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의 문화톡톡] 어린이라는 관객, 부모라는 세계 <사랑의 하츄핑>(2024)

"좋을말로 할 때 사랑의 하츄핑 부탁드립니다"

2024-08-20     이지혜(문화평론가)
사랑의

사건요약핑

지난 87일 극장판 애니메이션 <사랑의 하츄핑>(김수훈, 2024)이 개봉했다. 극장판 3부작 중 제1기인 <사랑의 하츄핑>(이하 '하츄핑')은 영유아부터 국내외 아동까지를 주시청층으로 삼은 한국 애니메이션 시리즈 <캐치! 티니핑!>(2020.03.19~)의 프리퀄, 말하자면 본격적인 이야기에 진입하기 앞서 가장 처음이 되는 순서의 에피소드를 다룬다. 주제곡 '처음 본 순간'은 K-POP 아이돌인 그룹 '에스파'의 멤버 윈터가 불러 소소하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아동용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두고 반응이 심상치 않다. 820일 현재, 개봉 13일 만에 누적관객 수 67만 명을 기록했다. 7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둔 것이다. 이는 올해 개봉한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인 <인사이드 아웃 2><위시>의 흥행 성적과도 견줄 수 있는 수치다.

 

주제곡

'하츄핑'의 원작 애니메이션인 <캐치! 티니핑!>의 주인공은 로미 공주다. 로미는 마음의 요정인 ''자 돌림 마스코트 '티니핑'들이 지구로 뿔뿔이 흩어지자, 이 티니핑들을 캐치하기 위해 '이모션 왕국'을 떠난다. 그리고 지구별 '하모니 마을'에 정착해 벌어지는 소동을 해결한다. 이처럼 <캐치! 티니핑!> 시리즈는 다양한 티니핑 마스코트에 서사를 입혀 시즌에 따라 성장하게 하는 일종의 롤 플레잉 애니메이션이다. 따라서 애니메이션 자체로만 소비되지 않는다. 마스코트들은 시즌에 따라 옷이나 장신구를 갈아입으며 다양한 굿즈로 발행되고, 아이들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콘텐츠로서 향유된다.

그래서 <캐치! 티니핑!>의 별칭은 '개미지옥' '파산핑'이다. 주 시청층이자 소비층인 아이들이 별명을 지었을 리는 없고, 마스코트와 그에 제반한 굿즈를 살 돈줄을 쥔 어른. 즉 부모들이 지은 별명이다. 봉제인형치고, 플라스틱 장난감치고 너무 종류가 많고 비싼 게 아니냐며 인터넷 게시판에서 오열하던 부모들은 '하츄핑' 개봉과 동시에 어째서인지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유튜브 '파이아키아' 채널로 달려갔다. 그리고 댓글을 달았다.

 

유튜브

 

"좋을말로 할 때 사랑의 하츄핑 부탁드립니다

1.6천 개의 '좋아요'는(8월 20일 기준 3.8천 개) 자녀의 요구 때문에 반강제로 '하츄핑'을 소비해야 할 부모들의, 한 번쯤은 자신들이 자녀 사랑에 대리 소비하고 있는 아동문화에 대해 객관의 평가를 받기를, 어떤 모양의 인정을 원한다는 의미의 소리 없는 아우성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동진은 "보러 갔다 혹시라도 어우어우 눈물바다로 못 일어날까봐" 쉽사리 평가에 도전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비겁핑', '한줄핑'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호기심핑

'하츄핑'을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비겁핑과 한줄핑 사건이 벌어지기 며칠 전 결심한 일이었다. 친한 선배를 만나 연구에 대한 조언을 얻고 귀가하려는 길. 선배는 극장 메가박스에 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밤에요? 내가 묻자. 딸에게 '하츄핑' 개봉 기념으로 발행된 극장용 티니핑 굿즈를 사다 줘야 한다고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우릴 만날 때마다 선배는 늘 빈 백팩을 들고나왔고, 귀갓길엔 마트에 들러 '캐치! 티니핑!' 장난감을 가득 담아 돌아갔다. 좋은 선배이기 이전에, 좋은 아빠였다. 문득 거길 따라가보고 싶었다.

 

일만 원 후반대의 마그넷 버캣을 손에 든 선배의 표정이 오랜만에 밝았다. 선배는 여기까지 같이 와줘서 고맙다며, 근처 디자인 쇼핑몰에 들르자고 했다. 그리고 서른에 가까운, 서른이 훌쩍 넘은 우리에게도 티니핑 굿즈를 하나씩 안겨줬다. 거기서도 딸을 위해 한 아름 티니핑 굿즈를 샀다. 여하튼 내가 받은 건 포실핑과 코자핑이었다. (...) "그래서 이게 무엇인가요?" 내가 묻자 선배는 백과사전을 펼쳐놓은 것처럼 설명하기 시작했다. "포실핑은 희귀한 핑이에요. 로열핑이죠. 왕립프린세스학교 출신인데, 솜사탕을 무기로 씁니다."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국산 포켓몬스터나 디지몬 같은 거에요...? 그런데 이제 여자 아이들이 좀 더 좋아하는?“

 

포실핑과

포실핑과 코자핑을 품에 안고 귀가하는 길, 도대체 무엇이 프로젝트와 논문에 찌들어 의자와 모니터에 붙박인 연구자를 '좋을말'이 없어도 '어우어우' 움직이게 하는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티니핑을 만질 때 딸의 웃는 얼굴 때문이겠지. 그건 부모였던 적이 없는 나는 아직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심정일 것이다. 그래도 지금 이 시대의 아들과 딸들은 이 애니메이션의 어떤 구석이 좋아서 보는 것인지, 어떻게 국산 애니메이션을 토대로 한 아이템들에 '파산핑'이라는 별명까지 붙게 되었는지, 평론가로서 또 문화콘텐츠 연구자로서 조금은 알고 싶어졌던 것이다.

 

사랑의 하츄핑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랑의 하츄핑>은 원작 <캐치! 티니핑!>의 프리퀄이자 입문작을 표방한다. 따라서 이 애니메이션에서 로미는 '캐치! 티니핑!' 시리즈의 메인 티니핑이자 로열핑인 '하츄핑'과의 첫 만남을 그린다.

이모션 왕국에 사는 로미는 이제 막 10살이 되었다. 로미는 '공주'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10살 다운 산만함과 불완전함도 가진 캐릭터다. 극장판 애니메이션 공식 소개 글에 따르면 로미는 인생의 소울메이트를 만나길 바라고 있는데, 그 소울메이트가 사람이 아니라 '티니핑'이라는 점이 기존의 국산 애니메이션 문법과 유다른 지점이다.

 

사랑의

하츄핑''캐치! 티니핑!'은 당연 전체관람가이지만, 관람객 대부분이 유아동에서 중장년층으로 청년층이 대거 소실된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하츄핑'의 주 시청자는 직접적 팬덤인 아이와, 그 아이를 데리고 극장에 방문한 부모(혹은 조부모)가 같이 보는 애니메이션이다. 이를 방증하듯 '하츄핑'에는 청년층이 직접적으로 이입할 만한 캐릭터가 없다. 관객으로 내방할 조부모 혹은 부모가 공감하거나, 유아동이 우상으로 삼을만한 어린이 캐릭터는 있지만, '청년' 캐릭터는 소실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마땅한 부재다. '하츄핑'은 전 세대가 공감하는 종합예술로서의 영화적 '애니메이션'을 표방하고 제작된 것이 아니라, 주 시청층인 '유아동'의 유희와 다양한 문화향유를 경험케 하기 위한 콘텐츠로서의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린이가 아닌 어른 캐릭터는 어린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조력자로만 기능한다. 이는 "그래도 선택은 네가 하는 거지, 널 믿고 있단다."라는 대사로 증명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티니핑'이라는 소재다. 조부모님을 포함해 부모님에게 부족함 없이 사랑받는 로미 공주는 '소울메이트'만큼은 스스로 알아봐야 한다는 미션을 부여받는다. 이 세계에선 누구에게나 소울메이트나 다름없는 '짝꿍핑'이 있고, 나의 짝꿍은 오직 나의 선택과 나의 책임감으로만 지켜낼 수 있다. 그러므로 로미 공주는 이름만 공주일 뿐 보편적 의미에서 '공주 답지는 않은' 행동을 일삼는다. '리암 왕자'보다 용감해 보일 때도 있다. 로미 공주는 자신의 짝꿍 티니핑인 하츄핑 앞에서만큼은 매우 씩씩하고, 독립적이며, 주체적이다.

 

사랑의

영화는 이러한 사실을 깨치고 체득해가는 10살 로미 공주의 심리 변화를 뮤지컬적 요소들, 즉 노랫말이나 춤을 통해 구현한다. "나만의 티니핑 혹시 너야? 영원한 짝꿍 소울메이트,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중시하는 가사를 가만히 곱씹다 보면 언뜻 그만한 나이에 무심코 부모에게 조르게 되는 다양한 반려동물과의 만남을 은유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하츄핑'은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고, 책임도 네가 져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티니핑'들을 통해 알려준다. 이 애니메이션은 동물의 형상을 한 귀여운 '티니핑'들은 단순히 가지고 노는 인형이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감정을 가졌기 때문에 원한을 품을 수도 있고 겁을 먹을 수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알려준다. 따라서 그것이 물건이든 살아있는 생명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얻게 된 모든 것들은 더할 나위 없이 귀하다는 교훈을 새삼 체감하게 된다.

 

사랑의

 

경험핑

평일 오전 11시 서울 구석 동네의 메가박스, '하츄핑'이 상영중인 극장에는 다섯 팀으로 묶인 관객이 앉아 있었다. 홀로 온 젊은 여성은 나뿐이었다. 대부분이 엄마의 손을 잡은 남매 혹은 자매였고, 조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도 있었다. 듬성듬성한 관객 수와 달리 극장이 유달리 자주 시끄러웠지만, 그래서 더 자연스럽고 기쁜, 마음 한구석이 울컥 그리워지는 경험을 덕분에 오랜만에 했다.

'하츄핑'을 보고 싶다고 한 것은 어린이겠지만, 극장까지 데려가는 것은 부모다. 그러니까 아이의 세계는 부모가 보여주는 세계만큼 넓어진다. 부모의 손을 잡고 극장에 온, 극장을 경험한 어린이라는 관객들이 자란다. 어른의 눈으로는 온전히 평가할 수 없는 세계를 보며, 저들만의 공감대와 유대를 형성하며 아이들이 자란다. 조잘거리고, 재잘거리며, 부모들이 어떤 마음으로 안겨줬는지 모를 마스코트를 안고 아이들은 성실하게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그걸 가능케 했으므로, 아이들을 극장까지 오게 했으므로, 유년의 하루를 즐겁게 추억할 문화적 기회를 마련했으므로 <사랑의 하츄핑>은 어우어우 충분하다.

 

 


 

·이지혜(이해이)
문화평론가. 2022년 문화전문지 《쿨투라》 제16회 영화평론 신인상으로 등단.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월간 《쿨투라》 에 영화평론을, 르몽드 문화톡톡에 문화평론을, 서울책보고 웹진 <e-책보고>에 에세이를 기고 중이다.

· 인스타: leehey_cine · 이메일: leehey@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