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은 매일 정상회담 중

2012-09-11     요나스 가르 스퇴레

최근 수십 년간 전통적인 강대국 곁에 신흥대국이 출현하면서 무역, 환경, 전략적 균형 등 국제적 현안을 다루는 일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기후회의까지 다자간 회의는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지만 회의가 눈부신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국제정치가 기묘한 역설적 상황에 빠져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활발한 협력과 교류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외교관, 전문가, 정책가가 서로의 생각과 비전을 공유하는 일이 많아졌다. 퇴임을 앞둔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이런 새로운 국제질서를 대해 "다양한 주권국가를 이어주는 다자체제의 느슨한 관계망"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오늘날 새로 창설된 다자간 기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하다. 거의 모든 주제를 의제로 삼아 정상회의가 난무하는 듯하다. 심지어 시시껄렁한 주제를 놓고도 정상회의가 열린다는 인상을 받는다. 반면 회의의 성과를 놓고 보면 별다른 후속 조처가 없는 초라한 현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개탄할 일인지 기뻐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세계무역기구(WTO)의 후속 협상인 도하라운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유엔 안보리 개혁(1)도 지지부진하다. 더욱이 기후변화와 군비감축 같은 이 시대의 중대 현안에 대한 해결점을 찾는 데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

쏟아붓는 노력에 비해 성과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회의 지상주의 시대로 들어선 '글로벌 거버넌스'의 병폐다. 하지만 그처럼 구심점도 없고 조직력도 약한 정부 간 네트워크를 줄기차게 만들어내려 용쓰는 이유가 대체 뭘까? 오히려 지금은 전세계를 대변할 좀더 보편적이고 강력한 체제를 만드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가 아니던가?

너무 많은 정상회의, 넘치는 부실 기구

회의 지상주의도 나름의 장점은 있다. 각 나라들이 서로 긴밀히 연관돼 있는 탈중심적 세계에서는, 원활한 대화를 유지하며 만남의 장과 공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회의란 좋은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너무 잦은 회의는 비생산적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회의가 많이 열릴수록 성과는 적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모두 그저 참여한다는 데만 의의를 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회의에 참여하는 행위만으로 금세 우리는 해결책을 찾아야 할 의무를 면제받고 말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회의 지상주의로 인해 예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게 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더 똑똑하게 일하게 된 것은 아닌 셈이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일까?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은 없을까?

1815년 역사상 최초의 국제기구인 라인강항해중앙위원회(Central Commission for Navigation of Rhine)가 창설됐다. 이 기구 외에 19세기 동안 설립된 국제기구는 양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더욱이 대다수 기구가 제한적인 권한만 누릴 뿐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상황은 천양지차다. 정부 간 기구 수가 250개를 훌쩍 넘는데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국제회의나 정상회의 수도 수백 개에 달한다. 대부분의 기구나 회의는 최근 20년 동안 창설되거나 발족했다.

20세기 상반기 동안 전쟁과 국제역학 구도의 변화는 세계정치 지형에 대대적인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이를테면 대다수 중요한 기구들과 법률, 현행 체제가 양차 세계대전 종식 뒤 벌인 전후 협상 과정에서 탄생했다. 대표적인 예가 유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세계인권선언문 등이다.

지난 30년 동안 세계는 과거 20세기의 다른 주요 시기만큼이나 중대한 역사적 격변을 겪었다. 국제무역과 소비 양태, 소통 수단이 변했고 시장을 둘러싼 경제 규제가 완화됐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도 실현됐다. 또한 양극 체제가 무너졌고, 중국·인도·브라질 등 신흥국가가 정치·경제 무대의 전면에 등장했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시민을 비롯해 정부와 재계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각국들이 긴밀한 공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최근 30년 동안 일어난 변화는 과거 전쟁이나 재앙과 같이 눈에 띄는 급격한 역사적 단절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점진적이었다. 국제사회는 적응 체제와 제도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만큼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았다.

각 나라들은 영구적이고 탄탄한 제도를 구상하는 대신 급박한 상황에 몰려 졸속으로 적응 메커니즘을 가동했다. 국제 체제는 세계화라는 경제·사회적 변화 과정에 맞춰 환골탈태하지 못했다. 그 결과 세계는 경제·외교·문화적 문제는 점차 글로벌화하는 반면 지정학적 질서는 약화하는 대조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국제적 교류 확대는 경제·의료 분야나 분쟁의 평화적 해결 과정 등에 상당한 진전을 가져다줄 수 있는 중대하면서도 유익한 현상이다. 하지만 회의를 많이 연다고 해서 반드시 참가국들이 긴밀히 공조하며 생산적 교류를 벌이는 것은 아니다.

회의를 여는 데도 많은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우리가 정부 간 네트워크를 구축·유지하거나 회의를 개최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할수록, 그만큼 핵심 문제에 집중해 정책적 결정을 내리는 데는 더 적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요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수많은 회의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모두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구심점이 약한 파편화된 국제 체제에서는 주요 국제기구들과 대규모 정상회의가 중대한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한 권한을 부여받고 있지 못하다. 이를테면 국제정치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일컫는 G20의 경우에도, 명확한 권한을 부여받고 있지 못할뿐더러 책임감 있는 집단 의사결정 체제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회의 지상주의에서 탄생한 수많은 기구들이 확실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G20의 근본 개혁이 필요하다

주권국가로 구성된 세계에서 어떤 정책적 결정이 정당성을 지니는지는 흔히 각 참가국이 자신의 입장을 피력할 가능성이 있느냐라는 잣대로 판단한다. G20은 그런 측면에서 구조적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G20 회원국은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0%를 차지하고 있지만 정작 인구 비중은 전세계의 60%에 불과하고, 회원국 비율은 전세계 국가의 15%에 채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민주성이 결여돼 있다 보니 대다수 회원국은 단기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는 한 굳이 G20의 구상에 동참할 절대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다양한 종류의 회의를 개최하며 원활한 대화를 촉진하는 것은 새로운 사회적 요구에 부합하는 데 중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부산스러움은 오히려 수많은 중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수의 나라에 적용 가능한 공동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새로 창설된 기구나 회의들이 집단적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고 더욱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만일 브레턴우즈 체제나 주요 유엔 산하기관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같은 교류·무역·이동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같은 경제적 번영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경제적 번영을 있게 해준 평화적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가 미래의 다극화된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모든 회원국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무엇보다 신흥국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신흥국의 이익을 지금보다 더 많이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G20이 지금처럼 새 회원국을 자체 지명하는 폐쇄적 소모임에 그친다면 보편적 의사결정기구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2) 반면 G20은 예비회담의 장이 될 수 있다. 영향력 있는 전세계 주체들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서 전략적 틀과 로드맵을 결정하면, 이에 대한 후속적인 실행은 유엔 등의 기구에 맡기는 것이다. G20의 결정은 구속력을 지니지 않을 것이고, 분과별 비공식 회담을 통해 충분히 기존에 협상을 가로막던 장애물을 하나둘 극복하며, 도하라운드·기후변화·군비감축 같은 주요 의제에 관한 협상을 성공리에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G20이 근본적 구조 개혁을 통해 다양한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편적 체제로 거듭나야 한다. 다시 말해 정당성을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2011년 프랑스 대통령은 G20의 운영 방식을 손보겠다고 약속했다. 그 첫 번째 단계로 다른 나라나 주체를 일부 회의에 참석시켰다. 이를테면 G20이 거의 G30에 가깝게 확대됐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변화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이다. 2007년 대대적인 경제위기로 개혁 과정에 제동이 걸린데다 유엔 안보리 개혁도 난항을 겪고 있다. 기존 강대국과 약소국, 신흥국들이 좀더 심도 깊은 대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좀더 통합된 국제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모든 국가에 이익이다.

여기서 말한 조처만으로 정상회의가 범람하는 현상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조처들이 온종일 여행에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정책을 입안하거나 토론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할애할 수 있도록 하는 첫 번째 발걸음이 돼줄 것임은 분명하다.

글/요나스 가르 스퇴레 Jonas Gahr Støre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Samantha Power, ‘유엔을 개혁하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5년 9월호 참조.
(2) Bernard Casen, ‘신자유주의에 매료된 G그룹의 착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10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