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마비된 북극 거버넌스

2024-08-30     디디에 오르톨랑 | 전 해양법 담당 프랑스 외교관

북극은 전 세계 경제 활동의 목격자이자 피해자다. 수천 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국제적 위기는 이미 환경 파괴 위협에 시달리는 북극에도 그 충격파가 미친다.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북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극 지역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일으킨 분쟁의 부수적 피해자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북극의 군사화를 강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 2년 동안 북극 전체의 거버넌스를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매우 민감한 북극의 정치적 안정뿐만 아니라 기후 현상을 이해하고 이 지역을 보존하는데 필수적인 과학 연구도 영향을 받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탄화수소 운송 항로를 바꾸어 환경적으로 매우 취약한 북극 지역을 통과하는 북극해 항로(NSR)의 통행량이 급증했다.(1) 이러한 상황은 예상치 못한 결과도 낳았다. 미국은 추크치해와 보퍼트해 50만㎢ 대륙붕에 대한 영유권 주장 방식을 바꿨다.

냉전이 종식된 후 북극에는 독특한 거버넌스가 확립됐다. 1996년 출범한 북극이사회(AC)는 북극권에 영토를 보유한 8개(캐나다, 그린란드를 대표하는 덴마크, 미국,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러시아, 스웨덴) 회원국, 북극 지역 6개 원주민 공동체 대표, 실무 그룹에 참여하는 프랑스를 비롯한 13개 참관국을 아우른다.

이 정부 간 협의기구는 환경 보호를 비롯한 공동 문제를 논의하며 의사 결정권을 가진 회원국이 2년 단위로 돌아가며 의장국을 맡는다. 2021~2023년 의장국은 러시아 차례였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다른 7개 회원국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중단하고 러시아가 참여하지 않는 프로젝트만 제한적으로 협의했다. 북극 해안과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를 영구적으로 배제할 가능성은 없었다. 러시아 역시 전략적 지역인 북극에서의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북극이사회 잔류를 희망했다.

다른 7개 회원국의 불참에도 불구하고 의장국 러시아는 자국에 우호적인 중국, 인도를 비롯한 참관국과 협력해 북극이사회의 활동을 이어갔다. 다소 기이한 이 상황은 2023년 5월 러시아가 노르웨이에 의장국을 공식 이양할 때까지 이어졌다. 당시 다른 회원국들은 러시아가 소집한 장관급 회의에 직접 참석하길 거부했다. 결국 화상으로 진행된 이 회의에서 8개 회원국은 의장국 이양을 공식화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러시아, 북극이사회 탈퇴 으름장

이 성명서는 “역내 민족 간 건설적인 협력, 안정, 대화 구현을 위한 북극이사회의 특별한 역사적 역할”을 강조하며 북극위원회를 강화하고 2021년 채택한 전략 계획 이행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결의했다. 국제무대에서의 입장 차를 인정하면서도 북극 지역에서의 상호 의존성을 인정한 것이다.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의 최근 발언이 회원국들의 전반적인 입장을 반영한다.

“(북극이사회) 문을 걸어 잠그고 열쇠를 던져 버려서는 안 된다. 언젠가 문은 다시 열릴 것이고 우리 모두 북극 테이블에 다시 모일 것이다.”(2)

까다로운 이웃 러시아와의 협상에 익숙한 노르웨이 외교는 특히 험난한 상황에서 바통을 이어받았다. 지난 2월, 니콜라이 코르추노프 러시아 북극 국제협력 대사는 러시아는 북극이사회 탈퇴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북극이사회가 온전한 활동을 재개할 때까지” 북극이사회 사무국에 대한 분담금 납부를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러시아의 이러한 결정은 상징적인 조치로 보인다. 노르웨이 트롬쇠에 소재한 소규모 조직인 사무국은 북극이사회 사업에 자금을 지원하지 않으며 러시아와 여전히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앞으로 상황이 개선되길 기대하고 있다.(3)

북극위원회에는 사무국 외에도 해양 환경 보존, 동식물 보존, 오염 방지 등 자연 보호에 중점을 둔 6개의 실무 그룹이 있다. 실무 그룹의 활동은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 2018년, 북극권 국가, 주요 어업국(중국, 일본, 한국), 유럽 연합(EU)은 유빙이 녹아 드러난 해역에서의 조업을 금지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2022년 2월 이후 실무 그룹은 기존 사업은 계속 추진했지만 회의 개최를 중단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러시아 영토에 관한 데이터 부재로 기후변화 관련 연구는 난관에 부딪혔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영구 동토 해빙의 영향을 측정할 수 없다.

영구 동토 해빙은 강력한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대량 방출 가능성 때문에 시한폭탄과 다름없다. 새롭게 의장국을 맡은 노르웨이는 3월 초 러시아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화상 회의를 통해 실무 그룹이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고무적인 신호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극해 해상 운송 오히려 증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북극 연안을 따라 이어지는 북극해 항로의 해상 운송에도 영향을 미쳤다. 북극해 연안 개발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숙원 사업이다. 서구의 제재는 여전히 부분적이기 때문에 러시아 선박은 스페인, 벨기에, 프랑스로 액화천연가스(LNG)를 계속 실어 나르고 있다.

이 LNG선들은 부동해인 바렌츠해를 통과하기 때문에 환경오염의 위험이 적다. 러시아가 수출하는 석유 대부분은 발트해, 흑해 항구를 출발해 지중해,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는 전통적인 경로를 통해 인도와 중국으로 향한다. 제재로 인해 일본 기업 미츠이(Mitsui)에 발주한 선박을 인도받지 못한 노바텍(Novatek)의 북극 LNG2 가스전 개발은 제동이 걸렸다.

반면 야말 LNG 터미널을 출발한 선박들은 북극 항로를 거쳐 태평양으로 향한다. 이 경로를 통해 중국으로 향하는 유조선들도 보고됐는데 이 중에는 북극해 통과 시 필수적인 내빙(耐氷) 인증을 받지 않은 선박도 있었다. 2018년 이후 처음으로 컨테이너선들 역시 이 항로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해안선이 5,600km에 달하지만 항만 인프라가 존재하지 않는 이 항로는 컨테이너선 운행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 회사가 용선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컨테이너선들은 적재량이 1,500~3,000TEU(20피트 컨테이너 1대 환산 단위)에 불과해 2만TEU 이상의 대형 컨테이너선에 비교하면 ‘소형’으로 분류되는 선박이다.

이 모든 요인으로 인해 2023년 북극해 항로 물동량은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년도 3,400만t에서 소폭 증가한 3,600만t을 기록했다. 북극해 항로를 운영하는 러시아 기업 로사톰(Rosatom) 최고경영자에 따르면, 이 항로의 선박 통행량 절반은 LNG선이 차지했다.

나머지 절반은 중국 수출 항로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변경된 석유, 니켈을 비롯한 상품 및 원자재를 실은 선박이었다. 2025년까지 8,000만t을 달성한다는 2019년 푸틴 대통령이 세운 목표와는 큰 격차를 보이는 수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해상 물류 흐름을 일부 역전시켜 북극해 항로 이용을 확대하고 대(對)중국 수출에 있어서 이 항로의 효용성을 부각시켰다.

 

러시아, 미국의 북극 대륙붕 영유권 주장을 부정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혀 다른 문제도 악화시켰다. 중앙 북극해는 연안 국가가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부터 200해리로 설정된 한계를 넘어 대륙붕을 확장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연안국의 영유권 주장을 심사 및 승인하는 임무를 위임했다.(4)

2001년 최초로 대륙붕 연장 신청을 한 국가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2015년 추가 정보를 제출했지만, CLCS는 모스크바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북극해 해저의 지질학적 특성과 특히 북극해를 관통하는 로모소노프 해령에 관한 심각한 이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덴마크와 캐나다 역시 각각 2014년, 2019년 대륙붕 연장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소규모 조직인 CLCS는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해 아직 양국의 신청서를 검토하지 않았다.

북극해에 접한 알래스카를 영토로 보유한 미국은 북극해 대륙붕 연장 경쟁에 동참하지 않았다. 사실 미국은 다소 애매한 상황에 놓여있다. 미국은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반대로 UNCLOS를 비준하지 않았으며 CLCS의 회원국도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이 대륙붕 연장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UNCLOS는 회원국이 아닌 연안국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닌 듯 보인다. 하지만 비회원국이 제출한 신청서를 거부할 수 있는 CLCS의 입장은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CLCS가 대륙붕 연장 신청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대부분 동일한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이 겹쳤을 때로 UNCLOS 비회원국의 신청서 제출에 대한 문제는 한 번도 제기된 적이 없다. 그럼에도, CLCS가 미국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2022년 2월 이전까지만 해도 미 국무부는 알래스카 연안 북극해를 포함한 미국의 모든 해양영토에 대한 대륙붕 연장 신청서를 CLCS에 제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변했다. 이제 CLCS의 러시아 대표부가 미국의 대륙붕 연장 신청을 방해할 것이 뻔하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2023년 12월 13일 국무부의 짧은 성명을 통해 대륙붕 연장을 요구하며 UNCLOS에 가입한 후 UNCLOS와 CLCS의 기술 지침에 부합하는 과학적 데이터를 제출할 것을 명시한 문건을 공개했다. 데이터를 먼저 제출하는 방식도 가능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CLCS 위원 전원의 승인이 필요하다.

미국 정부는 데이터 제출을 예고했기 때문에 절반이 북극에 속하는 총 100만㎢의 해저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공식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국제법의 시각에서 보면 여전히 불충분한 조치다. 미국 정부가 처한 이처럼 독특한 상황 때문에 공화당 소속 알래스카주 상원의원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은 UNCLOS 비준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해역은 캐나다, 덴마크, 러시아가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앙 북극해가 아니라 러시아 극동 지역 대륙붕에 인접한 추크치해(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위치한 바다로 베링해로 통하는 관문—역주)다. 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 6월 1일 미국과 러시아는 북태평양과 북극해 양국 영해의 구역을 획정하는 협정을 체결했다.(지도 참조)

이 협정은 자오선에 의거해 북극해의 경계를 정했으며 양국의 해양영토는 “국제법이 허용하는 한도까지 확장”된다고 명시했다. 필요한 과학적 연구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륙붕 연장을 미리 예단하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따라서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경계는 1990년 채택한 자오선을 기준으로 설정됐다.

하지만 미국은 북극해 대륙붕의 경계를 북위 82°까지로 간주하는 반면 러시아는 자국의 대륙붕이 북위 90°, 즉 북극까지 뻗어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는 2024년 3월 18일 국제해저기구(ISA)에서 성명을 발표했다. 외교부 웹사이트에도 게재된 이 성명은 미국의 북극 대륙붕 영유권 주장을 부정했다.

러시아는 또한 대부분의 다른 국가는 CLCS에 대륙붕 연장 신청서를 제출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미국의 UNCLOS 가입을 촉구했다. 한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1990년 6월 미국과 체결한 경계 획정 협정 재고를 주장하는 러시아 의원들을 달래고 있다. 이는 양국 갈등 완화의 신호일까?

 

 

글·디디에 오르톨랑 Didier Ortolland
전 해양법 담당 프랑스 외교관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Sandrine Baccaro & Philippe Descamps, 「Géopolitique du brise-glace 생태계를 위협하는 북극, ‘콜드 러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4월호.
(2) <Observatoire de l’Arctique – Bulletin mensuel 북극 전망대-월간 소식지>, n° 49, Levallois-Perret, 2024년 3월호에 실린 발언.
(3) Astri Edvardsen, 「Seeking Consensus for More Efficient Arctic Cooperation」, <High North News>, 2024년 2월 20일, www.highnorthnews.com
(4) 「Le droit de la mer tangue mais ne coule pas 지난 40년, 국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바다를 나눠 가졌을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12월호, 「Géopolitique des abysses 환경 파괴하는 ‘골드러시’ 물결, 심해 지정학」, 2023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