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광역 급행열차, 파리 중심적 사고에 발목 잡혀
광역급행철도는 어떻게 대도시권을 구할 수 있는가
프랑스의 대도시 권역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도심과 주변부의 보이지 않는 경계도 변화하고 있다. 유럽 전역에서 도심과 주변부를 연결하는 급행열차의 효율성이 입증되었지만 파리를 제외한 프랑스 내 다른 지역에서 급행열차의 발전은 요원하다. 두 차례의 기후 비상선언 사이에서 공권력은 철도 운송을 가로막고 있다.
프랑스 북부 릴 플랑드르역의 평일 저녁, 수화물에 명찰을 붙이라는 역내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승객은 거의 없다. 당연한 일이다. 유서 깊은 이 건물은 저녁 9시면 문을 닫고, 출발하는 기차도 드물기 때문이다. 기차역은 마치 선잠이 든 것처럼 한산하다.
빌뇌브 다스크로 떠나는 마지막 지역 급행교통(TER, Transport Express Régional) 열차는 10시 8분, 루베와 투르쿠앵행은 10시 9분, 아르망티에르행은 10시 13분, 스클랭행은 10시 27분에 각각 출발할 뿐이다.(1) 도시 내 철로는 인구가 거의 3만 명인 롬이나 랑베르사르를 정차 없이 통과하며, 인구가 각 2만 명인 크루아, 와스크알, 라 마들렌의 철로도 매우 빈약한 연결 노선만을 갖추고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대도시 권역(인구 118만) 중 한 곳이자 대대적인 철도 교통 공급이 이루어지기에 가장 적합한 이곳에서 TER는 시민들의 이동 중 겨우 0.4%만을 보장하고 있다.(2)
같은 시각, 독일 북부 브레멘의 주요 기차역은 부산하다. 올덴부르크행 간선열차가 출발을 알리고 함부르크나 하노버와의 연결 열차는 자정이 넘어선 시간에도 운행하며, 광역 급행교통망(RER, Réseau Express Régional) 열차들은 쉴 새 없이 들어오고 나간다.(3) 릴과 브레멘의 차이점이 눈에 띈다. 인구 57만 명의 도시인 브레멘이 릴보다 훨씬 덜 붐비는데, 독일의 경우 15여 개 도시에서 RER를 찾아볼 수 있는 반면, 프랑스에서는 수도 외 지역에서 RER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드프랑스에 고유한 RER 개념에 기인한 것으로, RER는 광의적으로 대도시들을 연결하는 철도 체계를 의미한다. 중앙역에 종착역을 두지 않고 대도시의 끝과 끝을 횡단하는 주기적이고 잦은 열차 운행과 더불어 도시 내 교통수단과의 연동 요금제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4)
독일 철도의 성공, 저조한 프랑스와 대조적
철도업계 고위층은 독일 철도의 성공을 1996년부터 시행된 자유화로 설명하지만, RER 도입은 그보다 오래전에 내려진 도시 정비에 대한 선택과 관련이 있다. 1882년, 인구 증가와 산업 발전이 한창이던 국가에서, 베를린을 가로질러 샤를로텐부르크와 베를린 동역(오스트반호프)을 연결하는 노선이 개통됐다. 독일 최초의 RER 노선이다. 이러한 RER 개념은 1906년 함부르크로 확산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루르, 쾰른, 라이프치히 등으로도 퍼져 나갔다.
올림픽이 개최됐던 1972년에는 뮌헨, 이어 1978년에는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의 종착역에는 지하로 연결되는 노선이 갖춰졌고, 이로써 열차가 도시권을 횡단할 수 있게 되었다. 도시 간 연결이 더 빨라진 것이다. 이 원칙은 이후 규모가 보다 작은 도시 다수에도 적용되었는데, 2000년 하노버가 그 예다. 철도망으로 엄청난 수송량이 발생한다. 리옹과 비슷한 규모의 함부르크에서 RER를 통한 이동 건수는 연간 2억 5000만 건에 달하는데, 이는 프랑스 전국 TER의 수송 규모와 같다.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던 프랑스는 10년간 저조한 인구 성장세를 유지하다 1938년 국영철도공사(SNCF)를 창설했다. 전후(戰後) 소극적 정책을 설명해주는 맥락이다. 파리에서조차 RER 연결은 샤틀레-레알역이 신설된 1977년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아직은 요원한 프랑스 광역 도시의 급행 서비스
철도망은 1970년 메츠와 낭시 간 노선처럼 메트로로르(Métrolor) 서비스의 도입과 함께 풍부해졌다. 1983년 SNCF는 지방운행부서(SAR, Service d’action régionale)를 신설하고, 1987년에는 지방분권법 철도 정책의 일환으로 TER 브랜드를 만들었다. 2002년, 광역 자치단체(Région)는 정당한 법적 권리를 갖춘 광역 교통 책임 당국이 된다.
1990~2000년까지 TER 수송량이 대폭 늘어나긴 했지만, 애초에 수송량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2010년, 도미니크 뷔스로 교통 국무장관은 “알스톰, 봄바르디에사가 만든 이 모든 광역 교통 장비를 보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저 만족을 위해 길이가 킬로미터에 이르는 기차들을 만들어서는 안 되며 하루 중 특정 경우나 시간대에는 장거리 버스로 TER를 대체하는 게 더 이득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5)
SNCF에서처럼 고위 엘리트들이 자주 펼치는 논리이다. 반면 철도교통 전문가 크리스토프 케젤제빅은 철도란 “값비싼 인프라를 요하고, (…) 운행 빈도로서만 정당화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기차를 드문드문 운행되는 무거운 교통수단으로 보는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라며(6), 여기에 파리 중심적 사고가 더해져 광역 도시의 RER 신설이 위협을 받는다고 규탄했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담론이 변화하고 있다. 2019년 공포된 이동에 관한 기본방향법(La loi d’orientation des mobilités)은 다시 주요 도시 RER 도입 구상으로 되돌아왔다. 2022년, SNCF의 CEO 장 피에르 파랑두는 그중에서도 13개 망을 새로 구축할 필요성을 강조했다.(7) 엘리제궁의 동의 또한 받아냈다. 2023년 12월 27일 제정된 이 법은 이 사업들을 SERM(광역 주요 도시 급행 서비스)로 다시 명명하고, “우선적으로 철도 연결 강화에 근거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종착역이기에 횡단 열차의 운영이 어려운 릴의 경우, 오드프랑스 광역 주요 도시 급행망 사업은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보인다.
툴루즈에서도 문제가 제기된다. 1960년대 ‘커다란 마을’이었던 툴루즈는 현재 교통 혼잡이 장관을 이룰 정도로 몸집이 커진 도시로 변신했다. 두 개의 지하철 노선은 오로지, 또는 거의 도심지만을 연결해 놨을 때 발생하는 결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브뤼노 르벨리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이 밖에 주거 밀집지에서는 자동차가 이동의 60%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대중교통으로 연결 교통이 잘 갖춰져 있는 도심과 소규모 빌라와 자동차가 널리 깔린 주거밀집지역 간의 대조는 아마 다른 그 어느 곳보다 극명할 것이다.
옥시타니 의장, 고속철도 노선 건설에 갈팡질팡
2018년에 설립된 단체, 랄뤼몽 레투왈(Rallumons l’Étoile, ‘별을 다시 빛나게 합시다’)은 툴루즈의 RER 개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집회를 개최하고, 전단을 배포하며, 전문가 보고서를 발간한다. 단체 가입자의 수로는 인구 18만 1000여 명을 아우르는 30여 개의 코뮌과 15개의 기업, 그리고 900명 이상의 시민이 함께한다.
이 단체의 요구는 철도망 구축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지 못하는 국가와 SNCF 교통망 부문(SNCF Réseau)의 무능, 그보다 일반적으로 서로 업무 미루기에 급급한 행정기관의 관행에 부딪힌다. 툴루즈가 속해있는 광역 자치단체 옥시타니는 이미 툴루즈 주변으로 공급을 대폭 늘렸다고 반박하고, 옥시타니 의장인 카롤 델가는 “툴루즈에서 별 형태로 뻗어나가는 철도망 대규모 개발 사업이 완수되는 것을 반드시 볼 것”이라고 큰소리쳤다.(8)
하지만 도시정비학 교수 쥘리에트 몰라가 지적하듯, 델가 의장은 저렴한 열차 시스템을 도입하여 국토를 보다 정교하게 연결하고, 몽토방이나 알비 같은 중규모 도시들에 대한 신속한 연결을 증가시킬지, 아니면 고속철도 노선을 구축할지, 두 가지 선택을 앞에 두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 1월, 옥시타니는 툴루즈시와 오트가론 데파르트망과 협력하여 작성한 문서를 게재하고, 중앙 정부에 SERM 후보 신청 의사를 표명했다. 계획은 점진적인 철도 운영 빈도 강화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뿐만 아니라 현재 B노선과 미래의 C노선 환승이 가능한 라 바슈역처럼 “툴루즈 도심 경계에 종착역을 신설하는 것”도 예정하고 있다. 이러한 터미널은 전통적 교외 열차와 이들의 종점을 재창조할 것이다. “RER가 개통된 툴루즈는 RER 이전의 파리 같을 것”이라고 랄뤼몽 레투왈의 대표 브누아 라뉘스는 말한다.
프랑스 시민단체, 철도 공기관을 더 적극적으로 자극해야
독일 브레멘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한자동맹 일원인 도시는 브레멘 교회와 롤란트상, 그리고 야코프와 빌헬름 그림 형제의 동화에서 영감을 얻은 브레멘 음악대 동상을 자랑으로 여긴다. 고도로 산업화된 브레멘에는 하항(河港)과 다임러-벤츠 공장, 벡스 식당이 있으며, 친환경주의적 유권자의 꿈인 트램웨이 8노선, 중앙역에 인접한 시민공원,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베저강 하안지구가 형성돼있다.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이동 중 20%가 자전거로, 15%가 도보로, 17%가 대중교통으로 이루어진다. 개인 차량을 사용한 이동 비중은 소수다.(9)
RER와 관련하여, 기차 이용객 단체인 프로반(Pro Bahn)의 일원 잉고 프란센은 “1960년대 이래 조선업과 제철업, 대서양 해상연결이 쇠퇴하면서 도시가 가난해지고 채무가 발생하며 지하철 사업의 시행이 지체되었다”라고 설명했다.(10) RER의 독일 공식 명칭인 Regio S-Bahn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운행되는 점진적인 연결 노선 확대와 더불어 1961년에 여객 운송이 폐쇄되었던 브레멘 베게삭과 파르게 사이 노선 전기화 등 10년에 걸친 노력 끝에 2010년에 개통했다. 교통망은 6개의 노선으로 구성된다. 코뮌 내 17개의 간이역을 잇는 첫 번째 노선과 독일 북해의 브레머하펜까지의 연결을 보장하는 두 번째 노선, 네덜란드로 향하는 방향의 올덴부르크를 연결하는 철로가 세 번째 노선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도 일부 한계는 있다. 아인파흐 아인슈타이겐(Einfach Einsteigen, ‘쉽게 승차하기’) 단체의 설립자이자 ‘대중교통의 전환’을 옹호하는 마르크 페테르 베게는 “브레멘의 트램웨이가 도시의 보물이긴 하지만, 대중교통이 차지하는 수송 분담 비중은 규모가 비슷한 프랑크푸르트, 하노버, 뒤셀도르프 등 다른 도시에 비해 낮다”라고 지적했다.
또, 엄격한 의미에서 RER는 함부르크나 베를린에서처럼 도심 연결을 위해 철로를 독자적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브레멘에서는 RER 열차들이 다른 기차와 철로를 공유하므로, 브레멘에 진정한 의미의 RER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프로반의 말테 딜은 혼잡 시간대에는 하노버로 향하는 기차로 간선 열차 1대, 광역 열차 3대, RER 2대, 화물열차 5대가 방향 별로 운행된다며, “일부 노선에서는 RER 기차가 시간당 1대 밖에 없는데, 적어도 30분마다 한 대씩은 운영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각기 다른 주기의 열차 운영방식은 운행을 촘촘하게 짜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
브레멘은 해상 수송항 브레머하펜과 함께 두 개의 별개 도시로, 하나의 주를 형성하고 있는데, 니더작센주로 둘러싸인 환경은 대중교통 운영에 불리한 경계 효과를 자아낸다. 하지만 시 의회 구성원 72명은 주 의회에서 브레멘을 법적으로 대변하며, 시 정부는 시의 집행 기관인 동시에 주의 집행기관이므로 합의가 용이하다.
15세기에 지어진 시청과 1960년대에 지어진 의회 건물은 건축 스타일 면에서 대조를 이루고 광장을 중심으로 대치하듯 마주 보고 있지만, 그 안의 기관들은 서로 협력한다. 브레멘은 브레머하펜과 니더작센의 코뮌 및 행정구 다수와 함께 브레멘/니더작센 교통기업연합기관(Verkehrscerbund Bremen/Nidersachsen)을 설립하였고, 통합 요금제를 적용하여 하나의 티켓으로 도심 교통회사의 RER, 버스, 트램웨이에 승차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녹색당에 가까운 하인리히 뵐 재단의 헨닝 블레일은 “브레멘 음악대 동화 속에서 그림 형제는 노쇠한 당나귀와 개, 고양이와 수탉이 함께 노력하여 도둑들을 쫓아내는 데 성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연대는 우리의 약점을 보완해주고, 이 원칙 덕분에 선출자들이 교통 서비스 확보를 위한 타협을 해나간다. 그러나 연방 정부 기관이 교통 서비스 공급을 보다 일관성 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포화에 시달리는 일부 노선에 대한 해결책이 되어줄 세 번째 철로를 구축하는 것은 기본법에 따라 연방정부의 관할에 놓인다. 주 정부가 프랑스의 광역 자치단체보다 훨씬 강한 재정 능력을 갖추고 있는 독일에서도 연방정부는 주 단위에서 찾은 타협점을 구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공기관들이 브레멘 음악대처럼 서로 협력하고 대망의 RER를 도입하게 하기 위해서는 툴루즈의 RER 개통을 위해 활동하는 랄뤼몽 레투왈과 같은 시민단체들이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할 것이다.
글·뱅상 두마이루 Vincent Doumayrou
『La Fracture ferroviaire 철도의 균열』(L’Atelier, Ivry-sur-Seine, 2007)의 저자.
번역·김희은
번역위원
(1) 2024년 2월 12일 출발 열차 확인
(2) Métropole européenne de Lille, 종합 보고서「2016 이동 조사」, 2017년 3월. https://www.lillemetropole.fr
(3) RER는 ‘도시 급행열차’나 Stadtschnellbahn의 줄임말 S-Bahn으로 번역될 수 있으나, 동 기사에서는 RER를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하였음.
(4) Vincent Doumayrou, 「Quand l’État sabote le train 프랑스 정부의 철도 죽이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6년 6월호.
(5) <도시, 레일, 교통>, n° 508, Paris, 2010년 12월 1일.
(6) Christophe Keseljevic,「Pantalonnade... 익살극」, <철도(Chemins de fer)>, n° 561, Paris, 2016년 12월.
(7) Lionel Steinmann, 「Le PDG de la SNCF demande 100 milliards sur 15 ans pour le ferroviaire 철도 구축을 위해 15년에 걸쳐 1,000억(유로)을 요청한 SNCF CEO」, <레제코 (Les Échos)>, Paris, 2022년 7월 13일.
(8) KGabriel Kenedi, 「Carole Delga : “La Région ne peut assurer seule le financement du RER toulousain” “툴루즈 RER 재원 조달을 광역 자치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카롤 델가 의장」, 2022년 11월 8일. https://actu.fr
(9) 이 수치는 브레멘시에서 출발하거나 브레멘시로 도착하는 일일 이동을 모두 포함함. Cf. Verkehrsentwicklungsplan
(10) Cf. Konrad Elmshäuser, 『Geschichte Bremens』, C.H Beck, Munich,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