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포니’ 퀘벡 경제의 미국화

2012-09-12     제라르 뒤엠

성공의 대가인가? 경제성장률 2%대인 캐나다의 퀘벡은 예외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런 수치에도 불구하고 퀘벡 경제의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으며 분야별로 큰 불균형이 존재한다.

캐나다의 퀘벡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퀘벡주(洲)는 세계의 다른 지역들보다 더 빨리 경기침체에서 벗어났다. 적어도 정부에서 주야장천 되풀이하는 말에 따르면 그렇다. 정부에서는 현 경제정책이 위기 상황에 적절히 대응했음을 확인시켜주는 지표들을 인용한다. 2011년 기자회견에서 레몽 바샹 퀘벡주 재무장관은 "고용이 늘고 있고 실업률은 최저 수준이며, 민간 투자는 증가 추세에 있다"고 떠들었다. 경제지표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라고는 해도 이것만으로는 경제활동 분야의 상반된 역동성이나 사회적 불평등의 증가에 대해 알 수 없다. 통계적 평균으로 무마된 이같은 현실은 세부적인 내용을 자세히 살펴봐야지만 실제 현황을 알 수 있다.

30년 전 수립됐던 자유무역주의 정책의 결과인 기업 이전 현상은 멕시코와 델리, 상하이 근교 지역을 대상으로 확산됐고, 이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퀘벡에서는 섬유 산업과 가구 제조업이 사라졌다. 더 최근에는 금속 제련과 완제품의 조립 및 생산 작업이 자취를 감추었다. 스키스쿠터 같은 레저용 기구나 폭격기 등 퀘벡 산업의 꽃이던 분야도 이제는 신흥개발국에 기대를 걸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탈공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기존에 있던 삼림 개발도 사장됐고, 특히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 지역이 그에 따른 타격을 입었다. 퀘벡시 중심부에 위치하며 거의 100년 전부터 종이를 생산해오던 스타다코나 공장 또한 지난 1월 문을 닫아야 했다. 저장고는 말라붙은 지 오래고, 굴뚝에서는 더 이상 연기가 올라오지 않으며, 복도는 텅 비었고, 새로 실업자가 600명이나 양산됐다. 사양산업에 속하는 일부 기업들은 근로조건을 악화시켜 수익성을 유지한다. 급여와 유급휴가, 연금 수령액 등을 줄이는 것이다. 대개는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스타다코나 공장은 노조가 불리한 근로계약을 감수했음에도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지난 10년간 제조업과 농업이 계속 쇠락의 길을 걸었으나, 다른 산업 부문은 (2008년과 2009년만 예외로 하고)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였다.(1) 내부 규제 완화와 장벽 철폐가 이뤄지고 1990년대 북미자유무역협정과 일련의 유사 조약들이 체결된 이후, 금융 및 보험 분야도 눈부신 성장세를 계속 이어갔다. 건설 부문은 대대적인 공공 인프라 구축 계획으로 탄력을 받았는데, 특히 몬트리올 같은 곳에서 일부 대규모 토목공사의 심각한 상태를 고려하면 현재 진행 중인 건설 계획들이 정체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끝으로 광물 운송 및 광산 투자 등 원자재 부문 역시 호황을 누렸다. 2000년대 중반 금속 원가 인상 이후 원자재 채굴업자들은 생산량을 늘렸고, 설계 단계에 있던 사업들도 실제 작업에 들어갔으며, 광물 탐사 작업은 더욱 늘어났다.

지난 5년간 일반 가정의 가처분 소득 증가율은 2.2%에 해당했으나, 이는 2%의 인플레이션으로 중화됐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건, 가계부채가 소득 증가율의 두세 배 더 빠른 속도(+7.2%)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2) 지난 50년간 지켜본 추세에 따르면, 시기적으로 주춤한 적은 있어도 상황이 뒤집어진 적은 없었다. 주정부 및 연방정부의 재무장관들은 소비자에게 재무 건전화를 장려하며 쓴소리를 늘어놓지만 여전히 호황세를 이어가는 기업에 대출 제한선을 부과하는 데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게다가 공공정책 또한 저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권고 사항과 상반된다. 사회보장제도에 반복적으로 손댐으로써 소득이 가장 적은 가계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정부가 정한 시간당 최저임금(9.90캐나다달러)은 이들을 극심한 빈곤으로 몰아간다. 전일제로 근무하더라도 세전 소득이 연간 1만8천 달러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 사람 소득으로는 사실 빈곤의 한계선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사회복지 프로그램도 그 수혜자에게 늘 엄격한 제약을 가한다. 최후의 수단으로 받게 되는 지원금 역시 쓸 만한 정도의 최소 금액조차 되지 않는다. 연민의 마음도 편견에 밀려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사회복지가 바로잡히지 않은 가운데 정부의 예산 적자 근절이 절대적 필요성으로 대두되고, 모든 정책의 모태가 되면서 정부가 보장해줘야 할 최소한의 사회적 연대마저 해치고 있다.

10년 전부터 우파는 이런 목표에 초점을 맞춰왔고, 정당과 노조 등 대표적 기구들이 결국 정계와 언론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캐나다의 보수 진영은 일단 겉으로는 인자해 보이는 인상의 보수당 대표 스티븐 하퍼를 중심으로 동맹을 결성하고 있다. 보수 동맹은 두 번의 선거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머쥐었는데, 보수 진영의 지도부는 영미권 캐나다 연합 전선이 결성된 이후 안 그래도 높아진 반(反)퀘벡 정서를 더욱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날 우파는 정보 통제로 기자협회의 비난을 사고 있고, 총기 명부 파기, 국방 예산 증가, 군부대 전투 참전(3), 환경 정책 저지 등 미국식 정책을 채택할 뿐 아니라 군주제의 상징을 복원하고 영어만 가능한 인물을 대법원 판관이나 총감사관 등 요직에 임명하는 등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자유시장을 장려하고 불평등을 증대시키는 예산 삭감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다. 캐나다 통계청에 대한 예산 삭감에 대해서도 퀘벡 이외의 프랑스어권 국민과 현지 토착주민 등 소수 집단들은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통계 수치가 사라지면서 행여 지금껏 혜택을 받아온 정부 지원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됐던 것이다. 이들은 그런 처사가 자신들의 권리 수행에 장애물이 될까 두려워한다.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원들에 대한 예산 삭감도 생로랑 유역의 보건 상태 분석에 지장을 초래한다. 퀘벡의 해상 조난 신호를 트렌톤으로 바꿀 방침인데, 이럴 경우 퀘벡과 아카디아 지역 프랑스어권 어부들의 목숨이 걸려 있다. 파리를 잠시 방문했을 때, 캐나다 총리는 순진하게도 다음과 같은 견해를 내세운다. "정부의 모든 지출이 적절한 곳에 사용되는지를 확신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정부 지출을 엄정히 심사하고 있다. 정부 정책과 반대되는 일을 하는 조직에 돈을 쏟아붓는다면 그건 납세자의 돈을 부적절한 곳에 사용하는 셈이고 우리는 그런 경우를 없애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4) 이와 더불어 다른 한편에서는 상품화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하는 연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연구 자문 역시 경진대회나 기초 공식 등을 사업 부문에서의 용도에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축소된 예산을 발표할 때마다 매년 불거지던 반발의 목소리는 항상 그때뿐이었다. 민영화 계획이나 산업발전 계획 등과 관련해 나타났던 가장 소란스러운 움직임조차 모두 사그라졌다. 정부가 시간끌기용 수작을 부리거나 해당 계획이 민간 사업자에게 별다른 이점이 없다는 점을 알리는 토론을 지속시킬 경우 반대 움직임이 중단되기도 한다. 대개는 그 대상도 몬트리올 하류의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이나, 세인트로렌스 계곡에서의 수압 분쇄 방식을 통한 셰일가스 탐사 및 채굴 사업 등 구체적이고 지역적인 사안에 해당했다. 코트노르의 마지막 남은 야생 하천 유역에 수력발전 댐을 건설하는 일이나, 숨어 있는 지하 금광 채굴을 위한 말라르틱시(市)의 해체 같은 사안은 그나마 운동세력 부족으로 반대 움직임이 중단됐다.

국민이 분노할 사안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퀘벡 저축투자금고는 천문학적인 손실(총자산가치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400억 달러 손실)을 입었고, 건축업자와 결탁한 정치권의 부패가 나타나면서 정권이 궁지에 몰려 특별위원회가 구성된 뒤 조사 작업이 이뤄졌다. 대학 등록금이 인상돼 퀘벡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학생운동이 일어나는가 하면(본지 6월호 기사 참조), 사임한 장관이 자원 부문의 대기업에 다시 채용되는 놀라운 구조적 시스템이 자리잡기도 했다.

이렇듯 불만이 쌓여가고 있음에도, 10년 전부터 지속돼온 퀘벡의 경제 및 재분배 정책의 기본 방향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아마 부분적으로는 여론을 조장하는 주류 언론으로의 집중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 언론들은 정부의 버팀목이 돼주고, 반체제적 목소리는 의도적으로 헐뜯는다. 혹은 좌파와 우파 사이에 대다수 민족주의자들이 보이는 미온적 태도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퀘벡의 주권 신장 전략에 유리할 수만 있다면 민족주의자들로서는 주춤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수많은 개별적 사안들로 인해 운동세력이 분열된 탓도 있다.

정치권에서 기뻐할 만한 이유는 얼마든지 많다. 퀘벡 경제가 평균적으로 잘 돌아가는 상황이라면 그만큼 정부 말을 잘 듣는 우등생이 있다는 뜻이고, 정부가 세계화라는 처방전을 현지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4개월 전부터 학생들은 본격적으로 반발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이를 퀘벡 전체의 포괄적 사안과 연계시킴으로써 학생운동은 현 정권이 내세우는 사회 모델에 대해 많은 국민의 불만을 표출시키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글/제라르 뒤엠 Gérard Duhaime <신용인생: 소비와 위기(La vie à crédit: Consommation et crise)>(Presses de l'université Laval·Quebec·2003)의 저자.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미래를 심는 사람> 등이 있다.

(1) ‘1993∼2011 주요 경제지표’, 퀘벡 통계연구소.
(2) ‘담보대출을 제외한 2007∼2011 소비자 금융 현황’, 캐나다 통계청.
(3) 마르크올리비에 베레, ‘캐나다의 위험한 도박’(La Diplomatie belligueuse d’Ottawa’,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2월호.
(4) ‘하퍼 정부’(Gouvernement Harper), <Le Devoir>, 몬트리올, 2012년 6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