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공유의 바다에서 분란의 바다로
지중해 지역의 군비 경쟁
난민에게는 심해묘지, 휴양객에게는 호수로 여겨지는 ‘마레 노스트룸’(‘우리의 바다’란 뜻으로 과거 로마가 지중해를 지칭하던 표현-역주)이 각종 갈등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지중해 연안국과 강대국의 군함이 지중해에서 서로 대치하며 상호 도발을 이어가는가 하면, 해당국 정부들은 인접국과의 충돌 위험까지 감수하며 자국에 유리한 영해 분할을 이루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1)의 말마따나 ‘문명과 문명이 중첩된’ 유구한 교차로, 그곳이 바로 지중해다. 지중해는 북부 연안국 대 남부 연안국, 이스라엘인 대 팔레스타인인, 시아파 대 수니파, 아랍인 대 아프리카인의 열정이 응축된 지대이자, 동시에 20여 개 국가로 둘러싸인 폐쇄된 바다이며, 전 세계 무역의 4분의 1, 대유럽 에너지 수출의 3분의 2가 항행하는 글로벌 해역의 8%를 차지하는 지대이다.
수많은 해저 파이프라인과 케이블이 깔린 바다이자, 대서양(지브롤터 해협)과 인도양 혹은 태평양(수에즈 운하와 홍해), 그리고 흑해(보스포루스 해협)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장미셸 마르티네의 분석에 따르면 ‘사상 초유의 혼돈스러운 다극 체제’를 배경으로 점화된 각종 위기의 진원지이자, 권력의 요체이며, 패권 경쟁의 각축장이다.
사실상 지중해는 “(부유하고, 탈현대적이고, 고령화된) 지중해 북부 연안국과 각종 경제·인구·사회·정치적 문제에 직면한 남부 연안국 사이에 가교이자 완충지 역할”(2)을 하는 바다라고 지중해전략연구재단(FMES)의 마르티네 객원 연구원은 분석했다.
프랑스의 두 하원의원 장자크 페라라와 필리프 미셸클레스보우에르는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 작성한 보고서(3)에서 “지중해가 어느새 공유 지대에서 분란 지대로 바뀌었다”라고 지적했다. 두 의원은 지중해 분쟁을 초래하는 여러 갈등 요인으로 강대국의 지정학적 전략과 대립 구도(러시아, 서구, 중국), ‘접근 거부’ 전략(러시아, 시리아, 튀르키예)(4), ‘동결 분쟁’의 현상 유지 상태 파기(키프로스, 서사하라), 리비아 내전이 사헬 지역 국가에 미치는 끝없는 영향(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등을 꼽았다.
지중해 분열의 계기가 된 러-우 전쟁
하지만 보고서 발표 이후 상황이 또다시 급변했다. 유럽 동부와 오로지 지중해만을 통해 연결되는 흑해 인근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치열한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도 제5차 전쟁이 발발하고, 아르메니아 역시 영토 분할로 남모를 진통을 겪고 있다. 또한 식량 및 에너지 안보 불안도 증대되고 있다.
“무수한 층위가 겹겹이 쌓이고, 악순환의 고리가 더 자잘하고 빈번하게 반복되면서, 분쟁이 더욱 증가하는 한편 한결 히스테릭한 양상을 띠게 됐다.”
2023년 11월 툴롱에서 열린 지중해전략회의(RSMed)에서 자비에 파스코 FMES 소장은 이렇게 분석했다.
파스칼 오세르 해군 제독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중해 분열’의 계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스코 소장도 유럽이 원한과 더 나아가 심지어 때로는 증오의 대상까지 되고 있는 현실을 문제점으로 꼬집었다. 아프리카와 근동 지역에서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유럽은 바로 “기아 문제를 부채질하고, 난민 문제와 관련해 ‘이중 잣대’를 적용하며 전쟁을 조장한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파스코 소장은 “오늘날 여론전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는데, 정작 유럽은 이 전쟁에서 지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중국 혹은 튀르키예의 흑색선전에 대항할 필요가 있다”라고 권고했다. 사실 미국이 구 유고슬라비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중국이 중국해에서, 러시아가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에서, 프랑스와 영국이 리비아에서, 아제르바이잔이 캅카스에서, 튀르키예가 동지중해에서 그처럼 마구잡이로 무력을 행사하거나 국제법을 유린하는 일만 없었더라도 어쩌면 여론전 작업이 지금보다 훨씬 더 수월했을 수도 있다.
비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흑해에 미친 파장이나 가자 전쟁이 홍해에 미친 영향 외에도, 이 협소한 지중해 지역에서는 다양한 위험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가령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새로운 대립(에게해 도서에 대한 군사 조치, 가스 탐사 및 시추선 나포, 일방적으로 선포된 북키프로스튀르키예공화국의 지위 문제), 이스라엘과 이란 간 반복적 충돌(공습, 소규모 육상 및 해상 교전), 헤즈볼라의 개입에 의한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관계 악화, 이집트와 튀니지 정권의 실각 가능성, 서사하라를 둘러싼 모로코와 알제리 간 갈등 심화, 역내 지하디즘의 본거지인 리비아에서 되풀이되는 내전, 해저케이블이나 파이프라인을 겨냥한 공격 또는 파괴 공작(사보타주), 난민 문제의 정치적 악용 행위(튀르키예 사례), 영해 획정을 둘러싼 분쟁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기존의 영해 경계를 둘러싼 분쟁이 증가하는 현상으로 인해, 특히 지중해 북부 연안국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공해’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데 익숙한 이들 해양국가는 수세기에 걸쳐 바다를 널리 활용해왔지만, 이제는 사실상 그들의 활동무대가 점점 비좁아지고 있다.
1994년 발효된 몬테고베이 해양법 협약(CNUDM, 공식명칭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역주)은 200해리(370킬로미터)까지의 바다에 대해 배타적 경제수역(EEZ, 특히 해양 자원을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한 남반구 개도국 등 여러 연안국에 대한 양보 성격의 합의)을 인정했다.(5)
점차 흔들리는 균형 관계
대신 EEZ는 물론, 더 나아가 ‘무해통항’(외국 선박이 연안국의 권리를 저해하거나 연안국의 평화, 질서, 안전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외국 영해를 단순 통과하는 것—역주)을 조건으로는 영해(12해리)에 대해서도, 군함을 포함한 외국 선박의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이러한 균형 관계가 점차 뒤흔들리고 있다. 일부 지중해 연안국은 자국의 해역을 극대화하고, 제3국의 권리를 제한하기를 희망한다. 이들은 자국의 EEZ에 대해, 경제적인 성격만큼이나 정치적인 성격의 지위를 부여하기를 원하고 있다. 가령 군사적 ‘접근 거부’ 전술을 활용하거나, 면허제 혹은 통행료 등을 도입하거나, 풍력발전시설이나 원유시추 설비를 설치하거나, 해양보호구역을 설정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그동안 몬테고베이 협약에 가입을 주저하던 많은 해양대국들은 어느새 “해양권이 곧 영향력이 되어버린” 시대를 맞아, 느닷없이 이 ‘훌륭한 합의’에 각별한 애정을 보이며 이를 널리 옹호하고 있다고 ‘해양의 영토화’에 관해 방대한 연구서가 지적했다.(6)
서지중해에서는 가령 알제리가 사전 협의도 없이 돌연 이탈리아 인근의 사르데냐섬과 스페인의 발레아루스 제도가 누리던 권리를 깡그리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EEZ를 설정했다. 그런가 하면 레반트(그리스와 이집트 사이 동지중해 연안 지역—역주)에서도 국가 간 해묵은 갈등이 축적되고, 지역 패권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심화되면서 해양 경계 획정과 관련한 문제가 점점 더 민감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중해전략연구재단(FMES) 자문위원, 장프랑수아 페이야르는 이를 ‘은밀히 확산 중인 영토화’라는 말로 표현했다. 튀르키예(몬테고베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다)도 2019년 선포된 ‘푸른 조국’ 독트린이라는 미명 아래, 에게해가 두 연안국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1923년 로잔조약을 근거로, 총 46만 2,000㎢에 달하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주장하고 있다. 이로써 튀르키예 정부는 국제해양법 조약을 체결한 그리스나 키프로스의 권리에 정면 대치하고 있다.
특히 군함을 대동한 튀르키예의 천연가스 탐사 작업은 양국이 번번이 충돌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가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리스군이 배치된 자국 연안에 매우 근접해 있는 그리스 섬들을 침략하겠다고 주기적으로 협박하고 있고, 그리스는 2023년 1월 일명 ‘라이트닝’(번개) 군사훈련을 벌이며 다양한 군사 수단을 전개했다.
전 세계에서 북키프로스튀르키예공화국을 공식 국가로 인정하는 유일한 나라인 튀르키예는 자국이 정치적으로 고립된 채 심각한 권리 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간주한다. 튀르키예는 리비아 정부에 군사 지원을 해준 대가로 2022년 그리스와 키프로스의 주장을 무시하고 튀르키예 입장만을 반영한 튀르키예-리비아 양자 간 해양 경계 협정을 체결했다.
지중해 갈등의 도화선이 된 난민 문제
한편 수십 년 전 천연가스가 발견돼 곧 개발이 임박한 지중해 남동부 지역에서도 2022년 11월 공식적으로 전쟁 상태에 있는 두 나라,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뜻밖의 협정에 합의했다. 양국은 두 나라 간 배타적 수역을 구분 짓기 위한 협정을 맺고, 카리쉬 가스전을 이스라엘에게 양보하고, 카나 가스전 생산의 상당 부분은 레바논에 할애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카나 가스전의 탐사와 채굴은 토탈에네르지, 이엔아이(ENI), 카타르 에너지로 구성된 한 컨소시엄이 책임지기로 했는데, 정작 튀르키예는 협상에서 배제됐다.
난민 문제도 또 다른 갈등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주기적으로 유럽연합으로 유입되는 불법 이주는 주로 지중해 경로를 통해 이뤄지는데, 2023년 지중해를 경로로 한 불법 이주 건수는 총 26만 6,940건에 달했다.(7) 이에 이탈리아 우파 정부는 인도주의 단체의 해상 구조 능력을 제한하는가 하면, 다양한 이유로 구호 선박의 하선도 금지하고 있다.(8) 그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내기로 악명이 높은 지중해 루트(2023년 익사자 2,800명)는 이전보다 훨씬 더 위험천만해졌다.
한편 유럽연합도 다양한 방식으로 지중해를 통한 난민 유입을 저지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2016년 유럽연합은 튀르키예와 시리아인 등 난민 300만~400만 명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60억 유로를 지원하는 난민송환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2020년 튀르키예 정부는 유럽연합을 압박할 목적으로 난민 200여만 명이 그냥 그리스로 넘어가도록 문을 개방했다.(9)
지중해 남부에서는 유럽연합이 리비아 해안경비대를 지원하며 난민 거래를 근절하는 데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반면 니제르의 군사 정권은 “2015년 외세의 영향으로 통과됐다는 이유를 들어”(10) 난민 거래 금지법을 폐지해버렸다. 카이스 사예드 튀니지 대통령도 자국이 “유럽의 국경 수비대는 될 수 없다”고 단단히 못 박았다.
프랑스 남부의 툴롱 항구에 정박해 있는 잿빛 선박의 선체에는 페인트칠 작업이 한창이었다. 요즘처럼 ‘고강도’ 충돌 위험이 높은 시기에 프랑스 해군은 지중해 순찰을 나가기 전에 정체를 식별할 수 있는 모든 주요 군함의 표식을 깨끗이 지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선박의 정체를 모호하게 숨기는 것이 전술적으로 이득이다”라고 니콜라 보주르 프랑스 해군참모총장은 지적했다.(11)
오늘날 많은 서방 군대들은 일종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고 입 모아 말한다.
“혼란이 증대되고, 글로벌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사태가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경우에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프랑스 해군참모총장은 최근 지중해에 수많은 해군력이 집결된 상황을 꼬집으며 이렇게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국은 군사적 준비 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오판이나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악화되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동시에 위기 지역 인근, 특히 러시아군과 거의 매일 접촉하는 지대에서 폭넓은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동맹국 해군의 상호운용성을 강화(자국 부대 강화를 책임진 이탈리아 해군 참모총장의 말을 빌리자면, “상호대체 가능한 수준까지”)하기 위한 각종 군사훈련도 확대하고 있다.
미국, 지중해를 전략적으로 덜 중요시
지중해 인근에서는 거의 모든 해군이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다. 발표된 계획안에 따르면, 2008~2030년, 이스라엘은 160%, 이집트는 170%, 알제리는 120%, 모로코는 52%, 튀르키예는 33%가량 총 군함의 톤수를 증강할 계획이다. 해군 함대는 흑해나 홍해에서 해전이 일어나는 경우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거나 상대를 압박하는 데 더없이 훌륭한 수단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한 나라의 위상과 영향력을 나타내는 지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12)
“각국은 주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군사력을 확대하고 있다.” 프랑스 해군전략연구센터(CESM) 소속 니콜라 마주치가 지적했다. 가령 마그레브 지역 국가들은 호위함을 비롯한 일선 장비를 갖추는 데 매진하고 있다. 러시아의 전략적 파트너인 알제리는 잠수함대를 칼리브르 장거리 순항 미사일로 단단히 무장시켰고, 중국산 무기도 구매했다. 알제리는 국방 예산(국내총생산(GDP) 대비 6.5%)에 가장 많은 재정을 할애하며 인접국 모로코에 의미심장한 경계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항공기, 무선탐지기, 미사일 방어시스템, 수상함, 잠수함, 무인기 등 지중해에 집결된 각종 육해공 무기는 ‘실책’의 가능성을 두렵게 한다. 사실상 걷잡을 수 없이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는 온갖 오인, 오판, 도발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 비록 대개는 ‘전문적인’ 방식으로 사태가 해결되는 것이 다반사이기는 해도 말이다.
반(反)접근·지역 거부 전략은 사실상 연안이나 해양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놓인 타국의 해군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활동 역량을 제한한다. 홍해를 항행하는 민간 선박을 겨냥해 자행된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은 이제는 지금의 드론이나 미사일만으로도 충분히 “해군 없이 해전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오세르 사령관은 지적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미국은 상대적으로 지중해 지역을 덜 중요하게 봤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시한 전략을 펼치며 유럽 내 군사력을 제한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한 역할도 축소했다. 전 프랑스군 공보관 루 드 뤼즈 해군소령은 2020년 워싱턴 정가에 유행하던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펜타곤의 세 가지 우선 과제는 바로 중국, 중국 그리고 또 중국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특히 가자 전쟁 이후 미국은 항공모함을 대동하고 다시 지중해 지역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전에도 미국은 이미 지중해와 아랍·페르시아만 인근에 적지 않은 군사력을 배치해왔다. 가령 이 지역에 30여 개 군사기지와 수십 개 선단, 여기에다 광범위한 미사일 방어 능력도 갖추고 있다.
그리고 한쪽 눈은 언제나 피보호국(이스라엘)을, 또 한쪽 눈은 역내 주요 적국(이란)과 더 나아가 수에즈와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거대 컨테이너선들이 지나다니는 바닷길을 겨누어왔다.
더 이상 ‘나토의 호수’가 아닌 지중해
미국은 러시아에 반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최근 튀르키예와 러시아, 그리고 그 동맹국들이 지배하던 동지중해에 대해 전략적 이익을 강화했다. 뿐만 아니라 미 행정부는 지중해에 여러 지원 거점을 갖춘 북대서양 동맹의 수장을 자처하며 다시금 강력한 리더십을 선보이고 있다. 미국은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 제6함대 해군 사령부를 구축하는가 하면, 미국의 미사일 방어 이지스 구축함을 스페인 로타에 입항시켰다. 또한 미국 국적이나 혹은 아예 ‘나토’ 이름을 단 공중조기경보통제기(AEW&C)가 시칠리아나 그리스에서부터, 우크라이나 인근까지 정찰비행을 수행하고 있다.
한편 유럽연합군최고사령부(SACEUR) 산하 연합지상군사령부도 튀르키예의 이즈미르에서 지휘를 맡고 있다. 비록 지중해는 더 이상 냉전 시대의 경우처럼 ‘나토의 호수’라고는 부를 수 없을지언정, 그럼에도 여전히 “유라시아, 중동, 아프리카 진영 간 주요 마찰지대를 통제할 수 있는 이상적 위치”에 있다는 게 FMES 웹사이트의 설명이다.
최근 수년간 미국이 비워둔 자리를 가장 먼저 채운 나라는 전통적으로 ‘따뜻한 바다’(부동항)에 집착해온 러시아였다. 흑해를 거점으로 삼은 러시아는 시리아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지중해 동부 지대에도 군사를 배치했다. 러시아는 타르투스 해군기지와 시리아 해안에 소재한 흐메이밈 공군기지에 에스카드라(분함대)를 영구 배치한 것이다. 2014년 크름반도 합병을 계기로 러시아는 유서 깊은 흑해 세바스토폴 해군기지의 미래가 밝아졌다고 생각하며, 아조프해를 러시아의 ‘내륙호’로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13)
하지만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이 상황을 180도 바꿔놓았다. 흑해에 주둔한 러시아 함대는 2년 만에 무려 20여 척의 함정을 잃어버렸고, 이 전쟁으로 함대의 이동에도 많은 제한이 걸린 상태다. 1936년 발효된 몽트뢰 협약에 따라, 역내 분쟁에 참여 중인 교전국 군함은 튀르키예의 해협(보스포루스, 다다넬스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불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러시아는 동지중해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발트해나 태평양에 배치된 함대를 동원해야 하는 한편, 노후화가 심각한 군사 장비의 유지 보수 및 물류 보급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의 지정학적 야심에 비해 시설이나 지원망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시리아에 설치된 기지들을 거점 삼아 러시아 함대와 전투비행단은 어느 정도 서방의 대군이 동지중해에서 누리는 대대적인 비행 및 항행의 자유를 제한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14)
역내 강국인 튀르키예는 흑해의 유일한 관문을 손에 쥐고 있는 덕분에 해양 분야에서 강력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럽행 가스 허브를 구축하고 있는 덕분에 에너지 측면에서도, 그리고 NATO 내 유일한 ‘중동’ 국가인 덕분에 지정학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구학적 측면에서도 튀르키예는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지중해 연안국 제2의 인구 대국인 튀르키예는 시리아인 등 난민 수백만 명도 수용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기꺼이 반(反)서구주의 파도에 올라타 국제사회의 대(對)러시아 제재를 거부한 덕분에 오늘날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훨씬 더 넓은 운신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더욱이 러시아도 튀르키예를 필요로 한다. 한편 튀르키예는 2022년 7월 바닷길을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과 관련한 러-우 협정을 체결하는 데 있어 새로운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대서양동맹 내에서도 위상을 강화했다. 리비아를 비롯한 각종 역내 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튀르키예는 러시아로부터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최신식 대공방어미사일체계인 S-400을 도입했다. 튀르키예는 자국이 필요로 하는 군사장비의 4분의 3을 자체 생산하고 있으며, 튀르키예 기업 바이락타르가 개발한 TB2 드론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15여 개국으로 널리 수출되고 있다.
튀르키예를 스텔스 전투기 F-35의 잠재적 구매국 리스트에서 제외시키는 보복 조치에 나섰던 미국은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스웨덴 NATO 가입 거부권을 철회한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기존의 입장을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지중해에 상업적 접근 노력 기울여
한편 지중해 비연안국인 이란도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레바논과 시리아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등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역내 쿠르드족 문제에도 적극 개입하면서, 지중해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이란이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과 군사적으로 충돌하면서, 잠시 역내 국가들 사이에는 숨죽이는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얼마 전부터 이 ‘공유의 바다’에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했다. 점차 세계적인 ‘전략적 경쟁자’의 위상을 굳히고 있는 중국도 지중해에 대한 상업적 접근에 매진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대유럽 수출의 3분의 2 이상이 수에즈 운하를 통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양실크로드’ 정책의 일환으로 중국은 특히 국영 해운사 중국원양해운집단(COSCO)의 참여를 바탕으로 이미 지중해 지역에 십여 개의 상호 연결된 항만 시설을 갖추고 있다. 가령 이집트(포트사이드, 다미에타), 프랑스(포스마르세유), 알제리(엘하마다니아) 등이 대표적이다. 더욱이 중국은 2012년 이후 프랑스를 제치고 알제리 최대 교역국으로 발돋움했다.
한편 중국은 ‘디지털 실크로드’라는 미명 아래, 광범위한 지중해 해저케이블 시장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향후 유럽연합 가입 가능성에 대비해 서발칸 반도 국가들(알바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에도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5년 전부터 홍해 출구에 주둔(중국의 유일한 해외 군사기지) 중인 중국 해군은 유사시 지중해에 전 함대를 전개하거나, 더 나아가 이곳에 군사적 지원거점을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 11월 유럽연합군사참모총장인 에르베 블레장 해군 대장은 “문제는 그것이 가능한가가 아니라 언제인가다”라고 우려했다.
향후 수십 년 뒤 해양 지대에 대한 지식이 더욱 발달하고, 지금은 미흡한 해양 지도도 더욱 완성될 것이다. 인공지능, 위성망, 무인기 활용 등은 심해 광물 자원 개발에 유익한 도움을 줄 것이다.(15) 유럽국은 더 이상 아랍·페르시아만과 그곳에 매장된 석유 자원 접근에 지금같이 사활을 걸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러시아도 기후온난화에 힘입어 북부 항로를 열 수 있게 될 것이다.
전략적 중요도가 점차 아시아 쪽으로 기울면서 미국의 관심이 훨씬 더 세계 최대 해양 강국으로 발돋움한 중국과 마주한 태평양 쪽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이미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수산자원의 부족 문제 역시 더욱 극심한 갈등의 원인이 될 것이다. 레이저 무기나 초음속 미사일과 결합된 자율 감시탐지 시스템이 더 넓은 지역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다(더 나아가 그곳의 접근을 불허할 것이다).
FMES는 5~10년 후를 예상한 시나리오에서, 서사하라 분쟁이 연쇄 파급 효과를 낳으며 해묵은 알제리-모로코 전쟁을 다시 촉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먼저 알제리가 이웃국 모로코에 대해 항해 금지 조치를 내릴 것이다. 그러면 유럽이 모로코의 편을 들 것이다. 이에 지금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알제리와 프랑스 간 관계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다. 그러면 알제리는 ‘천연가스 무기’를 휘두를 것이다. 알제리 해군은 러시아에서 제공받은 S-400 미사일을 등에 업고 접근 거부 전략을 펼치거나, 잠수함에 탑재된 이스칸데르 순항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협박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지브롤터 해협 인근의 모든 무역 거래가 중단되는 사태를 초래할 것이다.
한편 FMES는 조금 더 불확실한 20년 뒤 미래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제시했는데, 어족자원을 둘러싼 전쟁(어획, 심해저 광물 개발) 가능성을 언급했다. 또한 비유럽국가들이 점차 ‘경제수역’을 완전한 자국 영해로 삼으려 할 것이며, 지중해 남부 및 동부 지역과 흑해, 홍해 등에서 선박의 항행이 제한될 수 있고, 동지중해에 새로운 반서구 동맹이 탄생해, 수에즈 운하를 거쳐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향하는 군함의 통행을 가로막을 위험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 경우 가령 프랑스는 어쩔 수 없이 아프리카를 우회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고, 그 결과 그동안 해외령에 기대던 기존의 지원 거점망을 전면 재구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예견했다.
글·필리프 레마리 Philippe Leymarie
기자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Fernand Braudel, 「La Méditerranée. L’espace et les hommes 지중해. 공간과 인간들」, <Arts et métiers graphiques>, Paris, 1977년.
(2) 「La Méditerranée, un espace crisogène? 지중해, 위기의 진원」, <Les Grands Dossiers de Diplomatie>, Paris, 2022년 9월 19일.
(3) 프랑스 하원, 「Les enjeux de défense en Méditerranée 지중해 방어의 쟁점」, 보고서 제5052호, 2022년 2월 17일.
(4) ‘접근 거부’란 접근이나 침입 행위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억제 수단을 통해 일정 지역에 침입하는 것을 저지하는 전술을 말한다.
(5) Didier Ortolland, 「Le droit de la mer tangue mais ne coule pas 지난 40년 국가들은 어떻게 바다를 나눠 가졌을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2년 12월호.
(6) Jean-François Pelliard, ‘Territorialisation des espaces maritimes(해양공간의 영토화)’, Région Sud/FMES, fmes-france.org., 2022년.
(7) Frédéric Bobin, 「En 2023, l’Europe a fait face à un rebond migratoire venu du Sud 2023년, 유럽은 남반구 출신의 이주민 재급증에 직면했다」, <Le Monde>, 2024년 1월 9일.
(8)Nejama Brahim, 「L’Italie intensifie les entraves aux sauvetages en Méditerranée 이탈리아가 지중해 난민 구조의 걸림돌을 강화하다」, <Mediapart>, 2024년 3월 15일.
(9) Elisa Perrigueur, 「Sur la frontière gréco-turque, à l’épicentre des tensions 섬사람, 종교, 난민, 그리스-튀르키예 간 갈등의 근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1월호, 한국어판, 2021년 2월호.
(10)<La Croix>, Paris, 2024년 1월 18일.
(11) Laurent Lagneau, 「Droit de la mer : contrairement à la Marine nationale, la Royal navy exclut d’anonymiser ses navires 해양권 : 프랑스 해군과 달리 선박 위장을 하지 않는 영국 해군」, Zone militaire-opex360.com, 2023년 12월 5일.
(12) 「Le réarmement naval militaire dans le monde 전 세계 해군 재무장」, <Etudes marines> 특별호, 해군전략연구센터(CESM), Paris, 2023년 1월.
(13) Igor Delanoë, 「La Russie s’affirme en mer Noire 러시아 흑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월호.
(14) Pierre Grasser, 「Déni d'accès en Méditerranée orientale : l’un des thermomètres des relations OTAN/Russi 동지중해 접근거부 전략 : 나토-러시아 관계의 바로미터」, <Défense et sécurité internationale>, Paris, 2022년 11월 14일.
(15) Didier Ortolland, 「Géopolitique des abysse 환경 파괴하는 ‘골드러시 물결’, 심해 지정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3년 12월호, 한국어판 2024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