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銀 180억 횡령사고…은행권 대형 금융사고 왜 반복되나
지난 6월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180억원 횡령사고로 은행권의 내부통제에 다시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횡령·배임을 저지른 경제사범들은 절반 가까운 47.8%가 집행유예 판결에 그쳐 ‘솜방망이’ 처벌 논란도 제기된다.
18일 은행연합회 은행 경영공시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2021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발생한 금융사고는 총 125건으로 집계됐다. 금융사고는 2021년 43건, 2022년 40건, 2023년 36건으로 소폭 감소했다.
하지만 사고 규모는 되레 증가했다. 사고액이 100억원 이상으로 집계된 대형 금융사고는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2건에 불과했지만, 올 들어서만 3건이 발생했다.
가장 최근 드러난 건은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180억원의 횡령사고다. 우리은행은 지난 10일 경남 김해의 한 지점에서 대리급 직원 A씨가 올 초부터 최근까지 100억원 상당의 고객 대출금을 횡령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은 올해 100억원 이상 배임사고가 총 3건 발생했으며, 농협은행도 지난 3월 109억원가량의 배임사고를 적발했다.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은행들은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자체적인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지난 2022년 700억원대 횡령 사건이 발생한 우리은행은 지난해 7월 지점장급 내부통제 전담인력 33명을 영업본부에 신규 배치하는 등 새로운 내부통제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지난 12일 ‘2024년 하반기 그룹 경영전략워크숍’에서 180억원 횡령사고를 두고 "뼈아프다"며 "임직원 모두 절벽 끝에 선 절박한 마음으로 자성하고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신념으로 내부통제 강화와 윤리의식 내재화에 나서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국민은행 또한 최근 금융사고 예방 강화를 위한 지역그룹 내부통제팀을 신설했다. 부점장 및 팀장급 2인 1조를 각 지역그룹으로 파견해, 영업 현장의 내부통제 취약부문을 점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디지털 기반의 상시감사체계 시스템도 운영 중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4월 1일부터 기업금융 및 외환파생운용 담당직원에 대해 특별명령휴가를 도입했고, 장기근무시 담당기업을 2년마다 순환해야 한다. 내년 말까지 준법감시부 인력도 전체 직원의 0.8% 이상 확보하고, 준법감시부서 내 전문인력도 20% 인상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당국도 은행권의 대형 금융사고가 연달아 터지자 칼을 뽑아들었다.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발표하고, 거액 횡령이 나타나기 쉬운 PF 영업 전수조사 등을 진행했다. 은행들은 그 후속조치로 현재 ▷장기근무자, 순환근무 대상 직원 5% 이하로 관리 ▷준법감시부서 전문인력 확충 ▷내부고발제도 의무화 등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실행하고 있다.
내부통제 강화에도 사각지대 여전…처벌 강화 목소리도
그럼에도 내부통제 제도의 사각지대를 이용하는 사례는 이어진다. 최근 발생한 우리은행 100억원대 횡령 사건 또한 이에 해당한다. 횡령 사건을 일으킨 기업대출 담당 직원 A씨는 지점에서 대출 전 과정을 처리하는 맹점을 활용한 단기여신을 통해 감시망을 피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행 내부에서는 자체적인 내부통제 방안들이 직원 개인의 일탈까지는 막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권에서는 자체적으로 금융사고를 적발하는 경우가 늘어나며, 내부통제 강화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체 내부통제에 따라 금융사고가 적발될 경우, 사고 발생 이후 일정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사고액의 환수가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17개 은행의 지난 10년 간 횡력액 중 환수된 금액은 7.7%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사법적 차원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내부통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횡령 등 경제 사범에 대한 처벌이 약한 풍토가 은행원들의 ‘한탕주의’ 횡령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실제 대법원 2023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22년 횡령·배임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비중은 47.8%로 절반에 달한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해외 선진국과 비교해 가벼운 처벌, 낮은 환수율 등은 은행원 횡령·배임의 원인 중 하나”라며 “내부통제 고도화와 함께 특정 범죄 동기가 있는 은행원을 억제할 수 있는 처벌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한탕주의’를 예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액과 더불어 손해배상액까지 완전히 환수할 수 있을 정도의 양형 기준이 정비된다면 범죄 동기가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