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속삭임

에릭 샤쿠르의 『너에 대해 내가 아는 것들』(필리프 레 출판사, 2023)

2024-08-30     장필리프 로시뇰 | 작가

 

이 장면은 1982년 이집트 카이로의 빈민 지역 모카탐에서 펼쳐진다. 한 여성과 그녀의 아들 알리, 그리고 알리를 진찰하러 온 의사 타렉이 탁자에 둘러 앉아있다. 타렉은 미지의 세계와 ‘사람들을 돌봐주고’ 싶다는 소년을 관찰한다.

알리의 모친이 말한다. “세상에! 자기가 왜 의사가 됐는지도 모르는 의사 선생과 빈민가 출신의 또 다른 의사한테 둘러싸여 있다니, 나는 참 인복도 많지!”

신랄한 이 구절은 에릭 샤쿠르의 첫 소설에 담긴 역설적 관점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작가는 계급 불평등과 이중문화 정체성에 결부된 모든 상투적인 것들을 탈피한다.

난관은 수두룩하다. 너무도 당연하게 부친으로부터 호화로운 병원을 이어받고, 그 후 빈민들을 위한 보건진료소를 개원하는 타렉의 여정을 과연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불균형을 과하게 강조하지 않으면서, 어떤 방식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소년, 알리가 타렉의 일상 진료 활동을 함께 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능숙한 회피술을 발휘하며 작가는 두 남성 간의 견고한 관계를 직조해 나간다. 남성적 규범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가늠하기 어려운 그런 우정이다. 이들의 관계는 사회의 양극단에 위치한 두 주인공이 공유하는 공통적인 소외성에 대한 것인가? 동성애적 욕망인가? 아니면 단순한 형제애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수수께끼로 남는다. 어쩌면 그저 묻혀있는 추억을 통해 한 남자의 생을 이야기하려는 소설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여전히 가말 압델 나세르의 집권 시기이던 1980년대, 타렉은 프랑스와 아랍 문화가 공존하고, 이집트 내 시리아・레바논계 소수민족을 상징하는 레반트 공동체의 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이 청년 의사의 이야기는 이집트를 떠나 그가 홀로 정착하는 2000년대의 캐나다에서도 전개된다.

두 국가, 두 언어, 그리고 여러 세대를 걸쳐 펼쳐지는 서사다. 1961년부터 2001년, 카이로에서 몬트리올까지, 하나의 모더니티에서 또 다른 모더니티로, 소설은 이제는 사라진 것을 다시 들여다본다.

이집트의 시리아・레바논계 공동체 출신으로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작가 자신이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세세한 묘사로 상상력을 가득 채운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소설 『너에 대해 내가 아는 것들』은 사물, 길거리, 주거 형태 등을 통해 그 당시의 카이로를 거의 고고학적으로 복구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기억에서 사라진 아랍 세계에 대한 낭만으로 가득한 향수와는 거리가 멀다. 샤쿠르의 글쓰기는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섬세한 문체를 특징으로 하지만, 겉멋을 부리는 일은 없다.

2023년 퀘벡에서 출간되고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은 아름답고 소설적인 기법 또한 탈피한다. 소설 속 인물들이 보고 느끼는 색채와 향기, 감각에 대한 묘사는 작가의 화려한 기교를 보여주는 대목이 되기를 추구하지 않는다.

타렉의 삶은 의심과 침묵의 시간, 사후 이해로 점철되어 있다. 그의 누이, 그의 배우자와의 관계가 그렇듯, 알리와의 관계도 미지의 영역에 머무른다. 타렉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기 위해 그에게 말을 건네는 화자는 화자 자신이 ‘너에 대한 나의 이야기’라고 부르는 것만을 담을 수 있을 뿐이다. 불확실한 인생의 여정 속에서 아무런 설명 없이.

 

 

글·장필리프 로시뇰 Jean-Philippe Rossignol
작가, 편집자, 연출가. 저서에『Vie électrique 전기적 삶』(갈리마르), 『Juan Fortuna 후안 포르투나』(크리스티앙 부르주아) 등이 있다.

번역·김희은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