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미디어의 아수라장

2012-09-12     마르크 드 미라몽, 앙토냉 아마도

시리아에서 18개월 넘게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여전히 언론의 접근은 철저히 차단되고 있다. 정권의 유혈 진압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미디어에서는 반군의 발표를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보도하고 정보 대신 흑색선전을 흘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터키의 파워게임을 은폐하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는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화학무기 유출을 막기 위해 미국 특수부대가 투입되었다"고 보도했다(2012년 7월 22일). 한편 요르단에 주재하는 한 외교관은 "화학무기 위협으로 미국의 개입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의 상황을 보면 10년 전 바그다드의 시나리오가 오버랩된다. 과연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반군을 향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것인가. 화학무기 사용 의혹은 이미 몇 달 전부터 계속 제기되어왔다. 2011년 9월에는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개설한 웹사이트에 "아사드 정권의 살인자들은 반정부 시위의 거점도시인 홈스와 가까운 알라스탄 지역에 독가스를 살포하고 집중 포격을 퍼부었다"(1)는 기사가 올라왔다.

지난 7월 27일 <AFP통신>은 "하마 주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되었다는 제보를 수십 명으로부터 받았다. 하지만 일주일간 조사를 벌인 결과 반군 지도자나 부족장, 의사, 전투병, 주민 누구에게도 확실한 증거를 얻지 못했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시리아 내전은 "정보전이 치열해지면서 정보 조작도 활개를 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월 29일, '반군 활동가'의 트위터 계정(@Damascustweet)에 알아사드 대통령의 시리아 탈출에 대한 글이 올라오며 기만선전이 처음 시작되었다.(2) '시리아자유군'이 대통령궁을 포위해 궁지에 몰린 독재자가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다마스쿠스 국제공항에서 러시아의 모스크바로 도피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프랑스 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인터넷 사이트는 "확인할 수 없는 이 소문이 전혀 근거 없지 않다"며 "영국 공영방송 <BBC>의 제러미 보언 중동 통신원에 따르면, 시리아자유군은 바샤르 알아사드의 대통령궁에서 30분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진격했다. 이런 전세라면 독재자를 몰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3)

지난 7월 18일 반군이 새로 공격을 시도하며 다마스쿠스에서는 전대미문의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지고, 시리아 국가보안기구 청사에 폭탄이 터져 국방부 장관과 알아사드 대통령의 매형인 아세프 샤우카트가 사망했다. 시리아국민회의 출신이 대부분인 반군 대표들은 직접 프랑스 뉴스 채널에 출연해 사태를 설명했다. 사람들은 알아사드 정권이 며칠 아니, 몇 시간 안에 붕괴할 것이라 믿었다. 시리아국민회의에 참여하며 시리아 비종교적 민주주의 연합 대표인 란다 카시스는 "그렇다. 그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4)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익명의 제보자 말을 인용해 "알아사드 대통령이 습격 당시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또한 알아사드 대통령의 부인이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탔다는 주장이 또다시 제기되었다. 시리아자유군과 이슬람파는 테러 감행을 요구하는 반면, 정부 쪽은 '외부 세력'(터키,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무장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7월 20일 오전 9시 직전, <AFP통신>는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틀 후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약 30분 뒤 경쟁사인 영국의 <로이터통신>이 보도한 프랑스 라디오 <RF1>과 프랑스 주재 러시아 대사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대사는 알아사드 대통령의 탈출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고, 6월 30일 열린 제네바 회의에서 '더 민주적인 체제'의 시리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만 이야기했다.

2011년 3월에 촉발된 시리아의 민주화 투쟁에 대한 강경 진압은 수많은 자료를 통해 사실로 입증되었다.(5) 미디어 분야의 전쟁도 못지않게 치열하지만 대부분의 서구 언론은 여기에 침묵하고 있다. 물론 시리아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유난히 힘든 곳이다. 시리아 정부로부터 비자를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목숨을 걸고 만난 반군들은 거의 모두 시리아자유군과 동일한 조직이다. 따라서 이들의 말은 시리아자유군과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가 퍼트린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이들에 따르면, 무자비한 정부군은 무기와 탄약, 의약품도 없이 패기만으로 뭉친 평화적인 민주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고 있다.

반면 알아사드 정권으로부터 초청받은 기자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6) 무장단체의 공격을 받은 소수파(기독교인, 알라위파 등)와 사지가 잔인하게 잘린 군인들의 주검이 병원 영안실에 쌓여 있으며, 이들은 민주화 투쟁이 아니라 걸프만의 석유 왕국들의 지원을 받아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한다.

시리아에 알카에다와 연관된 지하드 조직들의 존재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무장 반군이 난처해졌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이슬람에 완전한 자유와 최후의 승리를 내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반군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2012년 8월 6일).

때론 선한 혁명가와 악한 지하드 세력의 구분이 모호하다. 넉 달 전에 파리를 떠나 바샤르 알아사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의 멤버 아부 하자르는 자신을 "이슬람 활동가일 뿐 알카에다와 연관된 지하드 요원이 아니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이 알아사드 현 정권을 지지하는 "소수 기독교와 알라위파도 미래의 시리아 국회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7) <르 피가로>는 하자르가 사르제 마을에 '포교원'을 열고 지하드의 대이론가인 이븐 타이미야의 '금서'를 배포하고 있다고 설명할 뿐, 그가 알라위파에 대한 성전을 촉구한 파트와를 집필한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홈스의 집중 포격과 훌라의 대학살, 기자들의 죽음에 대한 증언도 기사 조작의 음모를 꺾진 못한다. 마리 콜빈과 레미 오클리크, 질 자키에 기자의 사망이 반군의 사격 때문인 것으로 추정해도 말이다. 아랍연맹에서 걸프만의 신흥 강대국으로 떠오른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가 소유한 아랍권 주요 위성채널인 <알아라비아> <알자지라>가 시리아 내전의 목소리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이 절대군주제 국가들이 이웃 국가의 자유를 지지하며, 바레인을 뒤흔들고 레바논에서 이라크까지 이어지는 '시아파 아치'에 가담하고 있는 마지막 아랍 정권인 시리아의 '지역 냉전'을 조종하고 있다.

두 아랍 방송이 보도하는 근거 없는 허위 정보는 호의적인 선입견 덕분에 신뢰를 받고 있다. 수필가 카롤린 푸레스트는 <르몽드> 기고문에 "<알아라비아>에 따르면 이란의 반정부 시위대는 이란 정부가 동맹국인 시리아에 화장로를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알레포의 상업지구에 설치된 화장로는 풀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시위대의 주검을 화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2012년 2월 25일).

모두가 하루살이 독재정권?

그 외에 <AFP통신>과 미국 <AP통신>, <로이터통신>은 '시리아인권관측소'라는 기관으로부터 내전의 실상과 무장 반군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있다. 시리아인권관측소를 창설한 라미 압델 라만 소장은 2000년 영국으로 망명해 코번트리의 아파트에 살며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라만 소장은 "나는 시리아인권관측소 멤버 중 유일하게 영국에 거주하면서 시리아와 이집트, 터키, 레바논 전역에 퍼져 있는 200명의 자발적 통신원과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군인과 의사, 활동가들"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는 누구에게도 자금을 지원받지 않는다. 내 조국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각오로 2006년 시리아인권관측소를 창설했다"며 철저한 중립성을 강조했다. 라만 소장은 어떻게 평범한 시민의 도움만으로 시리아 전역에서 일어나는 무력사태의 참상에 관한 실질적 정보(사상자 수)를 수집하고 사실 여부를 검증할 수 있을까.

중동 지역의 뉴스가 집중되는 키프로스의 수도 니코시아의 <AFP통신> 지국장인 에제딘 사이드는 "시리아인권관측소가 처음 이용된 것은 2006년 11월이다. 이곳의 정보가 신뢰할 만하다고 밝혀졌기 때문에 계속 활용하고 있다"며 <AFP통신>이 시리아인권관측소에 정보원의 지위를 부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우리 기자들과 시리아인권관측소의 통신원이 직접 접촉한 적은 없다. 다마스쿠스에 주재하는 기자들은 자유로운 취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리아의 모든 상황을 전달해주지 못한다. 시리아인권관측소의 발표에는 정치적 입장이 전혀 관여되어 있지 않지만, 이들이 완벽한 정보원은 아니다. 하지만 그나마 가장 정확한 사망자 수를 알려주는 곳이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는 <AFP통신> 기자들도 있다. 국제부의 한 특파원은 "우리는 시리아인권관측소를 신뢰할 수 없지만 계속해서 그들의 정보를 보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영진을 비난한다면, 경영진은 '당신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통신사도 우리와 똑같이 하고 있다. 미디어 분야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할 것이다"라며 한숨지었다.

예를 들어 시리아인권관측소가 훌라 대학살을 다루는 방식은 통신원들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킨다. 지난 5월 25일 훌라 지역 대학살로 108명이 사망했고, 어린이 49명과 여성 34명의 주검은 홈스 북부에 위치한 여러 마을에 매장되었다. 5월 26일 <AFP통신>은 시리아인권관측소의 발표를 빌려 "포격으로 90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며칠 뒤인 5월 29일 유엔과 아랍연맹이 파견한 감시단은 "피해자 대부분이 흉기로 살해당했으며, 대학살이 자행된 지역은 반군 장악 지역이다"라고 발표했다.

현재 어떤 정보원도 훌라에서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주지 못한다. 결국 시리아인권관측소의 첫 발표는 널리 방송돼,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굴복하도록 한 프랑스 외교 전술에 이용되었다. 로랑 파비위스 외교부 장관은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훌라 대학살이 의식을 변화시킬 것이다"라고 말했다(2012년 5월 29일).

국제사면위원회의 도나텔라 로베라 고문은 내전으로 인한 사상자 수를 파악하려고 지난 4월과 5월 3주 동안 시리아에 머물렀다. 그녀는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병원은 믿을 만한 정보원이 아니다. 부상자들이 정부군을 피해 병원에 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알레포에 있을 때 대규모 군사작전이 일어났다. 아파트에 임시로 설치된 작은 응급의료소에서는 의사들이 제대로 된 의료기기도 없이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진상을 파악하기가 더 쉽다. 사건이 일어난 뒤 현장에 도착하면 생존자와 이웃 주민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벽에 남은 탄환 자국이나 포탄 파편처럼 현장에 남겨진 흔적을 찾아야 한다"며 "시리아 밖에서 일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에 따른 어려움이 있다. 특히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정보원의 신뢰도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큰데, 이들이 역으로 우리를 이용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7월 말 국제사면위원회는 지금까지 사망자 수를 1만2천 명으로 발표했다. 반면 시리아인권관측소는 1만9천 명이라고 주장했다. 정확성을 추구하는 비정부기구인 국제사면위원회는 시리아인권관측소의 수치와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특히 미디어 경제와 디지털망을 좌우하는 순발력에서 양립이 불가능하다.

글/마르크 드 미라몽 Marc de Miramon / 앙토냉 아마도  Antonin Amado

번역/배영미 petite0222@hotmail.com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

(1) ‘무장한 시리아 혁명은 NATO가 필요하다’, 2011년 9월 30일, www.laregledujeu.org.
(2) ‘트위터에 올라온 바샤르 알아사드 도주설’, 2012년 1월 30일, www.lepoint.fr.
(3)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시리아를 빠져나와 모스크바로 탈주를 시도했을까’, 2012년 1월 30일, tempsreel.nouvelobs.com.
(4) ‘다마스쿠스의 교전 격화, 아사드의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나?’, ‘토론’, France 24, 2012년 7월 19일.
(5) ‘고문의 열도’, 휴먼라이츠워치, 뉴욕, 2012년 7월 3일.
(6) 일례로 7월 <TF1>에서 방영된 파트리샤 알레모니에르의 현장 보도 참고.
(7) ‘시리아의 프랑스 활동가 아부 하자르’, <르 피가로>, 파리, 2012년 8월 4~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