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하는 이탈리아 오성운동당(M5S)

2012-09-11     라파엘레 라우다니

식료품 산업의 메카이자 파르말라트와 바릴라를 비롯한 다국적기업의 본사가 있는 파르마에서 열린 지난 5월 지방선거 승리에 힘입어, 오성운동당(M5S·Movimento Cinque Stelle)은 이탈리아 정계에서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제노아 출신 코미디언이자 블로거인 베페 그릴로(<파이낸셜타임스>의 표현을 빌리면 "이탈리아의 지미니 크리켓")(1)가 이끄는 M5S는 창당한 지 불과 2년 만에 이미 세 도시에서 압승을 거두었고, 각급 지방의회 및 시의회 의원으로 250명이 당선되는 쾌거를 이룩했다. 전국구 선거에서 같은 성적(득표율 18%)을 거둔다면 위기에 빠져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자유국민당(PDL)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제2당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2) M5S는 포퓰리즘과 반정치적 행보로 인해 언론의 지속적인 지탄을 받고 있지만, 세계적 흐름에 부합할 뿐 아니라 이탈리아 내에서도 급부상하고 있다. 독일의 해적당이나 미국의 티파티만큼이나 색다른 조직 형태를 표방하는 M5S는 아래로부터의 참여, 좌우 경계의 타파, 부패한 기존 정당 체제로부터의 탈피를 추구한다. 영화감독 난니 모레티의 '지로톤디(Girotondi·'주변을 도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기존 제도에 대해 저항하는 사람들을 뜻함)파', 반부패 운동 마니풀리테(Mani Pulite·'깨끗한 손'이라는 뜻)(3)를 이끈 검사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의 '이탈리아 가치(Italia dei Valori)당', 또는 '모든 정치색을 거부한다'는 뜻의 '보랏빛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M5S도 부패 척결을 정쟁의 시발점으로 삼는다. 확실히 '물·환경·교통·연결·개발'이라는 5개의 별을 내세운 오성운동이라는 당명보다는, '부패 척결'이라는 슬로건의 내재화가 M5S의 성공 요인에 가깝다. M5S 지방위원회 중 한 곳의 웹사이트에도 나와 있듯 M5S는 '유연한 운동', 위계적 구조나 부서, 당원증이 없고 블로그 'Beppegrillo.it'를 유일한 구심점으로 하는 일종의 '자유로운 시민모임'을 지향한다. M5S 지지층은 다양하다. 대부분 특별히 지지하는 사상이 없는 정치 초심자, 기존 체제에 실망한 열혈 좌파, 심지어 네오파시즘과 포스트파시즘을 지지했던 우파 출신도 있다. 이 다양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은 이탈리아 중에서도 유독 좌파 색채가 강한 지방이다. 대표적으로 에밀리아로마냐주(州)는 현재까지 M5S가 가장 큰 승리를 거둔 곳이다.

코미디언이 영도하는 신흥 정당

이처럼 다양한 지지자 집단을 하나로 엮어주는 공통점은 바로 베페 그릴로다. 그릴리니(그릴로 지지자)라면 누구나 M5S의 유일한 공식적 발언자 그릴로만을 진정한 대변인으로 인정한다. 일부 지방위원회는 단순 지지자의 언론 인터뷰를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을 정도다.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가 정치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풍자극을 통해서다. 1980년대 이탈리아 사회당 지도자들을 '도둑'이라 칭했다는 이유로 TV 출연을 금지당한 뒤, 그는 연극 무대에서 제2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20년 넘게 그는 정치권력과 거대 민간기업의 결탁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선보이며 극장과 운동 경기장으로 고정 팬들을 몰고 다녔다. 그러다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그는 분노와 절망을 오가는 대중의 폐부에 직접 닿을 수 있는 공명의 창구를 갖게 되었다. 한발 더 나아가, 그릴로의 극단적 메시지에 격앙된 반응을 보임으로써 의도하지 않은 광고 효과를 주는 거대 미디어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릴로는 대안에너지, 지능형 교통 등에 대해 유용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지만 그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에서 연설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난 6월 25일 이스라엘 일간지 <예디오트 아흐로노트> 기자의 말처럼 그릴로는 "대중이 기대하는 바를 잘 아는 훌륭한 배우"다. 그릴로는 지나치다시피 한 언론 노출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대중적 양식과 M5S를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강화한다. 그는 풀리아 주지사이자 좌파생태자유당(SEL) 창시자인 동성애자 니콜라 벤돌라를 비하하는가 하면,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이민자 자녀들에게 이탈리아 국적을 부여하자는 제안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는 등 동성애 혐오적이거나 인종차별적 발언을 수시로 흘린다. 최근에는 북부연맹당(Lega Nord)의 편에 서서, 여름의 밤 문화가 모든 면에서 건전하고 훌륭한 가족들의 안락과 안전을 방해한다며 그 '퇴폐성'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그릴로가 제안하는 모델은 베를루스코니 재임 기간에 이뤄진 극단적 정치 사유화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 하지만 '일 카발리에레'(Il Cavaliere·'왕당파' 또는 '기사'라는 뜻으로 베를루스코니의 별명)의 카리스마적 권위가 전방위적이고 직접적인 선거 개입에서 나오는 데 반해, M5S는 일종의 '리더 없는 리더십'을 제안한다. M5S는 당수 그릴로가 선거전 이면에서 설교자 겸 체제의 도덕론자로 활약하며 여론을 장악한다. M5S에도 베를루스코니식 모델에 있는 정치에 대한 소유주적 이해를 공유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릴로는 혁신을 꾀했다. 베를루스코니가 창시한 첫 정당인 전진이탈리아당(Forza Italia)은 미디어세트그룹의 홍보마케팅 대행사 푸블리탈리아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 창당 때 후보자와 지지자들은 모두 베를루스코니가 운영하는 미디어세트그룹의 직원과 경영진이었다. 반면 M5S는 일종의 '정치 프랜차이즈' 역할을 한다. 공식 당명이나 로고는 모두 당수인 그릴로에게 귀속되지만 그릴로 블로그에 명시된 '정관 아닌 정관'에 부응하면 누구나 당명과 로고를 사용해 새 지방위원회를 꾸릴 수 있다. 지방위원회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맥도널드처럼 지지자들이 직접 운영하고, 이들은 행동이나 조직 구성에서 거의 전적인 자율권을 갖는다. 이처럼 독립적으로 운영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릴로가 마음 내키는 대로 조용히 당의 '정신'을 이탈한 것으로 판단되는 지지자를 강제 탈퇴시키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페라라 지방의원 발렌티노 타볼라치는 지난 3월 5일 그릴로 블로그의 짤막한 메모를 통해 제명됐다.

감정적 동원에 휩쓸리는 '참여민주주의'

M5S가 표방하는 참여민주주의는 인터넷을 숭상하는 눈먼 과격파들의 감정적 동원을 기반으로 한 가상 시뮬라크르(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나 생생히 인식되는 복제물) 형태로 축소되는 경우가 많다. M5S가 전파하는 철학에 따르면, 인터넷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도구 이상이다. 특히 M5S를 전국 규모로 확대하는 데 일조한 V데이('물 먹어라의 날'을 뜻하는 'Vaffanculo-Day'의 약칭)의 공동창립자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지안로베르토 카살레지오의 예언적 비디오에 잘 나타나듯, 인터넷은 러시아∼중국∼근동지방(4)의 반계몽주의적 삼각편대에 대한 서방세계의 승리(그리고 서방세계의 자유로운 웹 사용)에 힘입어 2054년 새롭게 부상할 세계 민주주의 지평의 필수 조건이다. 이 '디지털 민주주의'의 중심에는 참여자들이 서로 만나 각자 지역과 나라의 문제에 대한 더 나은 해결책을 공유하는 토론 포럼 '미트업'(Meetup)이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공익이란 내 생각을 말하고 들어줄 누군가의 필요성과 혼동되곤 한다. 그런 소셜미디어나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원격투표'를 내포하는 가상적 측면을 제외하고는 M5S에서 지지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범위는 선거를 위한 위원회 조직, 당을 대표할 후보 선택 정도다. 결국 그릴로가 그토록 즐겨 비판하는 기존 정당의 정치모델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5)

그릴로는 수시로 M5S를 오큐파이(Occupy) 운동을 비롯한 '분노한 이들의 운동'에 빗대며 그런 운동과 M5S의 차이는 "경찰력에 맞서본 적이 있느냐 없느냐 그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젊은 고학력 취약계층이 다수 동참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이런 시위와 M5S의 공통점은 거의 없다. 2001년에는 아르헨티나 시위대가 외쳤고, 지금은 '분노한 자들'이 부르짖고 있는 '모두 떠나버려!'라는 슬로건과 스페인 마드리드의 거리에서 울려퍼지는 '지금의 진정한 민주주의' 구호 속에서 기존 체제의 부패는 결국 일차적인 정치적 의미, 즉 세계화를 전파하는 컨베이어벨트가 된 기존 정당의 쇠퇴와 몰락, 그리고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허구성 폭로로 해석된다. 반면 그릴리니들의 분노는 비도덕적 정치인들로 인해 부패된 체제의 수호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풀이된다.

'성장 반대'에 대한 모호한 구호를 제외하고는 M5S는 경제위기, 부채와 채권자의 위협, 커져가는 불확실성에 대해 할 말이 별로, 아니 아예 없다. 그릴로의 반응은 "나는 모르겠다, 문제를 살펴보겠다" 정도다. 다른 사안과 마찬가지로 경제위기에 관련해서도 그는 '보통' 이탈리아 국민 사이에 유행하는 입장을 도출한 것으로 만족하며, 대안사회를 위한 계획에는 이 입장을 결코 포함시키지 않는다.

급진적 논조에도 불구하고 M5S가 주창하는 정치에 대한 개념은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구조조정 정책을 촉발했고, 지금은 유럽 정부의 '기술적' 과세를 정당화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다르지 않다. 두 경우에서 모두 정치는 결국 행정이고, 정직과 양식에 따른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의 실천이다. 역사적으로 '좌파 조합'과 기업인 연맹의 차지였던 부자 도시 파르마의 우두머리 자리에 얼떨결에 내던져진 파르마 신임 시장 프레데리코 피차로티가 내세우는 그 '양식'이다. 그는 정치적 편견 없이 이력서만 보고 내각을 구성하겠다는 결정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지금 내각 구성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 이처럼 양면적이고 혼란스러운 정치적 실험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M5S는 그릴리니들이 바라는 대로 이탈리아 정계의 과감한 민주적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전에 나타났던 조직들처럼 체제에 흡수될까? 일각의 예측대로,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좌파에서 태동해 나중에 권위주의 정당이 된 파시즘처럼 M5S도 권위주의 운동으로 변하지는 않을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권력을 처음 잡은 M5S는 오로지 윤리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순수 정치의 환상을 드러냈다. 그러나 볼로냐 시의회에서는 경쟁관계인 두 부류가 '상대방의 평판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문서'를 언론에 공개하겠다며 서로 협박하고 있다. 파르마에서는 M5S 소속 신임 시장이 경쟁력과 전문성을 믿고 발탁한 도시계획 담당 부시장이 취임도 하기 전에 해임됐다. 과거 사소한 부동산 관련법을 위반했고 운영하던 회사의 파산을 초래했다는 이유에서다. "돌을 던져 죽이는 놀이를 하려나 본데, 전쟁놀이를 하고 싶으면 합시다."(6) 입장을 이해받지 못한 부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베페 그릴로가 오래전 루이지 코멘치니의 영화 <예수를 찾아서>(1982)에서 연기했던 한 '유명한 설교자'(예수)의 말처럼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것이다.

글/라파엘레 라우다니 Raffaele Laudani 볼로냐대학 인류역사문화학과 연구원. <불복종>(Disobbedienza·Il Mulino·볼로냐·2011) 의 저자.

번역/김혜경

(1) Beppe Severgnini, ‘이탈리아의 지미니 크리켓이 보여주는 지저귐의 매력’, <파이낸셜타임스>, 런던, 2012년 6월 5일.
(2) 2012년 3월 선거에서 PDL은 권력을 잡고 있던 대도시 거의 전부에서 패했다. 카를로 갈리, ‘베를루스코니, 요령의 이론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9월호 참조.
(3) 프란체스카 란치니, ‘이탈리아 판사들의 큰 실망’,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6월호 참조.
(4) ‘가이아: 정치학의 미래’ 참조.
(5) Edoardo Greblo, ‘베페 그릴로의 철학, 오성운동’, Mimesis, 로마, 2011 참조.
(6) <가제타 디 파르마>, 2012년 6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