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밀레이의 ‘전기톱으로 문화 자르기’
아르헨티나의 문화전쟁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문화 부문과 그 유관기구 그리고 관련 보조금 등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문화는 국가에 기생하는 분야이자 진보주의 세계에 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밀레이는 숫자를 토대로 문화를 공격하지만, 정작 그의 공격은 근본적으로 경제적 선택이 아닌, 정치적 비전에 입각한다. 그가 전기톱을 휘두르도록 이끄는 것은 바로 강박적인 성격의 ‘반공주의’ 메시아니즘이다.
지난해 12월 11일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는 대통령 취임 직후, 문화 부문에서 그가 추구하는 진정하고도 유일한 계획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그것이 바로 문화 말살이다.
첫째, 밀레이 대통령은 문화부를 문화청으로 격하한 데 이어, 민간연극 제작자를 그 수장으로 임명했다. 둘째, 일명 기본법(Ley de Bases)(664개 조항으로 이뤄진 대규모 법안 패키지라는 점에서 ‘옴니버스 법’(Ley Ômnibus)이라고도 불린다)으로 불리는 대규모 개혁안을 의회에 상정했다.
특히 문화 개혁이 주류를 이루는 이 법안의 제3장은 가장 왕성한 활동으로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는 문화기관들 가운데 일부 기관의 예산을 삭감하거나 조직을 개편하거나, 경우에 따라 아예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령 프랑스 국립영화영상센터(CNC)에 해당하는 아르헨티나 국립영화영상예술연구소(INCAA)의 독자적 재정원인 두 재정기금을 전격 폐지하거나, 국립예술기금(FNA)과 국립공연예술협회(Instituo naciona del Teatro)의 문을 닫는 한편, 1,800개 공립도서관이 제공 중인 극히 소박한 가격 혜택 서비스조차 전격 중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출판계도 긴축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프랑스의 ‘랑법’을 벤치마킹한 도서가격 관련 법률 폐지를 발표했다. 이 법은 그동안 시장을 교란하거나 독립서점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높은 대형서점의 도서 가격 할인을 금지해왔다.
이 법안은 지난 1월 초 부결됐지만 5월 수정안이 다시 상정됐다. 본래 법안이 400여 개 조항으로 축소되는 한편, 제3장이 제외됐다. 또한 일부 논쟁이 된 부문도 가벼운 수정을 거쳤다. 가령 행정부가 ‘비상시국’을 이유로 다양한 분야에서 의회 표결 없이 법령을 선포할 수 있는 입법 권한을 누릴 수 있도록 한 조항의 경우, 본래 법안과 달리 그 기한을 2년이 아닌 1년으로 축소하는 한편, 적용 대상도 제한했다.
아르헨티나 의회는 이처럼 새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결국 밀레이 정권이 본래 제3장의 내용을 포함한 모든 문화 말살 정책을 아무런 걸림돌 없이 실행할 수 있는 전권을 손에 쥐어준 셈이 됐다. 사실 대통령은 의회 심의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일찌감치 문화 말살 행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집권 초기 3개월 동안 이미 중남미 주요 뉴스통신사 ‘텔람’의 업무를 중단시키는가 하면, 공영 텔레비전과 라디오 폐쇄도 계획하고 있다. 밀레이는 INCAA 대표로 영화산업과 전혀 무관한 금융전문가를 지명했다. 새 INCAA 대표가 부임하자마자 내린 결정은 직원 백여 명을 해고하고, 각종 핵심부서(홍보, 상영관 운영 및 관객 개발, 영상사업 감독)를 폐지하는 한편, ‘행정조직 개편’이라는 미명 아래 90일 동안 해당 기관과 더불어, 아르헨티나 영화 상영을 독점적으로 담당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단 하나뿐인 극장인 고몽 극장의 운영을 중단시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영화산업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실 문화는 밀레이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분야는 아니다. 문화는 밀레이 대통령이 꿈꾸는 급진자유주의 국가에게 있어 불필요한 짐이자, 낭비·무책임·부정부패의 온상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밀레이의 발언에 따르면, 모든 공공기관이 전부 그와 비슷하다. 재정균형, 예산축소, 중앙은행 발권 기능 폐지 등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밀레이 대통령에게 문화는 골칫거리, 그것도 극도로 성가신 골칫거리에 불과하다.
밀레이에게 문화가 요구하는 돈은 영원히 돌려받기 힘들뿐더러, 돌려받더라도 즉각 수치로 환산하기 힘든 수익의 형태에 불과해, 문화가 산출하는 이익을 경제적으로 평가하거나 문화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가늠하기가 매우 어렵다. 사실상 시장이야말로 밀레이 대통령이 머리 조아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유일한 신인데 말이다. 문화는 아르헨티나 국내총생산(GDP)의 2.4%를 차지하지만, 정작 밀레이 대통령이 말하는 ‘가장 가성비 좋은 우수한 상품’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사실상 단순무식하기 그지없는 이 문구를 밀레이 대통령은 효율적인 시장의 비결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함축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문화 관련 발언을 극도로 꺼리는 밀레이 대통령은 수주 전 문화와 관련해 이렇게 자문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영화에 공공재정을 지원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사실 이러한 논리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밀레이가 선거 운동 때 한순간 빈곤층으로 전락한 유권자층을 유혹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던 단골 멘트다.
밀레이, “영화가 아르헨티나 국민을 가난하게 만든 주범”
그는 빈곤층의 적으로 그들을 불행으로 내몬 주범인 엘리트층을 내세웠다. 가령 정치 계급(밀레이가 흔히 ‘카스트’라고 말하는 계급)부터 시작해, 확실히 ‘가장 가성비 좋은 우수한 상품’을 생산한다고 말할 수 없는 영화인들(하지만 루크레시아 마르텔, 마르틴 레흐만, 로드리고 모레노, 산티아고 미트레, 로라 시타렐라, 마리아노 지나스 등 수많은 영화인이 지난 30년에 걸쳐 아르헨티나의 명성을 높인 눈부신 영화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그리고 학생들을 교실에 방치한 채 파업에 나서는 교사들, 아무도 관심이 없는 문제를 연구한답시며 국가보조금을 축내는 학자들 등등, 소위 엘리트층은 만인의 미움을 살 만한 사악한 조커로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먼저 밀레이는 영화가 아르헨티나 국민을 가난하게 만든 주범이라고 비판하며 경멸한다. 하지만 정작 이 영화들은 납세자의 혈세나 국가보조금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다. 바로 기본법이 그토록 없애고 싶어 안달하는 INCAA의 특수한 재정기금 덕에 제작됐다. FNA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가 지원을 받은 적이 없는 FNA도 나랏돈을 축내는 기생충이라는 억울한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다시 말해 밀레이의 논리는 사실상 정치적 성격의 결단을, 마치 수치로 환산된 경제성적표를 통해 증명할 수 있는 자명한 이치, 단순한 진실(소득과 지출, 투자와 수익 간의 비대칭적인 관계)인 양 간주한다는 점에서 분명 오류에 해당한다.
사실상 밀레이에게 문화의 문제는 결코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정치적인 문제다. (그리고 앞으로 필자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내용은 공교육 분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봐야 한다. 밀레이에게 공교육은 또 다른 사악한 괴물의 일종으로,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괴물을 무찌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령 350% 연간 물가 상승률은 한낱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라는 듯, 2024년 교육 예산을 2024년 수준으로 동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전반적으로 아르헨티나 문화계는 소위 ‘진보주의적’이라고 불린다. 비록 이 형용사는 매우 모호하고 때로는 이중적이기까지 하지만, 어쨌거나 이 단어는 아르헨티나에서 일정한 원칙과 가치, 성취,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변곡점을 둘러싼 어느 정도 탄탄한 사회적 합의를 지칭하는 말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사회적 합의가 바로 군사 쿠데타가 부재한 지난 40년 동안 아르헨티나인 모두가 공유하는 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루어왔다.
아르헨티나 문화계, 밀레이의 개혁안을 규탄하며 저항에 나서
문제는 밀레이 유권자 56% 가운데 과연 몇 퍼센트가 과거 이러한 민주주의 토대를 중요하게 생각했었는지, 그리고 왜 그 생각을 저버리게 됐는지, 또한 민주주의 토대를 정치적 구호로 삼은 이들이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데 필요한 민심 확보에 어찌하여 실패했는지 일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지난 1월 문화계가 밀레이의 개혁안을 규탄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을 때, FNA와 INCAA 건물을 점거하고, 저항 시위를 조직하고, 문화계와 공공재정의 무관함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대대적으로 언론사로 몰려갔을 때, 그들이 추구한 것은 단순히 문화계의 특수한 이권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었다. 바로 민주주의 공존과 동의어로 통하던 바로 그 사회적 합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적어도 밀레이가 집권하기 전까지 그 사회적 합의는 실제로 민주주의 공존의 동의어로 잘 작동했었다.
하지만 밀레이는 이 동의어 관계를 용인하지 않는다. 그는 경제적·법적 수단을 동원해 숨통을 조이거나, 정치적 홀대·적대·음해 공작 등을 동원해 그 동의어 관계를 뒤흔들고 무너뜨리려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사실상 부총리의 행보는 밀레이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다. 군인의 딸인 빅토리아 비야루엘은 밀레이보다 훨씬 더 거친 방식으로 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녀는 국가 테러 행위 부인, 법의 심판을 받고 철창에 갇힌 시민 학살의 주범인 군인들을 향한 지지를 바탕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민주주의 40년 역사에서 그녀만큼이나 극단적으로 나아간 사람은 아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사 청산 및 인권 정책(‘진보주의’를 ‘민주주의’와 동의어로 간주하는 사회적 합의의 근간이 된 바로 그 ‘눈카마스’(‘이제 그만’이란 뜻을 지닌 단어로 과거 군부 독재정권 치하에서 자행된 인권 유린 실태를 조사했던 국가위원회가 펴낸 보고서 제목으로, 흔히 중남미에서 과거사 청산 구호로 사용되는 표현이다-역주)는 언제나 미세한 의견 차이와 갈등, 내부 분열로 점철되어 왔지만, 그렇다고 권력의 상층부가 적극 나서서 과거를 부인하는 각종 수정주의적 수단을 동원해 아예 정책을 다시 새롭게 쓰려고 시도한 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한 면이 바로 (1976년 독재정권, 1990년대 카를로스 메넴, 도밍고 카바요 정권의 계보를 잇는 밀레이 정권의 구조조정정책 이상으로) 밀레이 정권만의 독보적인 특징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밀레이 정권의 전투지는 문화다. 2015~2019년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지내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공공연히 표방한 마우리시오 마크리와 같은 우익 정권조차 지금껏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극도로 몸을 사렸었다.
하지만 밀레이 정권은 모든 것을 전부 공격한다. 1970년대와 독재정권에 대한 진보주의적 해석은 물론, 인권, 공교육, 환경 인식, 낙태법, 동성결혼, 반(反)차별외국인혐오인종주의국립연구소(INADI), 여성청(폐지 예정), 심지어 포용적 언어(소외된 집단을 배제할 수 있는 용어를 피하는 언어-역주)까지 전부 공격한다. 특히 (‘사상을 주입’하고 ‘사회 가치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행정기관에서 사용이 금지된) 포용적 언어의 경우 논쟁이 무성하지만, 아연실색할 강박적인 반공 분위기 속에서 사용이 금지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밀레이 선거 운동의 상징인 전기톱은 소셜미디어가 봇물을 이루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비단 대통령의 맹렬한 신자유주의 스타일을 홍보하기 위한 과감하면서도 이상적인 상징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전기톱은 제거, 가지치기, 삭감, 경제조정 등을 상징하는 선혈이 낭자한 고어적(gore, 잔혹한) 심볼(“모든 아르헨티나인을 위해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전부 없애자”라고 몇 주 전 대통령 대변인이 한 마디로 요약한 바 있다)에 해당한다.
하지만 동시에 전기톱은 밀레이의 이념·문화 십자군을 고무하려는 광신적인 갈망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상 밀레이는 연설 중 그 이념·문화 성전의 표적을 명명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국민이 비델라 장군의 군부 독재 시대 이후(1976~1983년)로는 결코 들어본 적이 없는 강경한 수사학을 동원한 바 있다. 사실 전기톱은 국가재정과 관련해 완벽하게 작동한 바 있지만, 아마도 ‘zurdos’, ‘surdaje’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는 아르헨티나에서 좌파 인사를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단어인데, 밀레이와 그 측근은 자신들의 모든 적의 정치적 아이덴티티를 이 말로 통칭하곤 한다. 가령 그중에는 공산주의자, 페론주의자, 포퓰리스트, 사회주의자, 국가관리주의자, 조합주의자, ‘물러 터진’ 자유주의자, 복지국가 지지자, 케인스주의자, 사회기독주의자, ‘동성애 지지 마르크스주의자’, 페미니스트, LGBTQIA+(성소수자) 운동가, 낙태권 찬성자, 사회운동세력 등이 모두 포함된다.
한 마디로,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에 속하지 않는 모든 세력이 전부 밀레이의 적인 셈이다. 밀레이가 지난 1월 17일 다보스 경제포럼이 세계의 모든 권력자들을 상대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서구가 위험에 처했다!”)고 훈계하기 위해 모이는 자리)에서 했던 연설에 따르면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는 가장 완성된 형태의 체제이자, 동시에 현 시대적 과제에 가장 적절히 부합하는 유일한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시대적 과제가 바로 빨갱이 쓰레기를 축출하는 것이다. 사실 밀레이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어쨌거나 그러한 목표가 부활하는 데 힘을 보태게 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가학적인 극단의 해법에 잠식된 아르헨티나의 시대정신
만일 진정으로 ‘밀레이 문화’란 것이 존재한다면(대통령이 등장하는 틱톡 분노 짤에 열광하는 여드름이 돋은 청소년들, 맞춤 정장을 빼입고 귀족의 성을 과시하는 카톨릭 형법주의자들, 규제에 질린 경영자들, 질서·철권통치·가정을 지키는 여성·정치적 구호로 더럽혀지지 않은 담벼락 등을 그리워하는 세대 등, 밀레이의 모든 지지자들이 공유하는 문화), 그것은 바로 밀레이의 유전자 속에 뼛속 깊이 새겨진 반공주의 메시아니즘일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광신적이면서도 맹목적인 매카시즘 광풍(밀레이는 연설 중에 종종 “승리는 군인의 숫자가 아닌, 하늘의 힘에 의해 좌우된다”라는 말을 인용하곤 한다)이자, 온갖 곳에서 ‘집산주의’의 징후를 발견하고, 조국을 위한 자신의 이상과 신념, 방식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모조리 빨갱이 망령의 어두운 손길로 비판해버리는 순도 100%의 증오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밀레이는 자신의 선거 운동의 최애 상징물로 전기톱을 선택함으로써, 1950년대 미국의 반공주의 시대정신(Zeitgeist)에 합류했다고도 볼 수 있으리라. 당시 미국도 B급 쓰레기 SF 장르를 선택함으로써, ‘블롭’(blobs)(1), ‘바디 스내처’(body snathcher) 등 온갖 끔찍한 외계생명체의 형태를 빌려 공산주의의 위협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곤 했다.
하지만 1950년대 미국의 시대 분위기는 근본적으로 편집증적인 성격을 띠었다. 수동태로 쓰인 영화 시나리오는 침입당하고, 소유당하고, 정복당했다고 표현하곤 했다. 하지만 밀레이 집권 이후 아르헨티나의 시대정신(Zeitgeist)은 과거 미국의 경우와는 달리 가학적인 성격을 지닌다. 아르헨티나의 시대정신은 폭력에 열광하고, 중재를 믿지 않으며, 협정과 협상을 혐오한다.
그리고 가장 기초적인 언어(때로는 군사적, 또 때로는 의학적 언어)를 사용해 무자비한 극단적 해법을 이야기한다. 대표적인 예가 잘라내다, 절제하다, 베어버리다, 격멸하다, 뿌리뽑다 등이다. 그런가 하면 국가를 제로의 상태부터 다시 재건하다와 같은 말로 극단적 임무를 완화해서 표현하거나, 미래에 대한 예견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미래란 오히려 19세기 과거를 훨씬 많이 닮았다. 아르헨티나가 세계에 곡물을 공급하고, 3개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젠틀맨’의 통치를 받고, 아직까지 이민자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레밍턴 총으로 원주민들을 학살하거나, 20세기에 예비된 붉은 세기, 국가·보통선거·사회권의 세기, 데카당스의 시대를 미처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그래서 아르헨티나인들이 널리 행복했던 그 시절을 말이다.
사실 ‘밀레이 유토피아’는 분명 실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복고풍의 역행적 유토피아이면서, 동시에 오로지 소수를 위한 국가의 틀 속에 주조된 유토피아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그것은 현대 세계가 생산해낼 수 있는 디스토피아에 가장 가까운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글·알란 파울스 Alan Pauls
아르헨티나 작가. 주요 저서로는 크리스티앙 부르주아 출판사에서 출간된 『La Moitié fantôme 반유령』(2023), 『Histoire de larmes 눈물의 역사』(2009), 『La Vie pieds nus 맨발의 삶』(2007), 『Le facteur Borges 우체부 보르헤스』(2006), 『Le Passé 과거』(2005) 등이 있다.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blob’이란 단어는 척 러셀이 만든 미국 SF 공포 영화(1958년)의 제목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영화에서 끈적끈적한 점액질의 거대한 외계인이 펜실베이니아의 한 마을을 공포에 빠뜨린다. 한편 ‘body snatcher’는 인간을 대체하는 신체 강탈자를 참조한 표현이다. 돈 시겔 감독은 잭 피니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 <바디 스내처>(1956)를 통해 새로운 장르를 창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