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레바논 정부 대신 헤즈볼라에 거는 희망

레바논 남부의 민심을 얻고 있는 헤즈볼라

2024-08-30     에마뉘엘 아다드 | 기자

레바논 남부 해안 도시 티르의 알타크멜레예 중학교 운동장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종이 울리기 전에 축구를 하며 걱정 없이 놀고 있다. 다른 쪽에서는 이스라엘과의 국경 마을에서 온 피난민들이 교실을 임시 대피소로 사용하며 힘겹게 지내고 있다.

나아마 T는 어머니와 여동생 넷과 함께 국경 마을에 살고 있는데, 목축업자인 아버지는 장남과 함께 가축을 지키기 위해 부스타네에 남아 있다. 나아마는 “400마리의 염소 중 100마리만이 폭격과 백린 오염에서 살아남았어요.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잃었지만 굳세게 버텨야 해요”라고 말했다.

부스타네는 이스라엘군의 백린탄 공격을 받은 국경 마을 다섯 곳 중 하나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6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를 전쟁 범죄로 고발했다.

낡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 방에서 나아마의 어머니는 레바논 비정부기구(NGO) 아멜(Amel)의 심리치료사 호다 하소나가 주최한 심리지원 세션에 다른 피난민 여성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호다 하소나는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낄 때가 올 수 있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나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아름답다고 말해주며 미래에 대한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목표를 달성하면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기분이 나아지게 됩니다”라고 설득했다. 한 참가자는 플라스틱 진주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이게 우리 생활비를 충당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라고 비꼬았다.

 

흥분한 지자자들, “나스랄라, 텔아비브를 쳐라!”

지난해 10월 8일, 하마스의 공격 다음 날부터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 제한적인 충돌을 벌이고 있다. 그해 11월 3일,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는 첫 연설에서 팔레스타인 이슬람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압박 전선’으로 군사 행동 범위를 제한했다.

이스라엘 군대의 가자지구 내 잔혹 행위가 증가함에 따라 헤즈볼라 지지자들은 이스라엘 공격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생방송 영상을 보고 충격받은 레바논 국민과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하며 입을 모아 “나스랄라, 텔아비브를 쳐라!”라고 외쳤다.

이란과 동맹을 맺은 헤즈볼라는 오랫동안 교전규칙을 지켜왔지만, 아이타알샵, 부스타네, 크파르 킬라, 아이타룬을 공격한 이스라엘에 맞서 키리아트 슈모나, 메툴라를 비롯한 이스라엘 국경 마을에 로켓과 대전차 미사일을 쏘는 것으로 보복했다. 그러나 헤즈볼라 지지자들이 원하는 만큼 전면적인 전쟁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이 분쟁으로 레바논 남부 주민들은 큰 피해를 봤다. 레바논 일간지 <로리앙르주르 (L’Orient-Le Jour)>에 따르면 6월 중순까지 10개월 동안 4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이 중 334명은 헤즈볼라 전투원이었다. 레바논 남부지역 의회가 추산한 피해액은 5월 기준으로 150억 달러에 달했으며, 피난민이 된 9만 4천 명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레바논 남부에서 농업 생태학을 알리는 공동체 아그리무브먼트(Agri-movement)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사라 살룸이 상황을 설명했다.

“부스타네에 살던 130가구는 올리브를 수확하지도, 담배 생산분을 팔지도 못했으며, 밀도 심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마을에 다시 돌아가게 되더라도 이듬해까지 수확에서 수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백린탄으로 오염된 땅에서 제대로 자랄 수 없으니까요.”

 

레바논 국민 73%가 이스라엘 분쟁에 반대

상황을 주시하는 이들은 이스라엘이 국경에 완충 지대를 만들어 레바논 피난민들이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레바논 남부 주민들의 삶은 멈춰버렸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근근이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10달 동안 레바논은 둘로 나뉜 티르의 학교 운동장처럼 분열됐다.

전쟁이라는 쓰디쓴 현실이 삶을 빼앗아 가버린 남부지역 마을이 있는 한편, 나머지 지역에서는 전쟁 지지 시위보다 “레바논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벽보가 더 눈에 띈다. 여론조사기관 스태티스틱스 레바논이 지난해 10월 13~1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레바논 국민 73%가 이스라엘과의 분쟁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 두 세계를 오가는 사람들의 삶은 대조적이다. 국경 근처 타이베 출신인 하산 샤라페딘은 이스라엘 폭격으로 이웃집이 파괴되자 베이루트 교외에 있는 누이 집으로 피난했다.

“우선 남부 국경 지역 사람들이 있고, 나바티에처럼 피해가 크지 않은 북부 지역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의 고통에 공감하며 피난민을 대거 받아들였죠. 그리고 베이루트에 살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만 연대의식을 느끼며 전쟁이 전국으로 확산될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까운 사람들이 죽고 집이 파괴된 동포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레바논 정치권 분열 뒤에 헤즈볼라 입지 강화돼 

2006년 여름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의 33일 전쟁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그해 여름 사미둔이라는 남부 주민들과의 연대 운동을 공동 설립한 가산 마카렘은 “2006년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이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여름비’ 작전을 규탄하며 베이루트의 순교자 광장에서 시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즉시 남부 피난민을 위해 공립학교를 개방하도록 압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의 정치적 입장은 명확합니다. 이스라엘 공격에 맞서 저항하는 것이죠. 헤즈볼라와 함께든 아니든 말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고수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미둔의 또 다른 공동 설립자 니자르 람말은 안타까운 어조로 이렇게 단언했다.

“우리는 베이루트에 살면서 남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와 상관없는 것처럼 여깁니다. 하지만 국경에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 문제가 아니라며 헤즈볼라가 레바논 안에 새로운 국가를 세우려 한다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수록 헤즈볼라가 국경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강해질 뿐입니다.”

 

헤즈볼라 지지자들 “반대파가 이스라엘과 결탁” 주장

겉으로 보이는 분열 뒤에는 새로운 정치적 현실이 자리한다. 2006년 2월 6일 기독교 정당 자유애국운동(CPL)과 헤즈볼라 간의 동맹이 체결됐지만, 오늘날 기독교 정당 레바논의 힘(FL)은 헤즈볼라와 첨예한 대립 구도를 그리고 있다. 레바논의 힘(LF)은 2022년 10월 미셸 아운(CPL)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자 헤즈볼라가 자신들이 선택한 후보를 임명하게 하려고 대통령 선출을 방해했다고 비난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전선을 여는 전략적 우를 범했습니다.” 리샤르 쿠욤지안 레바논의힘 외무부 책임자는 “가자지구가 파괴되는 것을 막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원 전선’이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레바논의 중립성과 결의안 1701호를 지지합니다.”

2006년 전쟁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이 결의안은 레바논 남부 국경 지역에서 헤즈볼라 전투원을 대신하여 레바논 군대와 유엔 평화유지군을 배치하도록 규정한다.

 

반대파들 “헤즈볼라는 이란 제국주의 앞잡이” 비난 

카네기 중동센터 연구원 모하나드 하지 알리는 “레바논 정부 기관을 거치지 않고 전쟁이나 평화를 결정하면서 레바논의 주권을 침해하는 헤즈볼라의 방식에 기독교 정당들이 분노하는 한편, 다른 국민들은 팔레스타인과 초국가적 연대를 느끼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헤즈볼라 지지자들은 반대파가 이스라엘과 결탁했다며 비난하고, 반대파는 이들을 이란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간주한다.

정치적 양극화 외에도 많은 레바논인들이 2019년부터 금융, 경제, 에너지, 사회, 정치적 위기로 고통받는 나라가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완전히 붕괴될까 걱정한다. 하지 알리는 “헤즈볼라는 나라가 처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전쟁을 벌였습니다. 레바논은 2019년 10월 이후 누적 인플레이션이 5,000%에 달하며, 5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잃었습니다”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지속적인 위협은 긴장을 더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해 12월 7일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시작하면 베이루트와 남부 레바논을 가자와 칸유니스처럼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올해 6월 18일, 이스라엘 군대는 “레바논 공격을 위한 작전 계획이 승인되었다”라고 발표했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캐나다와 쿠웨이트를 비롯한 여러 나라는 6월 말 자국민에게 “아직 가능할 때” 레바논을 빨리 떠나라고 촉구했다.

 

레바논 남부 주민들에게 헤즈볼라는 유일한 희망

레바논인들은 블랙 유머, 진정제, 그리고 과거 전쟁에서 배운 대처법으로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심리치료사 다니아 단다슐리는 “레바논 사람들은 이스라엘 군사작전을 여러 차례 겪었기 때문에 새로운 분쟁이 터졌을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교전규칙이 산산조각 난 지난 몇 개월은 예외였다. “헤즈볼라는 전면전을 원치 않는다고 계속해서 말하지만, 그에 맞선 이스라엘의 공격 강도는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로잔 대학교 교수 조제프 다에르가 지적했다.

올해 1월 2일 하마스 정치국 2인자 살레흐 알아루리가 헤즈볼라의 거점인 베이루트 교외 지역 한복판에서 살해된 사건이 갈등의 불씨가 됐다. 그 이후로도 이스라엘은 레바논 영토 곳곳에서 표적을 암살했다. 대규모 공세를 알리는 서막일까?

미국은 동맹국인 이스라엘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에 여러 차례 자제를 촉구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6월 말, 10만 명이 넘는 피난민들이 북부 이스라엘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외교적 해결책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그 또한 헤즈볼라의 강력한 화력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6월 중순 헤즈볼라의 드론이 이스라엘 하이파 항구에 있는 무기 창고 위를 비행하는 경고 영상이 공개됐다.

여러 이스라엘 연구기관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최소 15만 개의 로켓과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2006년보다 10배나 많은 수치다. 전투원은 최소 3만 명 이상이며,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는 10만 명의 전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남부 주민들에게 헤즈볼라의 전투력은 유일한 희망이다.

“2006년 때와 달리 이번에는 누군가가 우리를 보호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민간인을 아무런 제재 없이 폭격할 수 없습니다. 레바논 국민 모두가 자국의 군대가 자신들을 보호해주기를 바라지만, 저항하는 편이 더 효과적입니다.” 

하산 샤라페딘은 이렇게 말하면서 1982년 이후 세 번이나 타이베에 있는 자택을 떠나 피난을 가야 했다고 밝혔다.

 

피난민들에게 지지를 얻는 헤즈볼라의 사회정책

헤즈볼라의 사회정책 또한 지지를 얻고 있다. 니자르 람말은 “헤즈볼라는 피난민 가정마다 매달 100달러를 지급하고, 헤즈볼라가 운영하는 사자드 협동조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을 줍니다. 우리는 사미둔 운동의 일환으로 하루시에 마을에 있는 피난민 19가구에게 100달러를 지급함으로써 헤즈볼라만이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헤즈볼라의 사회기관은 매우 잘 조직돼 있어 시민단체의 대안은 초라해 보인다.

레바논 싱크탱크 ‘정책 이니셔티브(The Policy Initiative)’의 창립자 사미 아탈라는 “헤즈볼라는 국가 내 국가일까요? 아니면 비국가 내 국가일까요?”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금융 위기, 항구 폭발, 이스라엘의 폭격에 직면한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레바논 당국의 만성적인 무능함을 비난하면서 중립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답한다.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대량 학살을 두고 ‘레바논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전직 장관이자 ‘국가 내 시민’ 운동의 창립자인 샤르벨 나하스는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이제 국가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군대가 남부 국경에서 헤즈볼라를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의미가 없습니다. 헤즈볼라를 대체하려면 인구 조사를 거쳐 병사를 징집해야 하고 무기도 필요합니다.”

나하스는 헤즈볼라가 이룬 군사적, 사회적 성과를 “세속적이고 강력한” 체제 아래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시온주의 프로젝트”가 바로 “이 지역의 국가들을 비합법화하려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아랍 국가와 사회의 분열이야말로 이스라엘이 바라는 바입니다.”

 

 

글·에마뉘엘 아다드 Emmanuel Haddad
기자

번역·정나영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