돈을 받은 혐의(이탈리아의 고위 공무원이 행사 참석 시 대가를 받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와 미술품 절도 및 변조 혐의 등으로 사임 압박을 받다가 지난 2월 결국 사임했다.

그는 사임 후 로마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산줄리아노 장관은 우익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우익 인사들을 기용하고 말도 안 되는 연설을 하고 다닙니다. 그녀는 지식인 계층을 다른 인물들로 대체하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사람들에게 각자 원하는 대로 생각할 자유를 줘야 합니다.”

스가르비 전 문화부 차관은 우리 취재진을 아파트 옥상 테라스로 데려가더니 로마의 밤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는 산티보 알라 사피엔차 성당의 돔을 회중전등으로 비추며 말했다. 
“저 보로미니의 걸작을 보세요. 당시 이탈리아는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었지만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창작하도록 허용했습니다.”

스가르비는 이탈리아 북부 로베르토의 한 박물관에서 4월 14일부터 9월 1일까지 “예술과 파시즘”이라는 제목으로 4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회를 기획했다. “제목에 파시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을 겁내지 않고 전시를 기획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우리는 진실을 감춰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20년간 예술과 건축 분야에서 파시즘을 등에 업고 여러 걸작이 생산되는 것을 봤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예술가는 세상의 질서에 굴복하지 않고 창의성을 지킨 이들입니다.”

 

 

글·앙트완 페케르 Antoine Pecqueur
기자. 문화, 경제, 국제 분야 기사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프랑스어판,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나시오날>, <메디아파르> 등에 게재하고 있다.

번역·김루치아
번역위원


(1) 젠나로 산줄리아노 장관은 이 기사와 관련하여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2) Paolo Trentini, 「L’ira della Meloni: “Che schifo il teatro di Castellucci” 멜로니의 분노: “카스텔루치의 극장은 정말 역겹다”」, 2016년 4월 2일, www.giornaletrentino.it.
(3) Jean-Arnault Dérens & Laurent Geslin, 「Trieste, la conscience d’une frontière 트리에스테, 기억에서 지워진 피의 국경」,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3년 9월호, 한국어판, 2023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