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두 미국인, 스피겔먼과 크럼

2012-09-12     모르방디오

아트 스피겔먼은 1948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1951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작품 <쥐>(Maus·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유대인 아버지의 일대기를 추적하며, 아버지와 아들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그린 작품)(1)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예술가이다. 잡지 <아케이드>(Arcade)와 <로>(RAW)의 편집자,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피스트로 널리 활약했다.

로버트 크럼은 194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친구 테리 즈위고프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대중 사이에 이름이 알려졌다. 비정상적인 미국의 한 중산층 가정을 조명한 영화로, 만화를 통해 가족에게서 해방되는 젊은 시절 크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흔히 크럼은 'LSD에 찌든 1960년대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황제'라는 이미지로 환원된다. 그럼에도 그는 자전적 이야기를 진솔하게 빚어내는 작가적 재능과 동시대의 사회적 관습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풍자가로 재능을 함께 겸비한, 뛰어난 그래픽 실력을 지닌 위대한 예술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스피겔먼과 마찬가지로 크럼도 만화잡지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재능 있는 신예들을 대거 발굴하는 등 '제9의 예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두 작가는 친구 사이이지만 각자 걸어온 이력과 성격은 판이하다. 창간한 만화잡지 <로>와 <위어도>(Weirdo)가 각각 얼마나 다른 색채를 추구하는지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역사가 장 폴 가비이예에 따르면, "<위어도>는 캘리포니아 촌구석에서 만들어진 반면, <로>는 그리니치빌리지(뉴욕 맨해튼섬 남부에 있는 예술가 거주 지역)에서 구상됐다. 전자는 별로 고상하지 않은 방식으로 미국의 대중문화를 패러디하고 조롱한다면, 후자는 작가주의 만화 혹은 유럽 만화를 보여주는 전시장이라 할 수 있다. 문화적으로 볼 때, <위어도>는 쓰레기통 바닥에 달라붙은 오브제, <로>는 미술관 액자 유리 밑에 끼워진 오브제의 위상을 지닌다."(2) 이런 극명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속예술'(Sequential Art)(윌 아이스너는 만화를 '연속예술'이라 규정하고, "그림과 단어를 배치하여 이야기를 만들거나 생각을 각색하는 것"이라 정의했다)의 형식과 주제를 타파하고, 만화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두 사람은 많은 공통분모를 가졌다. 먼저, 둘 다 하비 크루츠먼(3)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은 동세대 미국인이다. 또 만화라는 장르만이 지닌 미학적 특수성에 대해 깊은 믿음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 예술가이기도 하다. 비록 방식은 냉정하거나 자조적일지언정 말이다. 책이나 신문에 대한 그들의 애착과 고민은 그런 믿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또 하나의 공통점이 목록에 추가됐다. 파리에서 두 거장을 조명한 대형 전시회(4)가 개최된 것이다. 오늘날 이 전시회가 증명하듯 두 사람이 프랑스 평단의 인정을 받게 된 데는 그들이 프랑스와 맺고 있는 각별한 인연이 한몫했다. 먼저 크럼은 20년째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다. 스피겔먼은 유럽의 역사를 배경으로 작품 <쥐>를 창작했으며, 잡지 <로>를 공동 창간한 프랑스인 프랑수아즈 물리와 결혼했다. 게다가 두 사람은 모두 비불어권 출신으로는 드물게 앙굴렘 만화축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적이 있다. 그들 이전에 그랑프리를 수상한 만화작가는 미국인 윌 아이스너이다.

'만화 회고전, 그래피즘과 다양한 잔해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열린 <아트 스피겔먼, 코-믹스> 전시회가 얼마 전 막을 내렸다. 이 전시회에는 스피겔먼의 예비 드로잉, 잡지 표지, 도판 등 다양한 작품의 원본과 자료가 전시됐다. 앙굴렘 만화축제가 공동으로 기획한 이 전시회는 만화 전시에 경험이 풍부한 리나 자바글리 마토티와 장 마리 데르셰드(5)가 사령탑을 맡았다. 스피겔먼 작품의 감성적 측면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교육성과 간결성을 추구한 전시회를 선보였다. 전체적인 기획 방향은 이 전시회가 퐁피두센터 내 공공정보도서관(BIP)(6)에서 열리는 행사라는 특성에 좌우됐다. 출품 작품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서적 전시라는 측면에서 통일감이 부여됐다.

전시회 <크럼, 언더그라운드에서 창세기까지>와 마찬가지로, <아트 스피겔먼, 코-믹스>전도 먼저 한눈에 감상이 가능한 그림 작품들(잡지 표지, 포스터, 일러스트레이션 등)을 선보였다. 그 외에 특별히 작품 <쥐>를 위한 전시공간을 따로 마련해, 벽 위에 일렬로 작품 <쥐>의 복사본과 각 장면이 완성되기 전에 그린 밑그림, 칸 그림 등을 줄줄이 걸어 관객이 작품 창작 과정을 전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이 뉴요커의 작품을 해체하는 작업에는 수많은 개인적 혹은 역사적 자료가 더해졌다. 여기에는 매체에 대한 고민과 만화를 '제9의 예술'(그는 자기 작품을 통해 이를 몸소 증명했다)로 끌어올리기 위한 교육적 노력이 오롯이 반영되어 있었다.(7) 이 회고전은 새로운 예술작품을 표방하거나, 미주알고주알 해설을 더하는 나쁜 습관에 빠져들지 않으며, 지능적으로 작품을 향한 문을 수없이 만들어놓는 재기를 발휘했다.

파리 현대미술관의 첫 만화 전시회

주류문화라면 그토록 불신하는 로버트 크럼이 대체 파리현대미술관(MAM)에서 무엇을 하려는 것이었을까? 무크리스티앙 로세와 나눈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크럼은, '종이 위에 그린 선들'(8)에 불과한 자신의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에 매우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영 못 미더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파브리스 에르고트 미술관장은 "자신은 사회와 잘 안 맞는다고 느끼는 예술가들이 실은 가장 위대한 예술가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파리현대미술관이 크럼을 초청한 것은 분명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높은 예술적 경지와 예술가들(미술관과 친숙한 동시대 예술가를 비롯해)에게 미친 그의 지대한 영향력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전시회가 "단순히 만화가 '제9의 예술'임을 증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술관의 예술 창작을 바라보는 시각 변화라는 좀더 근본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9)는 사실에 몹시 열광했다.

물론 미술관이 기존 시각을 바꿔 그동안 경시하던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파리현대미술관- 실상 파리현대미술관이 만화에 관한 전시회를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작품을 수용하고 전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지울 길이 없다. 더욱이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파브리스 에르고트와 세바스티앙 고칼프 역시 크럼이 표방한 만화는 이미 인쇄물 형태로 구상·완성되었음(10)을 강조해, 나의 감상을 더욱 강하게 뒷받침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두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왜, 그리고 어떻게, 출판물을 전시물로 옮길 것인가? 물론 크럼의 만화책·그림·출판물이 다양하고 방대하다는 것은 기뻐할 만한 일이다. 창작에 대한 작가의 그치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양한 작품을 통해 그 안에 스민 우리 사회 이면의 변화상을 되짚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정작 이 미국의 만화작가를 초청한 미술관 쪽은 전시회의 기획 방향을 놓고 갈피를 잡지 못한 듯하다. 작품을 좀더 명확히 조명하기 위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품을 전시한 것은 오히려 각 작품의 성격에 따라 전시회의 분위기를 어정쩡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를테면 시각적 감상을 위해 그린 작품 사이의 간극이 두드러지고 말았다(<위어도>의 유명한 표지 시리즈, 사진을 모델로 그린 멋진 그림 등)과, 읽기물로 창작된 만화 작품(<창세기>가 특별 전시 중인 전시실의 경우, 두세 줄로 벽 위에 붙여놓은 만화책의 각 장이 시각적 감상 효과를 주었는지 의문스럽다). 크리스티앙 로세의 말을 빌리면, 전자는 벽에 걸기 위한 작품으로도 손색없었지만, 후자의 경우 자꾸만 책이라는 다른 매체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파리현대미술관 관장이 스트라스부르 미술관에서 롤랜드 토퍼나 토미 웅게러의 작품을 전시했던 과거 경험에 비추어보면, 삽화가의 작품과 만화작가의 작품을 홍보하는 두 행위 사이에 얼마나 큰 장애물이 존재하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더욱이 전시할 대상이 두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천재적 인물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크럼 전시회에서는 원판 작품과 인쇄 작품에 더해,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 작품을 이루는 각종 이질적 작품(태블릿을 통해 감상하는 스케치 노트, 곡예 중인 여인의 모습을 담은 수지 조각상, 테리 즈위고프의 영화, 각종 상품화된 소품 등)들이 전시됐다. 이는 뭔가 엉성하고 모호한 분위기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전시장 마지막에 전시된 프레데리크 뒤리외의 인터렉티브 비디오 설치작품 <쉬쉬 비긴>(관객의 움직임을 모션 캡처 방식을 통해 비디오 속 민속무용가가 모방해 추도록 만든 작품)처럼, 도무지 관객은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대체 이 회고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관객에게 교훈을 주는 것? 감동을 선사하는 것? 예술에 대해 설명하는 것? 아니면 관객을 놀라게 하는 것? 즐겁게 해주는 것? 단 한 사람의 작품에, 그것도 작가가 선호하는 장르가 아닌 다른 형태로, 이 모든 것을 담아내겠다는 것은 과욕이 아니었을까? 그런 이유 때문일까? 미술관을 나서는 순간 관객은 저도 모르게 그만 두툼한 전시회 도록(파리미술관 출판부)에 손이 가고 만다. 이 책에는 요즘 약방의 감초로 맹활약 중인, 굳이 없어도 그만인 조안 스파의 글과 더불어, 크럼 개인이나 작품을 소개한 흥미로운 글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고, 대부분의 전시 작품들이 훌륭하게 옮겨져 있다. 때마침 비슷한 시기에 코르넬리우스 출판사에서 출간된 <크럼의 베스트선집>도 함께 곁들여 읽으면 좋을 듯하다. 작가와 편집자가 정성을 다해 손발을 맞춘 지 20주년을 맞아 출간한 이 책도 열정이 가득한 장문의 인터뷰 글을 양념으로 삼아, 호인 크럼의 폭넓은 작품 세계를 잘 조명하고 있다.

글/모르방디오 Morvandiau 프랑스 만화작가.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현재까지 퓰리처상을 수상한 유일한 만화작품.
(2) <R. 크럼>, 보르도대학 출판부, 2012.
(3) 풍자신문 <매드>의 저자이자 창간자. 팬들이 만든 웹사이트에 그에 관한 전기가 게재되어 있다.
(4) 2012년 앙굴렘 만화축제와 보부르 공공 정보도서관에서 열린 전시회 <아트 스피겔먼, 코-믹스>전은 5월 21일 파리에서 막을 내렸다. 오는 9월 쾰른을 시작으로 밴쿠버, 뉴욕 등에서도 차례로 선보일 것이다. <크럼, 언더그라운드에서 창세기까지>전은 8월 19일까지 파리현대미술관에서 관람 가능.
(5) 한 명은 마르텔 미술관 창립자, 다른 한 명은 수많은 전시회의 디렉터로 활동.
(6) 중요한 사실로, 2003년 만화는 문화부 산하 조형예술위원회에서 도서독서국으로 관할기관이 이관됐다.
(7) 작품 <쥐>에 대한 탁월하고 면밀한 해설서 <메타 쥐>, 스피겔먼의 ‘개인적 작품 지형도’를 선보인 앙굴렘 만화미술관에서 열린 <개인 미술관>전이 대표적인 예다.
(8) 작가가 직접 ‘it’s only lines on paper’라고 표현한 것을, 친구인 번역자 장 피에르 메르시에가 도록 글 제목에 인용했다.
(9) 전시회 도록(프랑스어와 영어로 이중 출간), 파리 미술관 출판부.
(10) ibid.